우리의 소망 예수 (히12:1-3)
본문
모든 사람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합니다.우리 믿는 사람들은 소망에 대한 말과 표현을 여러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언제나 영원한 소망의 세계로 열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소망의 하나님입니다. 믿음, 소망,사랑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삼대 요소이자 가장 큰 덕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자, 약한 자, 병든 자, 그리고 눌린 자들에게는 항상 소망의 앞을 바라보게 됩니다. 참 소망은 사람들에게 양약과 노래와 춤과 용기도 되며 생명이 되기도 합니다.
1. 소망을 향한 삶의 경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항상 경주장에서 경주 하는 선수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경주장에는 언제나 관중이 있으며 그 경기자는 반드시 경주장에서 심판자의 심판중에서 열심히 경기를 합니다. 요즘 같이 운동의 열기가 가득찬 시대에는 나라의 영광과 단체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를 걸고 각종 운동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경기자들은 자신의 운동경기 종목에서 일등하기 위하여서는 몸 가짐을 간단히 그리고 강하게 하며 법대로 운동에 임하여야 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다 벗어 버려 야한다고 했습니다. 운동경기의 목적은 무엇보다 등수에 들어야 합니다 (원래의 운동정신은 친 교와 체위 향상이지만) 요즘에 와서는 특히 금전까지도 막대하게 오고가는 것은 과거와 다른 일들입니다. 육신상의 경기를 위하여서도 힘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의 경기는 보다 더 의미가 깊고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골인지점은 천국이며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일반 육신 운동경기는 몸을 단정히 하고 앞으로 뛰는 것이고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지만 우리 인생 의 경기는 영의 승리로 마귀를 이기며 양심의 승리로 도덕과 윤리적 사람 의 건전으로 사람의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얽매이기 쉬 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보는 중에 경기를 하는 것 같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삶 의 경기를 경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롯 유다는 경주장에서 실패한 낙오자가 된 것입니다
2. 경주장에서 법을 어기거나 쓰러지거나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 치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인생의 삶도 믿음의 목적이 잘못되거나 방법이 잘못되면 믿음의 결과인 구원의 이르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에서 자기의 욕심 때문에 세상에 치우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바른길로 끝까지 달려가지를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구약1(에서같은 사람은 생의 경주에서 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넘겼으며, 야곱은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의 축복이 욕심나서 아버지를 속이 고 축복을 3 받은 자입니다. 삼손은 그의 힘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 위한 것이 못되고 자기의 향락에 도취되었을 때 그의 일생은 패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왔을 때에 가나안이 그들의 목적은 소망의 땅 이지만 그곳보다는 광야에서 고통을 참지 못4 臼 원망과 시비와 우상숭배에 빠져서 결국은 전멸되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20세 이하만 약속의 땅에 들어 갔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만이 소망이 아니고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5 하늘나라가 우리가 향하는 곳입니다.
2. 경기자에게 고난 많습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맹훈련을 하여 신체단련, 인내력, 기술과 묘기, 온갖 필요한 힘을 길러서 타인을 이길만한 실6쩜 키웁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성을 향한 소망의 생활에서는 죄를 회개하고 항상 성결된 마음 생활로써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째 시험을 다 당하시었습니다. 빵의 시험,명예의 시험, 권력의 시험, 그리고 정치적인 시험, 종교적인 시 험을 당하시면서 하나7纛 아들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죽음 의 최상의 형벌이 8 고통입니다. 인생의 최후는 죽음입니다. 죽음 이상의 고통, 아픔, 슬픔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값을 지불키 위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그 고통 아픔을 친히 참으사 결국은 죽 음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 주가 되신 것입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참고 이기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치와 부끄 러움은 우리들을 이기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치와 부끄러움은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며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9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생활에0 반드시 시험이 옵니다. 의와 불의가 합칠 수 없으 며 선악이 함께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세력이 함께 머 물지 못합니다. 반드시 투쟁이 있게 되며 승리를 얻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 의 인생의 경기입니 육신의 경쟁에서도 이기려면 근면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의 승 자가 되려면 많은 악의 세력을 잘 이기기 위하여(엡 6:13-17) 하나님의 전 신갑주를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무기들은 진리, 복음,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로써 모든 시험과 고통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고난과 시험은 거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오며 그것은 영광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삶에서 고난과 역경, 시험이 온다면 이런 고난 은 영광입니다. 인생의 경주장에서 계속 뛰지 못하고 쓰러진 자가 있습니 까 이제 곧 주님이 이름으로 그 사랑의 음성으로 일어나십시오. 이제 주님 의 가신 길을 바라 보십시오. 그가 당한 온갖 고통의 길을 바라보면서 또다 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3. 소망의 예수만 바라보자 우리 보다 앞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육으로 오시사 이 땅의 고통으리 겪 으시고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경험하시되 죄 하나만 경험치 않으시고 다 겪 으신 생활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돈' 그리고 '명예' '권력''향락'이며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만 위하여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완전한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의 소망이 내일에 가서 사라지면 굳게 믿고 바 랐던 이 세상의 소망은 뜬 구름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불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 될 때에 흔들리 지 않습니다. 생명의 주를 소망할 때에 죽음을 넘어선 참소망의 영생이 보 장이 됩니다. 소망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했기 때문에 영원한 소망의 대상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누가 이 세상의 소망을 바라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일생이 헛된 세상의 소망을 위하여 일생을 보내지 말고 참소망이 되신 에수 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갑시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괴로움을 참고 살으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 편에 앉으셨다고 하였스비다.
솔로몬은 영원한 하나님을 소망한 나머지 그의 인생의 삶이 복된 것이비다. 그는 사람이 사는 것이 바람을 잡는 것 같이 허무하지만 영원을 사모하는 생활과 선을 행하는 삶만이 가치가 있고 소망적인 삶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가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영육이 부요해졌으며 병자가 예수 를 바라본 고로 병에서 나음을 얻은 것입니다. 죽을 자가 예수를 바라본 자는 생명의 회생이 있게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을 것을 바 라보는 고로 피곤하며 삶의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소망하는 자는 오늘도 살고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을 때에 모세는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구리뱀을 장대에 매달아 그것을 보면 산다고 할 때에 믿지 않고 바라보지 않은 자는 독에 의해 죽었고 바라본 자는 살아 났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곧 예수께 향한 소망이며 곧 살 수 있는 소망의 길입니다. 현대인들의 소망의 촛점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 소망으로 알기 때문에 그 소망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안개가 낀 날 아침에 바람이 강하게 불면 모두 짙은 안개라해도 바람에 날아가고 맙니다. 소망의 헛된 것으로느 니 돈, 명예, 권력, 인간의 지혜, 지식, 그리고 향락의 내용들이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은 그가 우리들의 길,진리,생명이시고 구 주이기 때문입니다.
1. 소망을 향한 삶의 경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항상 경주장에서 경주 하는 선수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경주장에는 언제나 관중이 있으며 그 경기자는 반드시 경주장에서 심판자의 심판중에서 열심히 경기를 합니다. 요즘 같이 운동의 열기가 가득찬 시대에는 나라의 영광과 단체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를 걸고 각종 운동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경기자들은 자신의 운동경기 종목에서 일등하기 위하여서는 몸 가짐을 간단히 그리고 강하게 하며 법대로 운동에 임하여야 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다 벗어 버려 야한다고 했습니다. 운동경기의 목적은 무엇보다 등수에 들어야 합니다 (원래의 운동정신은 친 교와 체위 향상이지만) 요즘에 와서는 특히 금전까지도 막대하게 오고가는 것은 과거와 다른 일들입니다. 육신상의 경기를 위하여서도 힘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의 경기는 보다 더 의미가 깊고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골인지점은 천국이며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일반 육신 운동경기는 몸을 단정히 하고 앞으로 뛰는 것이고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지만 우리 인생 의 경기는 영의 승리로 마귀를 이기며 양심의 승리로 도덕과 윤리적 사람 의 건전으로 사람의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얽매이기 쉬 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보는 중에 경기를 하는 것 같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삶 의 경기를 경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롯 유다는 경주장에서 실패한 낙오자가 된 것입니다
2. 경주장에서 법을 어기거나 쓰러지거나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 치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인생의 삶도 믿음의 목적이 잘못되거나 방법이 잘못되면 믿음의 결과인 구원의 이르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에서 자기의 욕심 때문에 세상에 치우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바른길로 끝까지 달려가지를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구약1(에서같은 사람은 생의 경주에서 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넘겼으며, 야곱은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의 축복이 욕심나서 아버지를 속이 고 축복을 3 받은 자입니다. 삼손은 그의 힘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 위한 것이 못되고 자기의 향락에 도취되었을 때 그의 일생은 패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왔을 때에 가나안이 그들의 목적은 소망의 땅 이지만 그곳보다는 광야에서 고통을 참지 못4 臼 원망과 시비와 우상숭배에 빠져서 결국은 전멸되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20세 이하만 약속의 땅에 들어 갔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만이 소망이 아니고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5 하늘나라가 우리가 향하는 곳입니다.
2. 경기자에게 고난 많습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맹훈련을 하여 신체단련, 인내력, 기술과 묘기, 온갖 필요한 힘을 길러서 타인을 이길만한 실6쩜 키웁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성을 향한 소망의 생활에서는 죄를 회개하고 항상 성결된 마음 생활로써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째 시험을 다 당하시었습니다. 빵의 시험,명예의 시험, 권력의 시험, 그리고 정치적인 시험, 종교적인 시 험을 당하시면서 하나7纛 아들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죽음 의 최상의 형벌이 8 고통입니다. 인생의 최후는 죽음입니다. 죽음 이상의 고통, 아픔, 슬픔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값을 지불키 위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그 고통 아픔을 친히 참으사 결국은 죽 음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 주가 되신 것입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참고 이기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치와 부끄 러움은 우리들을 이기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치와 부끄러움은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며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9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생활에0 반드시 시험이 옵니다. 의와 불의가 합칠 수 없으 며 선악이 함께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세력이 함께 머 물지 못합니다. 반드시 투쟁이 있게 되며 승리를 얻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 의 인생의 경기입니 육신의 경쟁에서도 이기려면 근면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의 승 자가 되려면 많은 악의 세력을 잘 이기기 위하여(엡 6:13-17) 하나님의 전 신갑주를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무기들은 진리, 복음,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로써 모든 시험과 고통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고난과 시험은 거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오며 그것은 영광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삶에서 고난과 역경, 시험이 온다면 이런 고난 은 영광입니다. 인생의 경주장에서 계속 뛰지 못하고 쓰러진 자가 있습니 까 이제 곧 주님이 이름으로 그 사랑의 음성으로 일어나십시오. 이제 주님 의 가신 길을 바라 보십시오. 그가 당한 온갖 고통의 길을 바라보면서 또다 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3. 소망의 예수만 바라보자 우리 보다 앞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육으로 오시사 이 땅의 고통으리 겪 으시고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경험하시되 죄 하나만 경험치 않으시고 다 겪 으신 생활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돈' 그리고 '명예' '권력''향락'이며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만 위하여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완전한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의 소망이 내일에 가서 사라지면 굳게 믿고 바 랐던 이 세상의 소망은 뜬 구름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불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 될 때에 흔들리 지 않습니다. 생명의 주를 소망할 때에 죽음을 넘어선 참소망의 영생이 보 장이 됩니다. 소망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했기 때문에 영원한 소망의 대상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누가 이 세상의 소망을 바라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일생이 헛된 세상의 소망을 위하여 일생을 보내지 말고 참소망이 되신 에수 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갑시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괴로움을 참고 살으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 편에 앉으셨다고 하였스비다.
솔로몬은 영원한 하나님을 소망한 나머지 그의 인생의 삶이 복된 것이비다. 그는 사람이 사는 것이 바람을 잡는 것 같이 허무하지만 영원을 사모하는 생활과 선을 행하는 삶만이 가치가 있고 소망적인 삶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가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영육이 부요해졌으며 병자가 예수 를 바라본 고로 병에서 나음을 얻은 것입니다. 죽을 자가 예수를 바라본 자는 생명의 회생이 있게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을 것을 바 라보는 고로 피곤하며 삶의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소망하는 자는 오늘도 살고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을 때에 모세는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구리뱀을 장대에 매달아 그것을 보면 산다고 할 때에 믿지 않고 바라보지 않은 자는 독에 의해 죽었고 바라본 자는 살아 났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곧 예수께 향한 소망이며 곧 살 수 있는 소망의 길입니다. 현대인들의 소망의 촛점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 소망으로 알기 때문에 그 소망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안개가 낀 날 아침에 바람이 강하게 불면 모두 짙은 안개라해도 바람에 날아가고 맙니다. 소망의 헛된 것으로느 니 돈, 명예, 권력, 인간의 지혜, 지식, 그리고 향락의 내용들이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은 그가 우리들의 길,진리,생명이시고 구 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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