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합시다 (히13:1-8)
본문
여러분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다른 점 곧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단 한마디로 구별해 본다면 불신자는 자기만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산다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불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예수님을 믿고 기도도하고 찬송도하고 봉사도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립니다.
그런데 불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교회를 다녀도 자기를 위하고 봉사를 해도 자기를 위하고 기도를 드려도 구제를 해도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분명히 믿지만 부모도 자기를 위해 주어야 하고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언제나 자기를 위해 주어야 한다는 사고방식 으로 삽니다. 여러분, 나는 절대로 혹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한 번 진단해 보세요.
첫째로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자기 의견을 사람들이 따라 주 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표정이 굳어지고 섭섭해지며 나중에는 자기를 무시 했다고 교회나 기관의 일을 협조도 아니하고 관심도 쓰지 않는 때가 있지 않습 니까 이것은 바로 자기를 위하고 있다는
첫째 증거입니다.
둘째로 교회에서나 가정 그리고 직장에서 내가 어떤 힘든 일을 최선을 다해 성공적으로 해 놓았을 때, 진정 맡겨 준 온갖 일을 정성을 다해 끝을 마쳤을 때 에, 아무도 칭찬을 해주지 않을 때에, 8인정도 알아줌도 없거나 너무 적을 때에 실망되고 낙심되고 화도 나고 '누가 누가 섭섭도하여 이젠 이 일을 그만해야겠 다, 아무리 고생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하면 뭘해'하며 중지하고 포기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이것 역시 진심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지 않고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셋째로 특히 교회를 다녀도 돈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고 하며 예배만 참여하고 교회의 어떤 기관도 소속하지 않고 어떤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왜요 한마디로 시간과 돈과 자신의 그 무엇을 희생 당할까 봐 겁이 나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야하니까 예배는 참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그 무엇도 할 마음이 없어요. 그 어디에 매이지 않고 그 누구의 간섭도 안받고 아 무런 물질적 부담도 없이 내 마음대로 예배드리고 싶을 때에 교회 나오고 바쁘 면 내일 먼저 보고 또 시간이 나면 예배를 드리고 아주 편하게 신앙 생활합니다. 가끔 기분이 나거나 사람들의 인기와 명예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명 목 헌금을 합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를 위하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여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다가 이웃을 위하다가 누가 알아주거나 무시하거나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돈과 시간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더 많이 바치고 쓰지 못하여 죄송해 지고 미안해지는 것이 바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마음 자세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한번 보세요 도저히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얼마 나 큰 힘과 용기 그리고 확신을 주는 말씀인지요, 절로 두손과 두다리에 힘이 주어집니다. 그 핵심을 함께 짚어 보십시다. 1절에는 '형제사랑은 계속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2절에는 '손님 접대는 잊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합니다. 3절에서는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늘 생각해 주라'고 명령합니다. 4절은 '혼인 즉 가정은 언제나 귀히 여길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5절은 '돈에 대하여는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은 주의 종들에 대하여인데요 '죽음의 종말이 아닌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몇 절을 넘어가서 16절을 보세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 지 말라"고 했고요. 끝으로 17절에서는 여러분을 인도하는 '종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여 종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의 중요 핵심은 이러한 일들을 계속하라 입니다. 1절을 보세요 "형제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하였지요. 그럼 다른 절에서는 계속하라는 말이 없으니 형제사랑 이외의 것은 한번만 하라는 것입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 습니다. 이 본문은 사랑의 점진성과 계속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형제사랑을 계속하라 그리고 손 대접하기도 잊지 말고 계속하라.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해 주는 일을 계속하라. 모든 사람은 혼인을 계속하여 귀 히 여겨라. 돈에 대하여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는 생활 자세를 계속 가져라.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계속하라. 주의 종들을 본받고 그들이 즐겁게 일 하도록 순복하기를 계속하라. 그렇습니다. 오늘의 말씀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인들 이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 하기를 시작하였느냐 그 일을 중지하지 말라, 계속하라, 지난해도 하였느냐 금년에도 계속하라. 도매금으로 적당히 하 지 말라,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사랑을 지속 적으로 실행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엄청난 사랑을 어떻게 계속적으로 실천한단 말입니까
1. 먼저 8절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누가 먼저 실천하 신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은 어제의 예수님이십니다. 그 때 예수님은 죄인에게 천국의 복음, 영생의 복음, 용서의 복음을 전하셨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 어 주셨고 세리와 창기들까지도 가까이 오라고 불러 주셨고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롭게 풀어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푸셨고 우는 자의 위로가 되 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도 어제의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십니다. 즉 오늘날도 어제의 그 복음서에서 하셨던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 일 을 어떻게 계속하십니까 예수님의 가지요 지체인 그리스도인 여러분을 통하여 이 일을 계속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너무나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변 함없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예수님이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랑을 구체적으로 계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이 본문 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곧 하나님 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과연은 결단코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결단 코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떠나지 아니하리라,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리 라" 할렐루야!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계속하여 함께 게십니다. 야곱에게 함께 하셨던 주님이 금년 내내 여러분과 함께 계셔주시사 결코 떠나지 않고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지 아니하시 고 버리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떻게 됩니까 물론:담대해집니다. 무엇을 행하기에 주저주저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41:10에서는 "두러워말 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사랑 계속하기를 담대하십시오. 모든 선한 일 계속하기를 두 러워말고 주님과 함께 담대히 실천하십시오. 결단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3. 제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돕는 자 가 되십니다. 형제사랑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손님을 계속하여 대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위로할 재료를 얼마든 지 주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혼인 생활을 성결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언제나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다.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며 살아 도 무엇이 필요하다고 인정만 되면 반드시 채워 주십니다. 선을 행하고 서로 나 눠주고 싶은데 정말 없어서 못줍니까 구하십시오. 주님이 꼭 도와주십니다. 아 니 넘치게 부어 주시기도 합니다. 지난 목요일 친구 박창윤 목사가 교회 어린이 집 문제로 당신의 섬기는 교회 에 와서 구경하고 점심도 같이 먹자고 졸라서 찾아갔습니다. 볼 것을 다보고 점 심을 먹는데 박 목사의 아들 19세가 교통사고를 일으킨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나 큰 사고여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밤 1시경 쏘나타를 끌고 나가 운전 하다 새벽 4시경 영업용 택시를 두대나 들어 받아서 자기가 탄 아빠의 쏘나타는 폐차가 되었고 택시 두대는 얼마나 부서졌는지 1300만원이나 들었답니다. 그런데 아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운전수들도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아름다운 형제사랑 선행의 신령한 사건이 나타났습니다. 보통 낮 은 수준의 교회 같으면 '목사가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불평하거나 목사가 무슨 죄가 있어 1300만원이나 날려 버릴 일을 당한단 말인가'할 터인데 아무도 그런 불평도 없이 사랑으로 '그렇지 않아도 쏘나타three를 사드리려하였다'고 하 며 목사님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제 친구 박목사는 두손이 없고 두눈마저 없는 놀라운 장애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쏘나타three를 사드리려하였는데 집사님 한 분이 나타나 "당신이 혼자서 사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진 산업이라는 시 계의 바늘만을 만드는 공장을 하는 분인데 요사이 전국적으로 불경기라 사업이 어러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혼자서 사 드리겠다고하며 크레도스라는 차를 목사 님에게 사 드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동을 받은 것은 그분의 사랑의 계속성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그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 집사님의 사랑의 계속 성을 점검하려고 물어 보았습니다. 자동차를 사 드린 것은 사업을 하는 분은 평 생에 한번쯤은 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계속적인 사랑과 선행을 실천 하는 분이라면 정말 귀한 분이리라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지요 "그분이 과거에 주님을 향한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느냐고요" 그러자 과연 저의 기대감을 족하게 하고도 남을 말씀을 친구 목사님은 해주셨습니다. "아! 김 목사 그거 잘 물었어요, 그 분은 이번에 폐차로 처분한 쏘나타를 몇년전에 사주신 분이지요. 그리고 그 바로 한 두 해전에 우리 교회 성전 건축할 때에 영락 교회 성도 한 분이 10억을 대줄 때에 사실 그 돈으로만 건축이 완공될 수 없었지요. 그 때에 바로 이집사님이 건축 헌금을 제일 많이 하였는데 1억 4천이나 하였다오." 두눈이 없 고 두손이 없는 목사님의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은 목사님의 천제적인 두뇌와 설교 그리고 지칠줄 모르는 용기와 추진력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계속적으로 실행하는 이러한 위대한 숨은 봉사자들 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의 선행, 한번의 모험적인 헌금, 한번의 자비심, 한번의 용서, 한해 의 봉사, 어떤 의미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속 성, 선행의 계속성, 선교의 계속성, 모든 진리 실천의 계속성이 중요합니다. 지난 해에 각종 선교 후원에 동참하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각종 주의 일에 충성하신 여러분 주께서 축복하시기를 빕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주님의 일을 계속 하십시다. 사랑의 계속성, 선교 후원의 계속성, 충성 봉사의 계속성, 선행의 계속 성, 우리 모두 주님을 본 받아 어제나 오늘이나 작년이나 금년이나 계속하십시다. 주께서 여러분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도와주십니다. 공급해 주십니다. 계속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 하 늘 나라 들어 갈 그날까지 우리 모두 주님이 기뻐할 일을 계속하십시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불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예수님을 믿고 기도도하고 찬송도하고 봉사도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립니다.
그런데 불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교회를 다녀도 자기를 위하고 봉사를 해도 자기를 위하고 기도를 드려도 구제를 해도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분명히 믿지만 부모도 자기를 위해 주어야 하고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언제나 자기를 위해 주어야 한다는 사고방식 으로 삽니다. 여러분, 나는 절대로 혹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한 번 진단해 보세요.
첫째로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자기 의견을 사람들이 따라 주 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표정이 굳어지고 섭섭해지며 나중에는 자기를 무시 했다고 교회나 기관의 일을 협조도 아니하고 관심도 쓰지 않는 때가 있지 않습 니까 이것은 바로 자기를 위하고 있다는
첫째 증거입니다.
둘째로 교회에서나 가정 그리고 직장에서 내가 어떤 힘든 일을 최선을 다해 성공적으로 해 놓았을 때, 진정 맡겨 준 온갖 일을 정성을 다해 끝을 마쳤을 때 에, 아무도 칭찬을 해주지 않을 때에, 8인정도 알아줌도 없거나 너무 적을 때에 실망되고 낙심되고 화도 나고 '누가 누가 섭섭도하여 이젠 이 일을 그만해야겠 다, 아무리 고생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하면 뭘해'하며 중지하고 포기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이것 역시 진심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지 않고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셋째로 특히 교회를 다녀도 돈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고 하며 예배만 참여하고 교회의 어떤 기관도 소속하지 않고 어떤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왜요 한마디로 시간과 돈과 자신의 그 무엇을 희생 당할까 봐 겁이 나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야하니까 예배는 참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그 무엇도 할 마음이 없어요. 그 어디에 매이지 않고 그 누구의 간섭도 안받고 아 무런 물질적 부담도 없이 내 마음대로 예배드리고 싶을 때에 교회 나오고 바쁘 면 내일 먼저 보고 또 시간이 나면 예배를 드리고 아주 편하게 신앙 생활합니다. 가끔 기분이 나거나 사람들의 인기와 명예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명 목 헌금을 합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를 위하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여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다가 이웃을 위하다가 누가 알아주거나 무시하거나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돈과 시간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더 많이 바치고 쓰지 못하여 죄송해 지고 미안해지는 것이 바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마음 자세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한번 보세요 도저히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얼마 나 큰 힘과 용기 그리고 확신을 주는 말씀인지요, 절로 두손과 두다리에 힘이 주어집니다. 그 핵심을 함께 짚어 보십시다. 1절에는 '형제사랑은 계속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2절에는 '손님 접대는 잊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합니다. 3절에서는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늘 생각해 주라'고 명령합니다. 4절은 '혼인 즉 가정은 언제나 귀히 여길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5절은 '돈에 대하여는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은 주의 종들에 대하여인데요 '죽음의 종말이 아닌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몇 절을 넘어가서 16절을 보세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 지 말라"고 했고요. 끝으로 17절에서는 여러분을 인도하는 '종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여 종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의 중요 핵심은 이러한 일들을 계속하라 입니다. 1절을 보세요 "형제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하였지요. 그럼 다른 절에서는 계속하라는 말이 없으니 형제사랑 이외의 것은 한번만 하라는 것입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 습니다. 이 본문은 사랑의 점진성과 계속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형제사랑을 계속하라 그리고 손 대접하기도 잊지 말고 계속하라.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해 주는 일을 계속하라. 모든 사람은 혼인을 계속하여 귀 히 여겨라. 돈에 대하여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는 생활 자세를 계속 가져라.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계속하라. 주의 종들을 본받고 그들이 즐겁게 일 하도록 순복하기를 계속하라. 그렇습니다. 오늘의 말씀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인들 이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 하기를 시작하였느냐 그 일을 중지하지 말라, 계속하라, 지난해도 하였느냐 금년에도 계속하라. 도매금으로 적당히 하 지 말라,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사랑을 지속 적으로 실행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엄청난 사랑을 어떻게 계속적으로 실천한단 말입니까
1. 먼저 8절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누가 먼저 실천하 신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은 어제의 예수님이십니다. 그 때 예수님은 죄인에게 천국의 복음, 영생의 복음, 용서의 복음을 전하셨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 어 주셨고 세리와 창기들까지도 가까이 오라고 불러 주셨고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롭게 풀어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푸셨고 우는 자의 위로가 되 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도 어제의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십니다. 즉 오늘날도 어제의 그 복음서에서 하셨던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 일 을 어떻게 계속하십니까 예수님의 가지요 지체인 그리스도인 여러분을 통하여 이 일을 계속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너무나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변 함없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예수님이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랑을 구체적으로 계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이 본문 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곧 하나님 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과연은 결단코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결단 코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떠나지 아니하리라,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리 라" 할렐루야!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계속하여 함께 게십니다. 야곱에게 함께 하셨던 주님이 금년 내내 여러분과 함께 계셔주시사 결코 떠나지 않고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지 아니하시 고 버리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떻게 됩니까 물론:담대해집니다. 무엇을 행하기에 주저주저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41:10에서는 "두러워말 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사랑 계속하기를 담대하십시오. 모든 선한 일 계속하기를 두 러워말고 주님과 함께 담대히 실천하십시오. 결단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3. 제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돕는 자 가 되십니다. 형제사랑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손님을 계속하여 대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위로할 재료를 얼마든 지 주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혼인 생활을 성결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언제나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다.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며 살아 도 무엇이 필요하다고 인정만 되면 반드시 채워 주십니다. 선을 행하고 서로 나 눠주고 싶은데 정말 없어서 못줍니까 구하십시오. 주님이 꼭 도와주십니다. 아 니 넘치게 부어 주시기도 합니다. 지난 목요일 친구 박창윤 목사가 교회 어린이 집 문제로 당신의 섬기는 교회 에 와서 구경하고 점심도 같이 먹자고 졸라서 찾아갔습니다. 볼 것을 다보고 점 심을 먹는데 박 목사의 아들 19세가 교통사고를 일으킨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나 큰 사고여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밤 1시경 쏘나타를 끌고 나가 운전 하다 새벽 4시경 영업용 택시를 두대나 들어 받아서 자기가 탄 아빠의 쏘나타는 폐차가 되었고 택시 두대는 얼마나 부서졌는지 1300만원이나 들었답니다. 그런데 아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운전수들도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아름다운 형제사랑 선행의 신령한 사건이 나타났습니다. 보통 낮 은 수준의 교회 같으면 '목사가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불평하거나 목사가 무슨 죄가 있어 1300만원이나 날려 버릴 일을 당한단 말인가'할 터인데 아무도 그런 불평도 없이 사랑으로 '그렇지 않아도 쏘나타three를 사드리려하였다'고 하 며 목사님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제 친구 박목사는 두손이 없고 두눈마저 없는 놀라운 장애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쏘나타three를 사드리려하였는데 집사님 한 분이 나타나 "당신이 혼자서 사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진 산업이라는 시 계의 바늘만을 만드는 공장을 하는 분인데 요사이 전국적으로 불경기라 사업이 어러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혼자서 사 드리겠다고하며 크레도스라는 차를 목사 님에게 사 드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동을 받은 것은 그분의 사랑의 계속성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그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 집사님의 사랑의 계속 성을 점검하려고 물어 보았습니다. 자동차를 사 드린 것은 사업을 하는 분은 평 생에 한번쯤은 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계속적인 사랑과 선행을 실천 하는 분이라면 정말 귀한 분이리라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지요 "그분이 과거에 주님을 향한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느냐고요" 그러자 과연 저의 기대감을 족하게 하고도 남을 말씀을 친구 목사님은 해주셨습니다. "아! 김 목사 그거 잘 물었어요, 그 분은 이번에 폐차로 처분한 쏘나타를 몇년전에 사주신 분이지요. 그리고 그 바로 한 두 해전에 우리 교회 성전 건축할 때에 영락 교회 성도 한 분이 10억을 대줄 때에 사실 그 돈으로만 건축이 완공될 수 없었지요. 그 때에 바로 이집사님이 건축 헌금을 제일 많이 하였는데 1억 4천이나 하였다오." 두눈이 없 고 두손이 없는 목사님의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은 목사님의 천제적인 두뇌와 설교 그리고 지칠줄 모르는 용기와 추진력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계속적으로 실행하는 이러한 위대한 숨은 봉사자들 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의 선행, 한번의 모험적인 헌금, 한번의 자비심, 한번의 용서, 한해 의 봉사, 어떤 의미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속 성, 선행의 계속성, 선교의 계속성, 모든 진리 실천의 계속성이 중요합니다. 지난 해에 각종 선교 후원에 동참하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각종 주의 일에 충성하신 여러분 주께서 축복하시기를 빕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주님의 일을 계속 하십시다. 사랑의 계속성, 선교 후원의 계속성, 충성 봉사의 계속성, 선행의 계속 성, 우리 모두 주님을 본 받아 어제나 오늘이나 작년이나 금년이나 계속하십시다. 주께서 여러분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도와주십니다. 공급해 주십니다. 계속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 하 늘 나라 들어 갈 그날까지 우리 모두 주님이 기뻐할 일을 계속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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