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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성윤리 (히13:4)

본문

히 13:1-3은 성도에게 필요한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먼저 형제를 사랑하되 꾸준히 계속하여 사랑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며 고난 받는 형제와 옥 에 갇혀있는 자를 돌보라고 하였다. 우리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은 남이 아니다. 마귀가 아니다. 제일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경계할 수도 있고 얼마든 지 싸워서 이길 수도 있다. 그리고 마귀의 세찬 공격에 대해서 도 막을 수가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 을 정복하기란 쉽지가 않다. 우리가 제일 쉽게 패배하는 부분 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제 일 먼저 주님을 공격했던 대상은 마귀였다. 마귀는 예수에 게 3가지로 유혹했지만 주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를 져야 했을 때, 그가 싸워야 했던 적은 마귀가 아니라 바 로 예수 자신이었다. 그는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 내가 꼭 이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주 님은 다음과 같은 기도로 이 싸움에 승리하셨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 서."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싸웠던 것은 자 기 자신이었고, 자기 자신의 뜻을 꺾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도였다. 이처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대단히 힘들다.
그러므로 자기를 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누 구와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소유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모든 성도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할 대상 을 성경은 4절에서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 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 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1. 혼인을 귀히 여기라.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4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을 만드셨을 때부터 혼인을 아주 귀중히 여기 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결혼을 인간을 위한 최대의 축복으 로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정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결혼을 아 주 대수롭지 않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풍조를 만들기 시작 했다. 혼인경시사상은 근대들어 더욱 부쩍 증가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혼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미국의 불 신자들의 이혼율은 거의 2:1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있다. 오늘 날 전세계는 바야흐로 이혼전성시대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혼이라는 전염병을 앓고 있다. 인 기있는 주말 드라마의 내용도 모두가 이혼과 관련된 것들이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성경에 악 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다. 우리가 T.V 드라마를 보는 것은 결코 죄일 수 없으나 건전치 못한 가정관계를 다루는 드라마 의 시청은 가능한한 피해야 할 것이다. 짖궂게도 작가들은 신 성해야할 가정의 혼인관계에 대하여 파괴된 모습을 묘사함으 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그릇된 성공주의에 빠져 있다.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우리 의 삶에 이혼은 없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불편하다고, 성격 이 맞지 않는다고 이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허 락하신 혼인을 경히 여기는 악한 행위인 것이다. 혼인경시사상의 또한 양태는 성적 문란행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요즈음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혼전 성관계는 아무런 스 스럼 없이 행해지고 있다. 마치 이것을 당연하다는듯이 생각하는 것 같다.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 또한 결혼 이외 의 성관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죄악시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인 타락의 형태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 은 이러한 행위를 철저하게 죄악시 한다.
왜냐하면 개인, 특히 성도에게 있어서의 도덕적 성결은 바로 혼인의 귀중성과 직 결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세 가지 이유로 설명 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 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 만히 거하는 것이었다. 왜 우리가 결혼하는 것인가 생육하 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히 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기 위 해서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식 을 낳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자식을 키워서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게 하는 것이 결혼의 고귀한 목적이다.
둘째,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나님은 사람이 홀로 외롭게 사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 으신다. 그리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배필이 아님 을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배필은 "도와줄 수 있는 배 필"이어야 한다. 내가 저 사람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 다는 이권적인 자세가 아니라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무슨 도움 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결혼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돕는 배필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이상적 인 개념의 배필을 찾았기 때문이란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결코 성경은 우리에게 이상적 배필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은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정에 의하여 홀로된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잘못된 동 기가 아닌 한 혼자 살 것이 아니라 재혼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그러나 성경은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독신으로 사는 축복을 주시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세째,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 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2). 이는 성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남편은 그 아내에 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고 전 7:3)고 했다. 즉 성적인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명령이다. 남편이 요구했다면 아내는 거절할 이유가 없 고, 아내가 요구했을 때 남편 또한 성적인 의무를 거부할 이유 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전 7:8-9을 보면 다음과 같이 명하고 있다. "내 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 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 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절제 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혼자 살면서 죄짓는 것보다는 결혼하여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이 훨씬 더 하나님께 영광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경은 친절하게 우리에게 권 면해 주고 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성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 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동물과는 달리 우리 인간에게는 결 혼의 제도를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도덕적 순결을 원하 시기 때문이다.
2. 도덕적, 성적 순결을 지키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 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덕적, 성적 순결을 원하신다. 이것은 육체적인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문제에서 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구약을 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신앙적 순결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섬기고 우상 을 섬길 때, 하나님은 분노하셨는데 신앙의 순결을 잃어버렸 기 때문이다. 한 여자에게서 남자를 위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 가 그것은 도덕적 순결이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 무 엇보다도 도덕적 순결을 원한다. 도덕적, 성적 순결을 원하는 것은 사랑의 기초이다. 왜 현대인들의 많은 사람들이 이혼해 야 하는가 바로 순결의 문제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순결을 원 하시지만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이 순결을 포기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한 마디로 성적으로 타락했던 중세시 대와 흡사하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향락산업이 줄을 잇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이성적인 유혹은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범람하는 낙태수술 통계를 통해서도 우리는 성의 타락이 극 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의 욕구를 먹 고 잠자는 인간의 기본 욕구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려 들고 있다. 오히려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고전 6:18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 안에서 죄 를 짓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죄의 목록을 보면 언제나 음행이 첫번째 를 차지하고 있다. 성적인 타락은 육체적인 타락에 있는 것 이 아니라 마음의 타락에 있다. 그래서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 은 정신적 타락에 이르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 결혼하 여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만족을 위해 향락업소에 출 입하는 사람, 아내나 남편이 있음에도 불륜의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 성적 만족을 위하여 음란 TAPE나 잡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추악하고 타락하여 마귀의 종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보장 안에 있을 때, 성이란 가장 아름 답고 충만하고 창조적인 것이다. 부부에게 있어서 성처럼 큰 축복은 없다. 그러나 결혼 외의 성이란 추악하고 파괴적이고 흉악 한 것 뿐이다. 성경은 이처럼 강력하게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을 향하여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 고 말한다. 남자나 여자든지간에 결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혼외의 성 관계를 맺는 행위가 바로 침소를 더럽히는 행위이다. 음행하 고 간음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한다고 성경은 경 고한다. 또한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 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 세상의 병중에서 가장 고약 한 병이 바로 "성병"이다. 간음한 사람들의 외모는 언제나 추 해진다. 이중살림하는 사람의 눈에는 촛점이 없다. 추하고 더 럽다. 이것이 바로 간음과 음행의 결론이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계속되어져 왔고 지금도 반복되는 진리이다.
3. 가정을 지키라. 가정은 교회보다도 더 중요하다. 먼저 가정에서 나의 할 바를 다한 다음에 교회에 봉사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 직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가정이다. 직장 핑계대 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직장은 그만둘 수 있어 도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지위는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정 이란 이처럼 소중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귀한 가정을 경 시 여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만일 우리가 가정에 서 가정천국을 이루지 못하면서 교회에서 신앙천국을 이루려 고 한다면 모든 행위는 한낱 거짓에 불과하다. 먼저 가정천국 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남편을 존중하고 아내 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식을 사랑하는 이 모습이야말 로 하나님이 주신 천국의 모습인 것이다. 부모나 자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부 이다. 세상에서는 부모를 본인보다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성경 은 부부가 부모보다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이렇듯 귀 한 가정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첫째, 가정의 가장은 남편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신 것처럼 남자는 아내의 머리라 고 하는 사실이 확립되어질 때 결혼의 소중성, 가정의 소중성 이 이루어질 수 있다. 주도권을 여자가 갖는다면 그 가정은 위 험한 가정이 된다.
둘째,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가 되라. 그리스도가 기뻐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자가 남자 에게 순종하는 가정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야고보서 에 소개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남편을 주님처럼 순종했던 사 라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순종의 비밀 을 알고 있다. 순종은 결코 맹종이 아니다. 순종처럼 무서운 것 이 없다. 순종을 통해서만 아내는 남편을 사로잡을 수 있다. 세째,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되라. 남자는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의 원리 이다. 벧전 3:7에 "여자는 남자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 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은 자로 알고 귀히 여기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절대로 남자는 무력으로 아내를 다스려서는 안된다. 여자 를 순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사랑" 뿐이다. 그 외의 방 법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가 정을 이루는 비결이다. 성도들이여! 도덕적 성결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끝까지 지켜야 한다. 결혼 전에도 지키고 결혼 후에도 지키라. 엡 5:3에 "음행 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 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고 하였다. 성도는 음란 한 유모어도 삼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유모어의 한 계를 넘어선 행동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것을 지킬 때, 세상 의 타락은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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