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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 (히1:1-3)

본문

이천 년 동안의 역사 속에 자리잡은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예수께서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고 하는 성경 진리를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신앙고백은 바로 교회 존재의 힘이 되었습니다. 선교의 동력이 되고, 새 소망의 활천(活泉)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고백은 결코 공상이나 망상이 아닌 실상의 고백이었습니다. 허상이나 가상이 아닌 실상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고백은 철학이 아니고, 과학이 아니고, 심리학이 아니고, 문학이 아니고, 신학(神學)입니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진행하시는 주권적 초자연의 역사(役事)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어디로 가셨는가 예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왜 그러시는가 하는 이것은 그를 믿고 살아가는 교회가 소중하게 신앙의 고백으로 간직하고 있는 소망의 보배입니다. 지금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I. 먼저 확실한 성경의 많은 증거들을 봅니다.
1. 예수 자신의 자증(自證)입니다. 마태복음 26장 64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과의 격돌에서 자주자주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간다고 역설하였습니다(요 3:13, 8:14, 21, 13:33, 36, 14:1-4).
2. 베드로의 증거입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을 받은 후 설교한 그의 첫 설교에서 예수께서 하늘에 현존하고 있는 실재를 말씀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33절에서 36절 중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라고 예수께서 보좌에 앉으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예수 현존의 장소성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행 5:31). 베드로전서 3장 22절에서도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3. 사도 바울의 증거입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 20절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4. 히브리서 저자의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장 13절에도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라고, 시편 인용(시 110:1)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하늘 보좌 현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8장 1절에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5. 스데반 집사의 증거입니다. 사도행전 7장 55, 56절에 스데반이 성령님에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성령님 충만 속에서 설교하다가 원수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순교하기 직전에, 이 엄청난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영광의 모습 때문에 그는 죽음이 무서운 줄 모르고 겁내지 않고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고 계신다는 그의 현존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승귀(昇貴) 곧 높아지신 신분에 그 단계적 구별이 명백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그의 부활이요,
둘째는 그의 승천(하늘에 올라가심)이요,
셋째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입니다. 그리고 그
넷째는 그리스도의 유형적 재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 중에 중요한
첫째 부분은 예수께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고 있다는 예수의 현존입니다. 결코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늘로 막연하게 사라져 버렸거나 소멸해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구원의 진리 계시인 성경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진리의 지식입니다. 그 성경은 바로 하나님 자신께서 그의 영을 통하여 주신, 신자들을 위한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기독 신자는 성경이 없으면 모든 것이 캄캄합니다. 성경이 있어도 믿어지지 아니하면 캄캄합니다. 믿어지는 역사(役事)는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엡 2:8). 그래서 우리는 성경 계시를 통하여 예수님의 현존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또 그분을 소망하게 됩니다.
Ⅱ.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의 의미와 이유 우리는 지금까지 거듭된 성경의 기록 앞에서,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물론 이 말은 신인동형주의(神人同形主義)적인 말입니다. 즉 의인적(anthropomorphic)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의 언어로 서술하다 보니 자연히 인간의 형상으로 비유해서 표현한 말입니다. 이 말은 시편 110편 1절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두고 나온 말씀입니다. 주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재림하여 악인을 심판할 때까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을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오른쪽은 존경과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등극한 후에 그 어머니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일로 면대하러 왔을 때, 왕은 그 어머니를 영접하여 그의 오른편에 앉게 했습니다(왕상 2: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상경하시는 중에 세베대의 아내는 자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시기를 요구한 일이 있습니다(마 20:21). 마태복음 25장의 마지막 비유를 보면,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마 25:33). 그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 25:34)고 하였습니다. 이런 성경의 내용들을 볼 때, 그리스도께서 승천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문학적으로 이해될 말이기보다는, 그가 성부의 뜻을 좇아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를 위한 속죄 사역을 완성하시고
1 그 본래의 영광에로 되돌아가심을 뜻합니다. 그는 세상에 계실 때 인자가 이전 있던 곳으로 되돌아 간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2 그리고 성부께서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더하시는 표시가 됩니다.
3 따라서 그가 성부로부터 우주와 교회의 통치권을 받으시고 즉위하시어 교회와 천지(天地)의 정권(政權)에 엄숙히 착수하심을 나타내 보이신 뜻이 됩니다.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Calvin)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 성경의 진술에 대하여 그는 천지(天地)의 정치(政治)에 임직되시고, 그에게 위임된 행정(行政)의 소유(所有)에 정식으로 허입(許入)되시되, 한 번만 허입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심판하러 내려가시기까지 계속 하기로 되신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하늘 보좌 현존은 우리에게 큰 소망과 위로와 축복과 안위를 가져다 줍니다. 그는 만유 위에 계셔서 만유의 주가 되시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살아 계신 주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장 3절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장 7절로 10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신 결과요, 또 그에게 뛰어난 이름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심으로 이 세상 뿐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엡 1:20-21). 그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으로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 다고 하였습니다(히 2:8, 엡 1:22, 고전 15:23). 또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고 하였습니다(엡 1:22). 그리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엡 1:23). 그 이유는 그가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마 28:18). 그래서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벧전 3:22). 예외없이 부활, 승천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예수께 대한 그의 권위와 영광을 묘사하는 말씀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아주 어렸을 때인 초등학교 1학년 전후 시절에는, 동네에서 누가 일본에 갔다거나 우리 친구 중에 누구의 아버지가 일본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아들이나 가족들을 몹시도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누가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모든 어린이들에게 부러움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된 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누구가 미국에 갔고, 누구의 부모는 미국에 살고 있고, 누구의 형과 누나는 미국에 유학 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렇게도 그 사람들과 자녀들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또한 자기 부모나 형제가 미국에 있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높아 보였고, 행복해 보였고, 부러워 보였습니다. 그것은 일본 치하에 살던 우리에게는 일본이 우리보다 잘 사는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우리 모두에게 알려진 미국은 그야말로 지상낙원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꿈 많은 어린 소년들에게 있어 미국은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친구의 부모나 형이나 누나가 살고 있다는 말이 자연히 우리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없어졌다’, ‘사라졌다’, ‘죽었다’는 말은 언제나 그 여운이 섭섭한 것입니다. 그러나 ‘있다’, ‘잘 된다’는 말은, 더욱 그것이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그 말은 언제나 위로요 또 소망이 됩니다. 하지만 살아 있어도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단다’, ‘잡혀 갔단다’고 할 때 그것은 자랑이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 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소식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랑의 소식입니다. 그분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기상천외한 쾌보(快報)입니다. 아니 그분이 다시 살아나실 뿐만 아니라, 살아나시어 여기 세상에 더 계시지 않고 산 채로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분의 승천은 결코 행방불명(行方不明)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 현존의 소식입니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스위스나 아니면 땅끝이나 바다끝도 아닌, 지구 아니 그 어느 다른 유성체가 아닌 하나님 보좌 우편에 그가 죄정하고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땅이 아닌 하늘에 살아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바로 이 위대한 그리스도 예수의 현존이 우리의 믿음의 용기요, 소망의 용기요, 사랑의 용기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삶의 향방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닌 하늘 실존의 실체를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무덤을 쳐다보고 우는 자들이 아니고, 다가올 미래의 하늘을 쳐다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현재를 소중하게 다루고 살아가며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역사가 계속 될 동안, 나사렛 예수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역사라고 하는 숱한 사건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살아 계셔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분이 살아 계셔서 그분을 생각나게 하고, 믿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소망하게 하고, 그분이 주신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살아 계셔서 지상의 전투 교회 사이를 왕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계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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