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보자 (히12:1-3)
본문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라는 경제 상황에 들어간지 5개월이 되었습니다. 이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 모든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과 좌절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혹독한 어려움이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함과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우리의 삶에 생명력있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기적이 일어나고, 불가능도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없던 것도 가지게 되며 불안이 평안으로 바꾸어 집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절망이 소망으로 변하고 슬픔도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지금 우리보다도 더욱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그 어두움과 절망을 빛과 희망의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들이 그름처럼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그러한 증인들을 보면서 우리의 힘이 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6.25전쟁당시 국군과 북괴군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만약 북괴군이 낙동강만 건너면 전쟁은 끝나버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에 피난 온 모든 목회자들을 부산 도지사 관저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부탁하기를 “지금 우리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입니다. 지금은 장마철로 비가 올 때입니다.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야 우리 비행기가 낙동강 적진을 폭격해 적군의 전진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면은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적군이 강을 건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볼 것은 하나님밖에 없으니 목사님들은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시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이 일주일을 금식하며 철야로 기도한 결과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청명하여 아군기가 적 진지를 폭격하여 오늘의 한국이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2. 본론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따라 우리의 장래가 좌우됩니다. 구두닦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의 구두만 바라보고 미용사는 사람들의 머리만 바라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책상 앞에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표어를 써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그 꿈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장애인 어린이가 매스컴에 보도되어 우리의 눈시울을 붉힌 일이 있었습니다. 몸이 반쪽밖에 없는 장애인으로서 야구선수의 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이와 감탄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어려움 속에서 한 아이는 희망과 비젼을 보았고 다른 아이는 절망과 좌절을 보았습니다. 보는 바에 따라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1)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냥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기록한대로 말입니다. 이번 선교대회에서 제가 느낀 것은 한국교회의 갱신의 필요성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배금주의 유혹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교회에 물질이 많으니 온갖 비리와 부폐가 교회 안에서 저질러져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돌아가셨는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그러한 고통을 잊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사람을 더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해야 합니다. 경제위기라는 상황이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을 요구한다면 영적 경제위기는 교회에 정직과 공의를 요구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나도 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과연 무엇을 보고 살아왔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십자가 위에서 처절한 고통 중에서 나를 위해 몸과 영혼을 버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무엇이 그리도 잘났습니까 겸손하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예수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2) 대언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변호해 주시는 대언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보증”이나 “대제사장”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변론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참소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죄를 변호하시는 대언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승리하는 신앙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죄사함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평안할 때도 대언자 되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환난과 고난 중에서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두려움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원과 함께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운 상황과 고통 중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믿는 자에게 담대히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또한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리라.”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안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 안에 거하고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모든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먼저 주의 계명을 주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가 원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선물들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3)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구약 성경에 150여회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 행하신 일들,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의 돌아가심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구약과 신약 성경에 300여회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구촌의 상황도 성경의 기록대로 많은 부분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구의 팽창, 환경의 오염, 곳곳의 기근과 전쟁, 기상이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무섭고 참혹한 사건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우리를 경건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죄에서 멀게 해 줍니다. 또한 그러한 삶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좋은 선물을 사오실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심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무질서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절제되고 바른 삶을 하루하루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그때를 준비하며 살아가십시오.
3. 결론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 영화를 누렸지만 마음의 허무와 불안을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에서 한 농부를 만났는데 너무도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을 묻는 톨스토이에게 농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감동된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문학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세속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주님을 바라보면 영적인 신령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처럼 어려운 이 때에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본론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따라 우리의 장래가 좌우됩니다. 구두닦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의 구두만 바라보고 미용사는 사람들의 머리만 바라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책상 앞에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표어를 써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그 꿈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장애인 어린이가 매스컴에 보도되어 우리의 눈시울을 붉힌 일이 있었습니다. 몸이 반쪽밖에 없는 장애인으로서 야구선수의 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이와 감탄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어려움 속에서 한 아이는 희망과 비젼을 보았고 다른 아이는 절망과 좌절을 보았습니다. 보는 바에 따라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1)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냥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기록한대로 말입니다. 이번 선교대회에서 제가 느낀 것은 한국교회의 갱신의 필요성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배금주의 유혹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교회에 물질이 많으니 온갖 비리와 부폐가 교회 안에서 저질러져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돌아가셨는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그러한 고통을 잊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사람을 더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해야 합니다. 경제위기라는 상황이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을 요구한다면 영적 경제위기는 교회에 정직과 공의를 요구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나도 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과연 무엇을 보고 살아왔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십자가 위에서 처절한 고통 중에서 나를 위해 몸과 영혼을 버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무엇이 그리도 잘났습니까 겸손하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예수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2) 대언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변호해 주시는 대언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보증”이나 “대제사장”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변론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참소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죄를 변호하시는 대언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승리하는 신앙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죄사함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평안할 때도 대언자 되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환난과 고난 중에서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두려움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원과 함께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운 상황과 고통 중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믿는 자에게 담대히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또한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리라.”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안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 안에 거하고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모든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먼저 주의 계명을 주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가 원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선물들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3)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구약 성경에 150여회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 행하신 일들,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의 돌아가심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구약과 신약 성경에 300여회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구촌의 상황도 성경의 기록대로 많은 부분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구의 팽창, 환경의 오염, 곳곳의 기근과 전쟁, 기상이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무섭고 참혹한 사건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우리를 경건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죄에서 멀게 해 줍니다. 또한 그러한 삶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좋은 선물을 사오실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심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무질서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절제되고 바른 삶을 하루하루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그때를 준비하며 살아가십시오.
3. 결론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 영화를 누렸지만 마음의 허무와 불안을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에서 한 농부를 만났는데 너무도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을 묻는 톨스토이에게 농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감동된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문학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세속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주님을 바라보면 영적인 신령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처럼 어려운 이 때에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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