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믿음이 귀한가? (히11:1-6)
본문
예베소서 2: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 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구원 얻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 라,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선물이란 것입니다. 처음에 이 말이 매우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내가 신앙을 가지려고 결심하고, 교회에 나와서 등록을 하고, 지금껏 내가 옛생활에 서 부터 나와서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구원이 하나님의 선 물이라고 하는가 처음 교회에 나오는 분들께는 잘 이해가 안가는 말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내가 믿게된것, 이 자체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대부분 요즘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처럼 삭막해진 세상에서 누굴 믿으라는 말인가 더욱이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과 내세(來世)와 구원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손안에 있는 돈밖에 믿을 것이 없다고들 할 것 입니다. 그러나 돈에 속고, 돈에 배신당하고, 돈에 울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따져 보면 돈처럼 믿을 것이 못됩니다. "돈이 거짓말을 하지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렇게 믿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 믿고 겁없이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건강 잃으니, 인생 다 잃은 것처럼 낙심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건강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 권세를 의지하고 믿고 생활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권세처 럼 믿을것이 못되는것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세상도, 정욕도, 다 가지만 이 말씀은 영원무궁토록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 가는 길에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진리를 바로 깨닫게 된 것은 한없는 귀한 은혜의 선 물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귀한 줄 모르고 살던 사람들에게 말씀처럼 귀한 것은 없다고 고백하는 것을 우리는 항상 듣고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영원토록 배신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구원의 이르게 하는 안내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준 진리가 무엇입니까 구원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제일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왜 귀하다고 하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지식이기에 귀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믿음이 없으면 모든 지식이 성립되지 못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도 결국 미지의 땅 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faith)에서 출발하였기에 실상(assurance)을 보 았고, 그 믿음 때문에 확실한 증거(conviction)를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학적 지식도 믿음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어떤 지식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실상'이란 헬라 원어로 휘포스타시스인데 믿음으로 실체화(實體化)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증거'란 엘렝코스로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이 땅에서 더 낳은 삶을 위하는 것이라면, 믿음의 지 식은 영생(永生)을 가르쳐 주기에 더욱 더 귀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내 부모를 믿고 알았지, 시험해 보고 내 아버지 어머니인 것을 알았습니까 만일 믿음이 없다면 모든 세상 지식이 뒤 범벅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가장 기본적인 지식의 기초요, 또한 가장 최고의 지식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깨달아 알게 되었지, 알고 믿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상한 말을 한 사람 들이 많습니다. 독일의 슈라이엘막커(F.Schleiermacher 1768-1834) 같은 이는 "믿음은 인간이 그 힘의 유한을 깨닫고 절대자에게 의존하려는 감정이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그가 말하는것처럼 어떤 '의지해 보려는 감정'이라면, 그처 럼 나약한 힘은 없을 것이고, 또 그처럼 불확실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늘 변하는 것이고, 감정처럼 변화무상한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실상'과 '증거'가 있을 때, 일 반 과학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지식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많은 과학자들이 이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창조주 가 지으셨다는 이것이 오직 바른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학문의 기 초요, 출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지식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식을 잘 가르치는 교수님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 생활을 더 났게 하고, 더 잘살게 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들보다 더귀한 영생을 가르쳐주는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최고의 지식입니다. '죄'의 문제와 '죽엄'의 문제를 해결 못하는 지식은 우리에게 최고의 지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은 무식 한자, 약한 자, 외로운 자들이 갖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식함을 스스로 들어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장 최고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지식이라면 그것을 어찌 참 지 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을 때, 과거 의 모든 지식을 분토와같이 버렸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 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낡아지고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지 식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몇십년전에 학위를 받고 귀국한 분들이 계시다 면, 그 논문이 오늘 영원하게 옳다고 변함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다 낡아지는 것이 세상의 지식입니다. 보충하고 보완해야할 것들입니다.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wight L.Moody 1837-1899)는 말하기를
1"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2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혜어질것이다.
3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
4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후회함이 없는 최고의 지식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120년밖에 일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수천년후에 오실 메시아를 알았습니다. 이 이상더 최고의 지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우리는 내세가 있는 줄 압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역사의 종말이 있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얻어낸 지식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귀한 것입니다. 믿음은 최고의 귀한 지식입니다.
2. 믿음은 의(義)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그리고 이 선물을 받는 자들에게 의롭게 여겨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의(義)는 나의 어떤 수양(修養)이나 내 노력(努力)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믿을 때, 의로워짐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곧 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곳에 의는 실현되어야 합니다. 한 나라나 사회에서 '의'가 말랐고, 폭력과 부정이 판을 친다면, 그 나라와 그 민족 정신 속에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이 크리스천 공 동사회에서 '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면, 그들의 믿고 있는 신앙이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의 신앙이 아니란 것입니다. 모두 거짓으로 위장된 믿음들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면 매일 매일 자신의 성찰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곳에는 의가 따라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자고(自古)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모두 의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의'도 형식이거나 죽은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1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려 의로워졌고,
2기생 라합도 믿음으로 의의 족보에 들었고,
3욥도 믿음으로 의인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의'입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고 일컬어 짐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의'는 행위에서 얻은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에서 얻어진 칭의(稱義)의 의(Righteousness))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함 받은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종의 멍에 하에 있는 죄인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되었습니다. 양자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업을 이을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3. 믿음은 힘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하는 힘입니다.
1믿음으로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 고,
2믿음으로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고,
3믿음으로 다윗은 골리앗을 때려 눕혔습니다.
4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나 신약의 바울 사 도도 역시 의인이 사는 힘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가 이런 말을 한 사회 형편은 평화스러웠거나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는 외세에 의하여 위협을 당하고 국내의 형 편은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던 그런 때에 한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고 역사의 주관자 앞에 경건하게 살려는 믿음의 사람들 에게 주는 용기는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어려울 때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였습니다(시46:1).
1어려울 때 믿음은 우리의 힘입니다.
2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는 것은 믿음입니다.
3능치 못한 자에게 능력을 더해 주는 것도 믿음입니다. 믿음은 새 힘, 새 용기를 불러 일으켜 줍니다.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믿음으 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달려가도 지치지 않고, 소년이라 도 넘어지고, 장정이라도 자빠져도 독수리처럼 항상 위로 위로 올라간다고 하 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의 역풍 속에서 도리어 감사하면 서, 도리어 실패의 자리에서 용기 있게 일어서게 합니다. 구약의 엘리아는 이세벨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다가 지쳐서 로뎀나무 그늘 아래서 잠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새힘을 주어 일어나게 하 였습니다. 그리고 낙심 중에 자기 혼자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7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 형편을 보면서 낙심하는 신앙인 들이 있습니다. 교계도, 사회도, 정치계도, 경제계도, 교육계도, 모두 섞었다고 하면서 스 스로 낙심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나라에서 살수 없다고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 면서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반납한다고 하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엔들 인간적인 실망이 없겠습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용기를 얻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연설하였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관을 극 복해 나아가려면 지혜, 애국심, 기독교 정신 등이 절대 필요하거니와 무엇보다 도 이 나라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오늘에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라고 봅니다. 한 가정이 되살아나는 길도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고, 우리 나라를 번영과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어가는것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뿐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이것을 보고 있습니다.3.1절 독립 만세를 외치 면 전 세계 앞에 자유민임을 선포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한없이 귀한 것입니다.
1믿음은 최고의 지식이요,2믿음은 죄인으로 의로움을 얻게 하는 의요,3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장 소중하게 귀하게 간직 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시련이와도 버리지 않하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진리를 바로 깨닫게 된 것은 한없는 귀한 은혜의 선 물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귀한 줄 모르고 살던 사람들에게 말씀처럼 귀한 것은 없다고 고백하는 것을 우리는 항상 듣고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영원토록 배신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구원의 이르게 하는 안내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준 진리가 무엇입니까 구원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제일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왜 귀하다고 하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지식이기에 귀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믿음이 없으면 모든 지식이 성립되지 못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도 결국 미지의 땅 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faith)에서 출발하였기에 실상(assurance)을 보 았고, 그 믿음 때문에 확실한 증거(conviction)를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학적 지식도 믿음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어떤 지식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실상'이란 헬라 원어로 휘포스타시스인데 믿음으로 실체화(實體化)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증거'란 엘렝코스로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이 땅에서 더 낳은 삶을 위하는 것이라면, 믿음의 지 식은 영생(永生)을 가르쳐 주기에 더욱 더 귀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내 부모를 믿고 알았지, 시험해 보고 내 아버지 어머니인 것을 알았습니까 만일 믿음이 없다면 모든 세상 지식이 뒤 범벅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가장 기본적인 지식의 기초요, 또한 가장 최고의 지식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깨달아 알게 되었지, 알고 믿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상한 말을 한 사람 들이 많습니다. 독일의 슈라이엘막커(F.Schleiermacher 1768-1834) 같은 이는 "믿음은 인간이 그 힘의 유한을 깨닫고 절대자에게 의존하려는 감정이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그가 말하는것처럼 어떤 '의지해 보려는 감정'이라면, 그처 럼 나약한 힘은 없을 것이고, 또 그처럼 불확실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늘 변하는 것이고, 감정처럼 변화무상한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실상'과 '증거'가 있을 때, 일 반 과학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지식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많은 과학자들이 이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창조주 가 지으셨다는 이것이 오직 바른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학문의 기 초요, 출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지식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식을 잘 가르치는 교수님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 생활을 더 났게 하고, 더 잘살게 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들보다 더귀한 영생을 가르쳐주는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최고의 지식입니다. '죄'의 문제와 '죽엄'의 문제를 해결 못하는 지식은 우리에게 최고의 지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은 무식 한자, 약한 자, 외로운 자들이 갖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식함을 스스로 들어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장 최고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지식이라면 그것을 어찌 참 지 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을 때, 과거 의 모든 지식을 분토와같이 버렸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 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낡아지고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지 식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몇십년전에 학위를 받고 귀국한 분들이 계시다 면, 그 논문이 오늘 영원하게 옳다고 변함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다 낡아지는 것이 세상의 지식입니다. 보충하고 보완해야할 것들입니다.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wight L.Moody 1837-1899)는 말하기를
1"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2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혜어질것이다.
3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
4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후회함이 없는 최고의 지식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120년밖에 일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수천년후에 오실 메시아를 알았습니다. 이 이상더 최고의 지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우리는 내세가 있는 줄 압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역사의 종말이 있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얻어낸 지식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귀한 것입니다. 믿음은 최고의 귀한 지식입니다.
2. 믿음은 의(義)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그리고 이 선물을 받는 자들에게 의롭게 여겨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의(義)는 나의 어떤 수양(修養)이나 내 노력(努力)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믿을 때, 의로워짐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곧 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곳에 의는 실현되어야 합니다. 한 나라나 사회에서 '의'가 말랐고, 폭력과 부정이 판을 친다면, 그 나라와 그 민족 정신 속에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이 크리스천 공 동사회에서 '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면, 그들의 믿고 있는 신앙이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의 신앙이 아니란 것입니다. 모두 거짓으로 위장된 믿음들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면 매일 매일 자신의 성찰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곳에는 의가 따라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자고(自古)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모두 의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의'도 형식이거나 죽은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1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려 의로워졌고,
2기생 라합도 믿음으로 의의 족보에 들었고,
3욥도 믿음으로 의인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의'입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고 일컬어 짐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의'는 행위에서 얻은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에서 얻어진 칭의(稱義)의 의(Righteousness))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함 받은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종의 멍에 하에 있는 죄인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되었습니다. 양자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업을 이을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3. 믿음은 힘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하는 힘입니다.
1믿음으로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 고,
2믿음으로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고,
3믿음으로 다윗은 골리앗을 때려 눕혔습니다.
4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나 신약의 바울 사 도도 역시 의인이 사는 힘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가 이런 말을 한 사회 형편은 평화스러웠거나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는 외세에 의하여 위협을 당하고 국내의 형 편은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던 그런 때에 한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고 역사의 주관자 앞에 경건하게 살려는 믿음의 사람들 에게 주는 용기는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어려울 때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였습니다(시46:1).
1어려울 때 믿음은 우리의 힘입니다.
2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는 것은 믿음입니다.
3능치 못한 자에게 능력을 더해 주는 것도 믿음입니다. 믿음은 새 힘, 새 용기를 불러 일으켜 줍니다.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믿음으 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달려가도 지치지 않고, 소년이라 도 넘어지고, 장정이라도 자빠져도 독수리처럼 항상 위로 위로 올라간다고 하 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의 역풍 속에서 도리어 감사하면 서, 도리어 실패의 자리에서 용기 있게 일어서게 합니다. 구약의 엘리아는 이세벨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다가 지쳐서 로뎀나무 그늘 아래서 잠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새힘을 주어 일어나게 하 였습니다. 그리고 낙심 중에 자기 혼자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7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 형편을 보면서 낙심하는 신앙인 들이 있습니다. 교계도, 사회도, 정치계도, 경제계도, 교육계도, 모두 섞었다고 하면서 스 스로 낙심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나라에서 살수 없다고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 면서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반납한다고 하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엔들 인간적인 실망이 없겠습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용기를 얻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연설하였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관을 극 복해 나아가려면 지혜, 애국심, 기독교 정신 등이 절대 필요하거니와 무엇보다 도 이 나라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오늘에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라고 봅니다. 한 가정이 되살아나는 길도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고, 우리 나라를 번영과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어가는것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뿐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이것을 보고 있습니다.3.1절 독립 만세를 외치 면 전 세계 앞에 자유민임을 선포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한없이 귀한 것입니다.
1믿음은 최고의 지식이요,2믿음은 죄인으로 의로움을 얻게 하는 의요,3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장 소중하게 귀하게 간직 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시련이와도 버리지 않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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