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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갈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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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전도사역 더우기 지금처럼 선교가 보편화 되지 않았았을 때의 선교란 여간 어렵지 아니했습니다. 지금이야 선교에 대한 열정이 앞다 투어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예 교회의 이름마저도 선교교회라 고 짓는 그런 교회가 많이 있는 실정입니다. 이외에도 각학교 마다 선 교단체가 있습니다. 방학때 입학 때가 되면 회원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선교의 열정으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합니다. 오늘 본분을 통하여 선교를 처음 시작할때의 어려움을 살펴보면서 선교 에 대한 새로로운 이해의 눈이 열려지기를 원합니다. 신학자는 여호와 하나님 의 큰일 이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서 하나님의 큰일 행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의 위험을 고린도 후서 어려움을 이렇게 고린도후서 11:24-27에 이렇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벅 맞았으며 세번 태자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 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 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의 선교의 위험을 요약하면 크게 두가지로 볼수 있는데 하나는 자 연적 위험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의 위험입니다 자연적 위험에는 강과 배타고 여행하는 파선의 위험 강과 바다에 위험 과 강과 시내의 위험이 있습니다 인적인 위험에는 동족,이방인,강도,거짓 형제 중의 위험 등이 있습니다. 바울 때나 지금도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만 문화가 조금 변했는지 모르지만 위험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불과 100년전에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 올때에 서로 당파 싸움의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없이 많은 학원 선교 단체들이 방학이나 신학기를 놓칠세라 서로 들 자기의 세력들을 과시하는 모습이 정말 혼란하게 합니다. 이런것들 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지겠습니까 오늘 본분 을 통하여 바울 선교에 있어서 위험이 되었던 가만히 들어온 형제의 위험을 살펴 보면서 현재도 남아 있는 선교를 참뜻을 바로이해하는 계 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복음의 세계화 국제화를 눈앞에 두고 서교사님들이 그 큰 위험이 바로 선교를 보낸교회의 실적이 위험이 되 고 있으며 큰 걱정이라는 말을 듣고 선교지에 가서도 세력 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하나님의 큰일 이라는 저서를 펴낸 한 신학자는 선교는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저는 이번에 우리 교회 청년들을 선교지 여행을 보내면서도 과연 선교는 하나님의 큰일 이구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가만히 들어온 거짓형제의 잘못을 회개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복음의 달음질을 장로의 유전으로 방해하였습니다. 1절에서 3절까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 라 갔노니 계시를 인하여 인하여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인 하여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 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 하게 사명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에게 의논하고 이방 선 교에 대책을 마련할때 당시 유명하다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은 이유는 선교작전상 비밀스러운 것도 있고 사사로이 개인적인 보고는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짓형제들이 시비를 걸고 넘어 진다는 것입니다. 말 하자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좋은일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에게 의논하지 아니했다고 반대 하는 경우를말합니다.이미 바울 계시 인해 생명조차도 겁을 내지 않는 사람 이 어찌 사람을 겁내서 아부하고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20:24 절에 그의 각오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지금도 복음을 빙자 해서 자기의 고집으로 복음의 길을 막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 이방에 복음을 증거하는데 애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 로 할례였습니다. 할례는 이방인 특히 헬라 사람들은 조건을 갗추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이야 세례의 조건이 그의 입으로 하는 신앙고백이 그때 당시 할례에 해당하는 세례의 조건입니다. 쉽게 말하면 세례든 할례든 근본 뜻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의 표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를 자기들이 임의로 자기의 민족의 아이텐티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할례는 유대인이든지 부모중에 한 사람이 유대인여야 합니다. 지금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그것을 고집했습니다. 바울이 디모 데처럼 전도 하다가 얻은 예수안에서 형제된 디도의 할례가 늘문제 였 습니다. 억지로 헬라사람인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카리스마라는 말이 본래는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독재 안하무 인으로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카리스마 곧 하나님의 계시를 빙자 해서 자기 뜻을 펼치기 때문입니다. 거짓없는 계시라면 그 계시에 순종하고 복종하십시요 최소한 설교 시간 만이 라도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시간인줄 알아서 이 시간의 지시가 미리 여러분에게 상의 되지 않았다고 화를 내거나 반발하는 것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형제의 행동입니다.
2.거짓 형제는 주 안에서 의 자유를 넘보고 있습니다 4절에서 5절 말씀을 읽읍시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 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준 자유를 저들의 사리사용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엿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안에서 죄로부터 자유 합니다. 아 무도 이자유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빙자한 거짓 형제 들이 이 자유를 뺏앗으려고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기에 복종하지 않고 예수의 종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앙의 자유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마가 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이 대화한 장면이 나옵니다. 바리 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전통을 앞세워서 돌아 와서 물을 뿌리는 전통을 고집하면서 제자들이 유대의 이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나무랐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마가복음 7:6-7에 나옵니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 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노라" 라고 경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복음안에서 자유를 얻으야지 사람의 일시적위안으로 교훈을 얻으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되고 자유를 엉뚱하게 다른 사람에게 빼앗게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의 유전에, 전통에 귀한 복음의 자유를 팔아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지금여러분속에 있는 자유가 복음 곧 예수로 부터 얻은 자유입니까 이 영적인 자유를 가만히 몰래 숨어들어온 거짓 형제에게 빼앗기는 어리석은 자리에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3.거짓형제는 이방인 사도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 했습니다. 6절-8절까지 읽어 보겠습니다.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 하여 준것이 없고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 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 도로 삼으셨느니라" 바울의 이방인을 위한 사도를 세우신것을 하나님이 증거 했습니다. 사 도행전 19:11-12절사이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히안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아귀도 나가 더라" 하나님의 능력이 베드로와 같이 일 어나니까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요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되었 습니다. 거짓 형제들이 바울 길을 막을수 없습니다. 결론 이일 때문에 사도 바울은 거짓형제의 방해에도 불구 하고 바울은 그의 달려갈길을 달려 갔습니다. 그래서 전에 복음에 핍박자요 훼방자 이며 잔해하던 바울이 베드로와 야고보를 비롯한 사도들과 화해와 은혜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9절에서 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내게 주신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 에게로 저희는 할례자 에게로 가게하려 함이라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얼마나 감격스러운 악수이였겠습니까 성경에는 그냥 교제의 악수였다고 간략하게 기록했습니다만 정말 바울 에 손에 넘기워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였지만 복음안에서 서로 의 사명을 깨닫고 은혜의 교제의 악수를 나눈것입니다. 복음이 처럼 어제의 원수를 복음안에서 교제의 악수를 나누게 합니다. 거짓 형제와 참 형제의 차이가 들어 납니다. 저들이 거짓 형제의 마음을 가졌더라 면 오해 할번도 합니다 예루살렘에 왔으면 먼저 예수님의 수 제자인 나 베드로 부터 만날 것이지 바울이 야보고 부터 먼저 만나하고 교제 악수는 커녕 경계의 색안경을 끼고 볼것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없습니다. 또한 이들은 퍠를 만들어 서로 자기의 종을 만들려고도 하 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성경공부를 빙자 해서 자기의 종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 지요 그 목사님의 말이 아니면 말씀같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설교는 설교 같이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 입니다. 참 예수안에 형제는 능력을볼수 있는 영안이 있습니다.
바울은 참 형제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와 여러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와 함께 교제의 악수를 나누므로 그간의 반목을 깨긋이 해결 할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여러분도 한교회 식구인데 교제의 악수를 나눌수가 있습니 까 같은 교단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참 형제 로서 교제의 악수를 나눌수 있습니까 아니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형제 인데 교제의 악수를 나눌수 있습 니까 서로 원수가 되어 교회를 바꾸어서 인사조차도 않하거나 아니면 서먹서먹한 관계입니까 다른교회 다른 교파 다른 선교 단체 있을 지 라도 예수 안 에서 참 형제를 교제가 있어야 압니다. 비록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외방에서 복음을 전하고 베드로는 예루살 렘에 남아서 복음을 전했지만 한가지 정신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가난 한자를 생각하는 것이였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바울 은 모교회 예루살렘을 잊지 않고 2,3,4차 선교여행지 에서 급히 돌아 올때 늘 가난한 예루살렘의 성도를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안디옥이라든지 에베소라든지 헬라권에 비해 예 루살렘은 척박하고 못살았습니다. 바울은 그럐서 사도해전 20:16절에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 정 하였으니 이는 될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다른 서신들을 읽어 보면 급히 가려고 햇던 이유중에 하나가 마게도냐 와 고린도 아가야 지방에서 거둔 예루살렘 구호 물품을 한시라도 빨리 예루살렘에 보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 있어도 믿음의 고향 뿌리를 생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참 형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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