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 (갈2:9-10)
본문
성경은 성도의 단체인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고 충성한 종들을 그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상경하여 교회의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을 만나 교제의 악수를 교환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기둥같이 여긴다는 말의 뜻은 그 인물들이 교회적 지위나 직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둥에 대해서 살펴보면 여러 가지 기둥이 나타나 선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첫째, 환상적인 기둥 출 13:21-불과 구름기둥이 있어 선민의 길잡이가 되어졌습니다.
둘째, 물체적인 기둥 왕상 7:21-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 두 기둥을 성전의 낭실 앞에 세우고 두 기둥의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라고 부르는 놋기둥이 있어 선민을 건설 보호해 가는 상징적 기둥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인물적인 기둥 렘 1:18-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쇠기둥으로 세웠다고 하시면서 선민의 지도자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둥과 인간 성도를 비교하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기둥의 자질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곧아야 합니다. 기둥은 위에 무거운 짐을 받혀야함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곧아야 합니다. 만일 굽은 것으로 기둥을 삼으면 급기야는 부러지고 말 것이며, 부러지지 않아도 휘어진 상태로 집을 기울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둥은 곧아야만 합니다. 다윗을 통해서 지시하고 솔로몬대에 지으신 예루살렘 성전은 백향목으로 주로 지었는데(왕상 6:10), 그것은 백향목이 곧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무는 궁전, 성전, 관청, 돋대(겔 27:5)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구부러진 나무가 기둥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곧은 나무라야 기둥이 될 수 있다면 여기 곧은 인물이라는 말은,
(1) 진실한 인물을 의미합니다. 진실은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기둥 같은 인물은 디모데와 같이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여야 합니다(딤후 1:5).
(2) 정직한 인물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면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곧고 바른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마치 욥과 같이 정직한 인물이어야 합니다(욥 1:1). 시편 기자는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시 32:1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서는 마음이 정직해야만 기둥같이 쓰일 수 있습니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3) 의로운 인물을 의미합니다. ‘의’라 하는 것은 ‘디카이오쉬네’로서(마 3:15, 1요 2:29), 올바른 의지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합치하는 사람 또는 고상, 성결, 덕스러움, 바른 생각, 감정, 행동, 정의, 공평(행 17:31)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둥 같은 인물이 반드시 갖추어야할 인격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 같은 인물은 의로움으로 곧아야 합니다.
둘째, 굵어야 합니다. 큰 건물이든 작은 건물이든 그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건물에 비례하여 굵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굵지 않으면 그 건물을 지탱할 수 없고 비바람 같은 천재지변에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굵다는 말씀은,
(1) 견고함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기둥은 견고해야 합니다. 만일 기둥이 흔들리거나 진동하면 집 전체의 존립에 영향을 주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면 마음이 견고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으로 신뢰하여 견고해야한 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8)고 했습니다.
(2) 힘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기둥이 곧다고 해도, 그것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다 해도 힘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굵어야 함은 곧 힘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힘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에게 있어야 할 힘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벧전 4:11),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엡 6:10), “주 여호와는 나의 힘”(사 12:2)이시며,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사 45:24)라고 하신 대로 성령님의 은사인 능력으로 충만된 힘이어야 합니다.
(3) 원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원만하다’는 말은 성격이나 인품이 모난데 없이 둥글둥글하고 복스러움을 뜻합니다. 잠 17:1, 막 9:50, 고후 5:18, 엡 2:16, 살전 5:13등은 성도에게 화목하라고 하는 주님의 권고의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집, 교회의 인물 기둥은 원만하게 자기 심령이 화목(살전 5:13) 곧 평화스러운 자이며 평화를 유지시키며 다른 성도들간을 일치시키며 조화를 이루는 자이어야만 합니다(롬 12:18). 이와 같이 견고하고 힘이 있고 원만해야 기둥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셋째, 튼튼해야 합니다. 집의 기둥은 곧고 굵고 튼튼해야 합니다. 곧고, 굵다고 해도 무른 나무거나 약한 나무로서는 압력에 견디지 못하며 기둥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튼튼해야 합니다. 여기 튼튼하다는 말씀은,
(1) 내용이 알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둥으로서 힘을 쓰려 하면 목질이 비지 않고 알차야 합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록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행 9:31).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그 인격이 말씀으로 든든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만일 인격이 든든하게 되어 있지 않고 불안하다고 하면 언제 분열될 인격으로 인해 파손될지 모를 위험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든든해져야 합니다.
(2) 실력을 갖추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처럼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마땅히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실력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고 한데로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 전신갑주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 서기 위함이라.”(엡 6:13)고 하신 말씀대로 계속적인 기둥 사명을 위하여 갖추어야 할 실력인 것입니다. 전신갑주는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님의 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기둥이 원수에게 넘어가 버리게 됩니다. 기둥은 반드시 실력을 갖출 때만 튼튼할 수 있습니다.
(3) 강하고 담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일은 담대한 자만이 능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수 1:7)란 말씀이 있는데 성경에 ‘담대’란 말은 ‘달레오’와 ‘팔레시아’인데 ‘달레오’는 용기를 내다, 즐거워하다, 자신을 가지다, 소망을 지니다, 담대하다, 담대함을 지속시키다 라는 뜻이고, ‘팔레시아’는 자유롭게 말함, 말의 담대함, 솔직(행 4:13), 자유스럽고 두려움이 없는 확신, 용기, 담대, 담력(딤전 3:13)을 뜻합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고 하면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담력이 있으면 자신이 생기며 소망이 있으며 두려움이 없고 확실한 행동을 하며 자유스럽고 즐거운 생활로 임무수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담력은 여호수아로 가나안 정복의 대망을 성취케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내용과 실력을 갖추고 강하고 담대해야 기둥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둥 같은 인물은 곧고 굵고 튼튼해야 된다는 뜻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넷째,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곧고 굵고 튼튼해도 산에나 들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결코 기둥은 되지 못합니다. 다만 기둥감이란 평가를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큰집의 큰 기둥이 되려면 반드시 베임을 당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을 선민의 믿음의 조상으로 쓰시기 위해 “친척 본토 아비 집에서 떠나.”(창 12:1-2)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임을 당한다는 것은,
(1) 세상에서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골 2:8), 벗된 세상(약 4:4), 정욕으로 썩어질 세상(벧후 1:4), 세상에 있는 모든것(1요 2:16), 세상 적인 것(약 3:15), 세상 정욕(딛 2:12), 세상 지혜(고전 3:19), 세상의 더러운 것(고전 4:13)으로 부터 소속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천국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둥 나무가 산에서 베임을 받아야 건축에 사용되며 그 기둥이 특정한 장소에 운반되어 세워질 자리에 서야 합니다. 전통 습관을 상징하는 나무 뿌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그 나무의 기둥감으로서의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결코 기둥이 될 수 없음 같이, 인간의 천국의 지상집 기둥감으로 쓰이려면 반드시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2)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에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집 일꾼은 나무가 뿌리에서 베임 당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며 기쁘시게 못하는 육신의 모든 생각을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것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사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혈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5:50에 “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했으며, 롬 8:6-8에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둥감은 마땅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하며, 생명 사역의 사명자인 때문에 혈과 육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둥 같은 인물은 육체의 일(갈 5:19-20, 엡 4:25-29)을 베임 당해야 합니다. 육체의 일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함으로(골 3:5) 땅에 있는 지체는 베임 당해 죽어야 합니다.
2. 기둥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기둥이 곧고, 굵고, 튼튼해야 될 이유는 기둥의 임무가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건물을 받들고 있는 봉사의 임무가 있습니다. 기둥으로 상징된 교회의 일꾼은 그 임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마치 건축물의 기둥이 윗집을 감당함으로 건물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엡 4:11-12에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1)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 된다고 했습니다(마 16:24).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마 10:38)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고 했습니다.
(2)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마 20:28)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모범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여기 그 표준이 ‘섬김’입니다. 교회에서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겼다면 우리는 더욱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기둥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직분이요, 받으려는 직분이 아니라 주려는 직분이요, 도움 받으려는 직분이 아니라 도와주려는 직분입니다. 교회의 기둥은 교회 모든 문제를 짊어질 수 있는 그런 사명이 있는 것이니 이 사명을 회피하면 기둥 같은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건물을 연결시키는 연합의 임무가 있습니다. 기둥 같은 인물은 화평을 도모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며, 덕을 세워 건설해 가는 임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둥은 썩지 않아야 합니다. 건물의 기둥이 부패하면 기울게 되며 급기야는 무너지고 말게 됩니다. 어떠한 건물도 기둥이 썩으면 파괴되어 설 수 없습니다. 교회의 기둥들 즉 목사기둥, 장로기둥, 집사기둥, 권사기둥이 썩으면 교회가 기울어지며 냄새나는 그 곳에 쉬 파리가 모여들어 귀신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1) 자기 자신을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자기 자신이 주님의 형상을 닮고 자신이 부패케 되는 죄를 짓지 말고 의로움을 지키거나 외로움을 유지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2) 다른 성도들로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썩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 곧 성도들과 천국 일에 부패한 일이 없게 해야 할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3) 교회로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만일 천국의 지상 모임인 교회가 기둥 같은 인물이 썩는다면 교회 부흥도, 가정 축복도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기둥이 썩었을 경우에는 빨리 수리를 해야 합니다. 영적 수리는 죄를 자복하는 일입니다(1요 1:8-9). 그러나 도저히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썩었으면 교환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부덕할 때는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만일 모르는 척 하고 놓아두면 나중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일이 확대되어 큰 대가를 치르는 손해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패의 3요소인 육신의 정욕(향락), 안목의 정욕(허영), 이생의 자랑에서 자유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마다 쌓여 있는 어려운 문제는 바로 기둥이 썩을 때 맺는 열매이며 결과인 것입니다.
셋째, 건물과 운명을 같이 할 임무가 있습니다. 어떤 건물에서 기둥이 자기 마음대로 빠져나가거나 건물의 다른 부분과 상관이 없다고 움직여 빠지기 시작하면 결코 자기에게도 유익이 없고 부러지거나 넘어져 치이게 되므로 다른 부분에게까지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은 마치 잘 짜여진 행복한 가정의 외아들이 죽는 불상사와 같은 불행한 일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 다른 성도들과 고락을 같이해야 하며
(2) 전체 교우와 행동을 같이해야 하며
(3) 생사를 같이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에 불이 났을 때 구경꾼도 있듯, 시원해 하는 사람도 있고, 소방수도 있고, 안타까워하면서 목숨걸고 불을 끄고 재물을 끄집어내는 주인이 있는 것처럼, 기둥 같은 인물은 교회의 주인격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성도가 사명이 있다고 말하면서 떠돌아다닌다면 그 사람은 부평초 인생이므로 결코 그 사명은 성령님의 은사가 아니고 악령의 은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교회에서 평생을 봉사하기로 장로 기둥으로 장립을 받고 사소한 개인적인 명예나 형편과 이익을 위해 본 교회를 버리고 타교회로 가는 장로, 그는 이미 장로가 결코 아닙니다. 교회에서 선택받는 기둥 같은 인물은 그 선택받은 교회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나면 함께 탑니다. 교회가 어렵다고 시험이 있다고 해서 장로나 집사들이 다른 교회로 몰려가는 못된,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이 있음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둥의 임무는 운명을 함께 하는 임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모범적 실례를 들만한 인물인 누가와 마가와 같이 끝까지 유익을 주며 남는 인물이 아쉽습니다(딤후 4:9-12). 여러분들은 교회의 기둥 같은, 아니 사회의 기둥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든든한 돌이나 놋이나 쇠기둥이 될지언정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연기 기둥이 되지 맙시다. 힘없는 기둥이 든든히 서있는 그 건물은 항구적으로 보존되어 그 건물이 마침내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와 안식처가 된다고 하면, 오늘날 교회나 사회를 기둥 같은 힘있고 튼튼한 위대한 지도자들이 받들고 지도해 나아가는 한 오늘의 교회나 사회는 안정된 중에 크게 발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안식을 누리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바라기는 기둥 같은 인물들이 우리 교회와 사회에 많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환상적인 기둥 출 13:21-불과 구름기둥이 있어 선민의 길잡이가 되어졌습니다.
둘째, 물체적인 기둥 왕상 7:21-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 두 기둥을 성전의 낭실 앞에 세우고 두 기둥의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라고 부르는 놋기둥이 있어 선민을 건설 보호해 가는 상징적 기둥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인물적인 기둥 렘 1:18-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쇠기둥으로 세웠다고 하시면서 선민의 지도자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둥과 인간 성도를 비교하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기둥의 자질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곧아야 합니다. 기둥은 위에 무거운 짐을 받혀야함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곧아야 합니다. 만일 굽은 것으로 기둥을 삼으면 급기야는 부러지고 말 것이며, 부러지지 않아도 휘어진 상태로 집을 기울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둥은 곧아야만 합니다. 다윗을 통해서 지시하고 솔로몬대에 지으신 예루살렘 성전은 백향목으로 주로 지었는데(왕상 6:10), 그것은 백향목이 곧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무는 궁전, 성전, 관청, 돋대(겔 27:5)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구부러진 나무가 기둥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곧은 나무라야 기둥이 될 수 있다면 여기 곧은 인물이라는 말은,
(1) 진실한 인물을 의미합니다. 진실은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기둥 같은 인물은 디모데와 같이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여야 합니다(딤후 1:5).
(2) 정직한 인물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면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곧고 바른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마치 욥과 같이 정직한 인물이어야 합니다(욥 1:1). 시편 기자는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시 32:1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서는 마음이 정직해야만 기둥같이 쓰일 수 있습니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3) 의로운 인물을 의미합니다. ‘의’라 하는 것은 ‘디카이오쉬네’로서(마 3:15, 1요 2:29), 올바른 의지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합치하는 사람 또는 고상, 성결, 덕스러움, 바른 생각, 감정, 행동, 정의, 공평(행 17:31)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둥 같은 인물이 반드시 갖추어야할 인격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 같은 인물은 의로움으로 곧아야 합니다.
둘째, 굵어야 합니다. 큰 건물이든 작은 건물이든 그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건물에 비례하여 굵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굵지 않으면 그 건물을 지탱할 수 없고 비바람 같은 천재지변에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굵다는 말씀은,
(1) 견고함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기둥은 견고해야 합니다. 만일 기둥이 흔들리거나 진동하면 집 전체의 존립에 영향을 주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면 마음이 견고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으로 신뢰하여 견고해야한 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8)고 했습니다.
(2) 힘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기둥이 곧다고 해도, 그것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다 해도 힘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굵어야 함은 곧 힘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힘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에게 있어야 할 힘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벧전 4:11),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엡 6:10), “주 여호와는 나의 힘”(사 12:2)이시며,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사 45:24)라고 하신 대로 성령님의 은사인 능력으로 충만된 힘이어야 합니다.
(3) 원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원만하다’는 말은 성격이나 인품이 모난데 없이 둥글둥글하고 복스러움을 뜻합니다. 잠 17:1, 막 9:50, 고후 5:18, 엡 2:16, 살전 5:13등은 성도에게 화목하라고 하는 주님의 권고의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집, 교회의 인물 기둥은 원만하게 자기 심령이 화목(살전 5:13) 곧 평화스러운 자이며 평화를 유지시키며 다른 성도들간을 일치시키며 조화를 이루는 자이어야만 합니다(롬 12:18). 이와 같이 견고하고 힘이 있고 원만해야 기둥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셋째, 튼튼해야 합니다. 집의 기둥은 곧고 굵고 튼튼해야 합니다. 곧고, 굵다고 해도 무른 나무거나 약한 나무로서는 압력에 견디지 못하며 기둥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튼튼해야 합니다. 여기 튼튼하다는 말씀은,
(1) 내용이 알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둥으로서 힘을 쓰려 하면 목질이 비지 않고 알차야 합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록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행 9:31).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그 인격이 말씀으로 든든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만일 인격이 든든하게 되어 있지 않고 불안하다고 하면 언제 분열될 인격으로 인해 파손될지 모를 위험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든든해져야 합니다.
(2) 실력을 갖추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처럼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마땅히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실력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고 한데로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 전신갑주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 서기 위함이라.”(엡 6:13)고 하신 말씀대로 계속적인 기둥 사명을 위하여 갖추어야 할 실력인 것입니다. 전신갑주는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님의 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기둥이 원수에게 넘어가 버리게 됩니다. 기둥은 반드시 실력을 갖출 때만 튼튼할 수 있습니다.
(3) 강하고 담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일은 담대한 자만이 능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수 1:7)란 말씀이 있는데 성경에 ‘담대’란 말은 ‘달레오’와 ‘팔레시아’인데 ‘달레오’는 용기를 내다, 즐거워하다, 자신을 가지다, 소망을 지니다, 담대하다, 담대함을 지속시키다 라는 뜻이고, ‘팔레시아’는 자유롭게 말함, 말의 담대함, 솔직(행 4:13), 자유스럽고 두려움이 없는 확신, 용기, 담대, 담력(딤전 3:13)을 뜻합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려고 하면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담력이 있으면 자신이 생기며 소망이 있으며 두려움이 없고 확실한 행동을 하며 자유스럽고 즐거운 생활로 임무수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담력은 여호수아로 가나안 정복의 대망을 성취케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내용과 실력을 갖추고 강하고 담대해야 기둥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둥 같은 인물은 곧고 굵고 튼튼해야 된다는 뜻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넷째,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곧고 굵고 튼튼해도 산에나 들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결코 기둥은 되지 못합니다. 다만 기둥감이란 평가를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큰집의 큰 기둥이 되려면 반드시 베임을 당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을 선민의 믿음의 조상으로 쓰시기 위해 “친척 본토 아비 집에서 떠나.”(창 12:1-2)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임을 당한다는 것은,
(1) 세상에서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골 2:8), 벗된 세상(약 4:4), 정욕으로 썩어질 세상(벧후 1:4), 세상에 있는 모든것(1요 2:16), 세상 적인 것(약 3:15), 세상 정욕(딛 2:12), 세상 지혜(고전 3:19), 세상의 더러운 것(고전 4:13)으로 부터 소속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천국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둥 나무가 산에서 베임을 받아야 건축에 사용되며 그 기둥이 특정한 장소에 운반되어 세워질 자리에 서야 합니다. 전통 습관을 상징하는 나무 뿌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그 나무의 기둥감으로서의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결코 기둥이 될 수 없음 같이, 인간의 천국의 지상집 기둥감으로 쓰이려면 반드시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2)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에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집 일꾼은 나무가 뿌리에서 베임 당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며 기쁘시게 못하는 육신의 모든 생각을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것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사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혈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5:50에 “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했으며, 롬 8:6-8에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둥감은 마땅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하며, 생명 사역의 사명자인 때문에 혈과 육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둥 같은 인물은 육체의 일(갈 5:19-20, 엡 4:25-29)을 베임 당해야 합니다. 육체의 일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함으로(골 3:5) 땅에 있는 지체는 베임 당해 죽어야 합니다.
2. 기둥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기둥이 곧고, 굵고, 튼튼해야 될 이유는 기둥의 임무가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건물을 받들고 있는 봉사의 임무가 있습니다. 기둥으로 상징된 교회의 일꾼은 그 임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마치 건축물의 기둥이 윗집을 감당함으로 건물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엡 4:11-12에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1)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 된다고 했습니다(마 16:24).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마 10:38)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고 했습니다.
(2)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마 20:28)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모범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여기 그 표준이 ‘섬김’입니다. 교회에서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겼다면 우리는 더욱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기둥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직분이요, 받으려는 직분이 아니라 주려는 직분이요, 도움 받으려는 직분이 아니라 도와주려는 직분입니다. 교회의 기둥은 교회 모든 문제를 짊어질 수 있는 그런 사명이 있는 것이니 이 사명을 회피하면 기둥 같은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건물을 연결시키는 연합의 임무가 있습니다. 기둥 같은 인물은 화평을 도모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며, 덕을 세워 건설해 가는 임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둥은 썩지 않아야 합니다. 건물의 기둥이 부패하면 기울게 되며 급기야는 무너지고 말게 됩니다. 어떠한 건물도 기둥이 썩으면 파괴되어 설 수 없습니다. 교회의 기둥들 즉 목사기둥, 장로기둥, 집사기둥, 권사기둥이 썩으면 교회가 기울어지며 냄새나는 그 곳에 쉬 파리가 모여들어 귀신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1) 자기 자신을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은 자기 자신이 주님의 형상을 닮고 자신이 부패케 되는 죄를 짓지 말고 의로움을 지키거나 외로움을 유지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2) 다른 성도들로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썩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 곧 성도들과 천국 일에 부패한 일이 없게 해야 할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3) 교회로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만일 천국의 지상 모임인 교회가 기둥 같은 인물이 썩는다면 교회 부흥도, 가정 축복도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기둥이 썩었을 경우에는 빨리 수리를 해야 합니다. 영적 수리는 죄를 자복하는 일입니다(1요 1:8-9). 그러나 도저히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썩었으면 교환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부덕할 때는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만일 모르는 척 하고 놓아두면 나중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일이 확대되어 큰 대가를 치르는 손해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패의 3요소인 육신의 정욕(향락), 안목의 정욕(허영), 이생의 자랑에서 자유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마다 쌓여 있는 어려운 문제는 바로 기둥이 썩을 때 맺는 열매이며 결과인 것입니다.
셋째, 건물과 운명을 같이 할 임무가 있습니다. 어떤 건물에서 기둥이 자기 마음대로 빠져나가거나 건물의 다른 부분과 상관이 없다고 움직여 빠지기 시작하면 결코 자기에게도 유익이 없고 부러지거나 넘어져 치이게 되므로 다른 부분에게까지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은 마치 잘 짜여진 행복한 가정의 외아들이 죽는 불상사와 같은 불행한 일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 다른 성도들과 고락을 같이해야 하며
(2) 전체 교우와 행동을 같이해야 하며
(3) 생사를 같이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에 불이 났을 때 구경꾼도 있듯, 시원해 하는 사람도 있고, 소방수도 있고, 안타까워하면서 목숨걸고 불을 끄고 재물을 끄집어내는 주인이 있는 것처럼, 기둥 같은 인물은 교회의 주인격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성도가 사명이 있다고 말하면서 떠돌아다닌다면 그 사람은 부평초 인생이므로 결코 그 사명은 성령님의 은사가 아니고 악령의 은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교회에서 평생을 봉사하기로 장로 기둥으로 장립을 받고 사소한 개인적인 명예나 형편과 이익을 위해 본 교회를 버리고 타교회로 가는 장로, 그는 이미 장로가 결코 아닙니다. 교회에서 선택받는 기둥 같은 인물은 그 선택받은 교회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나면 함께 탑니다. 교회가 어렵다고 시험이 있다고 해서 장로나 집사들이 다른 교회로 몰려가는 못된,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이 있음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둥의 임무는 운명을 함께 하는 임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모범적 실례를 들만한 인물인 누가와 마가와 같이 끝까지 유익을 주며 남는 인물이 아쉽습니다(딤후 4:9-12). 여러분들은 교회의 기둥 같은, 아니 사회의 기둥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든든한 돌이나 놋이나 쇠기둥이 될지언정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연기 기둥이 되지 맙시다. 힘없는 기둥이 든든히 서있는 그 건물은 항구적으로 보존되어 그 건물이 마침내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와 안식처가 된다고 하면, 오늘날 교회나 사회를 기둥 같은 힘있고 튼튼한 위대한 지도자들이 받들고 지도해 나아가는 한 오늘의 교회나 사회는 안정된 중에 크게 발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안식을 누리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바라기는 기둥 같은 인물들이 우리 교회와 사회에 많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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