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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이여 (갈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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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음력 설에는 날씨도 춥고 또 눈이 와서 교통도 불편한데 고향에 다녀오시느라고 모두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저는 서울에서 설을 보냈습니다. 집에서 지내면서 텔레비전에서 중계해 주는 스포츠 경기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금년 프로농구올스타전 게임이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키가 큰 선수도 있고 작은 선수도 있습니다. 작은 선수라야 1미터 78센티미터 선수를 농구코트에서는 단신이라고 합니다. 씨름도 참 재미있었는데, 그렇게 몸이 비데한데도 날쌔게 움직이면서 상대방을 낚아채서 넘어뜨리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이런 선수들은 그 몸값도 대단합니다. 다른 팀에서 데려가려면 엄청난 이적료가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을 만큼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도 손가락만한 물건만큼의 가치를 당해내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뛰어난 기술과 능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사람의 가치는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입시 철을 맞이해서 우리가 모두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속에 있는 내용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철학자나 성현들이 많지만 예수님같이 사람을 귀하게 말씀하신 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발견하면 내가 귀하게 되고 사람이 귀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겉 모습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겉사람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으므로 몸무게가 아무리 많이 나가고 키가 아무리 커도 사람의 외모는 역시 흙일 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죽으면 빨리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본인에게도 좋고 가족에게도 좋습니다. 장례식에서 시신을 안장할 때도 메고 갔던 관을 다 벗기고 시신을 그냥 흙에 눕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흙이 제일 편합니다. 흙에 흡수되어 속히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흙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흙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보십시오. 피부가 다 흙 색깔이 됩니다. 나이가 한 50살쯤 넘으면 얼굴에는 검버섯이 하나 둘 돋아나게 마련입니다. 인생이 어디로 갑니까 흙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으므로 인생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흙에서 왔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역시 흙 위에 입는 것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사람은 역시 흙일 뿐입니다.
그런데 씻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목욕을 하면서 너무 무리하게 때를 씻는데 그것이 피부는 물론 건강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합니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에는 그렇게 넓은 땅에 목욕탕이 없습니다. 수영장은 많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샤워를 합니다. 우리처럼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씻지 않고 간단하게 합니다. 그냥 물에 씻길 것만 씻어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땀을 씻고 냄새만 제거하면 부담없이 그냥 지냅니다. 때는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습니다. 몸에 먼지가 조금 묻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잘못되지 않습니다. 목욕 문화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로마에서 온 것입니다. 로마에는 이미 2천 년 전에 한꺼번에 1천 명 이상이 목욕할 수 있는 시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로마는 그것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 안에서 목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죄를 다 저질렀습니다. 이 문화가 어디로 건너갑니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 몸에서 씻어낼 게 뭐가 그렇게 많습니까 샤워를 하면 목욕하는 것보다 물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목욕탕에서 낭비하는 물이 얼마나 많고 또 물을 얼마나 오염시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아야 됩니다. 몸을 자꾸 씻는 것, 겉모습을 가꾸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입니다. 겉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몸은 그릇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흙으로 만든 질그릇입니다.
그러므로 그릇 속에 담는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성경은 “영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 속에는 심령이 있습니다.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볼 때에 같사람만 보고 좋다. 나쁘다 결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과 인간 관계를 맺을 때도 겉사람만 보고 사귀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미혼인 분들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사귀면 안됩니다. 키크고, 인물 좋고, 공부 많이 했어도 사람은 속을 보고 그릇 속에 있는 내용을 보고 결혼해야 됩니다. 예전에 저희 어머니께서 옹기항아리를 사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항아리 겉이 번질번질 윤기나는 것은 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약품처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사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겉으로는 번질번질하지만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윗감을 볼 때도 겉모습이 번질번질한 것만 보고 “키가 크구나, 무슨 대학을 나왔구나” 하면 안됩니다. 인물이 잘났다고, 학벌이 좋다고 맞아들인 사위가 처갓집에 와서 난동부립니다. 겉사람만 보고 사귀고, 같사람만 보고 사위를 삼았다가는 집안이 다 망하는 것입니다. 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딸이 있기 때문에 딸을 가진 분들을 위해서 오늘 몇가지 중요한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사기꾼을 조심해야 됩니다. 사기성은 겉사람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외모는 그럴듯하게 모든 것을 갖추었어도 거짓일 수 있습니다. 남을 이용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사람을 사위로 보면 큰 불행입니다. 사기성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가리지 않습니다. 장인, 장모를 이용해서 처갓집 돈을 내 돈같이 씁니다.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속입니다. 부모 형제에게도 온갖 거짓말을 해서 사기합니다. 거짓말도 마귀의 은사기 때문에 당해 낼 사람이 없습니다. 사기꾼을 만나면 누구라고 백발백중 다 걸려드는 것입니다. 사기꾼치고 인물 못나고 겉모양이 좋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됩니다. 대체로 사기를 하는 사람들은 겉모습이 번지르르합니다. 옹기같이 겉이 번질번질한 사람은 일단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제비족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바람피우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아니면 또 저 사람,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끊임없이 돌아 다니는 평생 바람둥이입니다. 만약에 겉모양만 보고 그런 사람에게 딸을 주었다가는 딸이 평생 동안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의처증 있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대학원을 나와도 박사 학위와 아무 관계 없이 의처증 있는 분이 있습니다. 부인을 공연히 의심하고 괴롭힙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을 안 만났다면 감사해야 됩니다. 의처증도 환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병든 환자입니다.
넷째, 알콜 중독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중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즐기다 보면 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술에 빠지면 가정, 건강, 행복 다 잃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술에 인박이지 말고 술을 즐기는 사람은 사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평생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술 먹고 운전하다가 7명이 한꺼번에 한강에 빠진 사고를 신문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다섯째, 폭행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손이 거칠어서 입으로 대화를 하지 않고 손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인을 잡아매고 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잔인하게 칼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자를 짐승 다루듯이 길들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평생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게으른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칫솔에 치약까지 묻혀서 갖다달라고 하고, 발까지 닦아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병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도둑이 들어와도 이불 속에 누어서 부인에게 나가 보라고 할 정도로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평생 고생하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는 잠언서를 읽어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것들은 모두 겉사람과 관계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을 만드실 때는 겉과 속이 차이가 없게 만드셨습니다. 동물은 보이는 대로 평가하고, 무게 달아 보고 무게가 많이 나가면 값도 많이 나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겉에 기쁨이 있어 보여도 안에 괴로움이 있을 수 있고, 겉에는 사랑이 줄줄 흐르는 것 같아도 안에는 칼을 품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겉사람은 흙으로 만드시고, 속사람은 신령한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에 평안이 있어 보인다고 심령에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겉이 부자라도 안이 가난할 수 있습니다. 겉이 아무리 화려해도 안으로는 눈물 흘리고 마음이 괴로워 탄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겉사람과 속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안에 있는 속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 와도 겉의 포장은 버리고 안에 것을 사용하듯이 사람이 결혼하기 전까지도 겉모양을 보지만 결혼을 한 다음에는 안에 것으로 인하여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의 품에 안겨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에 있는 속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2:1)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고 했듯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13:9)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사람 안에 심령이 아름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불행은 사람을 성경대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동물처럼, 물건처럼, 겉만 보고 사람을 선택합니다. 번질번질한 질그릇만 보고 그 안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안의 내용은 따로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외모는 보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외모가 좋든지 나쁘든지 관계없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일절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키가 작아도, 인물이 없어도, 배경이 없어도, 공부를 못해도 하나님 앞에는 하늘과 땅의 엄청난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동 다윗을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삼아주신 것은 다윗이 키가 컸기 때문도 아니고, 인물이 좋았기 때문도 아니고, 배경이 좋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링컨이 축복을 받은 것도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나 일반 역사에서 세계를 움직인 인물들이 외모로 세계를 움직인 일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심령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아름답게 할 때에 속사람뿐만 아니라 겉사람에게도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가 겉사람에 치중하면 어떻게 됩니까 겉사람도 안되고 속사람도 안됩니다. 그러나 속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면 속사람도 잘되고 겉사람도 잘되고 영육이 다 같이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너희 안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가 성전이 아니라 너희 안이 바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고, 참 성전은 우리 안이라는 것입니다.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닌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찬송가 427장). 그렇습니다. 내 안에 주님께서 거하십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주님과 내가 만나는 만남의 집이 어디입니까 내 마음입니다. 내 심령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이 의식주입니다. 입는 것과 먹는 것과 그리고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거처, 이 세 가지가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중요한 것도 의식주입니다. 육을 위해서 음식을 먹듯이 내 영혼을 위해서도 먹는 것과 입는 것과 강건한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때에 내 안에 있는 심령이 강건하여질 줄 믿습니다. 내 안에 있는 심령이 씨름 선수와 같이 건강한 몸이 되려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셔여 합니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좋은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해서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의 심령은 깨끗해집니다. 겉사람은 눈물 흘리고 근심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눈물 흘리고 기도하고 나면 심령이 밝아지고 내 영혼이 새 옷으로 단장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심령은 깨끗한 심령입니다. 아름다운 심령입니다. 기도로 단장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심령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하나의 집이기 때문에 불을 켜야 됩니다. 환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불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주시면 우리 심령 안에 있는 악한 세력이 다 물러갑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어두움이 우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환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님은 불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일순간에 여러분의 마음은 환해집니다. 불을 켜 놓은 것과 같습니다. 성냥불을 켜 보십시오. 1초 내로 환해지면서 어두움도 일순간에 사라집니다. 하나님 앞에 성령님으로 여러분 마음을 비추면 어두웠던 마음이 금방 밝아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방심하면 금방 또 꺼져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불을 켜려면 기름이 필요합니다. 기름이 떨어지지 않으면 항상 밝게 살아갈 수 있듯이 기도는 우리의 심령을 밝게 하는 기름을 공급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면 날마다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어두움은 불을 밝히면 되지만 마음은 그런 불이 있어도 항상 어둡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으로 비추어야 밝아질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밝게 하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 계속 우리를 밝히시도록 하려면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여러분은 평생 동안 빛 기운데 살아갈 줄 믿습니다. 작년까지 권사로 충성했다가도 지금 온갖 죄악에 빠져 있는 분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불을 꺼버리면 죄악의 밤이 되고, 성령님의 불을 켜면 거룩한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찬송가 233장). 그렇습니다. 심령은 하늘의 불로 켜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드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심령이 밝아집니다. 기도를 드려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누가 운전하느냐에 따라서 차의 성능이 달라지듯이 우리의 심령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속에 누가 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면 은혜의 길로 가게 되고, 교회로 가게 되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오신 것도 여러분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이끌린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성령님에 이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제가 왜 저런지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속에 있는 영이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있는 마귀가 이끌고 가면 자기 부인도, 자식도, 부모도 이해가 안되는 길로 자꾸 빠져갑니다. 자기도 자기 마음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가 자기를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으로, 구원으로, 영생으로, 은혜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평생 동안의 삶이 항상 성령님에게 이끌려 다니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면 내 힘은 거룩한 힘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을 때에 여러분은 건강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먹는 것은 신비합니다.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면 온몸에 힘이 공급됩니다. 안 먹어 보십시오. 말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고, 모든 것이 싫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먹어 보십시오. 팔이 음식을 먹은 것은 아니지만 팔에 힘이 솟고, 온몸에 힘이 솟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은혜를 받아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주장하셔서 전도하고 싶고, 찬송하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여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희락은 헬라 어로 “카라” 즉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화평, 자비, 양선은 친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충성, 온유, 절제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있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예수를 안 믿어도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고 친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절은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육체적으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돈도 은행장의 도장이 찍혀야 가치가 있듯이 우리의 모든 은사도 성령님을 통하여 받은 은사가 거룩하고 참된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은 이기적이고 육적인 사랑이지, 성령님을 통하여 주어진 진실된 사랑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은혜는 마음 안에 있는 것이어야지 우리 몸에 있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의 은혜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안에 있는 은혜만이 여러분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님께서 불을 켜주시고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여러분 한분 한분 위에 거룩한 영이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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