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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지도를 따라서 (갈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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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물건이 아닙니다. 기계도 아닙니다. 그래서 복잡하게 창조되어 있어요. 로봇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정교함은 아직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은 또 예민합니다. 인간은 8시간 일 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잠 자도록 되어있습니다. 8시간을 넘어 1 시간이라도 초과해서 일하면, 연장근로수당을 주도록 근로기준법 에 명시하고 있어요. 또 인간이란 기계는 예민해서 영화감상에 명절 때 귀향, 가족 나들이 이런 까다로운 요건들이 충족이 돼야 싱싱하게 일을 재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장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영 불만족 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기계는 열만 받지 않으 면 24시간 계속 돌려도 불평 한마디 안해요. 야간 철야 수당 주 지 않아도 돼요. 문화활동 즐기지 않아도 돼요. 이렇게 인간은 기계와 다르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물리 화학적 으로 분석하면 물질 외에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게는 정신활동이 있고 혼이 있고 영이 있어서 기계와 동물과 다 릅니다. 기분이 나쁘면 감정이 상합니다. 너무 나쁘고 견디기 힘 들 정도가 되면 자살을 합니다. 먹을 것이 많아도 자살을 합니다. 사람에게는 영이 있어 인간을 영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는 영이 근심을 합니다. 내가 죄를 지을 때는 영이 혼탁해 집니다. 또 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심지어는 영으로 귀신을 대하기도 합니다. 점집에서 사람들의 운명을 점치는 것도 일종의 영의 활동의 결과일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귀신들이 사람을 사로잡아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들어가지만 예수의 이름에 다 겨 나옵니다. 이런 영들의 활동은 우주만물 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숨결을 불어 넣어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나 눠 가진 것이요, 영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아는 것 만으로 인생을 잘 꾸려 나갈 수가 없습니다. 배운 사람이 인생을 더 잘 살아 가는 것 같지 않습니다. 배운 사람은 더 큰 도적질을 하고 못 배운 사람은 작은 도적질을 한다는 것이 요즈음 사회 현상입니다. 결심이 대단하면 인간은 조금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심만으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결심한 대로 다 될 것 같으면 못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 까 그래서 작심 3일라고 했어요. 또 느낌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사람은 변덕이 너무 심합니다. 하루에도 고기압 저기압이 수십번 반복합니다. 도저히 기분에 인생을 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으로도 안돼고, 결심만으로도 안되고 느낌으로도 부족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까요 인간 에 대한 회의가 듭니다.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듭니다. 울어도 안 되고 참아도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나주의 도움 받고자 349장).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 로도 안되고 지식으로도 안되고 결심이나 느낌으로도 안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 으로 되느니라."(슥4:6) 믿음이란 기관차를 인간의 이성에 의지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믿음이란 기관차를 인간의 결심에만 맡기는 것은 깨어지기 쉽습니다. 믿음이란 기관차를 느낌에만 의존하 면 불안합니다. 그러기에 믿음이란 기관차는 성령님의 힘으로 가야 합니다. 아는 것 느끼는 것 결심 위에 하나님의 성령님이 들어오 면 드디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확신 을 못하고 있습니다. 방언도 못하고 예언도 못하고 환상을 보지 도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사람 들은 다 성령님을 받은 것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님 이 아니고는 성경공부를 할수도 없고 성경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교회에 나올 수도 없습니다. 아주 쉬운 얘기입니다. 한 사람을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게 민드는 것 자체 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압니다. 이 시대의 베스트 셀러나 위 대한 고전도 전문 비평가가 아니면 몇번을 반복해서 읽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식한자든 무식한 자든 일생을 통해서 수 없이 반복해서 읽습니다. 매번 감동을 받고 또 읽으면서 인생이 변화됩니다. 반복하면 할수록 꿀송이 처럼 달다고 고백하는 사람 들이 많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책은 성령의 인도가 아니고서는 성경을 읽거나 성경공부 하는 데 시간을 투자 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몇 분들과 일 주일에 한 번씩 성경 공부를 합니다만 투자할 시간이 그렇게 많은 데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성경공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 이 것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믿을 수도 예수를 주인으로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고전12:3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 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 그러니, 단지 교회에 나오는 것,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공부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 예배 를 드리면서 잔잔함 감동에 빠지고 결단을 하는 것, 죄와 죽음과 심판의 처절한 운명을 안고 살아가던 신분에서 생명을 얻고 주님 을 만나고 감격하는 것, 이 모두는 성령님의 충분한 활동의 결과임 을 믿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는 분들에게 성경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 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 느냐"(고전6:19). 주로 시인하는 순간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십니다.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입주하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교회를 나오는 것 성경공부를 하는 것,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는 것, 몸부림치는 것, 믿음에 대해 회의하는 것, 확신하는 것, 믿음에 대에 알고자 탐구하는 것, 기도하는 것, 내 마음을 여는 것, 이 모두가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서 된 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 정하고 고백하도록 하십시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 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 (엡5:18) 성령님이 있 기는 있는 데 충만히 받으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님의 지배를 온전히 받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이 성령님의 지배는 우리 의 인격과 존재에 미칩니다. 사람은 한 개가 아닙니다. 사람은 한 마리도 아닙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어 한 분 두분 그런 셈 단위입니다. 성령님도 한 양동이, 한 드럼이 아닙니다. 한 마리도 아닙니다. 성령님은 물질이 아니시 니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인격으로 우리를 지배하시고, 인격의 변화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완전히(fully) 받으라는 것은 우리의 인 격이 성령님의 인격으로 지배받고 태어 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실 여러 요소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돈, 명예, 어던 취미 보다 교회가 여러분에게 영향력이 있기를 원합니다. 성도 끼리 서로 영향력이 있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소 영향력이 있 었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성령님이 지배하고 말씀이 여러분을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이 계시기는 하나 아 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런 지배도 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부분적인 사건이나 순간 밖에 상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 부분적인 지배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어느 사건, 어떤 결 정, 어떤 계획에든 개입하시면 성령님은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한 것입니다. 내가 지배하고 내가 내린 결정 보다 성령님께서 지배하고 함께 냐린 결정은 얼마나 선한 것일까 요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데 성령님이 함께 해결한 사건은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요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육체가 당신을 지배하면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 를 차지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21절)
그러나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친절), 양선(선행), 충성(진실), 온 유, 절제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화신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쁨을 유지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평화를 갖고 있지도 않으며 평화를 만드는 데 전문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인 내가 부족합니다. 참는 데 있어서는 아마추어입니다. 우리는 사 실 냉혹합니다. 자비심이 없습니다. 친절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선량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진실하지 못합니다. 처음과 끝이 똑 같고 믿을만하고 진실하지 못합니다. 온유의 화신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너진 인격인데도 우리는 좀 미화를 해서 성질 이 좀 급하다, 성격이 좀 외향적일 뿐이라고 합니다. 끊을 때 끊 지 못하고 삽니다. 절제에 있어서는 백전 백패합니다. 알콜 중독, 도박, 가정폭력, 갖은 방법을 다 써 봤어요, 끊지를 못해요. 그래 도 안 돼요. 성령님의 변화 만이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미 이것은 기적입니다. 본문 22절에 보니 "열매"라고 했습니다. 귀한 뜻이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이런 모든 것은 단지 성령님의 열매 라는 것입니다. 열매는 그냥 맺혀지지 않습니다. 그 전 단계가 있 어야 합니다. 열매는 결과일 뿐입니다. 교회 앞의 감나무가 있지 요. 감나무가 열매를 맺으려고 얘쓰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를 땅 깊숙히 밖고 햇볕을 누리고 비를 즐기고,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호흡을 하다가 보면 가을에 자연스레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감 나무 열매를 여름 동안의 감나무의 활발한 활동의 결과일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면 열매로서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무르익고 나타납니다. 우리가 애를 쓰는 것이 아니지 요. 성령님의 지배가 낳은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인내심을 발휘하려 용을 쓸 필요도 없 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노력으로 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지배 만 청하면 됩니다. 성령님에게 나의 삶을 양도하고 그의 지배를 충 분히 받고, 성령님을 매일의 삶에서 누리면 자연스럽게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큰 바위의 얼굴 이야기를 잘 알지요. 바위를 일생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큰 바위의 얼굴 처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일생받고 누리면 우리는 이런 열매를 우리의 인격 속에 저절로 가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님의 필요는 항상 느꼈지만, 정작 성령님의 지배는 맡겨 드리지 못한 불신앙을 뛰어 넘읍시다. 성령님을 초청하고, 성령님의 지배를 구합시다. 성령님을 누리며 삽시다. 제일 큰 기적은 우리의 인격이 변화한 것입니다. 더 많이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지 배하시면 더 크게 변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누리고 경험하고 목격할 수 있는 최대의 기적입니다. 모든 성령님 의 은사는 이런 변화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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