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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케 하려고 (갈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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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룩클린에 플리머스 교회가 있습니다. 1928년 어느 주일 예배 때였습니다. 한 흑인 할머니가 한 마디 간증할 기회를 얻어 말했습니다. "68년 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1860년 9월 19일 주일이었습니다. 저는 한 노예로서 이 교회 밖 광장에서 경매에 붙여지고 있었습니다." 머리 가 하얗게 센 이 할머니는 기쁨에 넘쳐서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팔렸습니다. 막 아버지가 팔려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아빠 아빠'하고 소리쳤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저를 보면서 끌려갔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 교회에서 예배 를 마치고 밖에 나오신 당시 헨리 비쳐 목사님이 저를 사셨습니다. 거금 800달러였습니다. 그 시간부터 저는 자유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돈은 교인들이 한 사람의 노예라도 구하려고 헌금한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그 댓가가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신자가 되었고 결혼 해 가정을 꾸미고 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 발견합니다. 노예된 사람은 자기 힘으로 자유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댓가를 지불해 야 합니다. 또한 자유한 사람은 자유의 능력을 누려야 합니다.
1. 예수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려 오셨다 성경은 사람들이 노예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무 의미한 욕망입니다. 미국에 로스 안젤레스의 한 교포가 도박에 미쳤습니다. 일단 여기 빠지면 헤어나질 못합니다. 그는 여러 해동안 많은 돈을 라스 베가스 도박장에서 잃었습니다. 억울한 나머지 여기 저기서 돈을 억지로 빌려서 백만불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단번 도박을 벌렸습니다. 이기면 거금 천만불을 법니다. 꾼돈을 다 갚고도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원체 거금인지라 모든 사람들의 눈이 집중되었습니다. 지역의 매스콤과 텔리비젼이 중개합니다. 여러가지 쇼를 벌리고 드디어 카드를 돌렸습니다. 짧은 시간이 흐른 뒤 결과는 나왔습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백만불을 건 사람이 졌습니다. 얼빠진 그는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사라졌습니다. 얼마 뒤 그 호텔의 한 방에서 총소리가 났습니다. 돈 잃은 사람이 자 살한 것입니다. 그가 남긴 것은 단 하나, 탁자에 한글로 갈긴 글 한줄뿐이 었습니다. "내 이럴줄 알았다." 이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갈 길을 예 감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죽음 의 도박의 벌렸습니다. 인생을 극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 묻힙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병이 있습니다. 늙음이 있고 여러가지 실패와 절망이 있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젊고 예 뻐도 자기 삶의 결론을 압니다. 하지만 무엇엔지 끌리어 삽니다. 결론을 다 알면서도 목적없이 욕망에 빠져서 기력이 다할 때까지 다닙니다. 앞에 나온 도박하는 사람은 특수한 경우지만 결국 다 그렇습니다. 다 른 도박하는 사람들 만나보았습니다. 끊을 수가 없어요. 도둑질하면서 그게 나쁜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않되는 것입니다. 성질부리는 사람들도 다 그게 나쁜지 알고 있습니다. 자살 몇 번 기도한 사람을 상담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꾸 죽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좋은 일을 향해서도 힘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의지가 없다고 하지요. 그보다는 선한 일 할 힘이 없습니다. 사랑하는게 긍정적 사 고를 하는게 열심히 일하는게 좋은지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질이 일어나고 속이 뒤틀리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올 때 그것을 조정 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가진 힘은 헛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 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 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9:3)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을 보는 성경의 눈입니다.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어 디 있습니까 술먹고 어머니 패는 사람도 잘못은 뼈아프게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신게 이 상황입니다.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 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 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 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눅 4:18) 도박에 노예되고 부정적 삶과 죄악에 포로된 자를 구한다는 것이지요.
2. 그 댓가는 엄청났다 앞의 노예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이 엄청난 돈을 냈습니다. 당시 800불이라면 오늘날은 그 수백배의 금액입니다. 유명한 사람이나 자 기에게 유익을 준 사람을 구하는게 아닙니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피와 같은 돈을 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게 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오리지날이 바로 예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 동안 명상할 것이 그의 하신 일입니다. 아니 복음 그 자체가 여기 다 있습니다. 우리를 얽매고 있는게 무엇이건 그것이 우리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내용을 명상하고 그대로 적용하면 됩니다. 어떠한 사슬도 어떠한 곤경도 반드시 벗어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 자리를 버리고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억 압된 형태로 나타나셨습니다. 그에게는 아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가난했습니다. 귀족이 아니었습니다. 무명인이었습니다. 인물도 없 었습니다. 공부도 못했습니다. 가장 인정받지 못하는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야 할 정도로 기회가 안주어졌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하나님에 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 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우리가 늘 외우는 귀절입니다. 이 의미를 명상해서 나의 것으로 삼는 다면 우리를 얽어맨 어떠한 굴레라도 다 끊어지고 맙니다. 이제 조금 뒤에 그 방법을 말해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엄청난 댓가가 지불되었음을 확인 합시다. 저는 벌거벗기워 밤새도록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몸은 찢어졌지만 형장까지의 몇 킬로를 형틀을 지고 걸어야만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나체로 사지에 못이 박혔습니다. 그 상태로 숨이 끊어 질 때까지 달려있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만 이 아들의 마지막을 비참한 심정으로 지켜봅니다. 사랑했던 제자들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그를 오해했습니다. 거 기다가 하나님까지도 그를 버렸습니다. 천지는 어둠에 잠겼습니다. 저는 여러분 슬프게 하려고 이 말씀 하는게 아닙니다. 고통을 알아주 자는 것도 아닙니다. 보답하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신앙의 핵심 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주께서 어떤 댓가를 지불했는지 똑똑히 알라는 것 입니다. 여기 말한 내용은 그저 한 부분일뿐입니다. 그의 마음 고생과 지옥 의 고통은 말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엄청난 댓가가 지불되었습니다.
3. 지불된 댓가가 헛되지 않게 자유를 사용하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 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바울의 말씀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 합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 일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를 헛되이 받지 말라." 헛되이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현재가 바로 은혜받고 구원을 받는 때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현재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고 지금 문제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댓가는 지불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들어와서 계십니다. 하나님은 함께 일하십니다. 단지 믿음으로 화합하면 됩니다. 노예 소녀는 자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자유인으로 살았 습니다. 잡았던 고기를 다시 물에 놓아주면 갈 곳으로 자유롭게 갑니다. 다 친 독수리나 부엉이를 잡았다가 치료한 뒤에 놓아줍니다. 그러면 하늘로 마음껏 날아갑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영적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댓가를 지불하고 자유의 힘을 주었는데도 여전히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했는데도 여전히 노예로 사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했어도 사실상 완전히 자유한 신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은혜가 장차 오는게 아닙니다. 문제 해결이 미래 에 되는게 아닙니다. 지금 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얻습니다. 지금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오래 기도해도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무엇이건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지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쁜 습관이건, 병이건, 사업이건, 가정문제이건, 아니면 자신의 약점이건 무엇이 건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넘어야할 난관도 생각해 보십시오. 소망 하는 일들도 지금 떠올려 보십시오. 신자의 삶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함 께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돕기 원하십니다. 자신에게 말하고 믿으십시오. "예수는 내게 약속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큰 일도 한다.' '나는 포 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주 안에서 나는 무엇이 든지 할 수 있다.' 나는 내 안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새로운 인종이요 하늘의 가족이요 또 다른 예수이다." 과거의 경험이 무엇이었건 상관 없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었건 좋은 것이었건 그냥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방법을 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 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7) 그리고 말씀합니다. 택한 자기 백성을 위해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선입관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십시오. 상 상할 수 있는 최상의 상황을 기대하십시오. 높은 사람만나거나 전화하는 것을 예로 들어 봅니다. "이 사람이 싫어할 것이다. 힘든 사람이다. 겁난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신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상황을 명령하십시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 나도 그를 좋아한다." 반드시 잘됩니다. 하나님은 명령했습니다. "빛이 있으라. 태양과 지구가 있으라."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 나도 그에게 유익을 주겠다." 무슨 일이든지 원하는대로 명령하고 믿으십시오. 믿음은 능치 못 함이 없습니다. 두려움과 약함과 죄로부터 주께서 자유케 하려고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멍에를 벗읍시다. 새사람의 자유를 사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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