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고, 보고, 듣고 (계1:10-11)
본문
밧모섬에 유배되어서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형편을 7가지로 살펴보고 있다. 3번째까지는 고난의 사도 요한 모습을 살펴보았다. 4번째 사도 요한의 모습은 주의 날에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모습이었다. 그 주의 날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 주의 날에 사도 요한 성령님에 감동되었다. 이 감동은 강한 느낌으로 요한 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강한 느낌이 오는 순간 사도 요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음성은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기록하라는 것이었다. 즉 사도 요한 하나님의 계시를 본 것이다 사도 요한이 이 놀라운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서 극심한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의 날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도 요한에게 주의 성령님은 임했다. 성령님의 역사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성령님의 역사 없이 우리의 영의 눈이 열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 성도들이 마음이 강퍅해서 성령님의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영적 귀머거리가 많고 영적 소경이 많다. 예수님은말씀했다. (마13: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예민하게 느끼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영의 귀와 영의 눈이 모두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다섯 번째:성령님에 감동된 모습. 10절
사도 요한 다섯 번째 모습은 성령님에 감동된 모습이다. 놀라운 계시를 보게된 것은 육적으로는 먼저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영적으로는 성령님의 감동이 그 원동력이라고 본다. 주님의 영적인 일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주님의 일을 알 수도 없고 주님이 옆에 와 계신다 할지라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성령님 감동 "성령님 안에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상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도취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의 신비주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감동이 임하면 인간의 의지보다는 성령님의 의지대로 따를 수밖에 없어진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 내 의지대로 산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자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때 먼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주신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고 사십니까 성령님의 감동은 성령님 안에 거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면서 말씀 하셨다. (요14:16-21) 다같이 여기서 "보혜사" 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파라(para = 곁에) 클레토스 (kletos = 부름받음) 결합된 말로 "곁에서 우리를 도와준다"는 뜻이다 즉 위로자, 상담자 라는 뜻이다. 보혜사는 어떤 영이라고 했는가 17절 진리의 영 이 진리의 영이 어디 있겠다고 했는가 우리 안에 우리와 어떻게 함께 하시겠다고 했는가 버려두지 아니하고 19절 이 보혜사가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20절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 그러나 그 다음에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이렇게 성령님 안에 거하고 성령님과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21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21절 <다같이> 결국 성령님 안에 거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길은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떠나서 성령님의 역사는 있을 수 없고 예수를 떠나서 성령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지 않고는 성령님의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성령님은 절대로 어떤 물체가 아니다. 하나님 영이시고 예수의 영이시고 삼위 중에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성령님을 마치 어떤 물체로 여기는 자들을 본다 성령님은 인격자이시다.
1. 근심도 하신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아니할 때 성령님은 근심하신다 근심하고 탄식한다는 것은 슬퍼하시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을 슬퍼하게 하시면 안된다.
2. 성령님은 거절도 하신다 (행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거부하신다. 그러나 회개하면 우리에게 또 믿음을 주고 소망을 주신다
3. 진리 가운데로 인도도 하신다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4. 시기도 하신다 (약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님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5. 사랑도 하신다 (롬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성령님의 인격을 잘 기억하고 성령님을 모시고 살기를 바란다 성령님을 모르고 어찌 성령님과 함께 동거동락을 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께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도 사도 요한처럼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살게 될 것이다. 성경에는 성령님께 감동된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 모두 공통된 점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다. 성경을 기록하는 자들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초대교회때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고 일어났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감동을 주신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학1:14) 하나님의 전을 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 시켰다고 했다. (출35:21) 성막을 지으는데 마음이 감동된 자들이 성막을 지었다고 했다.
성도 여러분 ! 성령님의 감동을 느끼고 살고 있으십니까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내 안에 내재하심을 느끼십니까 우리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살아야만 한다 인간 스스로 가는 길은 곧 멸망의 길이다 소경이 길을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린 아기가 길을 혼자 가는 것과 같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으로 와 계신다 온전히 의지하고 인도를 받으면 살기를 축원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사도 요한 지금 밧모섬에서 어느 주일 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다. 그랬기에 요한에게 임한 고난은 인간들의 눈에는 극심한 고난이었지만 요한 에게는 고난이 보이지 아니했다 로마의 원형극장에 끌려 들어간 성도의 몸이 사자에게 물려서 갈갈이 찢어져서 창자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다음 죽음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올 수 있었던것은 그 무서운 장면을 보고 두렵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감동을 강하게 주셨으므로 그들은 그 장면이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려운 시대가 우리에게 밀려오고 있다. 더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성도 여러분 ! 성령님에 감동을 받아야만 한다. 성령님에 감동이 없이는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없다. 말씀을 들을 때 감동이 있으십니까 교회에 올 때 성령님의 감동으로 오십니까 교회 봉사 할 때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십니까 주여 ! 내 믿음에 감동을 주세요 ! 주여 ! 내 교회생활에 감동을 주세요 ! 주여 ! 돌 같이 굳어버린 내 영혼에 감동을 주세요 ! 주여 ! 내 영혼에 뜨거운 눈물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란다. 세상 것들에 감동 받은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말씀에 ! 성령님께 ! 예수님께 ! 교회에 ! 감동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섯 번째: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된 듣게된 모습. 10절
주의날 성령님에 감동되어 있는 사도 요한의 모습 상상이 갑니까 그런 가운데 뒤에서 큰 음성이 들렸다. 그 큰 음성은 나팔소리 같았다고 말하고 있다. 성령님에 감동한 요한은 영적인 귀가 열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은 영의 귀가 열린 자만이 들을 수 있다.
나팔소리 구약에는 백성들을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 전쟁 때, 그리고 특별한 절기 때 사용했다. 이 나팔소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도움의 되는 소리이지만 이방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소리였다. 주님 재림 때에도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의 재림이 임할 것이다 믿는 자에게는 들림 받은 기쁨의 소리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들은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은 경고성을 가진 하나님의 소리였다. 이 나팔소리는 휴거 때 울리는 나팔소리가 아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나팔소리 같은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마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고전15:51)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이 들은 이 나팔소리 같은 하나님의 큰 음성은 휴거 나팔소리가 아니라. 이제 앞으로 있을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경고의 소리였다. 이 경고의 소리를 하나님은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것이다. 이 경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 귀가 있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곱 교회에 장차 있을 일을 보낸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낸 이 경고의 소리를 우리 또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듣지 못하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 듣고도 외면하을 들을 수 있었는가 사도 요한 모습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 경고의 소리는 다 듣기는 듣지만 사도 요한 같은 모습으로 듣지 아니하면 경고의 소리로 들리지 않은다. 이 시대 얼마나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가 그러나 모두 다 가볍게 넘기고 있다.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경고의 소리를 듣고 깨달을 수 있는가
1. 어디에 있는가 가 중요하다. 사도 요한 밧모섬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듣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 곳은 바로 고난의 장소였다. 세상과 짝하고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경고 소리가 들려도 깨닫지 못한다. 고난 속에 있는 사도 요한 주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 어느 곳에 내가 있는가 교회 안 보다는 세상 속에 더 거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보다는 T.V 앞에 더 거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보다 내 집이 더 좋은가 예수 만나는 것 보다 친구 만나는 게 더 좋은가 모세는 바로왕 궁전에서 주님을 만나지 아니했다. 광야의 외로운 삶속에서 있을 때 가시덤불에서 주님을 만났다. 야곱도 광야의 외로운 가운데서 주님을 만났다. 세례요한 역시 광야의 외로운 가운데서 예수를 만났다. 마지막 때 외로운 환경 가운데 주님만 바라보고 있는 자는 복된 자이다. 아무리 세상 속에서 바쁘더라도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시간도 주님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 속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자에게는 아무리 경고 소리가 들려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성경은 말하고 있다. (계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2. 성령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사도 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 충만했기 때문이다. 성령님 충만 한 자만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경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른 영으로 충만해서는 안된다. 세상에는 다른 영이 많다. (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예수 전한다고 다 예수가 아니다. 다른 예수가 있다. 복음이라고 다 복음이 아니다. 다른 복음이 있다. 영도 다른 영이 있다. 우리는 오직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할 것이다. 성령님 충만한 자는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님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3:6) 계시록에는 "귀가 있거든 들어라" 하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일곱 교회 편지 끝에 마다 반드시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였다 종말의 복음은 영적 귀가 있어만 들을 수 있다. 영적 귀가 열리기 위해서는 성령님 충만 받어야 한다. 주님은 (마 13:13)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특히 계시록에 울려 퍼지고 있는 이 말씀을 들으려면 귀가 열려야만 한다. 귀가 열리지 않으면 이 말을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왜 그러는가 계시록의 복음은 장성한자의 복음이다 어린아이 믿음으로는 이해도 안되고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이 장성한자가 되어야만 한다 [히5:13-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사도 요한에게 들려준 나팔소리 같은 경고의 계시는 요한 혼자에게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 계시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요한에게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이 들었던 그 경고의 소리를 일곱 교회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 교회들이 성도들이 이 계시록의 경고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는가 계시록은 덮어둬야 할 책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 덮어두라고 기록하라고 있는가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계22:10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 성도 여러분 !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살고 있습니까 세상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입니까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계13:9) 영적 귀가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일곱 번째:계시를 보는 모습이다. 11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 "
하나님은 이제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시면서 책에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책을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셨다. 순서를 다시 살펴보자
1. 본 계시를
2. 책에 써라
3. 보내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막중한 사명을 받은 것이다.
본 것 (내용) 영의 눈이 열린 것이다 무엇을 보았는가 장차 될 일이다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책에 써라 (할 일) 영구 본존 해서 알려야할 내용이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 본 계시는 책에 기록할 정도로 분명한 것이었다 한 개인에게 준 계시가 아니라 이 계시는 영원히 전해져야 할 계시라는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라 (목적, 사명) 보낼 곳이 분명히 있었다. 그 곳은 바로 믿는 자들이 있는 교회였다. 성경책이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책이 아니듯이 계시록 역시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책이 아니라 바로 교회에 주어진 책이고 성도들에게 주어진 책이다
사도 요한에게 임한 계시는 분명한 뜻이 있었다. 요한은 그 고난의 밧모섬에서 내일 아침에 자신이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런 상항이었는데 주님은 그런 요한 에게 지금 사명을 주고 계신다.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내일이 올지 어려운 상항일때가 있지만 주님에게는 그 때가 바로 시작이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사도 요한이 보았던 계시를 지금 보고 있다. 책에 기록되어져서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 우리도 이 계시를 볼 줄 알아야만 한다 사도 요한은 본 대로 기록했다. 우리 또한 계시록에 기록된 책을 제대로 보아야 만 한다. 잘못 보면 안된다. 잘못 보면 안보는 것만 못한다 인위적인 해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성경이 가는데 까지만 가는 것이다. 성경이 뒷받침 해주지 못하는 이론은 인간의 학설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고 아니고 말씀도 아닐 것이다 계시록 어디에 환난 전에 휴거가 있다는 말이 어디 기록되어 있는가 계시록 4장 이후에 어디 교회가 휴거 되었는가 여기에 대한 것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중 한가지만 살펴보자.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 계시록 22장 끝장에서 주님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 사도 요한 일곱 교회에 보내라 했다. 그리고 그 보낸 계시를 2장에서 주님이 다시 말씀하고 있다. 계시록은 감추어져 있는 책이다. 아직 이 비밀이 열리지 않은 책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조심스럽게 이 말씀을 보아야 할 것이고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 계시록이 여러분들 영적 눈에 보인다면 이제 우리도 요한 처럼 기록해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록한다는 것은 계시록을 다시 기록하라는게 아니고 기록하듯이 잘 배우라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앞으로 이 땅에 되어질 일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잘 믿기만 하면 되지 무슨 종말론이냐 ! " 목사님들 입에서도 이런 말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그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잘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보세요 알고 믿는 자와 모르고 믿는 자의 신앙은 시작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겠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두 부류의 신앙은 엄청난 거리가 생기고 말 것이다. 믿기만 잘하면 된다고 교회가 가르쳐서는 안된다 어떻게 믿을 것인가 확실하게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지금이 어느때 라는 것을 귀가 아프도록 들려주어야만 한다 양은 귀에 물이 들어가면 죽은다 양을 죽일 때도 귀에 물을 넣어서 죽인다 양들인 성도들의 귀에 세상의 타락한 물이 들어가면 죽은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귀에 세상 물이 틈 못 타도록 오직 예수를 외쳐주어야 하고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을 자주 들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교회에 자주 나와야만 사는 것이다 교회를 멀리하고 신앙이 뜨거워진다면 기적일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이 때가 마지막 때라는 것이 보이고 계시록에 기록된 계시가 보인다면 장차 될 일을 우리는 배워서 알고 있어야만 한다. 살전 5장에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겠다고 했다 말씀을 알 때 깨어있는 자가 될 수 있고 배울 때 깨어있는 자가 될 수있다 계시록이 보이고 계시록을 배웠다면 이제 우리는 나만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요한에게 본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보고 알았다면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만 한다 계시록은 덮어둬야 할 책이 아니다 원수 마귀가 제일 싫어할 책이 바로 계시록이다 또 가장 많이 이 책을 사탄이 말씀을 가감해서 이용하고 있다 계시록을 가감한자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주님이 못을 박고 계신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그러므로 우리는 잘 보아서, 또 잘 배워서 바르게 전해야만 한다 계시록에 7복이 나오는데 첫 번째 복이 계 1:3절 말씀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때는 마지막 때이다 우리는 더욱 이제 이 말씀을 선포해야만 한다 너무나 급히 역사의 종말을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며칠 전 뉴스에도 이 지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뜨겁게 달아올라지고 있다고 했다. 여러분 동그란 쇳덩어리를 생각하면될 것이다 동그란 쇳덩어리를 불에 올려놓으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듯이 이 지구가 지금 그런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엘리뇨 현상 나라마다 심각하다 올 여름은 아마 대 홍수와 가뭄이 속출할 것이다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 잘 믿어야만 이 마지막 대환난을 통과해서 휴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해야 한다 이 시대를 보라 ! 어디 믿는 자가 믿는 자 다운 모습이 있는가 열심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우리가 솔직해져 보자! 주님의 한탄이 들려온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눅18:8) 성도 여러분 ! 제대로 보고 ! 제대로 배워서 제대로 전하자! 모두 그러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 7가지 모습을 우리는 이제껏 살펴보았다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1. 고난 당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힘을 주고있는 모습.
2. 예수 때문에 엄청난 환난 밧모섬에서 당하는 모습.
3. 그 고난은 하나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당한 모습.
4.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는 모습.
5. 성령님에 감동된 모습.
6. 영위 귀가 열리는 모습.
7. 영의 눈이 열리는 모습.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모습이다. 이 7가지 모습 중에서 여러분 몇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까 2가지입니까 3가지입니까 우리는 요한처럼 7가지 모습을 다 지녀야만 한다 이 7가지 모습이 없다면 우리는 마지막 때 계시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고난 당하는 형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 두려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나에게 오는 고난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된다 성령님 충만 받아야 만이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주님은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도적같이 오시겠다고 하셨다 이 시대에 모두 다 평안한 삶을 살기만 원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려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사도 요한은 90세의 노구의 몸으로 숨도 쉬기 힘든 상황에서 그 주의 날을 적당히 보낼 수 없었다. 뼈만 남은 무릎으로 요한은 바위에 무릎을 끓고 주님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신세를 보고 우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주님의 은혜를 주신 그 감사함에 요한은 울고 있었다. 바로 그 날에 하늘 문이 열린 것이다. 하늘의 계시를 받은 요한의 모습 우리 또한 가져야 할 때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요한 다섯 번째 모습은 성령님에 감동된 모습이다. 놀라운 계시를 보게된 것은 육적으로는 먼저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영적으로는 성령님의 감동이 그 원동력이라고 본다. 주님의 영적인 일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주님의 일을 알 수도 없고 주님이 옆에 와 계신다 할지라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성령님 감동 "성령님 안에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상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도취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의 신비주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감동이 임하면 인간의 의지보다는 성령님의 의지대로 따를 수밖에 없어진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 내 의지대로 산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자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때 먼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주신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고 사십니까 성령님의 감동은 성령님 안에 거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면서 말씀 하셨다. (요14:16-21) 다같이 여기서 "보혜사" 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파라(para = 곁에) 클레토스 (kletos = 부름받음) 결합된 말로 "곁에서 우리를 도와준다"는 뜻이다 즉 위로자, 상담자 라는 뜻이다. 보혜사는 어떤 영이라고 했는가 17절 진리의 영 이 진리의 영이 어디 있겠다고 했는가 우리 안에 우리와 어떻게 함께 하시겠다고 했는가 버려두지 아니하고 19절 이 보혜사가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20절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 그러나 그 다음에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이렇게 성령님 안에 거하고 성령님과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21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21절 <다같이> 결국 성령님 안에 거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길은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떠나서 성령님의 역사는 있을 수 없고 예수를 떠나서 성령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지 않고는 성령님의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성령님은 절대로 어떤 물체가 아니다. 하나님 영이시고 예수의 영이시고 삼위 중에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성령님을 마치 어떤 물체로 여기는 자들을 본다 성령님은 인격자이시다.
1. 근심도 하신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아니할 때 성령님은 근심하신다 근심하고 탄식한다는 것은 슬퍼하시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을 슬퍼하게 하시면 안된다.
2. 성령님은 거절도 하신다 (행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거부하신다. 그러나 회개하면 우리에게 또 믿음을 주고 소망을 주신다
3. 진리 가운데로 인도도 하신다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4. 시기도 하신다 (약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님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5. 사랑도 하신다 (롬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성령님의 인격을 잘 기억하고 성령님을 모시고 살기를 바란다 성령님을 모르고 어찌 성령님과 함께 동거동락을 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께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도 사도 요한처럼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살게 될 것이다. 성경에는 성령님께 감동된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 모두 공통된 점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다. 성경을 기록하는 자들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초대교회때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고 일어났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감동을 주신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학1:14) 하나님의 전을 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 시켰다고 했다. (출35:21) 성막을 지으는데 마음이 감동된 자들이 성막을 지었다고 했다.
성도 여러분 ! 성령님의 감동을 느끼고 살고 있으십니까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내 안에 내재하심을 느끼십니까 우리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살아야만 한다 인간 스스로 가는 길은 곧 멸망의 길이다 소경이 길을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린 아기가 길을 혼자 가는 것과 같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으로 와 계신다 온전히 의지하고 인도를 받으면 살기를 축원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사도 요한 지금 밧모섬에서 어느 주일 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다. 그랬기에 요한에게 임한 고난은 인간들의 눈에는 극심한 고난이었지만 요한 에게는 고난이 보이지 아니했다 로마의 원형극장에 끌려 들어간 성도의 몸이 사자에게 물려서 갈갈이 찢어져서 창자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다음 죽음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올 수 있었던것은 그 무서운 장면을 보고 두렵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감동을 강하게 주셨으므로 그들은 그 장면이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려운 시대가 우리에게 밀려오고 있다. 더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성도 여러분 ! 성령님에 감동을 받아야만 한다. 성령님에 감동이 없이는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없다. 말씀을 들을 때 감동이 있으십니까 교회에 올 때 성령님의 감동으로 오십니까 교회 봉사 할 때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십니까 주여 ! 내 믿음에 감동을 주세요 ! 주여 ! 내 교회생활에 감동을 주세요 ! 주여 ! 돌 같이 굳어버린 내 영혼에 감동을 주세요 ! 주여 ! 내 영혼에 뜨거운 눈물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란다. 세상 것들에 감동 받은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말씀에 ! 성령님께 ! 예수님께 ! 교회에 ! 감동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섯 번째: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된 듣게된 모습. 10절
주의날 성령님에 감동되어 있는 사도 요한의 모습 상상이 갑니까 그런 가운데 뒤에서 큰 음성이 들렸다. 그 큰 음성은 나팔소리 같았다고 말하고 있다. 성령님에 감동한 요한은 영적인 귀가 열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은 영의 귀가 열린 자만이 들을 수 있다.
나팔소리 구약에는 백성들을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 전쟁 때, 그리고 특별한 절기 때 사용했다. 이 나팔소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도움의 되는 소리이지만 이방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소리였다. 주님 재림 때에도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의 재림이 임할 것이다 믿는 자에게는 들림 받은 기쁨의 소리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들은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은 경고성을 가진 하나님의 소리였다. 이 나팔소리는 휴거 때 울리는 나팔소리가 아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나팔소리 같은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마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고전15:51)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이 들은 이 나팔소리 같은 하나님의 큰 음성은 휴거 나팔소리가 아니라. 이제 앞으로 있을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경고의 소리였다. 이 경고의 소리를 하나님은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것이다. 이 경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 귀가 있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곱 교회에 장차 있을 일을 보낸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낸 이 경고의 소리를 우리 또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듣지 못하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 듣고도 외면하을 들을 수 있었는가 사도 요한 모습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 경고의 소리는 다 듣기는 듣지만 사도 요한 같은 모습으로 듣지 아니하면 경고의 소리로 들리지 않은다. 이 시대 얼마나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가 그러나 모두 다 가볍게 넘기고 있다.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경고의 소리를 듣고 깨달을 수 있는가
1. 어디에 있는가 가 중요하다. 사도 요한 밧모섬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듣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 곳은 바로 고난의 장소였다. 세상과 짝하고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경고 소리가 들려도 깨닫지 못한다. 고난 속에 있는 사도 요한 주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 어느 곳에 내가 있는가 교회 안 보다는 세상 속에 더 거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보다는 T.V 앞에 더 거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보다 내 집이 더 좋은가 예수 만나는 것 보다 친구 만나는 게 더 좋은가 모세는 바로왕 궁전에서 주님을 만나지 아니했다. 광야의 외로운 삶속에서 있을 때 가시덤불에서 주님을 만났다. 야곱도 광야의 외로운 가운데서 주님을 만났다. 세례요한 역시 광야의 외로운 가운데서 예수를 만났다. 마지막 때 외로운 환경 가운데 주님만 바라보고 있는 자는 복된 자이다. 아무리 세상 속에서 바쁘더라도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시간도 주님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 속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자에게는 아무리 경고 소리가 들려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성경은 말하고 있다. (계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2. 성령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사도 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 충만했기 때문이다. 성령님 충만 한 자만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경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른 영으로 충만해서는 안된다. 세상에는 다른 영이 많다. (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예수 전한다고 다 예수가 아니다. 다른 예수가 있다. 복음이라고 다 복음이 아니다. 다른 복음이 있다. 영도 다른 영이 있다. 우리는 오직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할 것이다. 성령님 충만한 자는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님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3:6) 계시록에는 "귀가 있거든 들어라" 하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일곱 교회 편지 끝에 마다 반드시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였다 종말의 복음은 영적 귀가 있어만 들을 수 있다. 영적 귀가 열리기 위해서는 성령님 충만 받어야 한다. 주님은 (마 13:13)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특히 계시록에 울려 퍼지고 있는 이 말씀을 들으려면 귀가 열려야만 한다. 귀가 열리지 않으면 이 말을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왜 그러는가 계시록의 복음은 장성한자의 복음이다 어린아이 믿음으로는 이해도 안되고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이 장성한자가 되어야만 한다 [히5:13-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사도 요한에게 들려준 나팔소리 같은 경고의 계시는 요한 혼자에게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 계시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요한에게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이 들었던 그 경고의 소리를 일곱 교회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 교회들이 성도들이 이 계시록의 경고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는가 계시록은 덮어둬야 할 책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 덮어두라고 기록하라고 있는가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계22:10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 성도 여러분 !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살고 있습니까 세상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입니까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계13:9) 영적 귀가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일곱 번째:계시를 보는 모습이다. 11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 "
하나님은 이제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시면서 책에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책을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셨다. 순서를 다시 살펴보자
1. 본 계시를
2. 책에 써라
3. 보내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막중한 사명을 받은 것이다.
본 것 (내용) 영의 눈이 열린 것이다 무엇을 보았는가 장차 될 일이다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책에 써라 (할 일) 영구 본존 해서 알려야할 내용이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 본 계시는 책에 기록할 정도로 분명한 것이었다 한 개인에게 준 계시가 아니라 이 계시는 영원히 전해져야 할 계시라는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라 (목적, 사명) 보낼 곳이 분명히 있었다. 그 곳은 바로 믿는 자들이 있는 교회였다. 성경책이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책이 아니듯이 계시록 역시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책이 아니라 바로 교회에 주어진 책이고 성도들에게 주어진 책이다
사도 요한에게 임한 계시는 분명한 뜻이 있었다. 요한은 그 고난의 밧모섬에서 내일 아침에 자신이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런 상항이었는데 주님은 그런 요한 에게 지금 사명을 주고 계신다.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내일이 올지 어려운 상항일때가 있지만 주님에게는 그 때가 바로 시작이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사도 요한이 보았던 계시를 지금 보고 있다. 책에 기록되어져서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 우리도 이 계시를 볼 줄 알아야만 한다 사도 요한은 본 대로 기록했다. 우리 또한 계시록에 기록된 책을 제대로 보아야 만 한다. 잘못 보면 안된다. 잘못 보면 안보는 것만 못한다 인위적인 해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성경이 가는데 까지만 가는 것이다. 성경이 뒷받침 해주지 못하는 이론은 인간의 학설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고 아니고 말씀도 아닐 것이다 계시록 어디에 환난 전에 휴거가 있다는 말이 어디 기록되어 있는가 계시록 4장 이후에 어디 교회가 휴거 되었는가 여기에 대한 것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중 한가지만 살펴보자.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 계시록 22장 끝장에서 주님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 사도 요한 일곱 교회에 보내라 했다. 그리고 그 보낸 계시를 2장에서 주님이 다시 말씀하고 있다. 계시록은 감추어져 있는 책이다. 아직 이 비밀이 열리지 않은 책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조심스럽게 이 말씀을 보아야 할 것이고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 계시록이 여러분들 영적 눈에 보인다면 이제 우리도 요한 처럼 기록해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록한다는 것은 계시록을 다시 기록하라는게 아니고 기록하듯이 잘 배우라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앞으로 이 땅에 되어질 일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잘 믿기만 하면 되지 무슨 종말론이냐 ! " 목사님들 입에서도 이런 말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그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잘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보세요 알고 믿는 자와 모르고 믿는 자의 신앙은 시작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겠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두 부류의 신앙은 엄청난 거리가 생기고 말 것이다. 믿기만 잘하면 된다고 교회가 가르쳐서는 안된다 어떻게 믿을 것인가 확실하게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지금이 어느때 라는 것을 귀가 아프도록 들려주어야만 한다 양은 귀에 물이 들어가면 죽은다 양을 죽일 때도 귀에 물을 넣어서 죽인다 양들인 성도들의 귀에 세상의 타락한 물이 들어가면 죽은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귀에 세상 물이 틈 못 타도록 오직 예수를 외쳐주어야 하고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을 자주 들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교회에 자주 나와야만 사는 것이다 교회를 멀리하고 신앙이 뜨거워진다면 기적일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이 때가 마지막 때라는 것이 보이고 계시록에 기록된 계시가 보인다면 장차 될 일을 우리는 배워서 알고 있어야만 한다. 살전 5장에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겠다고 했다 말씀을 알 때 깨어있는 자가 될 수 있고 배울 때 깨어있는 자가 될 수있다 계시록이 보이고 계시록을 배웠다면 이제 우리는 나만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요한에게 본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보고 알았다면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만 한다 계시록은 덮어둬야 할 책이 아니다 원수 마귀가 제일 싫어할 책이 바로 계시록이다 또 가장 많이 이 책을 사탄이 말씀을 가감해서 이용하고 있다 계시록을 가감한자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주님이 못을 박고 계신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그러므로 우리는 잘 보아서, 또 잘 배워서 바르게 전해야만 한다 계시록에 7복이 나오는데 첫 번째 복이 계 1:3절 말씀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때는 마지막 때이다 우리는 더욱 이제 이 말씀을 선포해야만 한다 너무나 급히 역사의 종말을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며칠 전 뉴스에도 이 지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뜨겁게 달아올라지고 있다고 했다. 여러분 동그란 쇳덩어리를 생각하면될 것이다 동그란 쇳덩어리를 불에 올려놓으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듯이 이 지구가 지금 그런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엘리뇨 현상 나라마다 심각하다 올 여름은 아마 대 홍수와 가뭄이 속출할 것이다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 잘 믿어야만 이 마지막 대환난을 통과해서 휴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해야 한다 이 시대를 보라 ! 어디 믿는 자가 믿는 자 다운 모습이 있는가 열심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우리가 솔직해져 보자! 주님의 한탄이 들려온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눅18:8) 성도 여러분 ! 제대로 보고 ! 제대로 배워서 제대로 전하자! 모두 그러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 7가지 모습을 우리는 이제껏 살펴보았다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1. 고난 당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힘을 주고있는 모습.
2. 예수 때문에 엄청난 환난 밧모섬에서 당하는 모습.
3. 그 고난은 하나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당한 모습.
4.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는 모습.
5. 성령님에 감동된 모습.
6. 영위 귀가 열리는 모습.
7. 영의 눈이 열리는 모습.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모습이다. 이 7가지 모습 중에서 여러분 몇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까 2가지입니까 3가지입니까 우리는 요한처럼 7가지 모습을 다 지녀야만 한다 이 7가지 모습이 없다면 우리는 마지막 때 계시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고난 당하는 형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 두려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나에게 오는 고난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된다 성령님 충만 받아야 만이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주님은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도적같이 오시겠다고 하셨다 이 시대에 모두 다 평안한 삶을 살기만 원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려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사도 요한은 90세의 노구의 몸으로 숨도 쉬기 힘든 상황에서 그 주의 날을 적당히 보낼 수 없었다. 뼈만 남은 무릎으로 요한은 바위에 무릎을 끓고 주님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신세를 보고 우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주님의 은혜를 주신 그 감사함에 요한은 울고 있었다. 바로 그 날에 하늘 문이 열린 것이다. 하늘의 계시를 받은 요한의 모습 우리 또한 가져야 할 때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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