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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본 받는 자 되고 (엡5:1-2)

본문

사람은 누구를 바라보고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방향이 달라지게 되고 누구를 본 받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모습이 달라지게 됩니다. 어느 목사가 새로운 교회에 부임을 하여 첫설교를 하려고 할 때 강대상 위에 종이 쪽지가 올려져 있어서 급한 광고인줄로 알고 읽어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는 목사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목사님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두고 두고 이 말씀을 생각하며 좌우명을 목회를 하여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즉 목사가 교인들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 되게 살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또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도들 앞에서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하고 모든 성도들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서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본 받고, 예수님을 닮게 산 사람을 말하라면 여러 명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 사도바울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신앙의 목표가 “하나님을 본 받는 것이었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본 받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말은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을 보여주셨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 받는 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본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을 본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떠나 사는 것이 하나님을 본 받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는 것은 죄를 모르시기 때문이며, 인간이 범하는 죄 그 자체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죄를 범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최초로 범한 아담과 하와의 죄를 보십시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서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되리라”는 사단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세상 편한 대로 자기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 죄 이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를 우리는 미워해야 하고 이 죄에서 멀리 떠나 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하시기를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자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주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기고 죄를 범하면 자손 삼 사대에 이르기까지 저주를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만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살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죄를 범했습니다.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께서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자들에게 자손 수천 대에 복을 주시기로 약속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들이 죄를 이기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죄를 범하지 말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서기 300년경에 기독교가 콘슨탄티 황제에 의하여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때 이제 교회에 대한 핍박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교회가 정치와 야합을 하고 교인들인 사치와 허영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생겨난 것이 바로 수도원 운동입니다. 수도원 운동이란 경건한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 속이나 광야로 들어가 수도원을 세우면 고행을 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신앙 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수도원 운동이 생겨났습니까 교회가 타락하고 성도들이 죄에 물들어 살아가니까 죄를 멀리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수도원 운동입니다. 수도승 중에 기둥의 성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깊은 산에 들어가서 자신의 발을 쇠줄로 묶고 살았는데 이것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높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제자들이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하면서 30년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수도원 운동이 잘된 신앙의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죄를 이기고 살기를 원하시고 이 세상에 살면서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 깊은 산 속에서 기도원을 세우고 거룩하게 기도만 하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죄를 미워하고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고행을 하면서 신앙을 지킨 수도원 운동의 신앙도 대단히 귀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적당하게 살고 죄를 물 마시듯이 사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미워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죄를 범할 때마다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을 본 받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죄는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십시오 과거에 지은 모든 죄가 세월이 흘러서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구약시대에 전해져 오는 전설입니다. 쌍둥이 자매가 있는데 언니는 음행이 심하고 행실이 나쁜 여인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기 부인을 의심하고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시험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민5:11-31에서 보면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으나 증거는 없고 남편은 의심하고 있을 때에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고 제사장은 거룩한 물에 성막 바닥의 흙을 타고 물을 자기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시켜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사람과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 지라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여인으로 그 물을 마시게 해서 죄를 범했으며 그대로 되고 죄를 범하지 않았으면 그 저주가 그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언니가 남편에 의해 성막으로 가서 그 저주의 물을 마시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안 동생은 자신들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 이니까 언니와 자신을 형부 몰래 바꿔치기를 하였습니다. 동생은 제사장에게 가서 그 저주의 물을 마셨지만 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이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남편만 공연히 의심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생이 집에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본 언니는 동생이 고마워서 동생에게 감사의 키스를 하였습니다. 이 때 동생의 입에 묻어 있던 저주의 쓴 물이 언니의 입에 묻게 되었고 언니는 그 즉시로 창자가 썩고 넓적다리가 썩어져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죄는 숨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하고 죄를 미워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시기를 기원합니다.
2. 하나님을 본 받으라는 말씀은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본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3:16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엡5:2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버려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죤 알브레히트 성공회 신부는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가 기네스 북에 오른 이유는 가장 짧은 설교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의 미시간주 레이크 오리온에 있는 그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 위하여 강대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 한마디의 설교를 하고 조용히 자리에 돌아와 앉았습니다. 그날 그의 설교는 사랑 한 단어였습니다. 교인들은 처음에는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그의 설교에서 역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도들 마음에 사랑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예배에 참석한 성도 중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오늘 신부님의 설교는 가장 준비를 많이 하신 설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까지 죽게 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날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은 큰 은혜를 받고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 원수 되어 죄인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본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사람을 미워합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사람을 미워하는 죄를 범하지 말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지만 미움이 잘 가시지 않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과 대화가 끊기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하여 나쁜 감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에 대하여 악평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원수까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스데반처럼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처럼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사형의 자리에서 구하고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서 함께 살고 학교를 보내주었던 그 사랑의 용기, 사랑의 은사를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본 받는 삶입니다.
3. 용서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본 받는 것입니다.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가 용서하지 못하고 원수가 되어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라고 말하고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는 이미 감정에 무서운 암덩이를 품고 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서로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용서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00만 명의 젊은이들이 가출을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하루에 수십 명씩의 어린 청소년들이 집을 떠난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출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자기들이 작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부모가 용서해 주지 않고 혼낼까 두려워서 집을 나간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어느 아버지가 작은 잘못으로 가출한 아들을 찾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파코에게 지난 날의 모든 것을 용서하마 내일 정오에 신문사 사무실에서 만나자꾸나. 파코를 사랑하는 아빠로부터” 짧은 내용의 광고였습니다. 그 다음날 아버지고 신문사로 나가 보았더니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800여명이 모여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아버지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고 잘못을 저지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잘못을 깨닫고 인정할 때 용서를 해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의인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죄인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다만 우리는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성도입니다. 우리들이 죄가 하나도 없고 완전한 사람이라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지을 때 몇 번이나 용서를 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만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것입니다.
4.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본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성품을 본 받는 자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200만 대군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칼을 들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모두 홍해에 빠져 죽거나 애굽의 군사의 손에 죽게 되었다고 절망을 하여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모세만이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실 것을 믿는 모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믿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 받는 것이고 이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막9:23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하나님을 본 받은 성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큰 사람을 깨닫고 본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용서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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