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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도리 (엡6:1-4)

본문

5월의 하늘은 맑습니다. 산과 들에는 온통 생명의 신비를 뽑내고 삶에 지친 사람들을 부르는듯 합니다. 5월은 그래서 가정의 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8일이 어버이 날이지만 오늘은 한국교회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해마다 이날이 돌아오면 교회 마다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도리에 관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전하고 있습니다. 금년 2월10일 전북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한 식당에 80대 시어머니와 50대의 며느리가 우족탕을 한 그릇씩 놓고 마주 않았습니다. 80대 시어머니는 고깃국을 맞잇게 먹고 있었지만, 며느리는 목이 메었습니다. 이유는 시어머니를 고려장할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둘이서 식사가 끝난 후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다방에 데려다 놓은뒤 부안 경찰서에 버려진 노인이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는 경찰이 시어머니를 데려가는 것을 다방 한 귀퉁이에서 지켜본후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며느리는 택시운전을 하는 남편과 남편의 계모인 아들, 딸과 함께 17평짜리 아파트에서 궁색하나마 그럭저럭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61세된 남편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후 부터는 병세가 악화되어 대소변도 못가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은 살림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계모인 시어머니는 양로원에 보내달라고 며느리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집을 떠나는 것이 집안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느리와 아들은 허락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나를 고향집에 버려달라 그러면 누군가 돌봐줄 것이 아니냐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남편과 상의 끝에 시어머니를 고향인 부안에 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부안군청으로 넘겨진 시어머니는 한 달동안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군청측의 충궁에 견디지 못해 전후사정을 모두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부안군청의 통보를 받은 서울 강남경찰서는 며느리를 존속유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며느리는 경찰서에서 죄책감때문에 잠을 못이뤘는데 차라리 잘됐다 하며 흐느꼈습니다. 가난한 아들 부부에게 짐이 될까봐 스스로 고려장을 자청했던 시어머니는 결국 며느리를 존속유기혐의로 구속시키고 말았습니다. 나를 버려놓고 경찰에 열락하면 어디 양로원에라도 보낼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그러나 세상은 며느리를 현대판 고려장을 했다고 지탄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강남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습니다. 이곳은 하루에도 수백대의 버스가 지방을 오가기 때문에 대합실이 무척 혼잡합니다.
그런데 이 대합실에 종종 나이 많은 어른들이 버려지곤 한다고 합니다. 버려진 어느 노인의 말씀이 자식들이 터미널에 모시고 와서는 노인들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자기들만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버린 자식이 그래도 낯간지러운 체면은 있어서 신원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부모의 주민등록은 가지고 가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노인도 자식들에 관하여는緘口無言(함구무언)이었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집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고 자식으로부터 외지에서 버려지면서도 그 못난 자식을 감싸시려는 부모의 심정을 자식들이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나를 버린 내 자식, 이렇게 패역한 놈이누구요"라고 밝히려 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식들의 체면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버려진 노인들은 잠실의 롯데 월드에서도, 꽃동내, 유원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지만 효도관광인가 하는 명목으로 노인들을 제주도로 여행을 보내드리고는 그 사이 자기들은 부모 몰래, 찾을 수 도 없게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세상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효도하기를 바라고 그리고 효도를 받을 권리가 부모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불효하는 것을 떠나서 부모를 버리고 구타하고 죽이는 불효자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을 그들이 부모를 모시고 살기를 싫어하여 버리는 이 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충북 음성과 증평 사이에 도안역이 있는데, 이 도안역을 지나면 길모퉁이에 삼형제 무덤이 있습니다. 이 곳에 사는 아들 삼형제가 6.25때 피난을 가는데, 그 떠나는 아들들을 보고 어머니가 "나도 데리고 가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아들들은 늙은이가 살면 며칠이나 더 살겠느냐고 하며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못가서 폭격에 맞아 삼형제가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삼형제 무덤이 생겨났습니다. 요즘은 옛날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정말 효도를 받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시신앞에서 많이 울고 통곡하는 자는 불효하는 정도에 따라서 소리가 크고 그리고 슬피 운다고 합니다. 또한 불효자 일수록 제사상을 잘 차리려고 한답니다. 이것은 마치 비만 오려고 하면 소리높혀 울어대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옛날에는 그래도 자식들이 부모를 어려워하고 공경할 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옛날에는 모든 지식이 부모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와 기술의 습득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했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부모로부터 토지를 물려 받아야 살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머슴 살이를 해도 제 힘으로는 밭 몇 뙈기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었습니다. 또한 명예와 신분도 부모의 것을 그대로 물려 받았습니다. 양반 자식은 양반 자식으로, 상인 자식은 상인 자식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니 옛날에는 효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즉, 부모가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모를 떠나면 당장 생활의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서 쫓겨나면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다릅니다. 모든 것을 사회와 학교에서 자신이 노력으로 얻기 때문에 옛날처럼 부모 덕을 볼 일이 없고, 그래서 인지 자식들이 효도하기를 싥어합니다. 요즘 젊은이들 어떻습니까 집을 떠나야만 자유로울 것 같다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부모의 체면을 보아서 당분간 같이 살아 준다는 패역한 자식마저 생기는 세상입니다. 요즘 나이많은 어른들이 곧잘 하시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더라도 돈을 많이가지고 있어야 효도를 받는다." 라는 말들을 합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그런 효도라면 받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순수한 효의 개념, 그 자체가 타락했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세속적인 개념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효 라고하는 것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물은 어미가 새끼 때만 사랑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조금 크면 물어버립니다. 새끼도 자기 필요할 때에는 에미를 따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크면 떠나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동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부모에게는 언제나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육십이넘은 아들을 출근시키면서도 '길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하십니다. 결국 인간의 인간됨이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를 공경하고, 또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높이 더 깊이 사랑하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 옳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옳다', '당연하다',"즉 옳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일, 마땅한 일을 말합니다. 효는 선행도 공로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효라고 하는 것은 마땅한 선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안하면 인간이 못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 날이 되면 각 기관이나 단체에서 효의 본이 되는 사람들을 뽑아서 효행상을 주곤합니다. 물론 좋은 행사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효행상을 받는 사람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효'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벌 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효를 하는데는 그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무슨 큰 일이나하는 것처럼, 무슨 굉장한 선행이나 한 것처럼 효도를 생각하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효는 말이 없습니다. 효자는 내가 효자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효는 주는 사랑이 아니고 받은 사랑에 대한 마땅한 태도일 뿐입니다. 성경은 가르칩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신앙적 차원에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느 조건이나 혹은 어느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 있는 것이고, 그 속에 깊은 사랑이 있고,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당연히 부모님에게 더욱 효도해야 합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에 어떤 사람이 오두막집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소녀 하나가 추위에 덜덜 떨며 문 밖에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어린 소녀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가 나를 때리며 나가라고 내어 쫓아서 지금 문 밖에 서 있습니다" 하더랍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아버지께서 잠드신 다음에 들어 가려고 해요." 어린 아이는 아버지 잠든 다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고 새벽 일찌기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해 가지고 아버지 방에 들어갔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감짝 놀랐습니다. "내가 때려서 내쫓았는데 너는 왜 오늘 집에 들어 왔으며 또 아침 상을 차려서 가지고 오는거냐 이 못난 아버지가 밉지도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하더랍니다. 어째서일까요 이 소녀의 말은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세상 떠날 때에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기만 하면 저 모양이 된다마는 본심은 착한 사람이다. 언젠가는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런고로 너도 아버지를 사랑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참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회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효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는 더욱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현대인은 이기적이고, 실리적이지만 그러나 효는 이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초월하여 실리와 무관한 것이 효도입니다.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다만 받은 마음에서 감사하는 행위가 효도입니다. 내가 효도할 만한 분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즉 부모를 가려서 효도하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본문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경이란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공경은 상대방을 높이는 마음을 공경이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노인은 공경과 존경의 대상이지 노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효란 존경이 앞서야 합니다. 높이는 마음, 존경과 순종을 겸한 사랑이 공경입니다. 우리는 어른들의 지혜를 높여야 합니다. 그들은 깊은 지혜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상과 현실이 있습니다마는 과거가 없습니다. 화려한 꽃은 있지만 그것을 지탱할 만한 뿌리가 없습니다.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그 평생을 통해서 많은 눈물과 또 많은 희생과 뼈아픈 고통을 통해서 얻어진 높은 경험과 그를 통한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지혜를 들어야 하고 그 지혜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듣기 싥은 잔소리로 들어서는 않됩니다. 이 귀한 지혜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노인은 노련한 선장처럼 우리에게 귀중한 지혜를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이들 생각에는 나만 가진 고통이요 나만 가진 눈물이라고 울부짖지만 어른들에게 물어보십시요, 일찌기 그같은 체험을 다 겪어 왔습니다. 왜 내가 귀담아 듣지 않고 똑같은 체험을 또 해야 하고, 어리석은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지혜자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결과입니다. 노인들의 지혜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늙으신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한 없이 주고 또 주고 그러고도 아쉬워합니다. 부모는 언제나 선합니다 적어도 자식에게 행한 마음만은 선한 것입니다. 이 정신을 자식들은 높이 높이 존경해야 합니다. 혹 그 방법이 자식으로서는 마음에 안든다 할지라도 그 중심은 여전히 귀한 것입니다. 옛날 우리 나라에 못된 법 중에 '高麗葬'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나이 많아지면 깊은 산 속에 내다 버리고 오는 것입니다. 어느날 고려장을 지내려고 어머니를 지게에 걸머지고 산 속으로 올라가는데 어머니는 굵은 실타레를 쥐고 계시더니 그것을 가는 길에 계속 풀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하도 궁금하여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그 실타레는 자꾸 풀어 놓습니까" 어머니는 "산이 너무 깊어서 네가 돌아갈 길을 잃어 버릴까봐 돌아 갈 때는 이것을 좇아 찾아가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 아들은 당장 돌이켜 뉘우치고 어머니를 다시 업고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요, 나 자신은 이 세상을 이렇게 떠나도 자식만은 영원히 바로 되기를 바라고 그 미래를 염려하는 그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를 축복하시지 부모에게 불효하고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에게는 절대로 축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효도하세요. 성경은 증거하기를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대로 거둡니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심으면 자식에게 효도를 거두게 되고 불효를 심으면 불효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효도하는 가정에서만이 자녀들이 바르게 잘아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가정 교육이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효도할 때에 자녀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고구려때 늙어서 쓸모없는 70먹은 노모을 지게에 지고 고려장을 지내려가는데 아들이 같이 따라갔습니다. 아버지는 늙은 노모를 고려장을 하고 지개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뒤에 아들이 버린 지게를 지고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왜 지게를 지고오냐고 물으니 아들이 하는 말이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고려장을 지내려고 가지고 온다고 하는 말에 죄책감을 느끼고 고려장한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가서 잘 봉양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한 것을 본 자녀는 그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 그자녀도 불효를 할 것은 자명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11일 오전 청와대 접견실에서 성균관이 제정한 제 1회 오늘의 제가상 효도부분 특별상을 성균관 관장으로부터 국가원수인 김영삼 대통령이 받았습니다. 성균관 최관장은 김대통령에게 효는 만가지 행의 근원인데 대통령께서 좋은 본을 보이셨고 특히 민주화 투쟁에 헌신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어버이에 대한 돈독한 효성을 다했고 국가원수의 영광된 보람을 가문에 안겨주었으며 변함없는 효심으로 집안과 나라를 다스려 백성에 본이 됨으로 칭송한다고 하면서 부상 2백만원과 나전칠기로 수놓은 상장을 수여했습니다. 물론 우리 역시 김영삼 대통령이 아직 생존하시고 교회 장로님으로 계시는 아버님께 매일 아침 문안 전화를 드리고 있는것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효도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고의 윤리요 도덕입니다. 그리고 효도는 당연히 하아여 할 인간의 본분입니다. 우리는 누가 상을 주지 안하여도 해야할 일입니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내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정신을 물려주기원하노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물려 준다는 것, 여기에 진정한 효의 유산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유산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바를 물려 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입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신앙의 유산, 경건의 유산을 물려 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녀들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고, 한 나라와 사회, 나아가 전세계를 바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들 중에서 특히 효를 강조하고 자랑해 왔습니다. 효가 모든 행위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사회 법도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이오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어른들은 효와 신앙을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보이는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직도 효도할 수 있는 부모가 계시는 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효도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분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이 있는 줄 아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유한합니다. 그러기에 수한이 차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도 언젠가는 떠나 가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한 번 가신 부모는 다시 불러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자식이 부모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늘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살아계실 그때에 부모님이 우리의 앞에서 떠나 가시전에 부모에게 효도하여야 합니다. 부모가 계실 때 부모를 섬기지 못하면 부모를 섬길 수 있는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공자는 효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섯가지 형벌의 죄악이 삼천에 이르되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느니라" 이 말을 거꾸로 말하면 효도라는 것은 인간의 근본 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효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직설적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효도가 인간의 근본도리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이 세상에 효도하는 사람보다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효도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순종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효도라는 것이 어떤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인간의 참된 도리입니다. 효도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부모에 대한 관심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망, 부모님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으로부터 효도가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불효를 낳습니다. 여러분! 돈이 있어야 효도하는 줄 아십니까 아니면 생활 환경이 좋아야만 효도하는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부모에 대한 관심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 보면 미칠 것 같이 부모님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부모님을 찾아보게 되고 효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객지나 군에 나가 있는 자식이 부모를 사모할 줄모르고 부모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오늘날 효도 하라고 돈을 가져다주고 효도의 기회를 주어도 절대로 하지 못합니다. 효도는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은 부모 공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부모님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식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은 너무도 부모를 찾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부모님이 생전에 계시는 분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빕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무엇을 맛있게 잡수시는지 부모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셨어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시고 천국에 가실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효도는 무엇입니까 효도란 부모님께 감사하고 순종하고 부모님을 사모하고 부모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에 대한 자식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효도의 사람이 되어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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