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어머니와 같다 (엡4:11-16)
본문
우리들이 받는 은혜가운에 중요한 하나는 교회를 통해 받는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지하고 나태하고 때로는 변덕스럽기 때문에 신앙을 가진 다음에도 그 신앙이 흔들리기 쉬운데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누구의 도움을 끊임없이 받아 야 됩니다. 이 신앙이 자라도록, 그리고 그 신앙이 깊어지고 더 돈독해지도록 계속적인 도움을 받지 않으면 구원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런 도움을 누가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 와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허락하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하기 위함'(엡 4:11)이라 고 했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고 교회를 통하여 온전케 될 것입니다. 요한 칼빈선생은 '교회는 모든 독실한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과연 교회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다 어머니 가 계시거나 또는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근엄하심에 비하여 어머니는 자애로 우셨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모든 일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립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편이 되셔서 모든 것을 용납하고 받아 주십니다. 아버지는 어려우 신 분이시나 어머니는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교인들이 규탄받는 마리아 숭배를 계속하고 있는것도 바로 '어머니상' 그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예수님보다 사람이 심리적으 로 접근하기 쉬운 분은 성모 마리아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성경 원어에도 보 면 '하나님'이나 '주님'은 남성명사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성명사로 쓰 이고 있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교회의 참다운 성격은 오히려 여성적이요 그 사명도 어머니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교회를 당신의 신부라고 비유로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은 더 구 체적으로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다고 말씀하 였습니다.(엡 5:32)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독실한 신자들의 어머니이십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생각할 때 어머니처럼 생각하시고 또 어머님을 뵈옵는 심정 으로 교회를 향해 나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같은 교회'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교회없이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2) 교회에도 잘못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
3) 그리고 왜 교회는 어머니 같은가
첫째로 교회없이도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교회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교회의 어떤 제 도나 규율같은 것에 염증을 느껴 순수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신앙을 가져보 자는 의도로 출발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성경대로 믿는 신앙은 아닙니다. 그 분들은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뿐, 자기들이 모이는 집회소를 가집니다. 또 그들은 목사나 설교자라고 부르 지않을 뿐 실제로는 지도자와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것도 형 태를 달리한 하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신자들은 교회없이 신앙을 가질 수 없고 또 신앙을 가진다고 하여도 그 신앙이 유지되고 돈독해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어머니 없는 자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버지 없는 편모 슬하의 어린이 들은 그래도 좀 낫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는 경우, 국민학교 정도의 어린 이들이 그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심히 불쌍하고 눈 물겨운 처지가 아닐수 없습니다. 교회없는 신자는 영적으로 부모가 없는 고 아입니다. 그들은 마치 어머니 없는 소녀 가장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초대 교부 인 싸이프리안은 '네가 교회를 네 어머니로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네 아버 지로 섬길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하여 더욱 더 어머니와 같은 친근감과 사랑을 갖게되시 기를 바랍니다. 생각과 관념으로 끝나는 신앙이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 앙은 이론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신앙이 고작 그것 뿐이라면 그것은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을 교회를 통하여 이 루어 나갑니다. 우리에게 심오한 사상이나 철학이 없어도 좋습니다. 자녀가 어머니를 만날 때처럼 즐겁고 흐믓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교회는 그 구실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 고 섬깁시다. 만일 교회가 필요치 않다면 왜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생겼을까요 그리고 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겠습니까 만일 교회없이도 신앙 을 가질 수 있다면 왜 예수님은 내 교회를 너의 신앙위에 세운다고 하셨으며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겠습니까 교회없이는 구원받는 길 이 없습니다. 교회의 도움없이는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이 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각각 다른 직분을 주셔서 어떤 사람 은 예언자, 어떤 사람은 전도자, 어떤 사람은 목사, 또 어떤 사람은 교사가 되 게 하셨다고 말씀앴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 하게 하여 봉사하는 일을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자라게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4:11-12)라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러면 교회안에도 잘못이 있는데 이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두가지 반 응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교회안에는 잘못이나 실수가 절대로 있어서는 않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교회도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 실수나 결점이 있지 않겠느냐고 매우 관용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교회관의 치이로 말미암아 사실은 많은 교파들이 생겼습니다. 교회의 완전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인간의 약한면을 간과한 소치이며, 관 용주의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세속적인 기구와 무엇이 다른가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들은 올바르게 해 온 것도 많지만 무지와 오류를 범한 것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무지와 오류들은, 너 무 완전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범한 것도 있었고 또한 너무 관용주의를 취 하였기 때문애 때문에 범한 것도 많습니다. 어거스틴은 교회에는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가 있는데 지상교회는 천 상교회의 모형이요 모조품과 같다고 했습니다. 천상교회는 완전한 교회일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모형인 지상의 교회들은 완전을 위하여 나가는 과정인 것 입니다. 우리가 잘된 곡식가운데 유독 솟아난 가라지를 보면 그것은 곧 사람 의 눈에 띕니다. 교회가 범하는 실수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순수한 마음과 선한 동기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게 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은 그 가라지 하나때문에 신앙에 타격을 받고 심지어는 교회를 등지게 되고 마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가라지는 누가 뿌렸습니까 가라지라는 것은 결코 농부 가 뿌린 것이 아닙니다. 농부들은 결코 가라지를 뿌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날 아 왔던지 묻어 왔던지.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로 밭에 들어와서 알곡을 손 상시킨 것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원수가 그렇게 하였다'라고 대 답합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손상시키고 그 힘을 약화시키 려는 원수의 술책이니 성도들은 그럴수록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비유 가운데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 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 13:47-)하셨는데 세상끝에 가서야 좋은 것과 못된 것이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에 의하여 완전히 구별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에는 모순 부조리 실수 타락. 그같은 것들이 많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옷깃을 여미고 근신하며 교회를 지키는 자세, 교회를 아끼고 건지려는 심정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밭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알곡이 더 많습니다. 어부들은 나쁜 것 보다 좋은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믈을 내리는 것입니다. 엘리야선지 당시의 온 이스라엘은 다 우상화되고 말았습니다. 아합과 이 세벨의 박해와 탄압으로 선지자는 모두 학살당하고 제단은 훼파되고 백성들 은 모두 바알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던 엘리야는 그만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자기는 이제 더 이상 버틸 힘도 용기도 없다고 하면서 죽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처럼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다 없 어지고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같은 그러한 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 엘리야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엘리야는 자기 혼자인 줄 알았는데 바 알신에게 무릎꿇지 않은 동지들이 무려 7천명이나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따로 숨겨놓은' 거룩한 무리들인 것입니다. 이 숨겨 놓 은 7천명이 교회의 숨은 힘이요 저력입니다. 다 잘못되고 다 썩어 빠져 무너 져 내릴 것같은 위기를 당한다고 해도 교회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7천명이 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따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교회를 지켜 주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시 46:5)고 노래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과 같이 요동치 아니하며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것을 믿는다면 교회를 떠날수가 없습니다. 떠나서는 않됩니다. 교회를 등지면 어머니를 등지는 것이요 교회에 침을 뱉으면 어머니 얼굴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평생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 의 품을 떠나서는 사죄나 구원을 바랄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중에 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등록이 될 것 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미래의 하나님의 교회를 상상하면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는 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외에 다른 민족도 그에게 불러 모으신다.'(사 56:8) 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 뿐만아니라 다른 민족까지도 그의 교회에 불러 모으신다 고 하였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이유로도 교회를 떠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왜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난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양육하고 기르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난 자요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복음이 나를 낳 아 주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낳고, 영으로 낳아서 성도가 됐습니다. 성서는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였으며, 성도 하나를 낳는 수고와 고생은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낳은 자녀를 만일 기르지 않는다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머니의 고생과 수고는 낳으실 뿐만 아니라 기르셨다는 수고가 더욱 장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어머니라는 것은 교회는 성도를 먹이고 양육하여 길러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그들에게 과연 신령한 젖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품안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불러모아 어린 신자들을 양육하시고 또 그들 이 성숙한 신자가 되어 신앙의 목표에 다달을 때까지 모성애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단시일 내에 크게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안에서 교육을 통해서 그들을 길러내어 조금씩 조금씩 성인의 단계 에 이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신앙을 불어 넣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복음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나 그것은 복음을 설교하는 목사들의 입을 통하 여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도들을 양육하고 성장케하여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게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른다.'(엡 4:13-)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가 온전케 되도록 끊임없 이 먹이고 키우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영의 양식을 거부하면 굶주 림과 빈핍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구약시대로부터 교회를 성소, 안식처, 혹은 성막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 의 말씀이 선포되고 영의 양식으로 먹이는 곳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으며 교회는 그러한 배경과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기서 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신령한 영의 양식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어머니 같은 교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늘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는 어머니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를 더욱 사랑하시며 존중히 생각하는 가운데 영적인 성장을 계속 이루어 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성명사로 쓰 이고 있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교회의 참다운 성격은 오히려 여성적이요 그 사명도 어머니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교회를 당신의 신부라고 비유로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은 더 구 체적으로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다고 말씀하 였습니다.(엡 5:32)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독실한 신자들의 어머니이십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생각할 때 어머니처럼 생각하시고 또 어머님을 뵈옵는 심정 으로 교회를 향해 나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같은 교회'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교회없이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2) 교회에도 잘못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
3) 그리고 왜 교회는 어머니 같은가
첫째로 교회없이도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교회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교회의 어떤 제 도나 규율같은 것에 염증을 느껴 순수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신앙을 가져보 자는 의도로 출발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성경대로 믿는 신앙은 아닙니다. 그 분들은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뿐, 자기들이 모이는 집회소를 가집니다. 또 그들은 목사나 설교자라고 부르 지않을 뿐 실제로는 지도자와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것도 형 태를 달리한 하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신자들은 교회없이 신앙을 가질 수 없고 또 신앙을 가진다고 하여도 그 신앙이 유지되고 돈독해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어머니 없는 자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버지 없는 편모 슬하의 어린이 들은 그래도 좀 낫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는 경우, 국민학교 정도의 어린 이들이 그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심히 불쌍하고 눈 물겨운 처지가 아닐수 없습니다. 교회없는 신자는 영적으로 부모가 없는 고 아입니다. 그들은 마치 어머니 없는 소녀 가장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초대 교부 인 싸이프리안은 '네가 교회를 네 어머니로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네 아버 지로 섬길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하여 더욱 더 어머니와 같은 친근감과 사랑을 갖게되시 기를 바랍니다. 생각과 관념으로 끝나는 신앙이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 앙은 이론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신앙이 고작 그것 뿐이라면 그것은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을 교회를 통하여 이 루어 나갑니다. 우리에게 심오한 사상이나 철학이 없어도 좋습니다. 자녀가 어머니를 만날 때처럼 즐겁고 흐믓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교회는 그 구실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 고 섬깁시다. 만일 교회가 필요치 않다면 왜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생겼을까요 그리고 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겠습니까 만일 교회없이도 신앙 을 가질 수 있다면 왜 예수님은 내 교회를 너의 신앙위에 세운다고 하셨으며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겠습니까 교회없이는 구원받는 길 이 없습니다. 교회의 도움없이는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이 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각각 다른 직분을 주셔서 어떤 사람 은 예언자, 어떤 사람은 전도자, 어떤 사람은 목사, 또 어떤 사람은 교사가 되 게 하셨다고 말씀앴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 하게 하여 봉사하는 일을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자라게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4:11-12)라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러면 교회안에도 잘못이 있는데 이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두가지 반 응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교회안에는 잘못이나 실수가 절대로 있어서는 않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교회도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 실수나 결점이 있지 않겠느냐고 매우 관용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교회관의 치이로 말미암아 사실은 많은 교파들이 생겼습니다. 교회의 완전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인간의 약한면을 간과한 소치이며, 관 용주의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세속적인 기구와 무엇이 다른가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들은 올바르게 해 온 것도 많지만 무지와 오류를 범한 것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무지와 오류들은, 너 무 완전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범한 것도 있었고 또한 너무 관용주의를 취 하였기 때문애 때문에 범한 것도 많습니다. 어거스틴은 교회에는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가 있는데 지상교회는 천 상교회의 모형이요 모조품과 같다고 했습니다. 천상교회는 완전한 교회일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모형인 지상의 교회들은 완전을 위하여 나가는 과정인 것 입니다. 우리가 잘된 곡식가운데 유독 솟아난 가라지를 보면 그것은 곧 사람 의 눈에 띕니다. 교회가 범하는 실수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순수한 마음과 선한 동기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게 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은 그 가라지 하나때문에 신앙에 타격을 받고 심지어는 교회를 등지게 되고 마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가라지는 누가 뿌렸습니까 가라지라는 것은 결코 농부 가 뿌린 것이 아닙니다. 농부들은 결코 가라지를 뿌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날 아 왔던지 묻어 왔던지.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로 밭에 들어와서 알곡을 손 상시킨 것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원수가 그렇게 하였다'라고 대 답합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손상시키고 그 힘을 약화시키 려는 원수의 술책이니 성도들은 그럴수록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비유 가운데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 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 13:47-)하셨는데 세상끝에 가서야 좋은 것과 못된 것이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에 의하여 완전히 구별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에는 모순 부조리 실수 타락. 그같은 것들이 많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옷깃을 여미고 근신하며 교회를 지키는 자세, 교회를 아끼고 건지려는 심정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밭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알곡이 더 많습니다. 어부들은 나쁜 것 보다 좋은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믈을 내리는 것입니다. 엘리야선지 당시의 온 이스라엘은 다 우상화되고 말았습니다. 아합과 이 세벨의 박해와 탄압으로 선지자는 모두 학살당하고 제단은 훼파되고 백성들 은 모두 바알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던 엘리야는 그만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자기는 이제 더 이상 버틸 힘도 용기도 없다고 하면서 죽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처럼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다 없 어지고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같은 그러한 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 엘리야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엘리야는 자기 혼자인 줄 알았는데 바 알신에게 무릎꿇지 않은 동지들이 무려 7천명이나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따로 숨겨놓은' 거룩한 무리들인 것입니다. 이 숨겨 놓 은 7천명이 교회의 숨은 힘이요 저력입니다. 다 잘못되고 다 썩어 빠져 무너 져 내릴 것같은 위기를 당한다고 해도 교회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7천명이 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따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교회를 지켜 주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시 46:5)고 노래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과 같이 요동치 아니하며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것을 믿는다면 교회를 떠날수가 없습니다. 떠나서는 않됩니다. 교회를 등지면 어머니를 등지는 것이요 교회에 침을 뱉으면 어머니 얼굴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평생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 의 품을 떠나서는 사죄나 구원을 바랄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중에 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등록이 될 것 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미래의 하나님의 교회를 상상하면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는 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외에 다른 민족도 그에게 불러 모으신다.'(사 56:8) 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 뿐만아니라 다른 민족까지도 그의 교회에 불러 모으신다 고 하였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이유로도 교회를 떠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왜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난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양육하고 기르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난 자요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복음이 나를 낳 아 주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낳고, 영으로 낳아서 성도가 됐습니다. 성서는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였으며, 성도 하나를 낳는 수고와 고생은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낳은 자녀를 만일 기르지 않는다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머니의 고생과 수고는 낳으실 뿐만 아니라 기르셨다는 수고가 더욱 장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어머니라는 것은 교회는 성도를 먹이고 양육하여 길러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그들에게 과연 신령한 젖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품안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불러모아 어린 신자들을 양육하시고 또 그들 이 성숙한 신자가 되어 신앙의 목표에 다달을 때까지 모성애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단시일 내에 크게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안에서 교육을 통해서 그들을 길러내어 조금씩 조금씩 성인의 단계 에 이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신앙을 불어 넣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복음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나 그것은 복음을 설교하는 목사들의 입을 통하 여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도들을 양육하고 성장케하여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게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른다.'(엡 4:13-)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가 온전케 되도록 끊임없 이 먹이고 키우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영의 양식을 거부하면 굶주 림과 빈핍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구약시대로부터 교회를 성소, 안식처, 혹은 성막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 의 말씀이 선포되고 영의 양식으로 먹이는 곳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으며 교회는 그러한 배경과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기서 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신령한 영의 양식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어머니 같은 교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늘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는 어머니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를 더욱 사랑하시며 존중히 생각하는 가운데 영적인 성장을 계속 이루어 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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