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다운 가정 (2) (엡6:1-4)
본문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정작 행복한 가정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간단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완전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어렵다. 우선 내가 완전하기 못하기 때문에 내 가정도 완전할 수가 없다." 맞는 말입니다. 완전치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늘 문제가 있고, 늘 갈등이 있고, 늘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치 못한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가정은 완전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시 127: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세워 가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지켜 가는 가정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오늘 봉독해 주신 본문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가정을 만들어 가고, 지켜 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줍니다. 지난주에는 본문이 말씀하는 자녀와의 관계, 즉 자녀 교육문제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어버이 주일이기 때문에 이어서 본문이 말씀하는 부모와의 관계, 즉 효도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모 일간지 사회면에 보도된 사건 기사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사 내용을 소개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인천에 사는 민 모씨 부부는 풍을 맞아 하반신을 못쓰게 된 53세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작정을 합니다. 수소문 끝에 강원도 정선에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무료 양로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를 그곳으로 모셔갔다가 어머니가 무의탁 노인이 아니라고 거절당하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원도 영월에 5만원 짜리 월세 방을 얻고 그곳에 어머니를 홀로 두고 도망을 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찾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번호를 두 번씩 바꾸면서 연락을 끊었습니다. 결국 경찰이 나서게 되고, 강원도 영월 경찰서에 구속되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자기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를 버린 것입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병든 어머니,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어머니를 집밖에 내다 버린 것입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인 이규태씨는 이런 세태 풍조를 일컬어 '신 고려장'이라 불렀습니다. 버림받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외로움과 앞으로에 대한 두려움은 그래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배은 망덕 때문에 화를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식이기에 이해해 보려고 몸부림도 쳐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서 이런 꼴을 보는구나 죽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나 때문에 자식이 감옥에 갇히는 구나 생각하며 눈물을 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낳고 기른 자식에게 버림받는 그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바쁘고 분주한 현대 생활에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벅차고 힘에 부칩니다. 자기 앞가림조차 제대로 해 가기가 힘겨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면서 어느덧 우리에게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거추장스런 존재, 부담스런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부모들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마음으로 고려장을 치르고 말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효도란 무엇인가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효도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효도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신명기 5장 16절의 말씀의 인용해서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5장을 보면 모세가 출 20장의 십계명을 보다 자세하게 해설해 놓고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계명과는 달리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에는 다른 계명에는 없는 약속이 붙어있습니다. 신 5:16은 이렇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다시 말씀드려서 다른 계명은 ". 하라"고 말았는데 이 계명만은 "그리하면. 하고 약속이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 계명에만 약속이 붙어있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모 공경이 인륜의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고자 할 때 부모 공경은 최우선되는 도리입니다. 사실 부모 없이는 오늘의 우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나아 주셨고, 길러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 부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땅히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륜의 근본이고, 사람 사는 도리의 뿌리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조차 사랑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부모조차 공경하지 못하면서 누구와 올바른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십계명에서는 인륜을 명할 때 제일 첫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이 계명이 귀하기 때문에 꼭 지키도록 지키는 사람에게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모 공경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신 5장에서는 십계명을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고난 뒤에 신 6:5-6절에 이 말씀을 지키는 자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씀드려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면 마치 하나님께서 공경을 받으시는 것처럼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우리가 부모를 공경치 않고 사랑치 않으면 마치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사랑치 않는 것처럼 괘씸하게 생각하십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효도에 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부모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남는 시간에, 남는 힘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먼저 하고 나중에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도 이런 오해가 있었습니다. 마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5-6절에서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위 고르반 사상입니다.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함에도 하나님을 핑계 대고 이를 게을리 하는 것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8절에서 이런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효도는 단순히 나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답 차원을 넘어갑니다. 효도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께 효도하면 그것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부모님께 효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 주십니다. 결국 효도는 부모님이 받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효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 말씀은 효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줍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대한 효도는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서 시작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모시고, 돈을 많이 드리고, 좋은 음식을 대접해 드려도, 그 말씀을 거역한다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게 됩니다. 반대로 가난해서 제대로 잘 모시지 못한다 해도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한다면 그것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드립니다. 효도는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효도는 아닙니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대개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을 그대로 말씀하시지를 않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고, 자식들에게 폐 끼칠까 봐 그대로 말씀하지 않으실 때가 더 많습니다. 이럴 때 그 마음을 헤아려 드려야 합니다. 벌써 저희 아버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도 8년이 지났습니다. 세상 떠나시기 전에 간암으로 석 달간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할 수 있으면 매일 찾아가 뵈었습니다.
그런데 갈 때마다 야단을 치시는 것입니다. 목사가 바쁠 텐데 왜 매일 오느냐고 야단이셨습니다. 내가 보고 싶으면 전화할 테니까 그때나 오라 시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하루종일 짬을 낼 수도 없고, 교회 일이 밤 열시 나 되야 대개 마무리가 되기 때문에 집도 멀고 그래서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님께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주일이지 박 목사가 오늘은 못 오겠구먼." 아버님이 오지 말라는 말씀은 아버님의 본 마음은 아닙니다. 자식을 생각해서 자식을 위해서 하신 말씀일 뿐입니다. 효도는 부모님의 참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겉으로 하신 말씀을 형식적으로 따르는 것 그것이 순종이 아닙니다.
둘째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보다 자세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93년 1월 가평에서 한 할머니가 자살한 일이 지상에 보도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마을에서 효자로 알려진 아들과 함께 인생의 말년을 남들이 볼 때는 행복하게 사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자살을 한 것입니다. 자살 동기는 이렇습니다. 할머니가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툇마루에서 며느리와 손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엄마 나도 독방을 줘. 다른 친구들은 다 자기 방을 자지고 있는데 나만. 나도 이제 커서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게 불편하단 말이야. 그때 며느리가 답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 돌아가시면 독방 줄께. 할머니는 며느리가 나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구나 하고 노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잘한다고 하지만 이미 자기는 가족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 부양의 대상이요, 부담스런 존재요, 거추장스런 존재라고 생각됐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 빨리 죽어 줬으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견디기 어려웠고 그래서 농약을 마시게 됐습니다. 공자는 효도를 가르치면서 '견마지양'식의 효도를 잘못이라고 꾸짖었습니다. 견마지양이란 부모를 대하되 개나 말을 치는 것처럼 그저 먹을 것을 드리고, 필요한 것 사드리고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을 모실 때 마음이 따라야 합니다. 부모님을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해 드려야 합니다. 좋은 음식 드리고, 좋은 옷을 해 드리면서 돌아가시기를 학수고대한다든지,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 다루듯이 해서는 않됩니다. 부모님을 마음으로 존중해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늘 부모님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노인들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고독이랍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 노인들의 75%가 고독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노인들의 고독을 "빗살이 다 빠진 머리 빗"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멀쩡하던 빗이 하나씩 둘씩 빗살이 잘려져 나가서 이제 껍데기만 남은 빗살 없는 빗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친구도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할 일도 점점 없어지고, 돈도 없어지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어지고, 미래도, 희망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내 곁을 떠나고 있다고 느끼는 마음, 홀로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는 마음, 이것이 바로 노인의 고독입니다. 부모님을 고독하게 해 드려서는 않됩니다. 자주 전화 드리고, 자주 찾아가 뵙고, 늘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또 하나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1/10만 해도 큰 효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건강을 지켜달라고, 남은 여생이 복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더 중요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 믿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것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의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이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께서 예수믿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은 효도가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들 때문에 속썩지 않는 가정,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녀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가정, 바로 행복한 가정이요, 가정다운 가정입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시기 바라고, 그래서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주에는 어버이 주일이기 때문에 이어서 본문이 말씀하는 부모와의 관계, 즉 효도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모 일간지 사회면에 보도된 사건 기사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사 내용을 소개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인천에 사는 민 모씨 부부는 풍을 맞아 하반신을 못쓰게 된 53세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작정을 합니다. 수소문 끝에 강원도 정선에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무료 양로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를 그곳으로 모셔갔다가 어머니가 무의탁 노인이 아니라고 거절당하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원도 영월에 5만원 짜리 월세 방을 얻고 그곳에 어머니를 홀로 두고 도망을 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찾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번호를 두 번씩 바꾸면서 연락을 끊었습니다. 결국 경찰이 나서게 되고, 강원도 영월 경찰서에 구속되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자기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를 버린 것입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병든 어머니,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어머니를 집밖에 내다 버린 것입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인 이규태씨는 이런 세태 풍조를 일컬어 '신 고려장'이라 불렀습니다. 버림받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외로움과 앞으로에 대한 두려움은 그래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배은 망덕 때문에 화를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식이기에 이해해 보려고 몸부림도 쳐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서 이런 꼴을 보는구나 죽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나 때문에 자식이 감옥에 갇히는 구나 생각하며 눈물을 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낳고 기른 자식에게 버림받는 그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바쁘고 분주한 현대 생활에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벅차고 힘에 부칩니다. 자기 앞가림조차 제대로 해 가기가 힘겨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면서 어느덧 우리에게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거추장스런 존재, 부담스런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부모들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마음으로 고려장을 치르고 말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효도란 무엇인가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효도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효도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신명기 5장 16절의 말씀의 인용해서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5장을 보면 모세가 출 20장의 십계명을 보다 자세하게 해설해 놓고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계명과는 달리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에는 다른 계명에는 없는 약속이 붙어있습니다. 신 5:16은 이렇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다시 말씀드려서 다른 계명은 ". 하라"고 말았는데 이 계명만은 "그리하면. 하고 약속이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 계명에만 약속이 붙어있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모 공경이 인륜의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고자 할 때 부모 공경은 최우선되는 도리입니다. 사실 부모 없이는 오늘의 우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나아 주셨고, 길러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 부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땅히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륜의 근본이고, 사람 사는 도리의 뿌리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조차 사랑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부모조차 공경하지 못하면서 누구와 올바른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십계명에서는 인륜을 명할 때 제일 첫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이 계명이 귀하기 때문에 꼭 지키도록 지키는 사람에게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모 공경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신 5장에서는 십계명을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고난 뒤에 신 6:5-6절에 이 말씀을 지키는 자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씀드려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면 마치 하나님께서 공경을 받으시는 것처럼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우리가 부모를 공경치 않고 사랑치 않으면 마치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사랑치 않는 것처럼 괘씸하게 생각하십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효도에 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부모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남는 시간에, 남는 힘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먼저 하고 나중에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도 이런 오해가 있었습니다. 마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5-6절에서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위 고르반 사상입니다.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함에도 하나님을 핑계 대고 이를 게을리 하는 것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8절에서 이런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효도는 단순히 나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답 차원을 넘어갑니다. 효도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께 효도하면 그것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부모님께 효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 주십니다. 결국 효도는 부모님이 받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효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 말씀은 효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줍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대한 효도는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서 시작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모시고, 돈을 많이 드리고, 좋은 음식을 대접해 드려도, 그 말씀을 거역한다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게 됩니다. 반대로 가난해서 제대로 잘 모시지 못한다 해도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한다면 그것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드립니다. 효도는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효도는 아닙니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대개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을 그대로 말씀하시지를 않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고, 자식들에게 폐 끼칠까 봐 그대로 말씀하지 않으실 때가 더 많습니다. 이럴 때 그 마음을 헤아려 드려야 합니다. 벌써 저희 아버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도 8년이 지났습니다. 세상 떠나시기 전에 간암으로 석 달간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할 수 있으면 매일 찾아가 뵈었습니다.
그런데 갈 때마다 야단을 치시는 것입니다. 목사가 바쁠 텐데 왜 매일 오느냐고 야단이셨습니다. 내가 보고 싶으면 전화할 테니까 그때나 오라 시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하루종일 짬을 낼 수도 없고, 교회 일이 밤 열시 나 되야 대개 마무리가 되기 때문에 집도 멀고 그래서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님께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주일이지 박 목사가 오늘은 못 오겠구먼." 아버님이 오지 말라는 말씀은 아버님의 본 마음은 아닙니다. 자식을 생각해서 자식을 위해서 하신 말씀일 뿐입니다. 효도는 부모님의 참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겉으로 하신 말씀을 형식적으로 따르는 것 그것이 순종이 아닙니다.
둘째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보다 자세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93년 1월 가평에서 한 할머니가 자살한 일이 지상에 보도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마을에서 효자로 알려진 아들과 함께 인생의 말년을 남들이 볼 때는 행복하게 사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자살을 한 것입니다. 자살 동기는 이렇습니다. 할머니가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툇마루에서 며느리와 손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엄마 나도 독방을 줘. 다른 친구들은 다 자기 방을 자지고 있는데 나만. 나도 이제 커서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게 불편하단 말이야. 그때 며느리가 답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 돌아가시면 독방 줄께. 할머니는 며느리가 나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구나 하고 노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잘한다고 하지만 이미 자기는 가족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 부양의 대상이요, 부담스런 존재요, 거추장스런 존재라고 생각됐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 빨리 죽어 줬으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견디기 어려웠고 그래서 농약을 마시게 됐습니다. 공자는 효도를 가르치면서 '견마지양'식의 효도를 잘못이라고 꾸짖었습니다. 견마지양이란 부모를 대하되 개나 말을 치는 것처럼 그저 먹을 것을 드리고, 필요한 것 사드리고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을 모실 때 마음이 따라야 합니다. 부모님을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해 드려야 합니다. 좋은 음식 드리고, 좋은 옷을 해 드리면서 돌아가시기를 학수고대한다든지,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 다루듯이 해서는 않됩니다. 부모님을 마음으로 존중해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늘 부모님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노인들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고독이랍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 노인들의 75%가 고독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노인들의 고독을 "빗살이 다 빠진 머리 빗"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멀쩡하던 빗이 하나씩 둘씩 빗살이 잘려져 나가서 이제 껍데기만 남은 빗살 없는 빗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친구도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할 일도 점점 없어지고, 돈도 없어지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어지고, 미래도, 희망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내 곁을 떠나고 있다고 느끼는 마음, 홀로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는 마음, 이것이 바로 노인의 고독입니다. 부모님을 고독하게 해 드려서는 않됩니다. 자주 전화 드리고, 자주 찾아가 뵙고, 늘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또 하나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1/10만 해도 큰 효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건강을 지켜달라고, 남은 여생이 복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더 중요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 믿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것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의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이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께서 예수믿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은 효도가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들 때문에 속썩지 않는 가정,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녀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가정, 바로 행복한 가정이요, 가정다운 가정입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시기 바라고, 그래서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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