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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시키기 (엡6:4)

본문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실 때 유대인에게 맹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은 먼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위대한 조상의 이름을 걸로 맹세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유대인은 다시 지금의 재산과 앞으로 벌어들일 모든 재산을 걸고 맹세를 한다고 했 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허락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유 대인은 아이에게 반드시 십계명을 전할 것이니 내 자식을 걸로 맹세 를 한다고 말하자 하나님이 비로소 '좋다!'고 그 맹세를 받아 들이셨 다는 유대 탈무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만큼 자식은 부모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이 자녀를 어떻게 금강 석 처럼 빛나게 키울 것입니까 수많은 교육학이 있고 자녀 양육법이 있고, 심리학이 있지만, 아주 간단한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걸 힘써 실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자녀 교육 방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 공동번역에서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자녀쪽에서 보면 노엽게 되는 것이고 부모쪽에서 보면 분을 내는 것 입니다. 분을 내는 것은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고, 노엽게 되는 것은 그로 인한 피해 결과입니다. 노엽게 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만 자녀가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받으면 그것이 자녀를 망치는 것이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일단 원인을 제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 가 노엽게 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분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에는 '분을 내지 말라'는 말을 수차 반복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는 옛 사람 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 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25절 그런즉,. 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 귀로 틈 타지 못하게 하라."
31절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모든 것을 악의와 함께 버리고" 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버려야 할 것 중에 중요한 한 가지가 바 로 노함과 분냄입니다. 성경은 이걸 수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함과 분냄에 대한 금기의 명령을 엄중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옛사람의 벗 어 버려야 할 것과, 새 사람의 입어야 할 것을 확실하게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뭐 벗어 버려야 할 옛사람의 모습이 수백 가지가 있겠지만 노함과 분냄은 반드시 버리라는 겁니다. 노하면 분을 내는 것입니다. 노함과 분냄은 한 티켓입니다. 분내는 것을 악독함과 같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특히 자녀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0절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 갈라디아서 5장 20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 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타락한 육체의 가장 확실한 증거 중의 하나 가 바로 분냄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분내는 걸 보면 아직고 저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이 아니구나 이렇게 단정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 도 오래 참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성령님받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혈기 가 남아 있고 이걸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병고치는 은사나 방언하고 예언하는 은사하고 분내는 혈기하고 뭐 따로 놀아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혈기를 내고 분을 내고 아직도 오래참지 못한다면 절대 성령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은 육체의 사람입니다. 이거 분명히 합시다.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이건 숫제 육체의 사람을 표현하는 관용구입니다. 그러나 22절에 보세요. 오직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 래참음'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아직도 자주 분내 고 혈기 부린다면 육체의 사람입니다. 특히 자녀에게 있어 아직도 혈 기 부리고 분낸다면 믿음의 부모가 아닙니다. 이거 확실히 합시다. 어떤 분이 '자녀의 일생을 망치는 열가지 비결'을 제시 했습니다.
(1) 자녀가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준다.
(2) 실용성 있는 옷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한 옷을 늘 사주고 그것으로 크 게 만족한다.
(3) 좋아하는 음식,좋아하는 만화 좋아하는 TV프로 등 좋아하는 것만 배 려해 준다.
(4) 인내로 기다리는 것보다 조급하게 결과를 얻는 것을 가르친다.
(5) 친구와 싸울 때 자녀편만 들어주고 친구의 부모를 공격한다.
(6) 성실하게 일해 대가를 얻는 것보다 단시일내에 일확천금을 얻는 방 법만 가르친다.
(7) 이웃을 우해 공부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사리사욕을 위해 공부 해서 큰 사람이 되기를 가르친다.
(8) 매를 들지않고 무조건 감싸준다.
(9) 베풀기보다 소유하는 방법만을 가르친다.
(10)경건한 인생을 위해 고난 당하는 삶보다 세속적인 인생을 위해편하게 사는 삶을 가르친다.
이 많은 수칙들을 다 지킬 것입니까 벽에 붙여 놓고 달달 외울겁니까 십계명도 제대로 외우질 못해서 쩔쩔 메는 데 어떻게 그걸 다 외 우겠어요 그리고 또 실천은 언제 다 하겠어요 머리 나빠서도 못할 정도로 교육학자들이 제시하는 것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분명합니다. 우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선 이 한가지만이라 도 철저히 실천을 해 봅시다. 그러면 모든 것이 그물코 처럼 연결 되 어 풀릴 것입니다. 디도서 1장 7절 "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 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 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이중에서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어떤 분들은 화를 내 도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급히 분을 내는 것입니다. 분을 내는 것 좋지 않은 일이지만, 정말 딱 그만 둬야 할 것은 급히 분을 내는 것입니다.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악성은 바로 '반복적 발작 분냄 증상'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들 세워 놓고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입에 거품을 물고 꼭 말을 세 번 씩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악성이예요. 분을 내면 큰 소리가 납니다. 노하면 큰 소리가 납니다. 제발 큰 소리가 나지 않게 하세요. 이게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특히 자녀에게 큰 소리 나지 않게 하세요. 어떤 목사님이 성도들이 하도 조니까, 뭐가 문제인가 하고 고민을 하던 끝에 유명한 웅변가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답니다. 그랬더니 이 웅변가라는 분이 전문적인 컨설팅을 해 줬더랍니다. 목사님은 목소리 가 너무 고음인데다가 소리도 커서 성도들이 조는 겁니다. 목사님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아 목소리 크고 고음이면 오히려 깰 텐데 거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웅변가라는 분이 조언을 해 주 었습니다. '목사님 요번 주일 강단에 서서 열심히 설교를 하시는 데도 목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자는 성도들이 보이면 갑자기 목소리를 낮 추세요. 그리고 성량도 아주 작게 한 번 헤 보세요.' 이렇게 조언을 하더랍니다. 주일 설교 시간에 그대로 해 봤더니 정말 기차 화통 같 이 큰 소리로 외칠 때에는 열심히 졸던 사람들이 감자기 소근소근 말씀을 전하니까 화들짝 깨드라는 겁니다. 약의 면역성도 그렇습니다. 감기걸려도 웬만해서는 약 안 먹는 분 있지요 미련하다고 합니다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극히 현명한 겁니다. 진통제를 많이 쓰면 나중에는 자꾸 알 수가 늘어 납니다. 약에 대한 내성이 늘어나서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목소리 에스칼레이팅 입니다. 내 목소리만 높아지는 게 아니예요. 아이들 적응력도 높아지는 거예요. 아이들 목소리 면역성도 높아지는 겁니다. 어떤 분은 어 떻게 소리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 대는 지 뭐 살인이 난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니까 식탁에 밥풀 흘린거 주으라는 겁디다. 밥풀 흘릴거 주 으라는 데 핵폭탄을 쏘는 거예요. 그러면 정작 야단처야할 거짓말 한 일에는 무슨 폭탄을 쏠 거예요 하찮은 일에 매일 폭탄 맞고 사는 아 이들 무덤덤합니다. 눈도 껌쩍 안 합니다. 이게 비극이예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이 말씀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핵 폭탄을 맞고 마음에 상처가 안 남아 있으 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 성령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안에 부모된 여러분 목소리를 작게 합시다. 지구가 멸망 하는 날이 오기 전에는 목 소리를 높이지 맙시다. 자녀가 심각한 악의 길로 빠지기 전에는 소리를 절대 높이지 맙 시다. 잠언에 보면 자녀를 초달하라고 했습니다.(잠13:24) 초달은 채 찍입니다. 초달을 할 때도 목소릴는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분 은 징계의 신령하고 교육적인 원칙이 몇가지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1)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2)노여움이나 낙 심이 되지 않고 매를 때려도 부모를 공경하도록 해야 하며
3)분노나 즉흥적으로 하지 말것.
4)하나님께서 양육을 위탁받은 가정의 제사 장이며 목자로서 절대 사랑의 원리에서 할 것. 5)채찍을 때려야 할 때는 본인의 동의를 구하고 준비 기도를 하고 할 것. 이렇게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15세인 아들이 누차 품행 사고를 냈을 때 아들에게 알리고 3일간 금식기도한 후에 자식과 함께서로 회개기도하고 종아 리를 때리고 나서 다시 위로 격려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랬 더니 딴 사람처럼 변화되더랍니다. 어쨋든, 초달의 이름으로 분을 내거나 악다구니를 쓰는 것은 하나님 의 뜻이 아닙니다. 자녀를 노엽게 할 뿐입니다. 그러니 목소리를 작 게 합시다. 그래야 초달도 먹히고 교양도 먹힙니다. 훈계도 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유일하게 분내는 사건이 나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분을 내 었다라고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은 아마 이 것이 유일할 것입니다. 바 로 마가복음 10장 13절의 사건입니다. "어린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보 고 제자들이 꾸짖는 것을 보고 '분히 여겨 가라사데'"
그런데 참 묘하 게도 성전청결 사건,-진리에 대해서 분을 내는 걸 의로운 분노라고 합니다. 의웃에 대해 상시적으로 분내는 것, 가족에게 상시로 분내는 것, 특히 자녀에게 상습적으로 분내는 것은 의로운 분노가 아닙니다. 예수님 흉내 내지 마세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것 그리스도인은 새롭게 태어나 중생 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딸로 영 적 입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거지요. 하나님의 권세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고, 하나님의 지 혜를 빌리고 양육 받습니다. 자녀이면 기업을 받는다고 했으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 생명과 영생, 안정과 기쁨을 물려 받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소유는 이제 모두 하나님의 소유로 삼습니다. 나의 소유는 이제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 의 소유입니다. 나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전부 관리권만 가지고 잇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지기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 소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입니다. 이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제일 시급하게 해야 할 것은 자녀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하나님의 아들 딸로 입양을 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소속에서 하나님 의 소속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왜요 내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이 20여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뒤로는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어 부모의 품을 떠납니다. 더 많은 나날들을 홀로 헤쳐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 식을 언제나 책임질 수 없습니다.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부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주의 말씀이 길에 빛이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그런까닭에 하나님의 아들 딸로 입적을 시 키고 주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나의 교양과 훈계는 상 대적입니다. 불완전합니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아세례가 중요합니다. 유아 세례를 주면 이제 '우리 아이들 은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의식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분 은 세례를 받으면 성이 모두 "하"씨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어쨋든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 육할 것입니다. 나의 교양과 훈계가 아닙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의 진리로, 주님의 양식으로,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능 력으로 다 주의 것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교양과 훈계의 지침은 주님 의 말씀입니다. 나의 의지, 나의 철학, 나의 신념, 나의 취향, 나의 방식 대로 가르 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것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수 있지만 영원 을 통과하는 생명의 교양과 생명의 훈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신명기의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유대 탈무드에 보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백지에 무엇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노인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은 이미 많이 씌어진 종이에 여백을 찾아 써 넣으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쉐마는 특히 어린이에게 열심히 가르칩니다. 백지 위에 다른 어떤 것이 그려 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는 것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한 자녀들, 성령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 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자가 노함과 분냄으로가 아니라, 사랑과 기쁨과 오래참음과 자비로 가르칠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 원칙 하 나 만이라도 힘있게 실천하여 생명력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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