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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믿음의 삶을 위하여(9) (엡1:15-19)

본문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엡1: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열심히 봉사하는 일일까요 부지런히 선한 일을 실행하는 일일까요 물론 이런 일들 모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더욱 아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이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 그리고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 신앙의 대상이며 경배의 대상이신 이분이 바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을 사귀는 사람은 영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더욱 자라가야 합니다. 성숙한 믿음의 삶을 위해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그의 기도 속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 사도의 첫 기도 제목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숙한 믿음의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더욱 아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앎”입니다. “체험하는 앎”이라고 하여 무슨 신비한 체험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나 지식적 앎이 아니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리고 체험적인 앎이라 하여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음성을 듣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환상이나 무슨 계시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 체험적 앎이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인격과 하신 일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는 성도로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먼저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어느날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이상한 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산에 올라가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하나님과의 만남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출애굽의 큰 해방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날 타지않는 가시떨기 나무에서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며 하나님을 알게 된 감격적이며 영광스런 날이었습니다. 이날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출3:13-15). (출3: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스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1 AM)” 하나님게서는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바로 영원 자존자이시라는 말슴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영원토록 계신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안계신 때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본래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이 우주가 생기기 전에, 온 세상이 있기 전부터 스스로 계셨고 원래 계셨던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니계신 적이 없으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영원 자존자 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을 자기의 원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일은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십니다. 홀로 주관하시고 홀로 모든 일들을 홀로 이루십니다.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대표적인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라 하라” 이 “여호와”란 뜻은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듯이 “스스로 계신 분”이란 뜻입니다. 스스로 결정하시며 온 우주의 모든 일을 자신의 주권 아래 다스리시는 온 우주의 대권자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기의 이름은 “나는 스스로 있는 하나님 ‘여호와’”라고 소개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이 있습니다.이들은 아주 큰 이단 중에 하나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면서 접근합니다. 그때 교인들은 보통 당황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니.” 이때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호와가 하나님 이름”이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출3:13-15)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증인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나와 있는 이름은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러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명사라기 보다는 형용사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이름에 담겨진 상징성을 통해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그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하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사용된 “하나님”이란 구약 원어는 “엘로힘”이란 말입니다. 이 “엘로힘”은 “강한 능력이 있는 분, 장엄하시고 전능하신 신”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뜻은 이 “장엄하시고 전능하신 신”이 우주와 지구를 창조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도나이(주)”라는 칭호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칭호는 만물의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뜻하는 칭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라했을 땐 “엘로힘”“여호와”“아도나이”등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하나님의 표호이며 이름입니다. 이 “여호와”란 바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주권적으로 구원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한 구원을 필히 이루시는 하나님이란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대표적 인격과 사역을 나타내는 표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하나 뿐이라고 말해서는 않됩니다. “여호와”란 하나님의 여러 이름, 표호 중의 하나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름을 결코 무시해서는 않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이름을 가장 대표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이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호와”란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할 때 하나님의 주권과 스스로 계시는 영광을 알며 그 분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계획을 완전히 달성하시는 분이십니다. 결코 실패나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모든 계획과 예정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히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나이가 많이든 아브라함이었지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도 멘스가 그쳐서 이젠 자식을 둘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나 저제나 소식이 있을까 기다리기를 어언 십년, 십년이 지나자 아브라함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의 여종을 통해 자식을 낳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 사라의 말대로 첩을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는 방법일 거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13살이 되도록 찾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마엘이 13살이 된 어느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나은지 13년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창17:1-5). (창17:1) 아브람의 구십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3년 만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첫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전능하신 능력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질책하셨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구나 네 믿음이 완전해지기를 바라노라 내가 너에게 약속한 약속을 못 이룰줄 알았느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가 못할 일이 있겠느냐 너는 내 앞에서 믿음을 옳게 가져라”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창17: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창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창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하니님께서는 죽은 태와 다름없는 사라의 태속에 새생명을 잉태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었을 때 사라는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사라의 태를 소생시키시고 출산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렇게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란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과 약속을 100%달성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신다는 것보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과 뜻 자신의 예정과 악속을 다 이루실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을 오해해선 않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전능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온 인류 모두를 다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왜 믿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그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말은 하나님의 전능을 오해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원하는 사람들을 다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뜻하시고 예정한 모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뻬놓지 않고 다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계획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믿지 않고 죽은 사람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획하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고 예정한 사람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보호를 받아 완전한 구원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의 의자엔 단 하나의 빈자리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완전히 모두 다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전능이란 하나님의 뜻과 그것을 달성하시는 능력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능은 인격적인 능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신 인격자이십니다. 그 분은 “금 나와라 둑딱 은 나와라 뚝딱”식의 능력을 가진 분이 아니십니다. 모든 일을 자기의 지혜로 계획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기에 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무엇이든지 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자기의 뜻은 모두 다 이루십니다.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구원받고 있음을 더욱 확신하기시를 바랍니다. 그럼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를 계획하시고 자신의 지혜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전능하신 능력과 지혜로 창조해 내셨습니다. 지구와 각종 동식믈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강과 산을 만드시고 그곳에 가종 동식물이 자라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또한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해와 달과 빛나는 별들을 지으셔서 우주 공간에 띄어 놓으셨습니다. 진실로 온 우주에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시간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생의 연륜이 깊어가게 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정신 세계를 만드시고 영적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피조 세계에 법칙을 세우셨습니다. 이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에 따라 만물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덕의 법칙도 있습니다. 만물이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모든 만물에 고유한 질서와 법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과학적 연구도 가능한 것입니다. 과학이란 하나님 만드신 물질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입니다. 물질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그 규칙적이며 질서 정연한 조직과 법칙을 연구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덕적 규칙도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세우신 도덕적 규칙을 어길 때 인간의 양심은 흔들립니다. 양심의 꾸짖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도덕적 법칙이 그의 양심을 때립니다. 그래서 인간은 법률울 만들고 사회를 구성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법칙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시여 모든 법칙의 제정자이십니다. 또한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구원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도적적 질서를 깬 것이 인간의 큰 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형벌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법을 어기는 것은 곧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을 부르는 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인간의 죄 때문에 죽음이 왔습니다. 죽음과 함께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인간을 사로 잡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인간이 죽는 것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죽습니다. 어린 아기도 죽습니다. 어른 아이 노인들 할 것 없이 모두가 죽음의 형벌아래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류의 보편적 실재입니다. 이러한 죽음은 또한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몰아갑니다. 이렇게 전 이류는 하나님의 저주와 죽음의 형벌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하시려 하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이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속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구속주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의 창조자시며 죄인의 구속주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창조주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더 알고 더 깨닫고 순종의 삶을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를 자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다스려 나가십니다. 이것을 “섭리”라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모든 일들이 완전히 다 성취 되도록 온 세상 만물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 만물의 모든 사건과 사고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든 환경을 다스려 나가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들,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선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는 멀리 물러나 홀로 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걷는 발걸음을 정하시고 우리의 일거수 이투족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두려움을 아십니다.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정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고난과 어두움의 때에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안식하시기 바랍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으십시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날개 아래 피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아야 합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더욱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이 성도의 가장 영광스런 일이요 하나님을 아는 일이 성도의 가장 복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사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알고 더 가까이 섬기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속에서 안식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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