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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엡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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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 곳곳에서는 엘리뇨 현상으로 인하여 큰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지구의 허파인 아마죤의 밀림과 인도네시아의 밀림이 건조한 기 후 때문에 산불로 큰 피해를 입더니 이제는 멕시코가 그런 산불피해를 입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대홍수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수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인도는 연일 50도를 넘는 더위로 최소한 250명이 숨지고, 북한은 4년째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자연 재해의 원인이 엘리뇨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뇨 현상은 대기오염으로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구 환경은 지금 심각한 지경에 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환경파괴의 심각성이 다른 지역에 못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다가 중국이 공업화하면서 산업폐수가 서해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공장에서 내뿜는 공해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까지 날아와 공장이 없는 제주에 서까지 산성비가 내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을 무시한 무분별한 개발, 화학비료와 농약에 지나치게 의존한 농업 등으로 자연환경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줄인 지하수와 토양오염까지 위험수위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파괴된 환경은 반드시 복수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파괴하면 우리의 후손들이 그 보복을 당 할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총회가 지키는 환경주일인데, 이제부터 우리는 지구환경, 자연환경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는 도덕적, 윤리적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신문을 펼치면 어김없이 각종 범죄나 사고의 소식이 각면마다 채 워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TV 뉴스를 보면 뉴스시간의 거의 대부분이 사 회의 각종 범죄와 사건을 전하는 소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문에 그 범죄에 관련된 기사가 얼마나 보도 되었나를 살펴 보았습니다. 조선일보 의 금년 1월부터 어제 5월 30일까지 지난 5개월 동안의 신문기사를 인터넷 에 들어가 검색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살에 관련된 기사가 250 여건, 살인 강도 폭행에 관련된 기사가 380여건, 부정과 부패에 관련된 기사 가 430여건, 절도 사기에 관련된 기사가 320여건, 기타 범죄에 관련된 기사 가 335건, 그리고 각종 고소 고발에 관련된 기사가 410여건이었습니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환경이 얼마나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 다운 세상은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세상이 더러워지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죄짓지 말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사단은 사람으 로하여금 죄짓게 합니다. 사단의 역사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 겼고,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간하였고, 사 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룟 유다는 선생님이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든지 죄를 이길만한 힘을 갖지 못하면 그가 아무리 많이 배 웠어도, 아무리 고상한 자리에 앉아 있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에덴 동 산과 같은 곳에 살아도 죄 앞에 무릎꿇고 죄의 종이 됩니다. 여러분, 전염병이 돌면 부자라고 병에 안걸립니까 지식인이라고 병에 안걸 립니까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라고 병에 안걸립니까 모두 병에 걸리고, 고생하거나 심하면 생명을 잃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염병이 돌아도 알걸 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 안에 그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 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옛날에 그렇게 위험하게 여겨지던 전염병 들이 없는 것은 잘먹고 많이 배우고 좋은 집에 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전 염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백신이 많이 개발되고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범죄로 가득하고, 윤리적 도적적으로 타락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아 무 걱정이 없습니다. 또 자라나는 자녀들 역시 아무 염려 없이 훌륭하게 자 라게 됩니다. 그러면 죄를 이기는 힘은 무엇입니까 롬 8:2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였습니다. 즉 성령님의 힘이 죄의 공격을 막 아주고, 죄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면 우리는 아무리 죄로 가득채워진 세상에 살아도 죄짓 지 않고, 죄를 이기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힘은 우리가 소유한 재물, 권력, 지식, 명예가 아닙니다. 우리가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죄짓지 않고, 사단의 종이 되지 않는 힘은 내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의 충만함 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님 충만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충만 함을 받으라는 명령을 주시면서 성령님충만을 술에 취하는 것과 대비시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술을 자꾸 마시면 그 술이 그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그의 모든 신경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술취한 사람은 자기 생각에는 똑바로 간다고 하는데 걸음걸이가 휘청휘청합니다. 이것은 술이 그 사람을 주관 하기 때문입니다. 술의 영이 그 사람의 발을 움직이고, 정신을 움직이 고, 혀를 움직입니다. 그 사람은 술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술 에 충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성령님 충만"은 성령님에 취한 것인데, 성령님이 우리의 혀와 눈과 태 도와 생각와 행동 등을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성령님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 러면 누가 성령님의 사람이 됩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님의 사람이 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 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고(롬 8:9) 성령님이 아니시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자가 없기"(고전12:3)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이제 내 안 에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사 시고, 나는 하나님의 큰 사랑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갈2:20)이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모든 일을 해 나갈 때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의 주인이 되시니 까 그분이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은 안 가게 되고, 그분이 하지 말라는 말과 행동을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그의 삶에서 어떤 특징들이 나타날까 요 오늘 말씀은 세 가지 특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의 삶에 찬송이 나타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 며 찬송하며."(5:19) 라고 합니다. 즉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먼저 생활을 찬송으 로 채워 갑니다. 사단은 사람에게서 찬송을 빼앗아 갑니다. 대신 사단의 노 래를 부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입니다. 하나님 이 하신 일을 증거하는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설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대상 은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납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사들이 모두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 왕의 귀신이 쫓겨 나갔다고 합니다. 다윗은 노래하는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낙심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부른 찬송의 힘이었습니다. 죽음도, 감옥도, 핍박도 찬송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절정은 찬송을 통해서 나 타납니다. 그리고 기적은 찬송이 있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늘 있는 사람은 얼굴이 밝습니다. 노 래를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하나님께 찬양으로 고백하고 찬양을 통해 힘을 얻는 것을 생활화한 사람을 보십시오. 그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착해 보이고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찬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단이 넘보지 못합니다.
둘째는 그의 삶에 감사가 넘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20) 라고 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이것저것 감사의 제목을 자 꾸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입에서 불평의 소리가 나오면 그것은 성령님에 충만한 상태가 아닙니다. 자꾸 불평이 나올 때는 "주님! 나의 이 불평을 용서해 주시고, 나를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여, 내 가슴이 감사한 마음으로 새롭게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렇게 하면 나의 감정이나 환경이나 주위 사람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자신이 나를 주관하셔서 내 마음을 감사로 채워 주십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고립 이란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차이에 대해 미국의 데이비드 소퍼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감옥과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단지 불평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느냐는 차이일 뿐이다. 수감된 죄수가 수도자와 같은 감사의 마음 을 가질 때 감옥은 수도원으로 승화될 것이고, 반면에 수도자가 불평의 마음 을 가질 때 수도원은 감옥으로 전락할 것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세네카는 "남과 비교해 우울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 했습니다. "당신을 앞서 가는 사람만 눈에 띌 때는 뒤에 따라 오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또 하나님께 지나온 삶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으면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앞질러 왔는지를 되새겨 보라" 이렇게 감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죄악과 절망으로 가득한 감옥과 같은 세상을 말씀과 은혜로 충만한 수도원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셋째는 좋은 인간 관계를 가집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 하셨습니다. 복종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귀히 여기고 존중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그 사람을 섬기는 자세를 가질 때 인간 관계가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 국민들의 가장 부족한 부분은 사람을 존경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 선거전이 달구어지면서 어떤 국회의원은 듣기에도 민망한 말로 대통령 을 비난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는 욕하고 비 난하지만 세계에서는 4대 인권운동가로서,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 분이 지난 30여년 동안 그렇게 홀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목 숨을 던지면서 독재와 싸울 때 지금 떠들고 있는 그들은 독재와 협조하면서 그들의 비호 아래 따뜻한 아랫목에서 배고픈 줄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 아닙 니까 아무리 선거에 이겨야 한다지만 그런 사람들이 그런 막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연배로 보아도 아버지뻘되는 어른에게 말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어른을 존경해라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이 아무리 옳아도, 사람을 존중하고 귀 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부터 이런 면에 대해 자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더라도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소용 없습니다. 어떤 사람 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가 안 받는가 하는 것은 그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은혜를 받으 면 찬양하고 감사하는 생활은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사람을 존 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일은 잘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교만해져서 사람 을 무시하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즉 영적인 교만이 생기는 것이죠. 이것은 분명히 성령님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악령을 맏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2절 이하는 인간관계를 구체적으로 길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라고 시작되지요 그 다음 25절은 첫마디가 무엇입 니까 "남편들이여"입니다. 6장으로 넘어가서 1절에 "자녀들아", 4절에 "아 비들아", 5절에 "종들아", 9절에 "상전들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님충 만함을 받은 사람은 인간관계를 세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관계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면 감사와 찬송에 관한 구절은 한 절씩밖에 없는데,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수십 절이 있습니다. 사업에서도, 정치에서도, 목회에 서도 사람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령님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 은 하나님과의 관계만큼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시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과의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증거되고, 드러난다는 것을 믿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 충만한 사람은 찬송과 감사의 삶을 살며 서로 존중하고 귀히 여기고 섬기는 삶을 삽니다. 이러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기 위해 기도를 생활화 합니다. 무엇을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 듣기를 즐거워 합니다. 말씀 을 통해서 성령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김으로 우리의 생이 찬송하며 감사하 며 사랑하는 삶이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이기고, 사단의 궤계를 이기는 능력있는 삶을 삽니다. 죄가 관영한 세상에 살지만 죄의 유혹과 역사를 이 기며 삽니다. 여러분, 오늘은 성령님강림주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자가 되십시다. 세상은 온통 오염투성이입니다. 자연환경, 윤리적 도덕적 환경이 심히 오염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환경까지 오염되었습니다. 사단이 이겼다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은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사단은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우리 생활 속에 가득한 감사, 그리고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사람을 존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우리 삶이 사단의 역사를 축소시키고, 결국은 소멸 하게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0-11) 즉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를 능히 대적 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주 안에 있는 생활이 성령님 충만함을 받는 생활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성령님 충만함을 받아 세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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