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순종하라 (엡6:1-3)
본문
에베소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교리(1-3장)와 실천(4-6장)입니다. 실천 편에서도 교회 생활에 이어서 가정 생활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정 윤리 가운데 먼저는 부부 관계에 대해서 논하고, 그 뒤에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먼저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상고할 본문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며, 순종한다면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가를 원리적인 면에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왜 순종해야 합니까
1) 이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1절). 여기 ‘옳다’는 것은 ‘의롭다’는 뜻입니다.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부모와 바르게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보이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더 큰 일을 해야 하겠기에 시간이 없다면서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합니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는 싶지만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하겠기에, 돈을 벌어야 하겠기에, 사람을 만나야 하겠기에, 나라와 세계를 생각해야 하겠기에 다음에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 중의 일은, 의로운 일 중의 의로운 일은 바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부모에게 효행하는 것입니다. 효는 결코 선행도, 공로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외국 관광이나 보내 드리는 것이 마치 무슨 큰 일이나 한 것인 양 자랑하는 자식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성질의 일이 아닙니다. 자식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2)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2절). 여기서 ‘첫 계명’이 순서상을 의미하는 것이냐 아니면 중요성을 지적하는 말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쉽계명은 두 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4계명은 대신 관계에 관한 계명 즉 인간이 하나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5-10계명은 대인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문제입니다. 대인 관계에서의 첫 계명은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그러니까 대인 관계의 가장 기초는 부모와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대인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첫째부터 다섯째 계명까지는 ‘엘로힘’ 곧 ‘하나님’이라는 칭호가 나오지만 여섯째 계명부터는 ‘엘로힘’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효에 대한 다섯째 계명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맥을 같이한다는 뜻입니다. 부모 공경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장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라’와 ‘부모를 공경하라’ 함이 나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결과와도 같다는 뉘앙스를 가집니다. 부모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나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약속을 담고 있기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 계명은 이런 확실한 약속이 있는가 하면,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죄는 그 다음에 나오는 살인이며, 간음이며, 도적질이며, 이웃 탐내는 것이며, 거짓 증거하는 죄보다도 더 무거운 죄를 짓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3)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딤전 5:4). 골로새서 “(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세기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너희 아비와 어미를 공경하라. 그것은 너희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로서는 자식 된 도리를 다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4) 이것은 명령이기 때문입니다(1,2절). 본문은 부모 공경의 첫째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시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부모와 관련된 교훈은 모두 명령형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순종하라’, ‘공경하라’, ‘청종하라’, ‘기쁘게 하라.’, ‘여기라’는 식입니다. 부모 순종은 계명입니다. 특히 신명기 5:16에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왜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순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 대표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는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예’하고 순종함으로써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경우가 되었습니다.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말씀에 말끝마다 대꾸를 했다고 합니다 화가난 시어머니가 ‘너 말끝마다 말대꾸 할거냐’ 하자 며느리 하는 말이 ‘어머님, 이것은 말대꾸가 아닌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치 따져 가면서 언제 순종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할 것입니다.
2.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1) 주 안에서(1절) ‘주 안에서’라는 말에 대하여 메이어는 ‘순종의 특색’으로, 살몬드는 ‘순종의 질과 자세’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즉 전자는 주께 대한 순종이 선행된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가 하면, 후자는 그리스도와의 교통에서 이루어진 기독교인들의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하듯이 부모에게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믿지 않는 부모가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 안에서’를 적용하면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보다는 하나님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 대한 책임과 하나님께 대한 책임이 갈등을 일으킬 경우 성경은 하나님께 우선권을 둘 것을 말씀하십니다.
2) 공경하면서(2절) 사람들은 흔히 세 가지의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나와 대등한 입장에서 하는 사랑을 ‘우정’ 또는 ‘형제간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높은 이를 사랑하는 것을 ‘공경’이라고 합니다. 공경이란 ‘우러러 존경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부모는 긍휼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임을 명심할 것입니다. 공경 없이 순종하는 것은 종들이나 하는 사랑입니다. 히브리어로 ‘공경’이란 ‘키베드’로서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삶, 인격, 경험, 지혜를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를 전부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러나
2,30대가 되면 부모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시대와 자신의 시대가 다르고, 부모는 배우지 못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40대에 이르러서는 조금 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님 생각 중에는 더러 맞는 것도 있구나. 옳은 것도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5,60대가 되면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들이 모두 옳구나.’ 사람이 철들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정하고 공경하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철이 들어서야 부모를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 공경은 말로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공경’에는 ‘값을 치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때를 따라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공급해 드리는 것입니다.
3. 순종에는 어떤 약속이 있습니까(순종의 결과)
1) 잘되리라(3절). ‘잘되리라’ 이것은 신명기적인 축복입니다. 번영하고 형통하고 번성하고 평탄케 하는 축복입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입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입니다. 영육간의 복을 분명하게 약속했습니다. 부모께 순종해서 잘된 대표적인 경우는 ‘룻’이라고 생각합니다. 룻기 “(룻1: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죽음이 관계를 갈라놓기 전에는 결코 떠나지 않겠노라는 결심입니다.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도 시모에 대한 그의 효도는 감동적입니다. 결국 그의 후손을 통하여 다윗이 태어나고 메시아가 태어나는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잘된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부모에게 효도한 사람들이 잘사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2) 장수하리라(3절).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하늘 나라에서 받게 될 보상만도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땅에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장수를 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5:20에는 100세에 죽는 자가 아이 같겠다고 하면서 복된 날에는 모두가 장수하게 될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영생에 대한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도 오래 살게 될 것입니다. 장수한다는 장수촌에 가 보면 거기에는 효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효도하여 장수의 복을 받은 사람의 대표는 요나답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요나답의 명령에 따라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순종을 했습니다. 부모의 뜻을 받들어 순종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후손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렘 35:2-10).
하나님이 친히 보상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효자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불효하고도 오래 산다는 것은 복이 아닌 욕이요, 화임을 명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의 길로 효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는 것도, 번영하는 것도, 그리고 장수하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무질서하고 시끄러운 것도 알고 보면 원인이 가정 문제에 있습니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속에서 효가 붕괴되었기에 이 세대는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효를 다시 세워 성경에 약속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굳이 오래 살겠다고 발악을 할 것이 아니라, 부모를 바로 섬길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번영이나 장수를 찾고 구할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1. 왜 순종해야 합니까
1) 이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1절). 여기 ‘옳다’는 것은 ‘의롭다’는 뜻입니다.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부모와 바르게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보이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더 큰 일을 해야 하겠기에 시간이 없다면서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합니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는 싶지만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하겠기에, 돈을 벌어야 하겠기에, 사람을 만나야 하겠기에, 나라와 세계를 생각해야 하겠기에 다음에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 중의 일은, 의로운 일 중의 의로운 일은 바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부모에게 효행하는 것입니다. 효는 결코 선행도, 공로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외국 관광이나 보내 드리는 것이 마치 무슨 큰 일이나 한 것인 양 자랑하는 자식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성질의 일이 아닙니다. 자식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2)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2절). 여기서 ‘첫 계명’이 순서상을 의미하는 것이냐 아니면 중요성을 지적하는 말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쉽계명은 두 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4계명은 대신 관계에 관한 계명 즉 인간이 하나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5-10계명은 대인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문제입니다. 대인 관계에서의 첫 계명은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그러니까 대인 관계의 가장 기초는 부모와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대인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첫째부터 다섯째 계명까지는 ‘엘로힘’ 곧 ‘하나님’이라는 칭호가 나오지만 여섯째 계명부터는 ‘엘로힘’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효에 대한 다섯째 계명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맥을 같이한다는 뜻입니다. 부모 공경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장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라’와 ‘부모를 공경하라’ 함이 나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결과와도 같다는 뉘앙스를 가집니다. 부모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나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약속을 담고 있기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 계명은 이런 확실한 약속이 있는가 하면,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죄는 그 다음에 나오는 살인이며, 간음이며, 도적질이며, 이웃 탐내는 것이며, 거짓 증거하는 죄보다도 더 무거운 죄를 짓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3)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딤전 5:4). 골로새서 “(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세기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너희 아비와 어미를 공경하라. 그것은 너희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로서는 자식 된 도리를 다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4) 이것은 명령이기 때문입니다(1,2절). 본문은 부모 공경의 첫째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시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부모와 관련된 교훈은 모두 명령형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순종하라’, ‘공경하라’, ‘청종하라’, ‘기쁘게 하라.’, ‘여기라’는 식입니다. 부모 순종은 계명입니다. 특히 신명기 5:16에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왜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순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 대표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는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예’하고 순종함으로써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경우가 되었습니다.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말씀에 말끝마다 대꾸를 했다고 합니다 화가난 시어머니가 ‘너 말끝마다 말대꾸 할거냐’ 하자 며느리 하는 말이 ‘어머님, 이것은 말대꾸가 아닌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치 따져 가면서 언제 순종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할 것입니다.
2.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1) 주 안에서(1절) ‘주 안에서’라는 말에 대하여 메이어는 ‘순종의 특색’으로, 살몬드는 ‘순종의 질과 자세’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즉 전자는 주께 대한 순종이 선행된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가 하면, 후자는 그리스도와의 교통에서 이루어진 기독교인들의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하듯이 부모에게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믿지 않는 부모가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 안에서’를 적용하면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보다는 하나님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 대한 책임과 하나님께 대한 책임이 갈등을 일으킬 경우 성경은 하나님께 우선권을 둘 것을 말씀하십니다.
2) 공경하면서(2절) 사람들은 흔히 세 가지의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나와 대등한 입장에서 하는 사랑을 ‘우정’ 또는 ‘형제간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높은 이를 사랑하는 것을 ‘공경’이라고 합니다. 공경이란 ‘우러러 존경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부모는 긍휼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임을 명심할 것입니다. 공경 없이 순종하는 것은 종들이나 하는 사랑입니다. 히브리어로 ‘공경’이란 ‘키베드’로서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삶, 인격, 경험, 지혜를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를 전부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러나
2,30대가 되면 부모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시대와 자신의 시대가 다르고, 부모는 배우지 못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40대에 이르러서는 조금 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님 생각 중에는 더러 맞는 것도 있구나. 옳은 것도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5,60대가 되면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들이 모두 옳구나.’ 사람이 철들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정하고 공경하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철이 들어서야 부모를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 공경은 말로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공경’에는 ‘값을 치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때를 따라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공급해 드리는 것입니다.
3. 순종에는 어떤 약속이 있습니까(순종의 결과)
1) 잘되리라(3절). ‘잘되리라’ 이것은 신명기적인 축복입니다. 번영하고 형통하고 번성하고 평탄케 하는 축복입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입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입니다. 영육간의 복을 분명하게 약속했습니다. 부모께 순종해서 잘된 대표적인 경우는 ‘룻’이라고 생각합니다. 룻기 “(룻1: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죽음이 관계를 갈라놓기 전에는 결코 떠나지 않겠노라는 결심입니다.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도 시모에 대한 그의 효도는 감동적입니다. 결국 그의 후손을 통하여 다윗이 태어나고 메시아가 태어나는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잘된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부모에게 효도한 사람들이 잘사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2) 장수하리라(3절).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하늘 나라에서 받게 될 보상만도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땅에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장수를 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5:20에는 100세에 죽는 자가 아이 같겠다고 하면서 복된 날에는 모두가 장수하게 될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영생에 대한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도 오래 살게 될 것입니다. 장수한다는 장수촌에 가 보면 거기에는 효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효도하여 장수의 복을 받은 사람의 대표는 요나답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요나답의 명령에 따라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순종을 했습니다. 부모의 뜻을 받들어 순종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후손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렘 35:2-10).
하나님이 친히 보상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효자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불효하고도 오래 산다는 것은 복이 아닌 욕이요, 화임을 명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의 길로 효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는 것도, 번영하는 것도, 그리고 장수하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무질서하고 시끄러운 것도 알고 보면 원인이 가정 문제에 있습니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속에서 효가 붕괴되었기에 이 세대는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효를 다시 세워 성경에 약속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굳이 오래 살겠다고 발악을 할 것이 아니라, 부모를 바로 섬길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번영이나 장수를 찾고 구할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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