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싸움 (엡6:14-18)
본문
오늘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말세라고들 합니다. 성도들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오늘을 말세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이 너무나 탁하고 갈 데까지 다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성한 곳이 없고 진실이 없고 정직이 없고 너무나 인간적인 것들만 난무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본문을 보면 “종말로 형제들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아”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강건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먼저 강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곧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 늘 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전투에서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입니다. 내 속에는 나말고 또 다른 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본성”입니다. 이 본성은 내 생각이나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를 거스르려 하고 나를 반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 내 속에는 편견이 들어 있고 나태함이 들어 있고 고집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것과 싸워야 합니다. 이 적이 상대하기가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세속”도 무서운 적입니다. 오늘은 이 세속의 물결이 너무나 거셉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이 세속의 풍조에 그냥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믿음에서 멀어지고 세속의 물결에 깊숙이 묻혀서 세상의 풍조를 따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커피숍에 가 보면 청소년들이 모여 앉아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워댑니다. 또 요즘에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담배를 피우는 풍조가 급속히 유행되고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여린 소녀들이 익숙하게 담배를 피워 댑니다.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금연하는 시대인데도 시대를 거스려 살고 있습니다. 또 어린아이들은 오락에 마음과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은 거의가 다 “다마고치”라고 하는 일본 전자오락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 시간에도 잠잘 때도 이 오락기를 붙들고 있습니다. 오늘의 문화는 사람들의 정신을 팔게 하고 정서를 마르게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탄”과의 싸움도 치열합니다. 사탄은 참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우리의 의지를 늘 시험합니다. 주일날이 되면 바쁜 일이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자꾸만 놀러 갈 생각을 마음속에 넣어 줍니다. TV프로에 연연하게 만들고 손님이 찾아오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도 도전해 옵니다. 성도들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교회까지 왔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설교 시간만 되면 졸음이 오게 만듭니다. 그래서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설교 시간에 졸고 계시는 분들은 모두 그 시험에 걸려 있는 분들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졸다가 갑자기 고개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 고개를 다친 분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접근해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아리 근방을 점성촌으로 만들어 관광촌을 만든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아리 고개를 중심해서 무당집이 70여 곳이 있다고 하는데 관에서 이것을 양성화 해서 아예 점성촌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놀라운 발상입니다. 그리고 대학, 그것도 기독교 학교에서 축제 때 굿판을 벌렸고 어느 여자 대학에서도 고사를 지내고 굿판을 벌렸습니다. 오늘 이 사회의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조타도 점성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 축제 마당에서 굿판을 벌리고 사주를 보고 고사를 지낸 것입니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같이 생각되지만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이같은 세속 풍조들이 젊은이들의 건전하 의식과 정서에 파고들고 있고 그 풍조들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외적 요인에 의해서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고 협박을 당하고 위협을 당했는데 오늘은 내적 요인들에 의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나를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세속의 풍조로부터 나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라는 말은 “완전무장”을 말합니다. 전투에 나가는 군인이 전신갑주를 입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힘이 있으려면 허리가 강해야 합니다. 허리는 몸의 상체와 하체를 연결해 주는 중심입니다. 사람이 허리가 약하면 전신을 쓸 수가 없습니다. 허리에 디스크가 생겨 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투에 나가는 군인이 육중한 허리띠를 띠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말씀의 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말씀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힘이 없으면 허리가 약한 사람처럼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유혹에 넘어가고 세속의 풍조에 휘말리고 의지가 약해 일을 포기하고 그럽니다. 또 말씀이 약하면 분별력이 없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자꾸만 인간적인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의 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2. 가슴에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가슴은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슴에는 심장이 있고 양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 양심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이 양심이 괴롭고 아프고 떳떳하지가 않습니다. 이 양심이 병들면 불행해집니다. 자신감을 잃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가슴에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을 보면 가슴을 갑옷고 철판으로 보호했습니다. 그래야 적의 화살이나 칼에 맞아도 가슴이 다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신앙인은 양심을 보호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이이 없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양심에 가책이 되면 사탄이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자꾸만 와서 고자질을 합니다. 그래서 양심을 괴롭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고 용기를 잃게 만듭니다. 조선실록 가운데 단종 이야기가 있습니다. 단종은 12살 때 아버지 문종이 죽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16살에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갑니다. 유배를 보낸 수양대군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단종을 죽여 가마니에 넣어 흐르는 강물에 수장을 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떠내려가게 합니다. 그의 넋까지도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직접 두눈으로 목격을 하고 나서야 그는 안심을 합니다. 이제는 조카의 넋까지 떠나가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치세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하루도 평안하지가 않습니다. 꿈난 꾸면 죽은 형수가 입에 칼을 물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밤마다 불안한 날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꿈에서 죽은 형수가 수양대군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만 그 자리가 썩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온몸이 썩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죄인은 따라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사탄이 와서 고발을 합니다. 양심을 괴롭게 만듭니다. 잠을 설치게 만듭니다. 용기를 잃게 만듭니다. 마음이 불화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3.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합니다. 산이나 개천이나 돌짝밭이나 가시밭 길을 가는 데는 이 신발이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군인은 육중한 군화를 신고 다닙니다. 그 신발만 신으면 세상 어디든지 마음놓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신발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늘 꽃밭만 거닐고 아스팔트 길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의 길도 가야 하고 유혹의 길도 가야 하고 배척의 길도 가야 합니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공의 길도 가지만 때로는 실패의 길도 가야 하고 눈물의 길도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길은 내 의지만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운명을 개척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두려움 없이 살아가게 하는 의지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와 있는 위인들은 한결같이 개척자의 길을 갔습니다. 운명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모두 어두운 오늘의 현실을 이기고 밝은 내일을 만들어 살아갔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이가 걸어간 길은 순전히 이 복음의 신을 신고 다닌 개척자의 길이었습니다. 그가 다닌 길을 보면 한결같이 수난의 길이었고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갔습니다. 어떻게 갔는가 하면 복음의신을 신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전했습니다.
4. 믿음의 방패와 성령님의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을 보면 한손에는 검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손에는 방패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했습니다. 오늘 데모대를 막는 경찰들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한손에는 방망이를 한손에는 방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방패로 날아오는 돌맹이를 막아 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이 방패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화전을 소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6절). 화전은 끝에 송진을 바른 화살을 말합니다. 옛날 전쟁 때는 그 화살 끝에 불을 붙여서 적군에게 쏘았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이 화살에 맞지 않기 위해서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이 화전을 사람들에게 쏘아 댑니다. 음란의 화살을 쏘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음란의 불길이 타오릅니다. 또 불화의 화살을 쏘아 댑니다. 그러면 조용하던 집안에 갑자기 불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탐욕의 화살도 쏘아 대고 질투의 화살도 쏘아 댑니다. 이 땅에 탐욕이 생기고 갈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이 사탄의 화전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님의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매번 양보만 하고 져 주고 죽어 주고 피하고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공격도 해야 합니다. 방패는 방어용 무기라고 하면 성령님의 검은 공격용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이 검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고난 후에 사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사탄을 이 성령님의 검으로 내리치십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물러 갑니다 그때 내리치지 않고 머뭇거리면 사탄은 달라붙습니다 뇌물이 올 때 이 칼로 내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당시는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것이 후일에 좋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여주인이 접근해 왔습니다. 그때 요셉이 이 검으로 내리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큰 화를 당했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형통의 길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머뭇거렸더라면 요셉은 영락없이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파계승이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어느 수도승이 열심히 도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여인이 올라와서 사랑을 해 달라고 조릅니다. 평생 수도한 수도승에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거절합니다. 그랬더니 사랑해 주지 않으면 목을 매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때 이 수도승이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 여인이 정말 목을 매서 죽으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이 수도승이 “여인을 먼저 구하고 보자”하고 사랑을 해 줍니다. 그래서 파계승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가장 절실한 때에 이 검이 등장해야 하는데 검이 무디거나 검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살면서 양보도 해야 하고 가능하면 져 주고 내가 먼저 죽어 주는 미덕도 발휘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검을 가지고 사정없이 내리칠 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의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5.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군인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철모를 씁니다.이 쓸모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게 해주고 화살을 피하게 해주며 비를 피하게 해주고 햇빛을 차단해 줍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그 무거운 철모를 쓰는 것입니다. 이 투구가 성도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이단 사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릇된 신앙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오염된 문화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풍조는 또 얼마나 세속적입니까 청소년들은 너무 순수해서 머리 속이 백지와 같습니다. 그런 머리속에는 넣어 주는 대로 100% 다 들어갑니다. 좋은 양식을 넣으면 그대로 들어갑니다. 나쁜 생각을 넣어 주면 그 나쁜 생각이 그대로 들어가서 나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변화도 빠르고 감동도 빠른 대신 탈선도 빠르고 오염되기도 쉽습니다. 청소년기의 신앙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6. 결론적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되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군인이 완전무장을 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무장을 했어도 잠을 자거나 방심을 하면 넘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유혹도 없고 탈선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방심하면 온갖 유혹이 다 들어옵니다. 뉴스위크 지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보니 매일 기도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54%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기도한다고 응답한 사람도 29%나 되고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 87%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건전한 나라입니다. 성경은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무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시급한 교훈의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같이 세속적인 시대에 말씀으로 분별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곧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 늘 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전투에서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입니다. 내 속에는 나말고 또 다른 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본성”입니다. 이 본성은 내 생각이나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를 거스르려 하고 나를 반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 내 속에는 편견이 들어 있고 나태함이 들어 있고 고집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것과 싸워야 합니다. 이 적이 상대하기가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세속”도 무서운 적입니다. 오늘은 이 세속의 물결이 너무나 거셉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이 세속의 풍조에 그냥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믿음에서 멀어지고 세속의 물결에 깊숙이 묻혀서 세상의 풍조를 따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커피숍에 가 보면 청소년들이 모여 앉아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워댑니다. 또 요즘에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담배를 피우는 풍조가 급속히 유행되고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여린 소녀들이 익숙하게 담배를 피워 댑니다.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금연하는 시대인데도 시대를 거스려 살고 있습니다. 또 어린아이들은 오락에 마음과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은 거의가 다 “다마고치”라고 하는 일본 전자오락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 시간에도 잠잘 때도 이 오락기를 붙들고 있습니다. 오늘의 문화는 사람들의 정신을 팔게 하고 정서를 마르게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탄”과의 싸움도 치열합니다. 사탄은 참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우리의 의지를 늘 시험합니다. 주일날이 되면 바쁜 일이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자꾸만 놀러 갈 생각을 마음속에 넣어 줍니다. TV프로에 연연하게 만들고 손님이 찾아오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도 도전해 옵니다. 성도들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교회까지 왔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설교 시간만 되면 졸음이 오게 만듭니다. 그래서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설교 시간에 졸고 계시는 분들은 모두 그 시험에 걸려 있는 분들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졸다가 갑자기 고개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 고개를 다친 분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접근해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아리 근방을 점성촌으로 만들어 관광촌을 만든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아리 고개를 중심해서 무당집이 70여 곳이 있다고 하는데 관에서 이것을 양성화 해서 아예 점성촌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놀라운 발상입니다. 그리고 대학, 그것도 기독교 학교에서 축제 때 굿판을 벌렸고 어느 여자 대학에서도 고사를 지내고 굿판을 벌렸습니다. 오늘 이 사회의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조타도 점성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 축제 마당에서 굿판을 벌리고 사주를 보고 고사를 지낸 것입니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같이 생각되지만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이같은 세속 풍조들이 젊은이들의 건전하 의식과 정서에 파고들고 있고 그 풍조들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외적 요인에 의해서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고 협박을 당하고 위협을 당했는데 오늘은 내적 요인들에 의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나를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세속의 풍조로부터 나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라는 말은 “완전무장”을 말합니다. 전투에 나가는 군인이 전신갑주를 입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힘이 있으려면 허리가 강해야 합니다. 허리는 몸의 상체와 하체를 연결해 주는 중심입니다. 사람이 허리가 약하면 전신을 쓸 수가 없습니다. 허리에 디스크가 생겨 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투에 나가는 군인이 육중한 허리띠를 띠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말씀의 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말씀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힘이 없으면 허리가 약한 사람처럼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유혹에 넘어가고 세속의 풍조에 휘말리고 의지가 약해 일을 포기하고 그럽니다. 또 말씀이 약하면 분별력이 없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자꾸만 인간적인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의 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2. 가슴에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가슴은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슴에는 심장이 있고 양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 양심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이 양심이 괴롭고 아프고 떳떳하지가 않습니다. 이 양심이 병들면 불행해집니다. 자신감을 잃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가슴에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을 보면 가슴을 갑옷고 철판으로 보호했습니다. 그래야 적의 화살이나 칼에 맞아도 가슴이 다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신앙인은 양심을 보호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이이 없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양심에 가책이 되면 사탄이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자꾸만 와서 고자질을 합니다. 그래서 양심을 괴롭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고 용기를 잃게 만듭니다. 조선실록 가운데 단종 이야기가 있습니다. 단종은 12살 때 아버지 문종이 죽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16살에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갑니다. 유배를 보낸 수양대군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단종을 죽여 가마니에 넣어 흐르는 강물에 수장을 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떠내려가게 합니다. 그의 넋까지도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직접 두눈으로 목격을 하고 나서야 그는 안심을 합니다. 이제는 조카의 넋까지 떠나가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치세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하루도 평안하지가 않습니다. 꿈난 꾸면 죽은 형수가 입에 칼을 물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밤마다 불안한 날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꿈에서 죽은 형수가 수양대군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만 그 자리가 썩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온몸이 썩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죄인은 따라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사탄이 와서 고발을 합니다. 양심을 괴롭게 만듭니다. 잠을 설치게 만듭니다. 용기를 잃게 만듭니다. 마음이 불화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3.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합니다. 산이나 개천이나 돌짝밭이나 가시밭 길을 가는 데는 이 신발이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군인은 육중한 군화를 신고 다닙니다. 그 신발만 신으면 세상 어디든지 마음놓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신발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늘 꽃밭만 거닐고 아스팔트 길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의 길도 가야 하고 유혹의 길도 가야 하고 배척의 길도 가야 합니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공의 길도 가지만 때로는 실패의 길도 가야 하고 눈물의 길도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길은 내 의지만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운명을 개척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두려움 없이 살아가게 하는 의지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와 있는 위인들은 한결같이 개척자의 길을 갔습니다. 운명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모두 어두운 오늘의 현실을 이기고 밝은 내일을 만들어 살아갔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이가 걸어간 길은 순전히 이 복음의 신을 신고 다닌 개척자의 길이었습니다. 그가 다닌 길을 보면 한결같이 수난의 길이었고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갔습니다. 어떻게 갔는가 하면 복음의신을 신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전했습니다.
4. 믿음의 방패와 성령님의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을 보면 한손에는 검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손에는 방패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했습니다. 오늘 데모대를 막는 경찰들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한손에는 방망이를 한손에는 방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방패로 날아오는 돌맹이를 막아 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이 방패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화전을 소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6절). 화전은 끝에 송진을 바른 화살을 말합니다. 옛날 전쟁 때는 그 화살 끝에 불을 붙여서 적군에게 쏘았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이 화살에 맞지 않기 위해서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이 화전을 사람들에게 쏘아 댑니다. 음란의 화살을 쏘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음란의 불길이 타오릅니다. 또 불화의 화살을 쏘아 댑니다. 그러면 조용하던 집안에 갑자기 불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탐욕의 화살도 쏘아 대고 질투의 화살도 쏘아 댑니다. 이 땅에 탐욕이 생기고 갈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이 사탄의 화전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님의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매번 양보만 하고 져 주고 죽어 주고 피하고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공격도 해야 합니다. 방패는 방어용 무기라고 하면 성령님의 검은 공격용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이 검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고난 후에 사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사탄을 이 성령님의 검으로 내리치십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물러 갑니다 그때 내리치지 않고 머뭇거리면 사탄은 달라붙습니다 뇌물이 올 때 이 칼로 내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당시는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것이 후일에 좋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여주인이 접근해 왔습니다. 그때 요셉이 이 검으로 내리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큰 화를 당했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형통의 길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머뭇거렸더라면 요셉은 영락없이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파계승이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어느 수도승이 열심히 도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여인이 올라와서 사랑을 해 달라고 조릅니다. 평생 수도한 수도승에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거절합니다. 그랬더니 사랑해 주지 않으면 목을 매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때 이 수도승이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 여인이 정말 목을 매서 죽으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이 수도승이 “여인을 먼저 구하고 보자”하고 사랑을 해 줍니다. 그래서 파계승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가장 절실한 때에 이 검이 등장해야 하는데 검이 무디거나 검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살면서 양보도 해야 하고 가능하면 져 주고 내가 먼저 죽어 주는 미덕도 발휘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검을 가지고 사정없이 내리칠 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의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5.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군인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철모를 씁니다.이 쓸모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게 해주고 화살을 피하게 해주며 비를 피하게 해주고 햇빛을 차단해 줍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그 무거운 철모를 쓰는 것입니다. 이 투구가 성도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이단 사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릇된 신앙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오염된 문화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풍조는 또 얼마나 세속적입니까 청소년들은 너무 순수해서 머리 속이 백지와 같습니다. 그런 머리속에는 넣어 주는 대로 100% 다 들어갑니다. 좋은 양식을 넣으면 그대로 들어갑니다. 나쁜 생각을 넣어 주면 그 나쁜 생각이 그대로 들어가서 나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변화도 빠르고 감동도 빠른 대신 탈선도 빠르고 오염되기도 쉽습니다. 청소년기의 신앙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6. 결론적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되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군인이 완전무장을 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무장을 했어도 잠을 자거나 방심을 하면 넘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유혹도 없고 탈선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방심하면 온갖 유혹이 다 들어옵니다. 뉴스위크 지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보니 매일 기도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54%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기도한다고 응답한 사람도 29%나 되고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 87%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건전한 나라입니다. 성경은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무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시급한 교훈의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같이 세속적인 시대에 말씀으로 분별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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