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다운 가정 (I) (엡6:1-4)
본문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별히 가정의 달을 제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에게 그만큼 가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가정 안에서 태어납니다. 가정 안에서 자라고 가정 안에서 살아갑니다. 또한 이 가정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을 꿈꿉니다. 가정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바로 [홈 스위트 홈]이란 노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노래를 지은 존 하워드 펜이란 사람이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가정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참된 행복을 찾아 세계 이곳 저곳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에서 동전 한푼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때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늦었지만 그제 서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절실한 깨달음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홈 스위트 홈! 오 행복한 가정이여! 가정을 사무치게 그리는 노래인 것입니다. 가정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을 세우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훈은 "몽유병자의 일기"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정을 꾸밀 생각도 하지 말라! 조그마한 지옥 하나가 네 손으로 건설될 뿐이다!" 가정을 가정답게 세우지 못하고, 가정답게 유지하지 못하면 그 가정이 바로 지옥과 같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가정 때문에 속 썩고, 눈물 흘리고, 한을 품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정을 잘 가꿔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봉독해 주신 본문 말씀은 가정다운 가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두 주에 걸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기 때문에 자녀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자녀 교육의 성경적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이대로만 자녀를 키우면 자녀문제로 속 썩는 일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자녀 때문에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고 우선 본문 4절을 보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노엽게 하다'라는 말은 성경 헬라어 원어로는 '파로기오조'입니다. 이 말의 뜻은 '화나게 만들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자녀들이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것을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라고 번역했습니다. 결국 자녀를 대하는 자세로써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 마음에 이런 상처가 쌓여 가면 자녀들이 마음으로 부모를 존경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효도하고, 사회적 규범 때문에 마지못해 부모에게 할 도리를 할 뿐입니다. 부모들이 때로 그런 말을 합니다. "내가 너한테 못한 것이 무엇이냐 먹이지를 못했느냐 입히지를 못했느냐 공부를 못시켰느냐 용돈을 적게 주었느냐 다른 집 얘들 같으면 너 같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로서 자기의 도리를 다했기 때문에 마땅히 효도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물질적으로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가르쳤을 지는 몰라도 그 아이들 마음에는 상처가 많습니다. 아빠 때문에 생긴 상처, 엄마 때문에 생긴 상처로 아이들의 마음은 멍들대로 멍들어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왜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요
첫째로, 부모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부모들 생각에서 말하고, 부모들 입장에서 행동합니다. 아이들의 입장도 있고, 아이들 생각도 있고, 아이들 꿈도 있다는 것을 무시해 버립니다. 일방적으로 말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합니다. 아이들의 자존심,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쌓입니다. '우리 아빠하고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우리 엄마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마음을 닫고 맙니다. 사실 아이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더 바라고 원하는 것을 아빠하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고,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돈을 주려하기 보다는 마음을 주려 하시기 바랍니다. 재산을 물려 주려하시기 보다는 사랑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감정적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의 화풀이를 자녀들에게 합니다. 어떤 분은 술 먹고 들어오면 한 밤중이라도 자녀들을 집합시킵니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횡설수설합니다. 한 소릴 또 하고, 한 소릴 또 합니다. 어떤 분은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대합니다. 자기가 기분이 좋으면 야단칠 것도 치지 않고, 기분이 나쁘면 야단 치지 않을 것도 야단을 칩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잘 압니다. '우리 아빠는 괜히 우리한테 야단이야, 우리 엄마는 괜히 우리한테 신경질이야.' 아빠와 엄마가 야단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빠 엄마가 멋대로 일관성없이 자기들을 대한다는 것을 잡니다. 이럴 때 아이들 마음에 상처가 쌓입니다. 이제 아이들이 야단 맞으면서도 자기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아빠 엄마가 자기들한테 화풀이한다고 생각합니다. 야단이 먹혀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대할 때 마음을 진정하고 만나시기 바랍니다. 화가 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이들을 만나지 마십시오. 늘 평안한 마음에서 만나십시오.
셋째로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합니다.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아이들은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집을 줄여서라도 아이 공부시키려하고, 빗을 지면서라도 아이 유학 보내려 하고, 심지어 파출부를 해서라도 아이 과외를 시키려 듭니다. 다른 나라 부모들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육열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을 하나의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잘 키워서 자기 사업 물려받게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 잘 커서 노년에 아이들 덕을 보려고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울 때 자기의 못 이룬 꿈을 자식이 이뤄주기 바랍니다. 자기가 되보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던 것을 자식이 되 주기 바랍니다. 자기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자식이 이뤄주기를 바랍니다. 제 친구 하나는 엄마가 자기 태어날 때부터 서원을 했답니다. 주의 종이 되게 하겠다고. 자라면서 늘 너는 주의 종이 되야 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별명도 강 목사라 불렀답니다. 이것이 평생 짐이 됐습니다. 신학교에 오긴 왔는데 하나님의 소명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어머니 서원 때문에 온 것입니다. 신학교 3년 내내 고민하고 갈등했습니다. 끝내 미국에 유학 가서 목회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아이들 마음에 또 하나 상처가 됩니다. 아이들의 꿈을 존중해 주십시오. 아이들의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십시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본문 4절을 보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방법으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교양으로 양육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교양으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이 헬라어 원문에는 파이데이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한 마디로 훈련입니다. 요즘 초등학생 중에 심지어 중학생 가운데도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답니다. 부모들이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젓가락질이 쉬워 보여도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강제성입니다. 더 쉽게 말해서 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것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군에 입대하면 먼저 신병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훈련소에서 하라는 것 가운데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 힘들고, 재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안 할 수 없습니다. 옛날 말로 기합을 주기 때문입니다. 기합 받지 않으려고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싫은 것 야단쳐서라고 시켜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매도 들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이 헬라어 원문에는 누테시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교훈입니다. 교훈에는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설득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쉽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참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할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그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주거나, 신경질을 내며 머리를 쥐어박아서는 않됩니다.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본문 말씀에는 자녀 교육의 두 가지 방법을 말씀합니다. 하나는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문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어떻게 조화롭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는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승자형입니다. 아이들에게 늘 이기는 유형을 말합니다. 이 부모는 훈련 위주로 아이들을 교육합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합니다. 권위적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합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범생은 될 수 있습니다. 착하고 예의바르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잘 자랄 수는 있습니다. 학교 성적은 좋을 수는 있습니다. 학벌은 좋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이들은 창의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라는 것만 하고 자랐기 때문에 자기만의 은사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잘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회에 기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는 패자형입니다. 아이들에게 늘 지는 유형입니다. 이 부모는 아이들을 교훈 위주로 교육합니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갑니다. 오냐오냐하면서 아이를 키웁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감은 있을 수 있고, 창의성은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이들은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른도 몰라보고, 가족도 몰라보고, 그저 자기만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어려움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견뎌낼 힘이 없습니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셋째가 무승부형입니다. 아이들과 약속을 맺고, 서로 그 약속을 지켜 가는 유형입니다. 여기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승부형입니다. 이 부모는 훈련과 교훈을 적절하게 배분할 줄 압니다. 교훈을 통해서 적절하게 아이와 일정한 약속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훈련을 통해서 지켜가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용돈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승자형은 아빠나 엄마가 일방적으로 액수를 정해서 줍니다. 그리고 어디 어디에 쓰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합니다. 패자형은 아이가 달라는 대로 돈을 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둡니다. 무승부형은 우선 아이의 요구를 듣습니다.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부모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대화로 적정한 액수를 정합니다. 그리고 사용처도 일정한 범위를 대화로 정합니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아이에게 일임합니다. 부모가 먼저 이 약속을 잘 지킵니다. 그리고 아이가 약속을 잘 지키는 지를 확인합니다. 만일 약속한 사용처 이외의 좋지 않은 곳에 썼다면 따끔하게 벌을 주어 바로 잡습니다. 교육학자들에 의하면 어려서는 훈련과 교훈의 비율을 8:2또는 7:3에서 시작하라고 합니다. 자라면서 점점 이 비율을 낮추어 가고, 초등학교 때는 5:5정도, 중 고등학교에 가면 3:7 또는 2:8로 하라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그런데 본문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주의 교양과 훈계라는 말입니다. 특히 '주의'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교육할 때 삼아야 할 모델에 관한 말씀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자녀를 교육할 때 주님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처럼 가르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지식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지식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교육하되 하나님을 가르치고, 믿음을 심어주십시오. 돈보다, 명예보다, 권력보다 중요한 것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성공한 자녀교육은 일류대학 나오고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교육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언제나 본을 보이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고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늘 하시는 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나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의 신앙교육을 할 때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 하고,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자녀의 믿음은 그 부모를 닮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본, 예배드리는 본, 봉사하는 본, 헌금하는 본, 전도하는 본, 성경 읽는 본 본을 보이는 교육이야말로 성공한 그리스도의 신앙교육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노래를 지은 존 하워드 펜이란 사람이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가정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참된 행복을 찾아 세계 이곳 저곳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에서 동전 한푼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때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늦었지만 그제 서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절실한 깨달음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홈 스위트 홈! 오 행복한 가정이여! 가정을 사무치게 그리는 노래인 것입니다. 가정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을 세우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훈은 "몽유병자의 일기"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정을 꾸밀 생각도 하지 말라! 조그마한 지옥 하나가 네 손으로 건설될 뿐이다!" 가정을 가정답게 세우지 못하고, 가정답게 유지하지 못하면 그 가정이 바로 지옥과 같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가정 때문에 속 썩고, 눈물 흘리고, 한을 품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정을 잘 가꿔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 가정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봉독해 주신 본문 말씀은 가정다운 가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두 주에 걸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기 때문에 자녀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자녀 교육의 성경적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이대로만 자녀를 키우면 자녀문제로 속 썩는 일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자녀 때문에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고 우선 본문 4절을 보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노엽게 하다'라는 말은 성경 헬라어 원어로는 '파로기오조'입니다. 이 말의 뜻은 '화나게 만들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자녀들이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것을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라고 번역했습니다. 결국 자녀를 대하는 자세로써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 마음에 이런 상처가 쌓여 가면 자녀들이 마음으로 부모를 존경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효도하고, 사회적 규범 때문에 마지못해 부모에게 할 도리를 할 뿐입니다. 부모들이 때로 그런 말을 합니다. "내가 너한테 못한 것이 무엇이냐 먹이지를 못했느냐 입히지를 못했느냐 공부를 못시켰느냐 용돈을 적게 주었느냐 다른 집 얘들 같으면 너 같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로서 자기의 도리를 다했기 때문에 마땅히 효도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물질적으로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가르쳤을 지는 몰라도 그 아이들 마음에는 상처가 많습니다. 아빠 때문에 생긴 상처, 엄마 때문에 생긴 상처로 아이들의 마음은 멍들대로 멍들어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왜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요
첫째로, 부모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부모들 생각에서 말하고, 부모들 입장에서 행동합니다. 아이들의 입장도 있고, 아이들 생각도 있고, 아이들 꿈도 있다는 것을 무시해 버립니다. 일방적으로 말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합니다. 아이들의 자존심,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쌓입니다. '우리 아빠하고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우리 엄마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마음을 닫고 맙니다. 사실 아이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더 바라고 원하는 것을 아빠하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고,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돈을 주려하기 보다는 마음을 주려 하시기 바랍니다. 재산을 물려 주려하시기 보다는 사랑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감정적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의 화풀이를 자녀들에게 합니다. 어떤 분은 술 먹고 들어오면 한 밤중이라도 자녀들을 집합시킵니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횡설수설합니다. 한 소릴 또 하고, 한 소릴 또 합니다. 어떤 분은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대합니다. 자기가 기분이 좋으면 야단칠 것도 치지 않고, 기분이 나쁘면 야단 치지 않을 것도 야단을 칩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잘 압니다. '우리 아빠는 괜히 우리한테 야단이야, 우리 엄마는 괜히 우리한테 신경질이야.' 아빠와 엄마가 야단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빠 엄마가 멋대로 일관성없이 자기들을 대한다는 것을 잡니다. 이럴 때 아이들 마음에 상처가 쌓입니다. 이제 아이들이 야단 맞으면서도 자기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아빠 엄마가 자기들한테 화풀이한다고 생각합니다. 야단이 먹혀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대할 때 마음을 진정하고 만나시기 바랍니다. 화가 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이들을 만나지 마십시오. 늘 평안한 마음에서 만나십시오.
셋째로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합니다.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아이들은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집을 줄여서라도 아이 공부시키려하고, 빗을 지면서라도 아이 유학 보내려 하고, 심지어 파출부를 해서라도 아이 과외를 시키려 듭니다. 다른 나라 부모들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육열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을 하나의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잘 키워서 자기 사업 물려받게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 잘 커서 노년에 아이들 덕을 보려고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울 때 자기의 못 이룬 꿈을 자식이 이뤄주기 바랍니다. 자기가 되보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던 것을 자식이 되 주기 바랍니다. 자기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자식이 이뤄주기를 바랍니다. 제 친구 하나는 엄마가 자기 태어날 때부터 서원을 했답니다. 주의 종이 되게 하겠다고. 자라면서 늘 너는 주의 종이 되야 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별명도 강 목사라 불렀답니다. 이것이 평생 짐이 됐습니다. 신학교에 오긴 왔는데 하나님의 소명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어머니 서원 때문에 온 것입니다. 신학교 3년 내내 고민하고 갈등했습니다. 끝내 미국에 유학 가서 목회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아이들 마음에 또 하나 상처가 됩니다. 아이들의 꿈을 존중해 주십시오. 아이들의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십시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본문 4절을 보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방법으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교양으로 양육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교양으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이 헬라어 원문에는 파이데이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한 마디로 훈련입니다. 요즘 초등학생 중에 심지어 중학생 가운데도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답니다. 부모들이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젓가락질이 쉬워 보여도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강제성입니다. 더 쉽게 말해서 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것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군에 입대하면 먼저 신병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훈련소에서 하라는 것 가운데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 힘들고, 재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안 할 수 없습니다. 옛날 말로 기합을 주기 때문입니다. 기합 받지 않으려고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싫은 것 야단쳐서라고 시켜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매도 들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이 헬라어 원문에는 누테시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교훈입니다. 교훈에는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설득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쉽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참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할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그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주거나, 신경질을 내며 머리를 쥐어박아서는 않됩니다.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본문 말씀에는 자녀 교육의 두 가지 방법을 말씀합니다. 하나는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문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어떻게 조화롭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는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승자형입니다. 아이들에게 늘 이기는 유형을 말합니다. 이 부모는 훈련 위주로 아이들을 교육합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합니다. 권위적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합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범생은 될 수 있습니다. 착하고 예의바르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잘 자랄 수는 있습니다. 학교 성적은 좋을 수는 있습니다. 학벌은 좋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이들은 창의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라는 것만 하고 자랐기 때문에 자기만의 은사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잘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회에 기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는 패자형입니다. 아이들에게 늘 지는 유형입니다. 이 부모는 아이들을 교훈 위주로 교육합니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갑니다. 오냐오냐하면서 아이를 키웁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감은 있을 수 있고, 창의성은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이들은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른도 몰라보고, 가족도 몰라보고, 그저 자기만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어려움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견뎌낼 힘이 없습니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셋째가 무승부형입니다. 아이들과 약속을 맺고, 서로 그 약속을 지켜 가는 유형입니다. 여기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승부형입니다. 이 부모는 훈련과 교훈을 적절하게 배분할 줄 압니다. 교훈을 통해서 적절하게 아이와 일정한 약속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훈련을 통해서 지켜가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용돈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승자형은 아빠나 엄마가 일방적으로 액수를 정해서 줍니다. 그리고 어디 어디에 쓰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합니다. 패자형은 아이가 달라는 대로 돈을 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둡니다. 무승부형은 우선 아이의 요구를 듣습니다.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부모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대화로 적정한 액수를 정합니다. 그리고 사용처도 일정한 범위를 대화로 정합니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아이에게 일임합니다. 부모가 먼저 이 약속을 잘 지킵니다. 그리고 아이가 약속을 잘 지키는 지를 확인합니다. 만일 약속한 사용처 이외의 좋지 않은 곳에 썼다면 따끔하게 벌을 주어 바로 잡습니다. 교육학자들에 의하면 어려서는 훈련과 교훈의 비율을 8:2또는 7:3에서 시작하라고 합니다. 자라면서 점점 이 비율을 낮추어 가고, 초등학교 때는 5:5정도, 중 고등학교에 가면 3:7 또는 2:8로 하라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그런데 본문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주의 교양과 훈계라는 말입니다. 특히 '주의'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교육할 때 삼아야 할 모델에 관한 말씀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자녀를 교육할 때 주님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처럼 가르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지식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지식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교육하되 하나님을 가르치고, 믿음을 심어주십시오. 돈보다, 명예보다, 권력보다 중요한 것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성공한 자녀교육은 일류대학 나오고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교육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언제나 본을 보이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고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늘 하시는 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나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의 신앙교육을 할 때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 하고,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자녀의 믿음은 그 부모를 닮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본, 예배드리는 본, 봉사하는 본, 헌금하는 본, 전도하는 본, 성경 읽는 본 본을 보이는 교육이야말로 성공한 그리스도의 신앙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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