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하지 않는 믿음 (잠4:20-27,엡4:13-16)
본문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유혹에 약한 존재임을 아셨기에 그렇게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경의 처음 책인 창세기부터 인간은 얼마나 유혹에 약한 존재인가를 적 고 있습니다. 최초의 여성인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먹지 말아야 할 선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아담도 함께 그것을 먹었던 것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 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과장 광고나 허위 광고들이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처럼, 뱀은 "절대 로 죽지 않는다"는 과장 광고와 허위 광고로 하와를 유혹하였던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그런 광고에 현혹되면 실제로 그 물건이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하와도 뱀의 유혹을 받은 후 그 금단의 열매를 다시 한번 바라보니 전과 달 리 보였던 것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 시옵고"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어떤 시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유혹은 어떤 것일까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단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단 신앙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였기 때문에 바울이나 요한 서신에 이에 대하여 경계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단들이 있어서 우리를 현혹하고 있기는 하지만, 요 즈음은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다함께 이단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그런 유혹에는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안동교회처럼 차분한 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즈음 우리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은 이단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TV나 신문의 광고입니다. 집에 들어 와서나 거리를 다닐 때나 우리는 어디서나 광고에 접하게 됩니다. 높은 빌 딩 옥상에 설치된 현란한 네온사인이나 멀티비전으로부터 시작하여 건물마 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현판들, 그리고 지하철을 도배한 광고들에 이르기까 지 우리의 삶은 광고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 구도 이 광고의 무차별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이 광고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준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광고는 단순히 우리에게 정보를 주는데 머물지 않고, 기업이 생산한 물품들을 구입 하도록 우리 속에 욕망을 불러일으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광고는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욕망을 자극하여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 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욕망을 따라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있 어야 되는데, 우리는 이런 욕망을 충족시킬만한 경제 능력이 늘 부족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쏟아지는 광고는 눌러놓은 우리의 욕망을 계 속 자극하여 더 참을 수 없게끔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농촌의 농가부채가 증가된 것은 농촌에 TV가 보급되면서라고 합니다. 텔 레비전이 보여주는 화려한 삶이나 그것이 쏟아내는 광고에 자극된 농민들이 도시 생활 못지 않은 주거환경을 갖추려다 보니 자연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비가 늘면서 농사를 지어서는 그 소비를 충족시 킬 수 있는 소득을 올릴 수가 없기에,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농촌을 떠 나 도시로 몰려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농촌은 노인들만 남게 되고 도시는 점점 더 커지면서 많은 도시 빈민들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커진 도시는 광고 시장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습니다. 대량 소비가 가능하게 된 거대 도시를 공략하기 위하여 광고주들은 더욱 그 광고 의 분량을 늘리고, 소비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저는 가능하면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합니다만, 길거리에 수없이 들어선 다양한 음식점들은 우리로 하 여금 집에서보다는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 직장 인들은 아침에 일찍 나가기 때문에 아침밥은 거의 먹지 않고, 점심은 직장 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회식이나 사람을 만나는 일 때문에 바깥에서 먹고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그런가 하면 안 먹어도 될 기호 식품들을 자주 사먹 게 되면서 우리의 입맛도 변할 뿐 아니라 결국은 건강도 헤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는 우리의 가치관까지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소비능력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고급 백화점에서 고급 브랜드의 상품을 얼마나 살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값이 매겨 지는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얼마나 고급스러운 차에 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의 인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 고 그가 얼마나 소비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 라지는 것입니다. 값을 싸게 매기면 팔리지 않던 물건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매겨 놓으면 팔려 나가는 것도 소비 능력을 과시하려는 현대인의 심 리를 잘 이용한 것입니다. 이런 소비 능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은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 여 돈을 벌려고 합니다. 한참은 땅 투기가 성행하여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이 많았고, 주식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기도 하였습니다. 그것도 저것도 안 된 사람들 가운데는 다른 사람을 속여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경제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온갖 부정과 불의가 자 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건실하게 일하고 벌어서 저축하면서 근면하게 사는 사람은 오히려 무능력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지 못한 채 마구 돈을 쓰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는 일상 생활 속에 불만을 낳게 하 고, 과다 소비를 촉진하게 되어 결국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며, 환경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욕망을 잠재우며, 환경을 보전하고, 이 땅에 정의로운 질서를 이룩하는 일은 오히려 광고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지구와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갈 목소리는 날마다 점점 더 커지는 반면에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인간을 구원할 목소리는 전혀 들 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현대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먹어도 좋은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현대 시장경제는 이 구별을 없애버리고 아무거나 마구 먹게끔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질서를 깨트린 것입니다. 무한 생산 무한 소비는 결국 파멸을 불러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 을 것이라고 하셨는데도, 사탄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호언장담을 하면 서 계속해서 우리의 욕망을 북돋우는 것입니다. 1993년 3월 '타임'지에 전면 광고가 실렸는데, 광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광고였습니다. "대통령 각하, 경제 성장의 엔진이라고 볼 수 있는 광고의 역할에 유념해 주십시오. 광고는 자본을 증식시키며 고용을 창출하며 생산 을 자극합니다. 고용에 의해 과세 대상 소득이 증가하며, 판매가 늘면 소비 세의 증수와 연결됩니다. 광고에의 조성은 곧 성장에의 조성입니다."우리 나라 기업들도 주장하기를 우리의 광고 수준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는 것 입니다. 이제부터 광고시장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계속해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여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하게 만들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소비를 촉진하여 이 지구의 생명력을 소진시켜 결국은 죽음 에 이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백혈병의 증상을 들어보니 처음에는 백혈구의 수가 계속 증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정상의 100배까지 증가를 하다가 마침내 영의 상태로 떨어지고 결국은 생명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지금의 시장경제도 우리의 소비력 을 계속 증가시켜 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결국 모든 것이 소진되어 버 린 영의 상태로 떨어지게 될 것이고 그 때 지구는 파멸의 밤을 맞게 될 것 입니다. 마음을 지키라 오늘 읽어드린 잠언 말씀에 보면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 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비문화 를 촉진시키는 유혹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우리의 신 앙의 과제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14절에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린 아이 상태에 머물러 서는 안되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잠 언은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눈으로는 앞만 똑바로 보고, 시선은 앞으로만 곧게 두어라. 발로 디딜 곳을 잘 살펴라. 네 모든 길이 안전할 것이다.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네 발길을 끊어 버려라." 잠언 4:25-27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앞만 똑바로 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똑바로 보고 그분만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시장경제의 모든 유혹을 떨쳐버리고 우리의 눈 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비우시고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로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서 그가 사신대로 우리도 가난하게 겸손하게 섬기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유혹에 약한 줄 아시고 우리 홀로 있게 하시 지 않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성령님을 영접하여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치심과 그의 인도를 바르게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 이 되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우리가 성취할 목표를 그리스도에게 두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13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1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이르기 위하여 그가 전에 자랑스럽게 생각하 였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쓰레기처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도달하려면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세상을 향한 욕망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부정 없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도달할 수 없 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 자기 부정은 현대 시장경제에 익숙하여 있는 우리의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며, 소비문화에 젖어 무심히 살아가던 삶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면서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자기 부정입니다. 이런 절제와 절약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운동은 참으로 미미하기 짝이 없어서 무차별하게 쏟아지는 광고에 대항하여 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 도 이 거대한 소비문화에 제동을 걸고 여기에 생명의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는 세력은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 단체들입니다. 건전한 소비자 운동 을 비롯하여 환경보전 운동 등이 바로 거대한 시장경제에 대항하여 하나님 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운동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정신을 차리고 소비문화의 부조리와 불의와 그 생명을 파괴하는 악마성을 보면서 생명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비록 작 은 세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이라고 믿을 때 우리가 발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소비문화는 사탄의 계략 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하게 만들었던 사탄의 유혹이 오늘 우리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런 사 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 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길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사탄의 유혹과 그 계 략은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동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려면 그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성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겸손과 그 가난을 배워서 물질문명을 넘어선 영적 세계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전통적인 신앙운동만 가지고는 오늘의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한 물질문명과 대항해 갈 수 없습니다. 소비자주권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 하며, 환경 보전 운동에 실천적으로 참여하며, 매스 미디어를 분석하고 비 판하는 연구활동을 전개하여 가야 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교회의 선교적 과제입니다. 사탄은 그 시대를 따라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하면서 우리를 공격해 오는 데 교회는 안이하게 한 가지 전략만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교회들조차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어 성장제일주의에 몰두한 나머지 제대로 그 전략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역할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시장경제의 허구성과 그 악마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성령님 충만함을 통한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의 검으로 무장하여 악마와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자라서 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참여 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 시옵고"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어떤 시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유혹은 어떤 것일까요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단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단 신앙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였기 때문에 바울이나 요한 서신에 이에 대하여 경계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단들이 있어서 우리를 현혹하고 있기는 하지만, 요 즈음은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다함께 이단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그런 유혹에는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안동교회처럼 차분한 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즈음 우리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은 이단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TV나 신문의 광고입니다. 집에 들어 와서나 거리를 다닐 때나 우리는 어디서나 광고에 접하게 됩니다. 높은 빌 딩 옥상에 설치된 현란한 네온사인이나 멀티비전으로부터 시작하여 건물마 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현판들, 그리고 지하철을 도배한 광고들에 이르기까 지 우리의 삶은 광고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 구도 이 광고의 무차별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이 광고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준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광고는 단순히 우리에게 정보를 주는데 머물지 않고, 기업이 생산한 물품들을 구입 하도록 우리 속에 욕망을 불러일으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광고는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욕망을 자극하여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 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욕망을 따라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있 어야 되는데, 우리는 이런 욕망을 충족시킬만한 경제 능력이 늘 부족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쏟아지는 광고는 눌러놓은 우리의 욕망을 계 속 자극하여 더 참을 수 없게끔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농촌의 농가부채가 증가된 것은 농촌에 TV가 보급되면서라고 합니다. 텔 레비전이 보여주는 화려한 삶이나 그것이 쏟아내는 광고에 자극된 농민들이 도시 생활 못지 않은 주거환경을 갖추려다 보니 자연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비가 늘면서 농사를 지어서는 그 소비를 충족시 킬 수 있는 소득을 올릴 수가 없기에,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농촌을 떠 나 도시로 몰려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농촌은 노인들만 남게 되고 도시는 점점 더 커지면서 많은 도시 빈민들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커진 도시는 광고 시장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습니다. 대량 소비가 가능하게 된 거대 도시를 공략하기 위하여 광고주들은 더욱 그 광고 의 분량을 늘리고, 소비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저는 가능하면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합니다만, 길거리에 수없이 들어선 다양한 음식점들은 우리로 하 여금 집에서보다는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 직장 인들은 아침에 일찍 나가기 때문에 아침밥은 거의 먹지 않고, 점심은 직장 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회식이나 사람을 만나는 일 때문에 바깥에서 먹고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그런가 하면 안 먹어도 될 기호 식품들을 자주 사먹 게 되면서 우리의 입맛도 변할 뿐 아니라 결국은 건강도 헤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는 우리의 가치관까지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소비능력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고급 백화점에서 고급 브랜드의 상품을 얼마나 살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값이 매겨 지는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얼마나 고급스러운 차에 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의 인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 고 그가 얼마나 소비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 라지는 것입니다. 값을 싸게 매기면 팔리지 않던 물건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매겨 놓으면 팔려 나가는 것도 소비 능력을 과시하려는 현대인의 심 리를 잘 이용한 것입니다. 이런 소비 능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은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 여 돈을 벌려고 합니다. 한참은 땅 투기가 성행하여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이 많았고, 주식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기도 하였습니다. 그것도 저것도 안 된 사람들 가운데는 다른 사람을 속여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경제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온갖 부정과 불의가 자 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건실하게 일하고 벌어서 저축하면서 근면하게 사는 사람은 오히려 무능력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지 못한 채 마구 돈을 쓰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는 일상 생활 속에 불만을 낳게 하 고, 과다 소비를 촉진하게 되어 결국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며, 환경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욕망을 잠재우며, 환경을 보전하고, 이 땅에 정의로운 질서를 이룩하는 일은 오히려 광고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지구와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갈 목소리는 날마다 점점 더 커지는 반면에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인간을 구원할 목소리는 전혀 들 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현대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먹어도 좋은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현대 시장경제는 이 구별을 없애버리고 아무거나 마구 먹게끔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질서를 깨트린 것입니다. 무한 생산 무한 소비는 결국 파멸을 불러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 을 것이라고 하셨는데도, 사탄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호언장담을 하면 서 계속해서 우리의 욕망을 북돋우는 것입니다. 1993년 3월 '타임'지에 전면 광고가 실렸는데, 광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광고였습니다. "대통령 각하, 경제 성장의 엔진이라고 볼 수 있는 광고의 역할에 유념해 주십시오. 광고는 자본을 증식시키며 고용을 창출하며 생산 을 자극합니다. 고용에 의해 과세 대상 소득이 증가하며, 판매가 늘면 소비 세의 증수와 연결됩니다. 광고에의 조성은 곧 성장에의 조성입니다."우리 나라 기업들도 주장하기를 우리의 광고 수준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는 것 입니다. 이제부터 광고시장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계속해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여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하게 만들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소비를 촉진하여 이 지구의 생명력을 소진시켜 결국은 죽음 에 이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백혈병의 증상을 들어보니 처음에는 백혈구의 수가 계속 증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정상의 100배까지 증가를 하다가 마침내 영의 상태로 떨어지고 결국은 생명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지금의 시장경제도 우리의 소비력 을 계속 증가시켜 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결국 모든 것이 소진되어 버 린 영의 상태로 떨어지게 될 것이고 그 때 지구는 파멸의 밤을 맞게 될 것 입니다. 마음을 지키라 오늘 읽어드린 잠언 말씀에 보면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 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비문화 를 촉진시키는 유혹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우리의 신 앙의 과제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14절에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린 아이 상태에 머물러 서는 안되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잠 언은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눈으로는 앞만 똑바로 보고, 시선은 앞으로만 곧게 두어라. 발로 디딜 곳을 잘 살펴라. 네 모든 길이 안전할 것이다.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네 발길을 끊어 버려라." 잠언 4:25-27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앞만 똑바로 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똑바로 보고 그분만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시장경제의 모든 유혹을 떨쳐버리고 우리의 눈 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비우시고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로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서 그가 사신대로 우리도 가난하게 겸손하게 섬기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유혹에 약한 줄 아시고 우리 홀로 있게 하시 지 않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성령님을 영접하여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치심과 그의 인도를 바르게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 이 되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우리가 성취할 목표를 그리스도에게 두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13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1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이르기 위하여 그가 전에 자랑스럽게 생각하 였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쓰레기처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도달하려면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세상을 향한 욕망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부정 없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도달할 수 없 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 자기 부정은 현대 시장경제에 익숙하여 있는 우리의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며, 소비문화에 젖어 무심히 살아가던 삶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면서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자기 부정입니다. 이런 절제와 절약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운동은 참으로 미미하기 짝이 없어서 무차별하게 쏟아지는 광고에 대항하여 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 도 이 거대한 소비문화에 제동을 걸고 여기에 생명의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는 세력은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 단체들입니다. 건전한 소비자 운동 을 비롯하여 환경보전 운동 등이 바로 거대한 시장경제에 대항하여 하나님 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운동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정신을 차리고 소비문화의 부조리와 불의와 그 생명을 파괴하는 악마성을 보면서 생명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비록 작 은 세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이라고 믿을 때 우리가 발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소비문화는 사탄의 계략 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하게 만들었던 사탄의 유혹이 오늘 우리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런 사 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 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길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사탄의 유혹과 그 계 략은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동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려면 그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성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겸손과 그 가난을 배워서 물질문명을 넘어선 영적 세계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전통적인 신앙운동만 가지고는 오늘의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한 물질문명과 대항해 갈 수 없습니다. 소비자주권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 하며, 환경 보전 운동에 실천적으로 참여하며, 매스 미디어를 분석하고 비 판하는 연구활동을 전개하여 가야 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교회의 선교적 과제입니다. 사탄은 그 시대를 따라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하면서 우리를 공격해 오는 데 교회는 안이하게 한 가지 전략만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교회들조차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어 성장제일주의에 몰두한 나머지 제대로 그 전략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역할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시장경제의 허구성과 그 악마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성령님 충만함을 통한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의 검으로 무장하여 악마와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자라서 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참여 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