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습을 벗어 던져라 (엡4:17-24)
본문
그리스도인은 그 사회의 지주이자 중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의 양심이고 등불입니다. 특히 그 시대가 어려운 난국이고 혼란기라면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참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횐는 불신이 팽배해 있으며 모두 자조적이 되어 버렸고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저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미래가 지극히 어둡고 암담하며 내일이 분명하게 내다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20세에거 49세까지의 사람들에게 “오늘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만족도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60점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60점밖에 안 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래서 또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서 태어나고 싶으냐”고 물으니까 40%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0%의 사람들은 “이 나라가 창피해서 이민 가서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사회는 극도의 불신 사회가 되어 버렸고 아주 무력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정치가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가 그런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조사하기를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확실하게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은 누구냐”하고 물으니까 가장 많은 70%의 사람들이 “인도 켈커타의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 부부는 45%밖에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거기나 여기나 정치인은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경제는 또 어떻습니까 지금 경제도 말이 아닙니다. 이러다가 경제가 파탄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빚은 늘어만 가고 수출은 안 되고 화폐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어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건전하고 알뜰하게 살아가는 백성이 있는가 하면 또한편에서는 나라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무분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에는 누군가가 앞장을 서서 그 시대를 이끌고 나아가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몇 가지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1. 분별력 있께 살라는 것입니다. “(엡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지하게 살지 말고 무분별하게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분별하게 살면 무지해 보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할 정도로 자기 멋대로 할 짓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한 반에서 두서너 명의 아이들만 국산품 운동화를 신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외제 상표가 붙은 운동하를 신고 있다고 신고되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면 성장한 후에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운동화는 국산품도 손색이 없습니다. 운동화가 굳이 외제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국산품에 대한 이해를 심어 주어야 하고 국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임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건전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자라게 되고 그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그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들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것이 문제입니다. 메이커가 아니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고 분별 없이 마구 사줍니다. 그리고 외제는 무조건 좋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교육이 제대로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 땅이 모두 외제 상표로 뒤덮여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고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그 중에서도 여자들이 더 문제입니다. 지금은 참 어려운 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때 여자들이 정신 차려 주면 훨씬 더 좋아질 것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외제품 문제나 사치 풍조 등은 여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자들이 입고 있는 외제 속옷 한 세트에 63만월이나 한다고 합니다. 구두 한 켤레가 37만 원, 스타킹 하나에 16만원, 내의 한 벌에 37만 원을 주고 사입습니다. 거기다 입다가 다 헤어지고 구멍난 청바지만 수입해다가 팔아먹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또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합니다. 남들이 입다가 다 해어져서 구망나고 떨어진 것이 멋이 있다고 그것을 수입해다가 팔아먹는 사람이나 그것을 사입고 다니는 철없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한심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입니다. 어머니들이 장남감도 수입품만 골라서 사주는 바람에 지난해 수입한 장난감만도
1,400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외제 상표면 사람들이 이렇게 껌뻑 죽습니다. 순 우리 원단에다 우리 기술로 넥타이를 만들어서 우리 상표를 붙여 시장에 내놓으면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다 크리스천 디오르라는 상표만붙여 놓으면 고가로 팔려 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한해 동안 로열티로 나간 돈만 2조 1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돈은 자그마치 지하철 한 노선을 건설할 수 있는 돈입니다. 이보다 더 한심한 것은 오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자가용 보유율이 6:1입니다. 여섯 가정당 한 대꼴립니다.
그런데 핸드폰과 삐삐는 4:1이라고 합니다. 네 명당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업무가 그리 바빠서 어린아이들과 학생글까지 ㄱㄹ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전화를 주고받고 그것도 모자라서 허리춤에 그 삐삐통을 달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장소 불문하고 울려 대니 이게 뭔가 잘못되어도 상당히 잘못된 풍조 아닙니까 어떤 분이 음식점엘 갔더니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는 명함 한 장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보니까 그 명함에 삐삐 번호가 적혀 있었답니다. 이것을 왜 주느냐고 물으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삐삐 치라고 주는 것라고 하더랍니다.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35만 명의 사람들이 태국의 파타야 뱀 농장에 가서 몸보신을 하느라고 뱀탕을 먹은 값이 450억 원이라고 합니다. 개구리를 수입해다가 먹은 값만도 57억 원이고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 일본에서 수입해다가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나라가 제대로 가겠습니까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무지할 정도로 무분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나라 형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범주에 속해서 지금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 한심한 세태입니다. “이방인들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이방인들이나 하는 허망한 짓들입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시대를 분별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덩달아 무분별하게 살ㅊ아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구습을 벗어 버리고 분별 있게 살라”고 했습니다.
2. 가치관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가치관을 새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지식인은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인은 “믿는다”라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 “알고, 믿는”것이 새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생활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신앙은 아직도 구습을 벗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그 구태 의연했던 옛모습은 완전히 벗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옛날에 매이고 구습에 연연하여 육신의 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면 그 사람은 구습을 쫓는 사람밖에 안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이 가치관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래야 하는데 문제는 아직도 그 구습을 벗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구태 의연합니까 차를 타고 가다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으면 버스가 쌩하고 지나갑니다. 누구는 서 있고 누구는 지나가야 합니까 그렇게 가 버린 버스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자괴감이 일어납니다. 참 비통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나서 파업을 할 때는 준법 투쟁을 한다고 위협합니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습니까 백 번 양보해서 버스나 청소차나 택시가 그랬다면 그냥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승용차를 운전하는 젊은 사람들이 쌩하고 지나갈 때는 마음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가다가 창 밖으로 담배 꽁초라도 내던지고 가는 것을 보면 속에서 혈압이 오릅니다. 그래서 속으로 욕을 해줍니다. “너는 차를 타고 다닐 자격이 없는 놈이다.” 이런 무법적인 생활 습관이 어디를 간들 안 나타나겠습니까 미국에서 밀렵꾼을 잡고 보면 90%가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지식인들은 안 그렇습니다. 요즘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자 놀이에 바쁘다고 합니다. 요즘 은행에서 경쟁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니까 만들어서 쓰고 다니다가 돈을 갚을 날이 오면 돈이 없어 이잣돈을 빌리는데 100만 원을 준다고 선이자로 10만원을 떼고 또 열흘치 10만 원을 떼고 80만 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 날짜에 갚지 못하면 10일마다 10만 원씩 이자가 붙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지성의 공간이라고 하는 대학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지성인은 누구보다도 자기 부정이 강해야 하고 그렇게 자신을 부정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지성인인데 지금은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속도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소유나 노름이나 유희에서 낙을 찾고 육적인 삶을 즐기며 살아갈 때 우리 신앙인들은 말씀 속에서 기쁨을 얻고 봉헌과 헌신과 수고에서 행복을 얻고 절약과 검소함과 질서를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보람과 의미를 발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우리는 이 같은 구태 의연한 생활 습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3.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엡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책임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의 책임 인생이고 공적인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함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무섭게 자기 절제를 하고 자기 희생을 하고 자기를 억제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신앙인들입니다. “너희는 소금이고 빛이다”라는 말씀은 “너희는 세상에서 책임 있께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나라가 어려울 때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우면 누구보다도 먼저 절약하고 살아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신의가 없고 신뢰가 없고 불신이 팽배하게 되면 그 사회를 위해서 믿음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 시대의 책임 인생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불신이 많습니까 무엇 하나 믿을 것이 있습니까 누구를 믿을 수 있습니까 신문을 들추어 보면 어디 소망이 한 곳인들 있습니까 너무나 거짓 되고 너무나 불신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을 보니까 이런 가십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충남 당진에서 사는 강정규라는 집사님이 새벽에 교회에 가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하나 주었습니다. 가방을 열고 보니까 그 속에 현금과 수표 3천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은 어느 사업하는 사람이 물품 대금을 주려고 가지고 가다가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집사님이 그 돈가방을 보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겠습니까 돈은 누구에게나 유혹이 됩니다. 길을 가다가 돈가방을 줍게 되면 누구나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그런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파출소에 가서 주인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례금으로 100만 원을 주는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파출소에 맡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신문의 온 지면을 뒤덮고 있는 크고 굵은 활자들이 모두 부정, 뇌물, 비자금 이야기들 뿐인데 조그만 가십난의 이야기가 그나마 이 세상의 탁한 공기를 정화시켜 주는 생수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공적인 인생의 모습입니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요긴해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많은 수모를 당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주인을 찾아 주기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얼마나 마음에서 싸움이 강하게 일어났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돈가방을 들고 파출소를 찾아가는 그 발걸음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정신이 있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래도 그냥 참고 놓아두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어 가고 있고 경쟁력도 잃어 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뜻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모두 힘을 잃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어깨를 펴고 내 나라를 대견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는 내 나라가 자랑스럽고 그래서 돌아가고 싶고 고국을 그리워하면 살아가도록 이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모두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무엇보다도 큽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련된 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검소하고 절제하며 아끼고 분별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사명일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변화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혼탁한 시대에 빛이 나는 법이며 혼란할 때 할 일이 많고 사람들이 모두 무분별하게 살아갈 때 자기의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 부부는 45%밖에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거기나 여기나 정치인은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경제는 또 어떻습니까 지금 경제도 말이 아닙니다. 이러다가 경제가 파탄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빚은 늘어만 가고 수출은 안 되고 화폐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어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건전하고 알뜰하게 살아가는 백성이 있는가 하면 또한편에서는 나라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무분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에는 누군가가 앞장을 서서 그 시대를 이끌고 나아가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몇 가지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1. 분별력 있께 살라는 것입니다. “(엡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지하게 살지 말고 무분별하게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분별하게 살면 무지해 보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할 정도로 자기 멋대로 할 짓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한 반에서 두서너 명의 아이들만 국산품 운동화를 신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외제 상표가 붙은 운동하를 신고 있다고 신고되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면 성장한 후에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운동화는 국산품도 손색이 없습니다. 운동화가 굳이 외제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국산품에 대한 이해를 심어 주어야 하고 국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임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건전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자라게 되고 그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그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들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것이 문제입니다. 메이커가 아니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고 분별 없이 마구 사줍니다. 그리고 외제는 무조건 좋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교육이 제대로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 땅이 모두 외제 상표로 뒤덮여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고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그 중에서도 여자들이 더 문제입니다. 지금은 참 어려운 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때 여자들이 정신 차려 주면 훨씬 더 좋아질 것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외제품 문제나 사치 풍조 등은 여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자들이 입고 있는 외제 속옷 한 세트에 63만월이나 한다고 합니다. 구두 한 켤레가 37만 원, 스타킹 하나에 16만원, 내의 한 벌에 37만 원을 주고 사입습니다. 거기다 입다가 다 헤어지고 구멍난 청바지만 수입해다가 팔아먹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또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합니다. 남들이 입다가 다 해어져서 구망나고 떨어진 것이 멋이 있다고 그것을 수입해다가 팔아먹는 사람이나 그것을 사입고 다니는 철없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한심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입니다. 어머니들이 장남감도 수입품만 골라서 사주는 바람에 지난해 수입한 장난감만도
1,400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외제 상표면 사람들이 이렇게 껌뻑 죽습니다. 순 우리 원단에다 우리 기술로 넥타이를 만들어서 우리 상표를 붙여 시장에 내놓으면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다 크리스천 디오르라는 상표만붙여 놓으면 고가로 팔려 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한해 동안 로열티로 나간 돈만 2조 1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돈은 자그마치 지하철 한 노선을 건설할 수 있는 돈입니다. 이보다 더 한심한 것은 오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자가용 보유율이 6:1입니다. 여섯 가정당 한 대꼴립니다.
그런데 핸드폰과 삐삐는 4:1이라고 합니다. 네 명당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업무가 그리 바빠서 어린아이들과 학생글까지 ㄱㄹ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전화를 주고받고 그것도 모자라서 허리춤에 그 삐삐통을 달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장소 불문하고 울려 대니 이게 뭔가 잘못되어도 상당히 잘못된 풍조 아닙니까 어떤 분이 음식점엘 갔더니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는 명함 한 장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보니까 그 명함에 삐삐 번호가 적혀 있었답니다. 이것을 왜 주느냐고 물으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삐삐 치라고 주는 것라고 하더랍니다.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35만 명의 사람들이 태국의 파타야 뱀 농장에 가서 몸보신을 하느라고 뱀탕을 먹은 값이 450억 원이라고 합니다. 개구리를 수입해다가 먹은 값만도 57억 원이고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 일본에서 수입해다가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나라가 제대로 가겠습니까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무지할 정도로 무분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나라 형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범주에 속해서 지금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 한심한 세태입니다. “이방인들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이방인들이나 하는 허망한 짓들입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시대를 분별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덩달아 무분별하게 살ㅊ아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구습을 벗어 버리고 분별 있게 살라”고 했습니다.
2. 가치관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가치관을 새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지식인은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인은 “믿는다”라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 “알고, 믿는”것이 새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생활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신앙은 아직도 구습을 벗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그 구태 의연했던 옛모습은 완전히 벗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옛날에 매이고 구습에 연연하여 육신의 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면 그 사람은 구습을 쫓는 사람밖에 안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이 가치관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래야 하는데 문제는 아직도 그 구습을 벗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구태 의연합니까 차를 타고 가다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으면 버스가 쌩하고 지나갑니다. 누구는 서 있고 누구는 지나가야 합니까 그렇게 가 버린 버스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자괴감이 일어납니다. 참 비통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나서 파업을 할 때는 준법 투쟁을 한다고 위협합니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습니까 백 번 양보해서 버스나 청소차나 택시가 그랬다면 그냥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승용차를 운전하는 젊은 사람들이 쌩하고 지나갈 때는 마음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가다가 창 밖으로 담배 꽁초라도 내던지고 가는 것을 보면 속에서 혈압이 오릅니다. 그래서 속으로 욕을 해줍니다. “너는 차를 타고 다닐 자격이 없는 놈이다.” 이런 무법적인 생활 습관이 어디를 간들 안 나타나겠습니까 미국에서 밀렵꾼을 잡고 보면 90%가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지식인들은 안 그렇습니다. 요즘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자 놀이에 바쁘다고 합니다. 요즘 은행에서 경쟁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니까 만들어서 쓰고 다니다가 돈을 갚을 날이 오면 돈이 없어 이잣돈을 빌리는데 100만 원을 준다고 선이자로 10만원을 떼고 또 열흘치 10만 원을 떼고 80만 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 날짜에 갚지 못하면 10일마다 10만 원씩 이자가 붙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지성의 공간이라고 하는 대학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지성인은 누구보다도 자기 부정이 강해야 하고 그렇게 자신을 부정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지성인인데 지금은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속도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소유나 노름이나 유희에서 낙을 찾고 육적인 삶을 즐기며 살아갈 때 우리 신앙인들은 말씀 속에서 기쁨을 얻고 봉헌과 헌신과 수고에서 행복을 얻고 절약과 검소함과 질서를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보람과 의미를 발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우리는 이 같은 구태 의연한 생활 습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3.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엡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책임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의 책임 인생이고 공적인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함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무섭게 자기 절제를 하고 자기 희생을 하고 자기를 억제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신앙인들입니다. “너희는 소금이고 빛이다”라는 말씀은 “너희는 세상에서 책임 있께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나라가 어려울 때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우면 누구보다도 먼저 절약하고 살아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신의가 없고 신뢰가 없고 불신이 팽배하게 되면 그 사회를 위해서 믿음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 시대의 책임 인생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불신이 많습니까 무엇 하나 믿을 것이 있습니까 누구를 믿을 수 있습니까 신문을 들추어 보면 어디 소망이 한 곳인들 있습니까 너무나 거짓 되고 너무나 불신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을 보니까 이런 가십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충남 당진에서 사는 강정규라는 집사님이 새벽에 교회에 가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하나 주었습니다. 가방을 열고 보니까 그 속에 현금과 수표 3천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은 어느 사업하는 사람이 물품 대금을 주려고 가지고 가다가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집사님이 그 돈가방을 보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겠습니까 돈은 누구에게나 유혹이 됩니다. 길을 가다가 돈가방을 줍게 되면 누구나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그런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파출소에 가서 주인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례금으로 100만 원을 주는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파출소에 맡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신문의 온 지면을 뒤덮고 있는 크고 굵은 활자들이 모두 부정, 뇌물, 비자금 이야기들 뿐인데 조그만 가십난의 이야기가 그나마 이 세상의 탁한 공기를 정화시켜 주는 생수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공적인 인생의 모습입니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요긴해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많은 수모를 당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주인을 찾아 주기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얼마나 마음에서 싸움이 강하게 일어났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돈가방을 들고 파출소를 찾아가는 그 발걸음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정신이 있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래도 그냥 참고 놓아두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어 가고 있고 경쟁력도 잃어 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뜻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모두 힘을 잃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어깨를 펴고 내 나라를 대견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는 내 나라가 자랑스럽고 그래서 돌아가고 싶고 고국을 그리워하면 살아가도록 이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모두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무엇보다도 큽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련된 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검소하고 절제하며 아끼고 분별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사명일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변화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혼탁한 시대에 빛이 나는 법이며 혼란할 때 할 일이 많고 사람들이 모두 무분별하게 살아갈 때 자기의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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