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축복 (엡4:31-5:2)
본문
우리 조국이 경제위기의 경제위기를 맞은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지난 9월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범죄만 244,500건이 발생했는데, 작년에 비해 11.3%가 늘어났고, 전국 42개의 구치소에 7만명 이상이 수감되었는데, 이는 15%가 증가한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육체의 자유를 박탈당한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경제위기 때문에 가정해체 현상이 심각하게 일어나며, 마음에 상처를 입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원하며 원한과 분노를 가진 사람들로 인하여 상처투성이입니다. 12월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하며 '어떻게 우리속에 있는 분노와 불화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을 맞이하고 기뻐할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감옥에 갇혀야만 갇힌자가 아니라 예수믿는 기쁨을 잃어버리고, 예수믿는 자로서 삶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음의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이 묶인자입니다. 대인관계가 폐쇄적으로 되고 서로 축복하는 관계가 되지 못하면 감옥에 있는 사람이나 '담'하나차이지 자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원한, 분노 등 내 잠재의식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경험들을 주님의 은혜로 드러내고 치료받고 새로워지는 은혜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용서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 원리.
1.분노(忿怒)를 다스려야 합니다.'26절' 분노를 직시하고 의지적으로 다스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분(忿)을 내다보면 죄 지을 가능성이 많기에 "분(忿)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분이 변하여 죄가 되기전에 단절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분'은 충동적인 분이고, 두 번째 '분'은 첫 번째의 분이 마음에 자리를 잡는 것을 말합니다. "해가 지도록"이라고 한계를 그어 놓았는데, 이는 분을 잘못 다스리면 내가 분을 다스리기 전에 분이 나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을 때 여러 가지 손해를 보는데, 먼저 육체적으로 손해를 봅니다. 미국의 피치버그 대학의 카렌 메쉬스 박사가 정신의학 전문지에 성인여성 200명을 상대로 '분노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하는 조사를 발표했는데, '동맥경화증'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속이 분노로 불타고 있으면 겉이 아무리 멀쩡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하고 있을 때 마귀가 틈타기 때문입니다
'27절'. 다시말하면 내가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마귀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하고,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분노를 계속 품고 있으면, 찬송을 잃어버리고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잃어버려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가 없고 마귀가 일하는 기회가 되고 맙니다. 분노는 자신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傳染)이 됩니다. 분노하는 부모의 자녀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분노하는 목사의 설교를 듣는 성도는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분노를 버리라"'31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노함'은 순간적으로 끌어 오르는 '격정'을 말하고, '분냄'은 26절의 '분'과 동일하고, '떠드는 것'은 '말다툼 하는 것', '훼방하는 것'은 근거없이 남을 '비방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것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버리라"는 단어는 의지적인 동사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2.용서하기를 결심해야 합니다.'32절'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일방적으로 용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는 용서를 받아야 하는 대상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서5:16에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께 고하고 용서를 구할뿐 아니라 나의 잘못으로 손해를 입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연약하기 때문에 공동체안에서 아픔을 주고 받기도 하며 서로를 인하여 실족할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면 안되고, 서로 용서를 구하고 서로 세워주고 용서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서로의 실수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실수가 없어서 행복한게 아니라 실수가 있을수밖에 없지만 서로 자기의 실수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남의 실수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을 때 행복한 교회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용서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세월이 지나면 잊어지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용서가 아니라 회피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고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입힌 그 삶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좋은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용서는 아닙니다. 또 내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분노한 자신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도 좋은 기도이지만 용서는 아닙니다. 용서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일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용서에는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3.하나님의 사랑을 주목해야 합니다.'5:2' 우리가 분노를 버리고 용서하기로 결단하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재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의 사랑이고, '향기로운 제물'은 모든 제사의 총칭으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전 생애를 가리킵니다. '생축'은 희생제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갈보리산에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과 용서받는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하나님이시지만 이난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고난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의 사람이 되기까지는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용서가 앞장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참된 용서를 베풀기 위해서는 용서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용서를 체험한 사람만이 용서의 자격자가 될 수 있고, 이 용서를 체험한 사람은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1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용서는 하나님을 본받는 가장 소중한 영역입니다. 어떻게 용서의 축복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1.용서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변명하거나 회피하거나 외면하면 안됩니다.
2.기도할 때 우리는 영력을 얻기 때문에 뜨겁게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거듭난 자라도 남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 자연인으로는 안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의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3.간절히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용서를 베푸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를 받은 대상자가 되고 용서할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4.상대방을 찾아가서 잘못을 인정하고 갚아야할 것은 갚아야 합니다.
5.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선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하고 권위적인 자세가 아니라 겸손하고 동등한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용서에 대해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하던지 상관없이 모든 결과는 다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단지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면 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용서의 정신을 가지고 나에게 인격적인 손상이나 물질적 손해를 끼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이번 크리스마스때 뿐 아니라 우리 삶을 통해 주님께 드릴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또한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믿는자들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1.분노(忿怒)를 다스려야 합니다.'26절' 분노를 직시하고 의지적으로 다스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분(忿)을 내다보면 죄 지을 가능성이 많기에 "분(忿)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분이 변하여 죄가 되기전에 단절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분'은 충동적인 분이고, 두 번째 '분'은 첫 번째의 분이 마음에 자리를 잡는 것을 말합니다. "해가 지도록"이라고 한계를 그어 놓았는데, 이는 분을 잘못 다스리면 내가 분을 다스리기 전에 분이 나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을 때 여러 가지 손해를 보는데, 먼저 육체적으로 손해를 봅니다. 미국의 피치버그 대학의 카렌 메쉬스 박사가 정신의학 전문지에 성인여성 200명을 상대로 '분노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하는 조사를 발표했는데, '동맥경화증'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속이 분노로 불타고 있으면 겉이 아무리 멀쩡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하고 있을 때 마귀가 틈타기 때문입니다
'27절'. 다시말하면 내가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마귀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하고,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분노를 계속 품고 있으면, 찬송을 잃어버리고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잃어버려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가 없고 마귀가 일하는 기회가 되고 맙니다. 분노는 자신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傳染)이 됩니다. 분노하는 부모의 자녀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분노하는 목사의 설교를 듣는 성도는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분노를 버리라"'31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노함'은 순간적으로 끌어 오르는 '격정'을 말하고, '분냄'은 26절의 '분'과 동일하고, '떠드는 것'은 '말다툼 하는 것', '훼방하는 것'은 근거없이 남을 '비방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것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버리라"는 단어는 의지적인 동사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2.용서하기를 결심해야 합니다.'32절'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일방적으로 용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는 용서를 받아야 하는 대상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서5:16에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께 고하고 용서를 구할뿐 아니라 나의 잘못으로 손해를 입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연약하기 때문에 공동체안에서 아픔을 주고 받기도 하며 서로를 인하여 실족할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면 안되고, 서로 용서를 구하고 서로 세워주고 용서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서로의 실수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실수가 없어서 행복한게 아니라 실수가 있을수밖에 없지만 서로 자기의 실수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남의 실수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을 때 행복한 교회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용서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세월이 지나면 잊어지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용서가 아니라 회피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고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입힌 그 삶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좋은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용서는 아닙니다. 또 내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분노한 자신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도 좋은 기도이지만 용서는 아닙니다. 용서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일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용서에는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3.하나님의 사랑을 주목해야 합니다.'5:2' 우리가 분노를 버리고 용서하기로 결단하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재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의 사랑이고, '향기로운 제물'은 모든 제사의 총칭으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전 생애를 가리킵니다. '생축'은 희생제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갈보리산에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과 용서받는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하나님이시지만 이난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고난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의 사람이 되기까지는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용서가 앞장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참된 용서를 베풀기 위해서는 용서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용서를 체험한 사람만이 용서의 자격자가 될 수 있고, 이 용서를 체험한 사람은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1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용서는 하나님을 본받는 가장 소중한 영역입니다. 어떻게 용서의 축복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1.용서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변명하거나 회피하거나 외면하면 안됩니다.
2.기도할 때 우리는 영력을 얻기 때문에 뜨겁게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거듭난 자라도 남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 자연인으로는 안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의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3.간절히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용서를 베푸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를 받은 대상자가 되고 용서할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4.상대방을 찾아가서 잘못을 인정하고 갚아야할 것은 갚아야 합니다.
5.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선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하고 권위적인 자세가 아니라 겸손하고 동등한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용서에 대해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하던지 상관없이 모든 결과는 다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단지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면 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용서의 정신을 가지고 나에게 인격적인 손상이나 물질적 손해를 끼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이번 크리스마스때 뿐 아니라 우리 삶을 통해 주님께 드릴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또한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믿는자들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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