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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되는 교회 (엡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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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교회 표어를 "하나되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금년 한 해 교회가 주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힘쓰자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하나되자고 하니까 혹시 우리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에 서로 갈등이 있거나 내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교회는 정말 평안한 교회입니다. 여느 다른 교회들과 비교해 볼 때 은혜롭고 갈등이나 내분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상대적으로는 평안한 교회이지만 주님이 바라시는 기준으로 볼 때는 아직도 하나되기 위해 분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더욱 하나가 되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소망 주님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모습은 요 17장 1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떠나신 후에 홀로 남게 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바람이 바로 하나됨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제일 먼저 기도하신 내용이 바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것을 제일 먼저 기도하셨을까요 지금까지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주님을 중심으로 함께 모였고,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 곁을 떠나시게 되면 이들이 함께 모이기도 힘들고, 이들이 함께 살기도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주님 말씀을 중심으로 뜻을 하나로 뭉칠 수 있었지만 이제 주님께서 그들 곁을 떠나시게 되면 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들 곁을 떠나시고난 후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교회로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님 보실 때 가장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이들이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소포 하나를 받았습니다. 배편으로 온 것이어서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겉포장에 "Fragile"(파손주의)이라고 써있었습니다. 깨지기 쉬운 물건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포장을 얼마나 단단히 해 두었는지 포장을 뜯느라고 애를 먹었습니다. 두꺼운 종이 박스에 포장용 테이프를 여러 차례 붙였습니다. 종이 박스 안에 보니까 스티로폼 알갱이를 잔뜩 넣었습니다. 외부로부터 충격을 덜 받게 하려고 넣은 것입니다. 그 스티로폼 알갱이 안에 다시 종이 봉투가 나왔습니다. 그 봉투로 여러 겹으로 쌌습니다. 그 봉투를 뜯어보니 그 안에 물건이 나왔습니다. 철저하게 포장을 했기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거쳐서 한 달이 넘게 시간이 걸려 왔지만 내용물은 아무런 손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주님 보실 때 교회가 그렇습니다. 깨지기 쉽고, 손상 받기 쉽습니다. 언제 어떻게 깨지고, 갈라질 지 위태롭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의 역사를 보면 분열과 나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하나이던 장로교회가 지금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파로 갈라졌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개 교회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갈라지고 쪼개지고 분열되어 왔습니다. 물론 교회개척과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 세포 분열하듯이 긍정적으로 교회가 나뉜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좋지 않은 모습으로 교회가 갈라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이런 모습을 안타깝게 보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하나되기를 바라십니다. 갈라선 교회들이 다시 하나가 되고, 나뉘어진 교파들이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되고, 각 부서가 하나되고, 각 모임이 하나되면 그 자체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아무리 봉사를 열심히 하고, 아무리 자기들이 옳다고 해도 분열되고, 다투고, 갈라선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가정도 마찬가지고 세상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보전해 주셔야만 하나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전해 주셔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한다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끼리 마음이 맞는다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이 언제 바뀔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되려면 하나님께서 보전해 주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분열시키고 나누고 갈라서게 합니다. 교회 안에서 교인들 사이를 화해시키고, 서로 이해하도록 돕고, 하나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런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도들 사이를 이간하고, 교역자들 사이를 갈라놓게 하고, 교역자와 교인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일들은 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이런 일에 나서는 사람들은 사탄의 종입니다.
셋째로 주님처럼 해야 하나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와 같이"라는 말은 성부, 성자, 성령님 삼위의 하나님께서 하나되신 것처럼 하나되게 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부, 성자, 성령님 각 위의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할이 다르시고 사역이 다르십니다. 그러나 어디 한 곳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거나 다투시거나 갈등을 빚으신 적이 없습니다. 온전히 하나를 이루셨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삼위의 사역에 거룩한 뜻이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즉 성부의 뜻, 성자의 뜻, 성령님의 뜻이 언제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자, 성령님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성부, 성자가 원하시는 바가 잠시 달랐던 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위기였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갈라설 수도 있었던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물러서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으로 볼 때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을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만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갈등을 빚고, 분열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뜻을 앞세우고, 사람들의 야욕을 채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장로교 교단이 분열될 때 예외 없이 나타난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하기보다는 사람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노회가 갈라지고, 교회가 분열되고 교회 내의 각 부서가 갈등을 빚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하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 지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너무 다를 때는 주님처럼 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금년 한해 교회 내의 각 부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뜻을 꺾고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 하나됨은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뜻만을 이루려 한다면 교회는 열 개 백 개로 나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 오늘 본문 엡 4:3을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말씀했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되게 역사해 주셔도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하나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않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전해 주셔야 하고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령님의 역사만으로도 않됩니다. 우리가 힘쓰지 않으면 않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셔도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엡 4:2절을 보면 우리가 힘써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네 가지입니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가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고, 동시에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랑을 하게 됩니다. 공동체가 하나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자기 자랑입니다. 자기 자랑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게 생기는 문제입니다. 자랑을 하다보면 그 내용이 점점 부풀여집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본인의 성결함을 훼손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들에게 생기는 문제입니다. 남의 자랑을 듣다보면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아이 문제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자기 아이 자랑을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임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남편 문제 때문에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남편 자랑을 늘어놓는다면 마찬가지로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사람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게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권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아들 셋을 두셨는데 그 아들들이 모두 공부를 잘하는 수재입니다.
첫째와셋째는 서울 법대를 나와서 한 사람은 통일원수석 연구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둘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서 하버드와 예일에서 유학하고 지금은 서울대 교수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 분이 제게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자기가 아이들을 수재로 그리고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키운 데는 남다른 비결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해 주려면 듣는 사람들의 눈치가 심상치 않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아이들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약속했답니다. 정말 아이들 이야기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자랑이 될까봐서지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가려서 할 줄 아는 그 권사님의 모습에서 저는 겸손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간증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간증은 성도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증을 잘못하다보면 자기 자랑이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에게도 문제가 생기고 남들에게도 상처가 됩니다. 공동체가 하나되려면 자랑을 삼가야 합니다.
둘째가 온유입니다. 온유란 한 마디로 부드러움입니다. 강한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조절해서 남을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말을 해도 비비꼬아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에 상처를 남깁니다. 고슴도치는 자기들끼리도 찔리고 상처를 받습니다. 특별히 새끼가 어미 곁에 달라붙고, 어미 쪽으로 다가가려다 찔려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미 침에 찔려 죽는 경우도 있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좀 부드러워져야겠습니다. 금년 한 해에는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남자야',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사람이야'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동체가 하나되려면 내가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셋째가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음이란 남의 잘못이나 문제에 대해서 응징할 상황하에서도 참아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 서두른다는 것입니다. 너무 서둘러 판단하고, 서둘러 말하고, 서둘러 응징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 그렇게 하게 된 사정을 돌아볼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 사람을 비난하고 그 말을 공동체에 퍼뜨립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런 것이 아닐 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남의 잘못이 눈에 보일 때, 일단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를 삼더라도 전후좌우, 자초지종을 다 알아 본 뒤에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응징하더라도 본인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 뒤에 해야 합니다. 본인이 회개할 기회를 주고, 돌이킬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하나되려면 내가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넷째가 사랑 가운데서 용납함입니다. 용납이란 용서해서 받아들여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초점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어느 지방 출신이고 나는 어느 지방 출신이다. 저 사람은 공부를 얼마나 했고 나는 얼마나 했다. 저 사람은 재산이 어느 정도고 나는 어느 정도다. 저 사람은 우리 교회 나온 지 얼마고 나는 얼마다. 건물이 무너질 때 갑자기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금이 가있고, 균열이 나 있습니다. 이것이 점점 심화되다 지탱할 힘이 없게 될 때 무너지게 됩니다. 이런 구별들이 공동체 내의 금이고, 균열입니다. 이런 구별을 없애야 합니다. 저는 용광로를 생각합니다. 뜨거운 용광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와도 다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다 녹여버립니다. 쇠가 됐든, 유리가 됐든, 플라스틱이 됐든, 나무가 됐든. 그 안에 들어만 가면 형체가 없어집니다. 모두가 용광로 속에서는 하나가 됩니다. 교회가 그래야 합니다. 성령님의 용광로가 돼야 합니다. 그 안에 들어오면 성령님의 불을 받아서 출신 지방도, 학벌도, 성격도, 재산 유무도 다 녹아져 하나가 되야 합니다. 용광로가 모두를 다 받아들이는 것처럼 교회는 누구나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변화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 하나됨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하나되려면 서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루아침에 주님처럼 하나됨을 온전히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더욱 하나됨을 이루어갈 수는 있습니다. 금년 한 해 이렇게 노력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를 이루어 갈 때 각 가정도 하나가 될 것이고, 이 사회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 속의 지역 갈등을 말하고, 남북통일 문제를 말하지만 우리가 먼저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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