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음을 믿으면 한다. (엡1:18-19)
본문
설교하는 사람으로서 청중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가 무엇 보다도 듣는이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청중이 관심 있는 내 용을 말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가 설교를 자 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시키고 자신을 격려한다면 그래서 자신이 기쁨을 얻는다면 대체로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 설교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 로 인해서 고통스럽고 때로는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고통을 가진 사람으 로서 그 고통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비결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도 여러분처럼 인간으로서의 각종 고통에 눌려있다. 문제, 난관, 고통, 슬픔, 연약함, 좌절 가운데 비참한 느낌에 압도 당하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선언하려고 한다. 들어보면 감격스러울 것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그 분명한 사실이 무엇 인가 신자는 세상에 있는 그 무엇에도 압도 당하거나 패배 당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믿는 사람 누구에게나 여호와 하나님은 말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사41:10)"너는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히 11:38)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하고 대답할지 모른다. 당신의 문제가 무엇 인지 아는가 신자이면서도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신자는 그리스도 의 전체가 자기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권능에 대해서 자신을 갖 지 못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를 새로 낳아주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 토마스 에디슨의 말 중에 오늘 주제에 딱 들어맞는 것이 있다. "만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 보았더라면 우리는 문자 그대로 놀라서 자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많 은 현대문명의 이기들은 이 위대한 천재의 창조력이 풍부한 두뇌를 통해 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능력의 일부만 썼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귀 머거리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으로 인생은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이용하였다. 세상의 쓸데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많은 시간 하나님과 함께 사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굉장한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의 몇 천분의 일도 우리는 해내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보면 서 또 해 낸 일을 보면서 놀라서 자빠져본 일이 있던가 만약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면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당신은 생애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왜 하지 않는가 당신은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위대한 능력의 물결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내 속에서 어떤 위대한 무엇이 용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는가 사 도 바울은 말한다. "그의 강한 힘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 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 알기 원하노라." 정말로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면 우리는 놀라서 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제목에 도달한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 없다. 사도 바울은 일찌기 말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 이 기독교를 만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 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기뻐하라. 일을 하면서 어떤 제안을 할 때 않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않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적인 태도가 아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 이것도 연습하면 된다. 우선 하나님의 창조력이 자기 속에 있음을 확인하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 생각해 보라. 조목조목. 그것이 창조하는 길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는게 신자 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여기 "모 든"이라는 단어를 주목하라. 당신은 능력을 행할 수 있고 덮쳐오는 난관 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쉽지 않은 이유는 마음을 지 배하지 못해서이다. 이 마음 속에 우리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물론 여기서는 그리스도처럼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사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은 신자로서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 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 마음을 받았다. 그것을 품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계속 품는다면 우리의 몸과 감정을 감독할 수 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도 지배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극하시는 마음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 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 마음을 품으라. 우리는 그렇게 할 능력을 부 여받았다. 그러면 우리의 운명은 그 믿음대로 움직여줄 것이다. 어제 나는 몸에 열이나기 시작했다. 목이 아프고 목소리는 잠겼다. 마 디마디가 쑤셨다. 모든 증세는 내게 말했다. "너는 걸렸다. 걸리면 몇 주 동안 토하고 드러눕는 무서운 독감에 걸렸다." 나는 마음으로 말했다. "나는 감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다. 용납하지 않 겠다." 잠간 쉬고 나는 계속 일했다. 아침에 모든 증세는 사라졌다. 위대한 사람들중 많은 사람들은 두통을 앓지 않는다. 믿음이 마음을 지배한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프려고 하면 자신 에게 머리 아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고 머리 아플 시간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면 두통은 머물지 못한다. 사업의 두려움도 그렇다. 실제로 여러 가지 난관도 문제도 덮쳐오는 위기도 그렇다. 멸망을 받아들이지 말아라. 누가 물어본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당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요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은 하나님뿐 입니다." 그외의 어떤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할 것처럼 두려 워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처사이다.
최근에 나는 한 위대한 사람의 예를 읽었다. 글렌 커닝햄이란 스포츠 맨이다. 그는 1934년 육상 1마일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그것을 다시 1938년에 갱신했다. 미국의 모든 신문들이 그의 사진과 이름을 대서특필 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렇게 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출발이었다. 그가 12살이었을 때 형과 함께 난로를 피웠다. 그들은 휘발유를 석유 인줄 알고난로에 부어넣었다. 그들이 불을 붙였을 때 난로는 폭발했다. 그의 형은 즉사했고 글랜도 화상으로 거의 죽을 정도가 되었다. 몇 달이 지나서야 회복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심한 흉터를 남겼고 근 육 여러 부분이 마비현상을 일으켰다. 평생 불구로 보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경건한 어머니를 가졌다. 그의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네가 믿기만 하면 무슨 일 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믿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계속 말했다. "애야 주께서 너를 완전하게 만드셨고 지금도 완전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너를 걸으려고 하지 않는구나. 네가 믿으면 너는 걷고 뛸 수 있단다." 매일 어머니는 흉터로 얼룩진 생명 없는 다리를 몇 시간이고 지칠 때 까지 주물렀다. 그러면서 계속 그 말을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직장에 나 가면서 아들은 스스로 자기 다리를 맛사지했다. 한참 후에 소년의 마음은 다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가 보스턴 가든 운동장을 그 다리로 달릴 때 군 중들은 모두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존경의 환호성을 질렀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 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내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라. 다음으로는 문제와 상황을 잘 살펴보라. 마지막으로 내가 하기 원하는 것 을 기대감으로 바라보라. 그리고는 그렇게 움직여 나가라. 거기 거대한 힘이 있다. 자기가 약하다고, 불행하다고,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지 말라. 얼마 전에 택시를 탔다. 운전사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었다. 우리는 이 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참 뒤에 그가 물었다.
"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 이름을 말하자 그는 기뻐했다. "제가 극동방 송을 듣기 때문에 혹시나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래서 물었다. "어디 들을만 합디까저는 그 시간만 되면 꼭 듣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저절로 상담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직도 가난한 가장이었다. 아들을 얻으려고 아이를 일곱이나 나았다. 함께 사는 시부모가 계속적으 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아들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키우느 라 모두가 다 늙어버렸다. 먹을 것을 사가지고 들어가면 아이들은 걸신들 린 이들처럼 덤벼들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말도 잘 듣지 않았다. 시부모와 아내와의 관계도 편치 않았다.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무리해서 일을 했다. 소화도 잘 않되고 간도 좋 지 않았다. 그도 우리와 같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형제였다. 그에게 줄말이 무엇인가 자기의 문제를 똑똑히 보게 하는 것이다. 다음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원하는 모습을 생각하게 했다. 지금 그는 문제에 다시 말해 사탄에 눌려있었다. 소화도 않되고 몸도 피곤했다. 자신이 문제보다 큰 존재임을 알려주어야 했다. 전에 짓눌리던 문제가 이제는 극복할만한 고통이 되게 해주어야 했다. 이해 할만큼 설명 한 뒤 차를 세우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에게 안수했다. 그의 속에 이미 받은 것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얼굴이 밝아졌다. 큰 사람이 된 것이다. 차를 내리면서 그에게 말해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비교가 않되게 위대한 존재임을 자신에게 늘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없애주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문제보다 커지게 만든다.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에 쳐들어갈 때 거기 사람들은 훨씬 크고 날랬다. 두려워 떠는 이 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신앙을 주신다. 주의 마음을 품게 하신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보자.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 심의 소망.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이며 그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 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 기를 구하노라." 이것을 알기만하면 쓸 수 있다. 문제를 작게 보라. 주와 함께하는 자신을 크게 보라. 할수 있음을 믿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도 여러분처럼 인간으로서의 각종 고통에 눌려있다. 문제, 난관, 고통, 슬픔, 연약함, 좌절 가운데 비참한 느낌에 압도 당하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선언하려고 한다. 들어보면 감격스러울 것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그 분명한 사실이 무엇 인가 신자는 세상에 있는 그 무엇에도 압도 당하거나 패배 당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믿는 사람 누구에게나 여호와 하나님은 말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사41:10)"너는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히 11:38)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하고 대답할지 모른다. 당신의 문제가 무엇 인지 아는가 신자이면서도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신자는 그리스도 의 전체가 자기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권능에 대해서 자신을 갖 지 못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를 새로 낳아주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 토마스 에디슨의 말 중에 오늘 주제에 딱 들어맞는 것이 있다. "만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 보았더라면 우리는 문자 그대로 놀라서 자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많 은 현대문명의 이기들은 이 위대한 천재의 창조력이 풍부한 두뇌를 통해 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능력의 일부만 썼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귀 머거리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으로 인생은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이용하였다. 세상의 쓸데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많은 시간 하나님과 함께 사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굉장한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의 몇 천분의 일도 우리는 해내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보면 서 또 해 낸 일을 보면서 놀라서 자빠져본 일이 있던가 만약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면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당신은 생애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왜 하지 않는가 당신은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위대한 능력의 물결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내 속에서 어떤 위대한 무엇이 용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는가 사 도 바울은 말한다. "그의 강한 힘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 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 알기 원하노라." 정말로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면 우리는 놀라서 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제목에 도달한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 없다. 사도 바울은 일찌기 말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 이 기독교를 만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 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기뻐하라. 일을 하면서 어떤 제안을 할 때 않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않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적인 태도가 아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 이것도 연습하면 된다. 우선 하나님의 창조력이 자기 속에 있음을 확인하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 생각해 보라. 조목조목. 그것이 창조하는 길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는게 신자 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여기 "모 든"이라는 단어를 주목하라. 당신은 능력을 행할 수 있고 덮쳐오는 난관 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쉽지 않은 이유는 마음을 지 배하지 못해서이다. 이 마음 속에 우리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물론 여기서는 그리스도처럼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사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은 신자로서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 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 마음을 받았다. 그것을 품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계속 품는다면 우리의 몸과 감정을 감독할 수 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도 지배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극하시는 마음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 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 마음을 품으라. 우리는 그렇게 할 능력을 부 여받았다. 그러면 우리의 운명은 그 믿음대로 움직여줄 것이다. 어제 나는 몸에 열이나기 시작했다. 목이 아프고 목소리는 잠겼다. 마 디마디가 쑤셨다. 모든 증세는 내게 말했다. "너는 걸렸다. 걸리면 몇 주 동안 토하고 드러눕는 무서운 독감에 걸렸다." 나는 마음으로 말했다. "나는 감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다. 용납하지 않 겠다." 잠간 쉬고 나는 계속 일했다. 아침에 모든 증세는 사라졌다. 위대한 사람들중 많은 사람들은 두통을 앓지 않는다. 믿음이 마음을 지배한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프려고 하면 자신 에게 머리 아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고 머리 아플 시간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면 두통은 머물지 못한다. 사업의 두려움도 그렇다. 실제로 여러 가지 난관도 문제도 덮쳐오는 위기도 그렇다. 멸망을 받아들이지 말아라. 누가 물어본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당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요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은 하나님뿐 입니다." 그외의 어떤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할 것처럼 두려 워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처사이다.
최근에 나는 한 위대한 사람의 예를 읽었다. 글렌 커닝햄이란 스포츠 맨이다. 그는 1934년 육상 1마일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그것을 다시 1938년에 갱신했다. 미국의 모든 신문들이 그의 사진과 이름을 대서특필 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렇게 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출발이었다. 그가 12살이었을 때 형과 함께 난로를 피웠다. 그들은 휘발유를 석유 인줄 알고난로에 부어넣었다. 그들이 불을 붙였을 때 난로는 폭발했다. 그의 형은 즉사했고 글랜도 화상으로 거의 죽을 정도가 되었다. 몇 달이 지나서야 회복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심한 흉터를 남겼고 근 육 여러 부분이 마비현상을 일으켰다. 평생 불구로 보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경건한 어머니를 가졌다. 그의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네가 믿기만 하면 무슨 일 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믿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계속 말했다. "애야 주께서 너를 완전하게 만드셨고 지금도 완전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너를 걸으려고 하지 않는구나. 네가 믿으면 너는 걷고 뛸 수 있단다." 매일 어머니는 흉터로 얼룩진 생명 없는 다리를 몇 시간이고 지칠 때 까지 주물렀다. 그러면서 계속 그 말을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직장에 나 가면서 아들은 스스로 자기 다리를 맛사지했다. 한참 후에 소년의 마음은 다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가 보스턴 가든 운동장을 그 다리로 달릴 때 군 중들은 모두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존경의 환호성을 질렀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 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내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라. 다음으로는 문제와 상황을 잘 살펴보라. 마지막으로 내가 하기 원하는 것 을 기대감으로 바라보라. 그리고는 그렇게 움직여 나가라. 거기 거대한 힘이 있다. 자기가 약하다고, 불행하다고,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지 말라. 얼마 전에 택시를 탔다. 운전사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었다. 우리는 이 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참 뒤에 그가 물었다.
"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 이름을 말하자 그는 기뻐했다. "제가 극동방 송을 듣기 때문에 혹시나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래서 물었다. "어디 들을만 합디까저는 그 시간만 되면 꼭 듣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저절로 상담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직도 가난한 가장이었다. 아들을 얻으려고 아이를 일곱이나 나았다. 함께 사는 시부모가 계속적으 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아들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키우느 라 모두가 다 늙어버렸다. 먹을 것을 사가지고 들어가면 아이들은 걸신들 린 이들처럼 덤벼들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말도 잘 듣지 않았다. 시부모와 아내와의 관계도 편치 않았다.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무리해서 일을 했다. 소화도 잘 않되고 간도 좋 지 않았다. 그도 우리와 같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형제였다. 그에게 줄말이 무엇인가 자기의 문제를 똑똑히 보게 하는 것이다. 다음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원하는 모습을 생각하게 했다. 지금 그는 문제에 다시 말해 사탄에 눌려있었다. 소화도 않되고 몸도 피곤했다. 자신이 문제보다 큰 존재임을 알려주어야 했다. 전에 짓눌리던 문제가 이제는 극복할만한 고통이 되게 해주어야 했다. 이해 할만큼 설명 한 뒤 차를 세우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에게 안수했다. 그의 속에 이미 받은 것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얼굴이 밝아졌다. 큰 사람이 된 것이다. 차를 내리면서 그에게 말해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비교가 않되게 위대한 존재임을 자신에게 늘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없애주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문제보다 커지게 만든다.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에 쳐들어갈 때 거기 사람들은 훨씬 크고 날랬다. 두려워 떠는 이 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신앙을 주신다. 주의 마음을 품게 하신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보자.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 심의 소망.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이며 그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 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 기를 구하노라." 이것을 알기만하면 쓸 수 있다. 문제를 작게 보라. 주와 함께하는 자신을 크게 보라. 할수 있음을 믿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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