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신앙 (엡1:3-6)
본문
기독교 대한감리회는 매년 6월 첫째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1년 52주가 평신도 주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주인이요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감리교회가 요한 웨슬리에 의해서 시작되면서 영국교회는 그에게 설교할 예배당을 빌려주지 않고 그들에게 성만찬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전도는 온 영국을 흔들었고 이제 웨슬리 혼자 그 만은 교인들을 다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평신도 전도자를 뽑아 설교와 신도를 방문하게 하였습니다. 이 평신도 전도자들은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채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였으며 그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감리교회는 처음 시작에서 부터 평신도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평신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Laity-Laos) 구약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에게 소속된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 의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에게 소속된 자녀가 되게 하셨고 그에게 소속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모든 성도를 향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한 백성"이라고 하였다.(벧전 2:9) 하나님의 백성이란 교역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 전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평신도는 전체 하나님의 백성이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교회의 성도는 그의 살아 있는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엔 교역자와 평신도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라는 특별한 명칭을 쓰는 것은 좁은 의미의 평신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의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받은 바 사명에 의해 교역자와 평신도로 나누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신도라는 말을 쓸 때는 좁은 의미를 말합니다. 그러면 평신도의 신앙은 어떠해야 할까
1. 충성하는 평신도(딤후2: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3-디모데후서 2:4' 주님은 우리를 십자가의 군병으로 부르셨습니다. 평신도는 주의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군병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대장에게 충성하지 않는 군인은 그 군대에서 필요가 없습니다. (군대에서 가장 큰 죄는 명령 불복종입니다.) 그런 군인이 있는 군대는 매일 지기만 하는 군대입니다. 군인에게 있어서는 명령과 오직 복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듯이 주의 십자가의 군병인 우리에게는 주님의 명령과 거기에 다른 복종. 즉 충성이 있을 뿐입니다. 아직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한국의 평신도들이 충성하는 모습을 역사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시작은 만주에서 부터입니다. 고국을 떠나 만주에 있던 많은 한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하며 권서인들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서 성경이 보급되게 되었고, 만주에 믿는 한인들이 많이 생겨지게 되었습니다. 이 한인들이 다시 고국에 돌아올 때 복음을 들고 고국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복음의 씨를 뿌리는 수고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의 복음의 시작은 권서인들과 같은 많은 평신도들의 수고와 충성이 있었습니다. 서상륜과 같은 사람은 만주에서 로스와 함께 성경을 번역하였고 목판을 조각하여 인쇄하는 일과 만주에 성경을 반포하고 고국을 왕래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향인 황해도 장연 솔내에 한국인의 손으로 세워진 최초의 예배당인 솔내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한편 백홍진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입수하기 위하여 성경을 한장 한장 풀어서 노끈으로 만들어 꼬아서 고지(예날종이)로 두툼하게 복음서를 쌓아서 고지 행상인냥 위장하여 압록강을 건너 의주로 들여왔습니다. 그 노끈을 하나하나 다시 풀어서 반드시 책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전도용으로 보급. 한국에 기독교가 시작하는 때에 평신도들의 충성이 있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서 이와같이 한국이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이 군병은 주님의 일을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군병의 충성 만이 그의 나라를 부흥시키며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충성이 그의 나라를 위한 것이고 그의 나라에 기쁨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도록 충성하여 승리하는 십자가 군병.
2. 순종하는 평신도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5-빌립보서 2:1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과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지기까지 순종하셨고 이제 네 몸을 십자가에 내어 놓아야 한다는 (죽어야 한다는) 그 말씀에 순종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평신도들은 이 주님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평신도는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간 길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자는 그 스승에게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육체를 입으신 것은) 바로 우리의 모범이 되시고 본이 되기 위함입니다. 오직 스승만을 바라보며 그를 따르는 제자가 참된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주의 가신 그 길을 바르게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는 평신도가 됩시다. 제자가 됩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아버지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못된 길, 거짓된 길, 더 나쁜 길로 가라고 명령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우리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것도 압니다. 또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이 고난의 길이지만 그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도 압니다. 단지 우리의 인간적 욕심과 미련과 걱정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순종하셧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주님의 칭찬이 여러분의 머리위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3. 소금과 빛인 평신도(마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마태복음 5:16'
1) 소금-맛을 잃지 않는 소금 (내적생활) 소금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짠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안에 있는 맛이소금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크리스챤은 자신의 내적인 삶을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순백의, 양털보다 더 흰 소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라도 짠 맛을 잃는다면 전혀 불필요한 소금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적 정결함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흔히 사회가 썩었느니 부패했느니 말합니다. 우리안에 이 짜게 하는 맛이 없다면, 내적 성결이 없다면 그 사회가 썩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먼저 우리 가운데 내 자신 안에 썩지 않는 내적 생활 성결의 생활을 하여야 사회가 썩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소금의 역활을 감당하는 성도. 우리가 내적 성결을 잃어버리면-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림받는 평신도. 내적 성결을 통해 쓰임 받는 평신도.
2) 빛-외적생활(비추는 것) 빛은 안에 있는 것보다 비추이는 밝음 자체가 중요하다. 내적으로 정결함을 가진 성도는 이제 그것을 밖으로 비추어야 한다. 빛이 비추이지 않으면 전혀 소용이 없다. 내적성결을 가지고 이제 나아가서 많은 사람에게 믿는 사람으로서의 삶, 또한사람으로서의 삶에 있어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느끼고, 만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평신도의 빛된 생활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나라와 교회는 결코 목사나 전도사에 의해서 이끌려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 된 여러분의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교회입니다. 한국의 복음화가 바로 이 평신도에 의해서 시작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역의 복음화는 우리 평신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 주님의 백성인 평신도로써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 칭찬 받는 성도. 평신도.
그런데 사실은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1년 52주가 평신도 주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주인이요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감리교회가 요한 웨슬리에 의해서 시작되면서 영국교회는 그에게 설교할 예배당을 빌려주지 않고 그들에게 성만찬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전도는 온 영국을 흔들었고 이제 웨슬리 혼자 그 만은 교인들을 다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평신도 전도자를 뽑아 설교와 신도를 방문하게 하였습니다. 이 평신도 전도자들은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채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였으며 그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감리교회는 처음 시작에서 부터 평신도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평신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Laity-Laos) 구약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에게 소속된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 의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에게 소속된 자녀가 되게 하셨고 그에게 소속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모든 성도를 향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한 백성"이라고 하였다.(벧전 2:9) 하나님의 백성이란 교역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 전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평신도는 전체 하나님의 백성이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교회의 성도는 그의 살아 있는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엔 교역자와 평신도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라는 특별한 명칭을 쓰는 것은 좁은 의미의 평신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의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받은 바 사명에 의해 교역자와 평신도로 나누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신도라는 말을 쓸 때는 좁은 의미를 말합니다. 그러면 평신도의 신앙은 어떠해야 할까
1. 충성하는 평신도(딤후2: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3-디모데후서 2:4' 주님은 우리를 십자가의 군병으로 부르셨습니다. 평신도는 주의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군병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대장에게 충성하지 않는 군인은 그 군대에서 필요가 없습니다. (군대에서 가장 큰 죄는 명령 불복종입니다.) 그런 군인이 있는 군대는 매일 지기만 하는 군대입니다. 군인에게 있어서는 명령과 오직 복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듯이 주의 십자가의 군병인 우리에게는 주님의 명령과 거기에 다른 복종. 즉 충성이 있을 뿐입니다. 아직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한국의 평신도들이 충성하는 모습을 역사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시작은 만주에서 부터입니다. 고국을 떠나 만주에 있던 많은 한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하며 권서인들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서 성경이 보급되게 되었고, 만주에 믿는 한인들이 많이 생겨지게 되었습니다. 이 한인들이 다시 고국에 돌아올 때 복음을 들고 고국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복음의 씨를 뿌리는 수고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의 복음의 시작은 권서인들과 같은 많은 평신도들의 수고와 충성이 있었습니다. 서상륜과 같은 사람은 만주에서 로스와 함께 성경을 번역하였고 목판을 조각하여 인쇄하는 일과 만주에 성경을 반포하고 고국을 왕래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향인 황해도 장연 솔내에 한국인의 손으로 세워진 최초의 예배당인 솔내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한편 백홍진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입수하기 위하여 성경을 한장 한장 풀어서 노끈으로 만들어 꼬아서 고지(예날종이)로 두툼하게 복음서를 쌓아서 고지 행상인냥 위장하여 압록강을 건너 의주로 들여왔습니다. 그 노끈을 하나하나 다시 풀어서 반드시 책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전도용으로 보급. 한국에 기독교가 시작하는 때에 평신도들의 충성이 있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서 이와같이 한국이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이 군병은 주님의 일을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군병의 충성 만이 그의 나라를 부흥시키며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충성이 그의 나라를 위한 것이고 그의 나라에 기쁨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도록 충성하여 승리하는 십자가 군병.
2. 순종하는 평신도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5-빌립보서 2:1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과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지기까지 순종하셨고 이제 네 몸을 십자가에 내어 놓아야 한다는 (죽어야 한다는) 그 말씀에 순종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평신도들은 이 주님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평신도는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간 길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자는 그 스승에게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육체를 입으신 것은) 바로 우리의 모범이 되시고 본이 되기 위함입니다. 오직 스승만을 바라보며 그를 따르는 제자가 참된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주의 가신 그 길을 바르게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는 평신도가 됩시다. 제자가 됩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아버지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못된 길, 거짓된 길, 더 나쁜 길로 가라고 명령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우리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것도 압니다. 또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이 고난의 길이지만 그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도 압니다. 단지 우리의 인간적 욕심과 미련과 걱정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순종하셧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주님의 칭찬이 여러분의 머리위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3. 소금과 빛인 평신도(마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마태복음 5:16'
1) 소금-맛을 잃지 않는 소금 (내적생활) 소금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짠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안에 있는 맛이소금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크리스챤은 자신의 내적인 삶을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순백의, 양털보다 더 흰 소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라도 짠 맛을 잃는다면 전혀 불필요한 소금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적 정결함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흔히 사회가 썩었느니 부패했느니 말합니다. 우리안에 이 짜게 하는 맛이 없다면, 내적 성결이 없다면 그 사회가 썩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먼저 우리 가운데 내 자신 안에 썩지 않는 내적 생활 성결의 생활을 하여야 사회가 썩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소금의 역활을 감당하는 성도. 우리가 내적 성결을 잃어버리면-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림받는 평신도. 내적 성결을 통해 쓰임 받는 평신도.
2) 빛-외적생활(비추는 것) 빛은 안에 있는 것보다 비추이는 밝음 자체가 중요하다. 내적으로 정결함을 가진 성도는 이제 그것을 밖으로 비추어야 한다. 빛이 비추이지 않으면 전혀 소용이 없다. 내적성결을 가지고 이제 나아가서 많은 사람에게 믿는 사람으로서의 삶, 또한사람으로서의 삶에 있어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느끼고, 만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평신도의 빛된 생활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나라와 교회는 결코 목사나 전도사에 의해서 이끌려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 된 여러분의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교회입니다. 한국의 복음화가 바로 이 평신도에 의해서 시작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역의 복음화는 우리 평신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 주님의 백성인 평신도로써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 칭찬 받는 성도. 평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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