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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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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소중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우리들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감사하고, 또한 주 안에서 거듭남에 대해서 감사하고,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겁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1. 범사에 감사하라. 어느 권사님은 죽음이 임박해 온 것을 아시고는 스스로 음식을 거절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빨리 가야지.” 그것은 으레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끗하게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인생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고, 죽음이 지금 곁에 와 있는데도 두려움은커녕 깨끗하게 그 종말을 맞이하기 위해서 음식을 거부할 수 있는 그 초연함이 바로 신앙이 주는 힘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고 했습니다. 또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했습니다. 그리고 “(골2:7)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으뜸 가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할 줄 아는 정신입니다. 그래서 연중 제일의 날이 추수 감사절인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추수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겪었고, 그것을 소중하게 후대에 전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분명 감사를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조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사함을 알고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과 모르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미국에서 일어난 토픽입니다. 70만 달러를 가지고 살아가던 어느 부자 영감이 겨울에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 추운 방에서 잠을 자다가 그만 얼어 죽었습니다.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해 보니까 베개 밑에 현금 20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그 노인은 누구에게 주어 본 일도 없고, 쓸 줄도 몰랐고, 활용할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을 그냥 지닌 채 얼어 죽은 것입니다. 가치를 알아야 성숙한 인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것은 법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맥추절을 지키라, 모두 명령입니다.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이니 더욱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왜 이렇게 명령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을 지킴으로 주어지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풍습대로라면 맥추절이나 수장절 때는 그 감사 기간이 7일간이나 됩니다. 7일 동안 온 가족이 아이나 어른 모두가 밭으로 나가 그 곳에서 장막을 쳐 놓고 추수하면서 감사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것은 현장 교육입니다. 아이들은 그 곳에서 농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보고 배우게 됩니다. 씨를 뿌린 후에 그것이 자라며 익어 가며 거두게 되기까지 하나님이 하시는 역할과 섭리를 몸소 체험하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좋은 교육의 형태인 현장 교육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올 때에는 어른들만 올것이 아니고 아이들도 동반해서 함께 오는 것이 좋습니다. 어린 아이일 때에는 어린 아이반에 넣어야 하겠지만 아이들이 조금 크면 어른들과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 아이들이 예배에 참예함으로써 경건을 배우게 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몸과 마음에 익히게 하여 그 마음을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주는 것이 신앙 훈련이고 종교 교육입니다. 이 같은 환경과 분위기에서 자라나 성인이 되면 그것이 굉장한 신앙의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이것은 모두 명령형입니다. 왜 명령형으로 강조했느냐 하면 반드시 지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드시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보다 더 중요한 신앙적인 결실, 그리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총을 힘입고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2. 맥추절은 상반기에 대한 감사절입니다. 맥추절은 교회력에 의해서 7월 첫 주일에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중 전반기를 맥추절을 통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추수 감사절을 통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농사는 대개 연 2회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절 농사와 추절 농사입니다. 그러니까 맥추 감사절은 하절 농사 기간인 전반기 동안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로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뜻을 찾아서 감사해야 그것이 진정한 감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뜻을 찾아내야 합니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감사가 뜻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다람쥐가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고 있습니다.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궁금합니다. 저 다람쥐가 왜 저렇게 돌리고 있을까 뚱뚱한 사람이 생각합니다. “살을 빼기 위해서 그러겠지.” 가정 불화가 잦은 사람이 생각합니다. “탈출하고 싶어서겠지.” 낙천적인 사람이 생각합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겠지.”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해석합니다. 비관자가 볼 때 그 행동은 비관스러운 동기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낙천가의 생각은 그 반대일 것입니다. 맥추절을 맞이할 때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농사도 짓지 않는데 무슨 맥추 감사절이란 말인가. 우리는 보리를 먹지 않는데.” 대부분 속으로 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좀더 깊이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적인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농사가 지어짐으로써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반기 동안을 무사하게 살아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성서 주석가 메튜 헨리가 어느 날 길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지감을 뺏기고 집에 돌아온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첫째는 이제까지 내가 한 번도 강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을 감사드립니다.
둘째는 오늘 지갑만 뺏기고 목숨은 뺏기지 않은 것을 감사드립니다.
셋째는 지갑을 통째로 뺏겼으나 돈이 많이 없었음을 감사합니다.
넷째는 내가 강도당한 사람이지 강도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매튜 헨리는 강도를 만나고 나서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발견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정말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이것이 발견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뜻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같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 강도를 만났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
첫째로 봉급 날인 오늘 강도 만난 것이 저주스럽습니다.둘째로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강도 만난 것이 저주스럽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이 같은 원망이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입에서, 가슴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발견입니다. 생각입니다. 뜻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하실 때 서두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하고 설교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주일은 태풍이 불면서 비가 왔습니다. 성도들은 오늘은 목사님이 뭐라고 감사를 하는가 보자 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날이 일년 내내 계속되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하더라고 합니다. 신앙 생활은 깊은 뜻을 발견해 내는 생활입니다. 눈과 마음을 열고 주위를 살펴보면 이렇게 모두가 감사할 것뿐입니다. 그것을 발견해 내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낙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명령문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감사를 하되 향상된 생활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무엇을 감사하라는 말씀인가 하면 전보다 향상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감사할 조건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문제는 먹는 문제입니다. 그 어떤 문제도 먹고난 후에 이루어지는 문제들입니다. 30, 40년 전의 우리 사회 모습은 배고픔의 문제가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농촌의 모습은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생활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배고픔의 문제는 모두 극복되었습니다. 그 옛날 보릿고개에 대한 심각한 과거를 잊지 못해서 말들을 하고 있지만 오늘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진풍경이 생겼습니다. 옛날의 부자들은 고기를 먹고 쌀밥을 먹고 살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늘 푸른 채소와 보리밥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이것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오늘 도시의 부자들은 오히려 보리밥과 채소로 소식을 하고 농촌의 식생활은 오히려 고기와 흰쌀밥으로 대체가 되었습니다. 생활 양상이 바뀌어도 아주 이상하리 만큼 바뀌었습니다. 도시인들은 채소 중에서도 깨끗하고 잘 다듬어진 개량 채소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료와 농약으로 길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옛날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버려졌던 벌레 먹은 채소들이 오늘에 와서는 값을 더 쳐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자연 그대로 자라나는 무공해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현상에 민감하게 편승한 약삭 빠른 상혼들이 시골 사람들을 시켜서 벌레를 양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양식된 벌레들을 채소 더미에다 적당히 뿌려 놓습니다. 그러고는 이것을 벌레가 먹는 무공해 식품이라고 선전하고는 많은 돈을 받고 팔아 먹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습니다. 이제는 베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질 좋은 것을 골라서 먹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머물고 있습니다. 이 같은 배부른 시대를 살면서 그냥 만족해 하는 것은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 같은 생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 신앙인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침에 우리의 생활이 향상되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아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감사를 하되 성숙한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감사를 하되 성숙한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배부르게 먹고 살게 되었으니까 감사하는 것도 분명 감사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감사는 유아적인 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아이는 언제나 뭔가 얻어질 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잘 되어서 감사하는 감사는 반대 급부의 감사입니다. 조건부 감사입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 감사도 없었을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하되 성숙한 감사를 하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야말로 일생을 감사하다 못해 감격하면서 살아갔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실패가 주어져도 그것이 주께 이득이 된다고 판단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성공으로 해석했던 사람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해도 그것이 예수 때문이라면 옥중에 앉아 있으면서도 찬송을 부르며 주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자신이 죽고 헐벗고 모욕을 당하는 것이 주께 득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신앙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나를 본 받으라”하고 자신 있게 말했던 사람입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 이것은 명령입니다. 오늘 맥추 감사 주일 아침에 다시 한 번 이미 주어진 감사의 의무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큰 감사의 삶이 주어집니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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