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삶 (골2:6-15)
본문
두 발이 모두 의족인 사람이 암벽등반에 성공을 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미국의 휴 허라는 23살의 청년이 있었다. 그는 사고를 당해 무릎 15cm 아래를 절단당했다. 그러나 그는 굳은 의지와 용기로 무장하여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면서 등반에 도전하여 마침내는 암벽 등반자가 되었다고 한다. 만일 휴 허라는 이 청년이 자신의 운명을 비관만 했다면 그는 결코 승리하는 인생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등반가와 비슷하다. 우리는 정상의 고지를 향해 계속 등반해야 한다.
그런데 등반이라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 님을 우리는 잘안다. 특히 길이 험하다. 또한 잘못하면 생명 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등반길은 결 코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본 문의 골로새 교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정상고지를 향하여 열심히 등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밀어닥친 자욱 한 안개 때문에 조난을 당하듯 그들은 그만 방황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단의 속임수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승 리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비결을 소개하고 있다.
1. 승리의 첫번째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이 다(6-1O절).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은 서로의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강건했다. 그러나 교회의 바깥에는 원수가 항상 우리를 기다리듯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다.
첫째, 계속 자라나야 한다(6-7절). 6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로 받았으니"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님을 받았으니"라는 말과 뜻이 같은 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는 것 과 성령님받은 것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단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상하고 신기한 새로운 비밀인가 무엇 인가 우리는 다른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지 모르지 만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바울의 말은 반대다. 그는 "지금 당신들이 가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 앞만보고 가라"고 하 신다. 그리고 계속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라고 하였다. 우리 에게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것은 일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모 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다 구비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7절 말씀에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라고 하였다. 자신을 마치 새로 옮겨 심은 나무처럼 뿌리를 깊이 깊이 박 으라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 위에서 든든히 서야 된다 고 하셨다. 마치 빌딩이 지어져 올라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고 하는 교훈의 터위에 우리의 믿음의 집을 굳게 세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우져 주는 사실은, 결코 우리에게는 어떤 새로운 교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 배운 것이나 지금 의 것이 다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배워가야 한다. 그 리고 우리의 생활에 점점더 깊이 적용시켜야 한다. 바로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코 신비한 이 야기를 하는 이단들의 가르침을 들어야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적용을 통해 체험하는 삶을 살 때 자연히 우리는 감사의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성도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것을 생각할 때 계속 자라나는 삶을 살게 된다.
둘째, 헛된 속임수를 주의해야 한다(8-1O절). 8절에 "사람의 유전"이라는 말이 있다. 예부터 내려오는 속담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호랑 이 담배 피던 시절에만 해당되는 말들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서 이것은 세상의 초등학문을 가르키는 말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가르침을 우선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 나름대 로의 생각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그래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 라고 규정한 것이다. 더 이상의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단호한 말이다. 교회내에는 신학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헛된 속임수를 주장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시다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우리처럼 육신을 가 지고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죽으신 후 부활하셨을 때도 역시 몸을 가지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믿는 순간 예수 안에서 충만해졌다고 성경은 말한다. 1O절에 우리도 충만 해졌다는 말씀을 생각해야 한다. 그 당시의 이단들은 다른 것 으로 충만해져야 한다고 이들을 유혹했다. 지금도 역시 이단들 은 마찬가지로 다른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충만이 다 거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충만함 이외에는 다른 충만이 전혀 필요치 않다. 우리 를 충만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다. 우리는 최고의 통치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그의 성품으로 충만해진 것이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자라나는 것이며, 헛된 속임수를 주의하는 것이다.
2. 승리의 두번째 비결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아는 것이다(11-15절).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이따금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의 의 미는 처음이요 나중되시는 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영원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우리 인간들은 범 죄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존재로 전락된 것이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 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 가운데 계신다. 그는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 히는 순간 우리의 존재 역시 그분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을 결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지 말자. 이것이 영생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지 우리를 위해서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1절의 말씀이 이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여기에 할례와 세례가 소개되어져 있다. 우리가 주의할 사 실은 할례는 나쁜 것이고 세례는 좋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와 세례 모두를 받았다고 했다. 할례는 "내 몸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정신으로 몸 한 부분을 자르는 의식이다.
그런데 11절의 말씀은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절단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할례를 받으셨다.
왜냐하면 율법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 역시 함께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이다. 이 얼마나 편한 일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의 의미는 이 렇게 심오하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두번 다시 할례받을 필요가 없다. 할례를 받은 자는 필 연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의무사항이 따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도 아시고 우리 대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지켜 주셨 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전혀 우리를 구속하 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12절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 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하 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사실이 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결코 세례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고 기록하였다. 세례는 죽음을 상징한다. 사람이 물 속에 오래 있으면 죽듯이 죄악 된 인생을 물속에 잠궈 죽음을 상징하는 의식을 행한 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났음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자 세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어지는 은총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육신의 생명 이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 게 된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에게 굉장한 축복을 선물하신 것이다. 바울은 13절에서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사는 방 법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게 된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바울은 14절에서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는 우리를 살 리시기 위해서 몇 가지의 법적 절차를 밟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고소하는 참소자인 율법의 조문들이 적혀 있는 증 서를 치워 버리셨다. 그러나 혹시라도 싶어서 하나님께서는 아 예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말에는 완전한 결박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모든 증인들 앞에서 의 확고부동한 공개의 의미도 담겨 있다. 즉 율법은 이제부터 이 사람들을 구속할 수 없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 선언은 모 두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사면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 안 에 있는 자에게만 해당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간첩은 형기를 마쳐도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석방의 혜택에서 제외 되는 것이 현실 법이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에게는 율법의 효력에서 사면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할지 라도 본인이 믿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형당할 아무 이유가 없으신 분이시다. 이 사실 이 사단으로 하여금 그를 붙들지 못하게 했다. 붙들어 놓을 근거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15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단의 모든 주권과 권위의 무장을 해제시키신 후 수많은 구경군들 앞에서 그들을 포로로 마차에 달고 친히 개선 의 행군을 하셨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 에서 내가 치뤄야 할 계산서를 모두 정리해 주시고 나를 얽어 매는 사단의 굴레마저 파괴시켜 버리셨다.
결론: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를 좋아하 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이상한 내용을 설교하는 부흥사를 좋 아하는 교인들도 있다. 골로새 교인들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진리는 오직 하나님 말씀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것으로 가득채워져 있어서 다른 것 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도저히 다른 것 이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우리를 충만으로 역사하 셨다. 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사단은 당신을 주장하지 못한다. 이 일은 역사적인 사건이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고한 내용이 복음의 핵심이다. 성도에게는 복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진리는 이단의 가 르침이 아니라 복음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영광의 복음을 아는 것이 이단으로부터 승리하는 비결이다. 이 복음은 당신을 성자로 변화시켜줄 것이다.
그런데 등반이라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 님을 우리는 잘안다. 특히 길이 험하다. 또한 잘못하면 생명 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등반길은 결 코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본 문의 골로새 교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정상고지를 향하여 열심히 등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밀어닥친 자욱 한 안개 때문에 조난을 당하듯 그들은 그만 방황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단의 속임수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승 리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비결을 소개하고 있다.
1. 승리의 첫번째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이 다(6-1O절).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은 서로의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강건했다. 그러나 교회의 바깥에는 원수가 항상 우리를 기다리듯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다.
첫째, 계속 자라나야 한다(6-7절). 6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로 받았으니"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님을 받았으니"라는 말과 뜻이 같은 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는 것 과 성령님받은 것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단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상하고 신기한 새로운 비밀인가 무엇 인가 우리는 다른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지 모르지 만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바울의 말은 반대다. 그는 "지금 당신들이 가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 앞만보고 가라"고 하 신다. 그리고 계속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라고 하였다. 우리 에게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것은 일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모 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다 구비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7절 말씀에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라고 하였다. 자신을 마치 새로 옮겨 심은 나무처럼 뿌리를 깊이 깊이 박 으라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 위에서 든든히 서야 된다 고 하셨다. 마치 빌딩이 지어져 올라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고 하는 교훈의 터위에 우리의 믿음의 집을 굳게 세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우져 주는 사실은, 결코 우리에게는 어떤 새로운 교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 배운 것이나 지금 의 것이 다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배워가야 한다. 그 리고 우리의 생활에 점점더 깊이 적용시켜야 한다. 바로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코 신비한 이 야기를 하는 이단들의 가르침을 들어야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적용을 통해 체험하는 삶을 살 때 자연히 우리는 감사의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성도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것을 생각할 때 계속 자라나는 삶을 살게 된다.
둘째, 헛된 속임수를 주의해야 한다(8-1O절). 8절에 "사람의 유전"이라는 말이 있다. 예부터 내려오는 속담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호랑 이 담배 피던 시절에만 해당되는 말들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서 이것은 세상의 초등학문을 가르키는 말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가르침을 우선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 나름대 로의 생각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그래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 라고 규정한 것이다. 더 이상의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단호한 말이다. 교회내에는 신학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헛된 속임수를 주장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시다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우리처럼 육신을 가 지고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죽으신 후 부활하셨을 때도 역시 몸을 가지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믿는 순간 예수 안에서 충만해졌다고 성경은 말한다. 1O절에 우리도 충만 해졌다는 말씀을 생각해야 한다. 그 당시의 이단들은 다른 것 으로 충만해져야 한다고 이들을 유혹했다. 지금도 역시 이단들 은 마찬가지로 다른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충만이 다 거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충만함 이외에는 다른 충만이 전혀 필요치 않다. 우리 를 충만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다. 우리는 최고의 통치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그의 성품으로 충만해진 것이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자라나는 것이며, 헛된 속임수를 주의하는 것이다.
2. 승리의 두번째 비결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아는 것이다(11-15절).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이따금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의 의 미는 처음이요 나중되시는 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영원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우리 인간들은 범 죄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존재로 전락된 것이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 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 가운데 계신다. 그는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 히는 순간 우리의 존재 역시 그분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을 결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지 말자. 이것이 영생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지 우리를 위해서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1절의 말씀이 이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여기에 할례와 세례가 소개되어져 있다. 우리가 주의할 사 실은 할례는 나쁜 것이고 세례는 좋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와 세례 모두를 받았다고 했다. 할례는 "내 몸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정신으로 몸 한 부분을 자르는 의식이다.
그런데 11절의 말씀은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절단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할례를 받으셨다.
왜냐하면 율법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 역시 함께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이다. 이 얼마나 편한 일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의 의미는 이 렇게 심오하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두번 다시 할례받을 필요가 없다. 할례를 받은 자는 필 연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의무사항이 따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도 아시고 우리 대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지켜 주셨 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전혀 우리를 구속하 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12절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 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하 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사실이 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결코 세례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고 기록하였다. 세례는 죽음을 상징한다. 사람이 물 속에 오래 있으면 죽듯이 죄악 된 인생을 물속에 잠궈 죽음을 상징하는 의식을 행한 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났음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자 세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어지는 은총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육신의 생명 이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 게 된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에게 굉장한 축복을 선물하신 것이다. 바울은 13절에서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사는 방 법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게 된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바울은 14절에서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는 우리를 살 리시기 위해서 몇 가지의 법적 절차를 밟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고소하는 참소자인 율법의 조문들이 적혀 있는 증 서를 치워 버리셨다. 그러나 혹시라도 싶어서 하나님께서는 아 예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말에는 완전한 결박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모든 증인들 앞에서 의 확고부동한 공개의 의미도 담겨 있다. 즉 율법은 이제부터 이 사람들을 구속할 수 없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 선언은 모 두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사면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 안 에 있는 자에게만 해당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간첩은 형기를 마쳐도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석방의 혜택에서 제외 되는 것이 현실 법이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에게는 율법의 효력에서 사면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할지 라도 본인이 믿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형당할 아무 이유가 없으신 분이시다. 이 사실 이 사단으로 하여금 그를 붙들지 못하게 했다. 붙들어 놓을 근거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15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단의 모든 주권과 권위의 무장을 해제시키신 후 수많은 구경군들 앞에서 그들을 포로로 마차에 달고 친히 개선 의 행군을 하셨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 에서 내가 치뤄야 할 계산서를 모두 정리해 주시고 나를 얽어 매는 사단의 굴레마저 파괴시켜 버리셨다.
결론: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를 좋아하 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이상한 내용을 설교하는 부흥사를 좋 아하는 교인들도 있다. 골로새 교인들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진리는 오직 하나님 말씀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것으로 가득채워져 있어서 다른 것 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도저히 다른 것 이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우리를 충만으로 역사하 셨다. 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사단은 당신을 주장하지 못한다. 이 일은 역사적인 사건이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고한 내용이 복음의 핵심이다. 성도에게는 복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진리는 이단의 가 르침이 아니라 복음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영광의 복음을 아는 것이 이단으로부터 승리하는 비결이다. 이 복음은 당신을 성자로 변화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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