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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머리 (골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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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는 바울이 로마의감옥에 갇혀 있을때(AD62-63)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옥중 서신으로서 유대주의의 핵심인율법과 그리고 위치적으로 헬라의 철학을 접하기 쉬운 지역에 있는 까닭에 헬 라의철학이 파고 들어 교회의중심을 이루는 복음을 어지럽게 하는 사실을알고 이를 엄격하게 배격하기 위한 내용으로씌어진책입니다. 당시골로새라는 도시는 품질이 좋은모직물과또모직물이나 옷감 등에 아름답게그리고 질이 좋은상태로 염색을 잘하여 세계적 으로 알려진 국제도시였으며 지역적으로동서를 연결하는 소아시아내 의관문의 하나로서중요한 무역로상이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이이방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었 지만 입지적 조건과환경적 영향으로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헬라의 철 학사변 그리고이방종교의 사상에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이사실 을 알게 된 바울은 한번도다녀간 적이 없고 자기가개척한교회도 아닌(에바브라에 의해 설립된교회로 봄) 골로새교회에 복음을증거 할 사명을사도의 견지에서 느끼게되어 복음을 편지로 보내게 된것 입니다. 물론 이미 전하여진 복음을 따르고 믿고는있었지만어떤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견뎌내기에는너무도 어려운 상태에 빠져있는교회였 습니다. 그런까닭에 기록되어진 내용을살펴보면 교회는 무슨 일이든지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하 며예수 그리스도만이 절대구원자이시며 절대적 주권자이심을 믿 고 그안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자의 충만이요(엡4:23) 교회의 머리가되십니다.
그러므로우리가그분을 우리의 머리로 섬기려면우리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그 분의 통치 에맡겨야 하며 그분이 명령하는대로 순종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갖 게됩니다.골로새교회의 성도들처럼 복음을 받고서 다른 가르침과 다 른 교훈과 다른사상을 따라서는 아니되는것입니다.또 그러한 요 소들이 우리를솔깃하게 하고 유혹한다 할지래도복음외의 어떤외 부적인 요소에 의하여 우리의 신앙이 뿌리채 흔들려서는 안된다는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이 사실을 몰라서 신앙이 흔들리는것이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흔들린다는데문제가 있는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몰라서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며 또 하등에 문제시할 필 요는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우리의 신앙이 그러한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진단해보아야 합니다.더 나아가서 우리가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여 교회에발을 들여논 이상 어떤 신앙수준에 까지 이르러야 하는가도 생각해보아야할 것입니다.오늘 본문은 두귀 절뿐이지만 이 짧은 두구절의 말씀이우리에게 여기에따른바른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오늘저녁 본문 말씀그대로를생각 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성령님의 깨닫게 하시는 지각을통하여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있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다는 뜻이 무엇인가를생각해보아 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하는 것은 본문에의하면예수를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곧 이 말은 예수를 구주로영접했다는말씀인데 이말씀 속에는 몇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인 것으로 알고 주로 믿었다는 뜻 이요,다음은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인생모든 것을 절대 주관하시며 절대 주권자로행세하실 수 있는 주인이라고인정하여 그 분의 말씀 앞에서는 절대순종하여 충성하겠다는 종된의지를 표명했다는 뜻으 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곧 이말씀 속에는 예수를주 로받기 전에는 다른 것을 주로 섬기고 있었으나 이제는 섬기는 대상 이 예수라고 하는 분이요순종과 충성의 대상이 예수라고 하는분으 로 바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주라는말은 예수님 당시에 이 말이뜻하는의미와는 매우 다른 의미를지니고 있었습니다.애초에 이말은최고의권세 자,으뜸인 분,모든 것위에 뛰어난분,그리고 만유의 주라는 뜻을지 니고 있었습니다."주"라는 낱말은헬라어로 퀴리오스인데 노예들 이 자기의 주인을 가리킬 때 부르는 말로서 문자로는 첫글자를 소문자 로 표기하였고 첫글자를 대문자로 쓰면 로마제국을 통털어 오직가 장 권세있는 한사람만을 의미하는 낱말로쓰였습니다.그래서초대 교회당시에는 가이사 황제가 주님이었습니다. 특히 그때는 공무원 이나 군인들이 길거리에서만났을 때는 언제나 "가이사가 주님이시오 "라고 인사를 해야했었습니다.그러면 상대방은 "옳소,가이사가 주 님이시오"라고 대답하는것이 예절로 되어 있었습니다.그러기에 당시 기독교인들에게는이 문제가 보통 심각한문제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가이사가 주님이시오"라는 인사에 그들은 "아니오,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시오"라고 대답을하고 있었기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이사실이 황제에게 밀고가 되고 정식으로 보고가 되어핍박을받는요인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가이사 황제가 주님이라고하는높은 칭호를받지 못한질투심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권세에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과충성의 대상이 황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였기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하는 의미는깊은의미가 있는 것입니다.정말로 우리 삶을명령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고 믿고 있으며 그 분에게만 충성하겠다는마음의 결단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 를 의지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를 주로 받은 자는 어떤 의무를 갖게 되는가를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주로 받은 자는 항상 예수 안에서 행하여야 할 의무를갖게 된다고 본문은말씀하고 있습니다.6절 하반절의그 안에서행하되 라는 말씀은 예수 안에서만 걷고 예수 안에서만 행동하고 예수안에 서만생각하고 말하고 모든 것을 계속적으로 실행한다는 의미를 가지 고있습니다. 다시 말하면내 중심으로 살지않고 예수중심으로산다는말이요,내 기쁨만을 추구하는 것이아니라 예수의 기쁨을 위하여산다는것이 요,내뜻대로 행하는 것이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 산다는의 미요,세상나라만을 위하여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나라를위하여 산다는의미인 것입니다.이 세상의풍조나 유행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믿는다고 하는 것은 영접하는 차원에서 끝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입술의 고백으로만 머물러버리는것이아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원하는바대로 주님이 원하는수준에머물러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안에서 행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골로새교회에 얼 마나 많이강조하고 있는고 하면15회나 말하고 있습니다.예수안 에서 또는 그 안에서 그 아들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고말 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안에 무엇이 있기에 바울은 자꾸만" 그안에서"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구속 곧 죄사함이있다고말합니다.(1:14)인간의문제는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가해결되지 않는한 지구촌에는 평화가 존재할 수없습니다.
2)완전한 자로 서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1:28)인간은죄로 말미암아 불완전한 상태에놓여 있습니다.불완전한 것일수록안전은 없습니다.
3)지혜와 지식의 모든보화가 감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2:3)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찾고자 원한 것은여러가지가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크게원하는 것은 보화입니다.이 보화 때문에희비극 이일어나고 전쟁이 터지고 사람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일들이 반복되 어왔습니다. 이 보화는 단순히 어떤 패물적인 가치만을 생각나게 하는 보화가 아 니라 지혜와 지식의 보화입니다.그것도 부분적인 보화가아니라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입니다.
4)그 안에서 성령님의충만이 있게 되었다고말합니다.(2:10)세사이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거룩한 영의 충만함을 예수 안에서받 게된 것입니다. 5)그 안에서 죄로죽은 우리가 생명으로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2:12)우리는 이미 영으로 죽어버린 자입니다.그러나 그가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셋째, 그 안에서행한다는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1)예수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이 말씀은 우리의 신 앙을 한그루 나무에 비유하고있는 내용입니다.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나무는 땅속에 뿌리를깊게 내리고 있는 나무입니다.세상 유혹과 사탄의미혹과 이단의 감미로운 유혹에 넘어지지 않을 성도는 예수안 에 신앙의깊은 뿌리를 박고있는 자입니다.우리가신앙의뿌리를 깊게 박고있다는 것은 예수를 깊게안다고 하는데 있습니다.예수를 깊게 알면 알수록신앙의 뿌리는 깊게 내리고 있게 됩니다.
2)그 안에 세움을입어야 합니다.이 말씀은 바울이 마치 집을 건 축하여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가 신앙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집은 불로 타서 없어질 재료로 짓고 있지만(나무,풀,짚)믿음 의 집을짓기 위해서는불타지 않는 재료로지어야 한다고말하고 있습니다.고전 4:10-15까지의 내용을보면 믿음의 집을세우기 위하여서는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며,건축재료는 금이나은이나보석으로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재료들은 물속이나 불속이나 환경에 관 계없이 변하지 않는것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생각에다 신앙의 집을 지으므로 믿음이 수시 로 바뀌어져 버립니다.어떤 사람은 자기의 감정에다 신앙의 집을 짓기도합니다.어떤 사람은 자기의기분에다 신앙의 집을짓기도합니다.어떤 사람은 지식에다 신앙의 집을 짓기도합니다.그러나처지는 변하여도변하지 않고없어지지 않는 말씀에다집을지어야합니다.우리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하는것 입니다.
3)그 안에서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서서감사함을넘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쓰러지고 넘어지는 이유는 예수의 교훈을받 지않았기 때문아니라받은 교훈 안에 믿음으로굳게 서있지못하 기때문입니다.이단에 쏠리기 쉬운 약점이 바로 이이유때문입니다. 또 어떤 자가이단에 쏠리기 쉽습니까 믿음에 서있다고말하면서도 감사치 못하고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입니다.어디에나 교회 안에는 불 만 세력이 있기마련입니다.불만 세력 때문에교회가어지럽혀지기도 하지만 불만세력을포용할 수 없는 정죄세력 때문에 교회는 더 어 지러울 수도 있음을 우리는알아야 합니다.왜 이땅에 구원파가생 겨나서 이 땅의 기독교계의이미지까지 흐려놓고 있습니까꾜회 안의 불만세력들을 선동하여 그리고 그미혹을 받은 성도들이미혹에빠 져버렸기 때문입니다.더 구체적으로말하자면 교회의 불만을 품은 자 들을 교회에서 감싸지 못하고 사랑으로 이해하지아니하고정죄의 철퇴만을 가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설자리를 잃고그들에게미혹되어 그곳에 서있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말하면 예수의 교훈을 받은대로 교회가행하지않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개인적으로는 그들 자신이 교훈받은 말씀에굳 게 서있지 못한 까닭이요,믿음에 있다할지래도 감사치 못하고원망 과 불평을일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여야 합니다.예수를 아는 것만큼 감사가 넘치고 모르는 것만큼불평이 솟고 예수를 깊게 아는 것만 큼믿음이 강하고 모르는 것만큼 믿음에 약하다는사실을인정해야 합니다.성경은 말합니다.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이 무작정믿으라고 말하지않습니다.믿음의 문제는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하는 문제입니다.우리 한국교회에 커다란 문제점이하나 있다고말한다면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교회의 강단에서 이해가 안되도 믿어라 성경 은 이해하려들지말고 믿기만 하라무조건 아멘해두면 복이된다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신앙의 피해를 보는 일이다등등 맹목적 맹종 신자를 만들어 버렸던일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고무조건 믿어버린 신앙인은 대단히 무지한 신자 입니다.예수를 깊게 알려고하지도 않고 무조건믿는일에뛰어든 신자일수록 자신과 교회 안에서 엉뚱한 짓을 할 수 있는 굉장한가능 성을안고 다니는 신자입니다.이러한자는골로새교회의성도처럼 철학의속임수에 끌려 다니기 쉽고율법적인 행위로 의로워질려고 애를 쓰며행위의 문제로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려드는자입니다. 또한 믿음과 행위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여살아가버리고 마는 자입니다.믿음과 행위는구원의 문제에 있어서수레의 두바퀴와같은 것입니다.믿었다고 다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얻은구원은 행위를 통해서도유지하게 되어있다는 사실 을 간과 해서는 절대 안되는 일입니다.그렇다고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일입니다.구원 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되는 것이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깊게알아야 합니다.
이 밤예배에참여하신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습니까일주일에 한번 들은 주일예배 설교로 예수를 잘 알 수있 다고 생각하십니까더 나아가서 목회자가 일주일에 한 번 전하는 주일 예배설교로 예수를 잘 알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일 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3년 동안이나 주님과 직접 함께하며 배웠던 제자들도 예수를깊게 알지 못하여 얼마나 예수님을 곤혹스럽게 만들었 습니까부부가 살을 맞대고 수십년을함께 살아도 서로의 인격을다 알지못하고 살아가는데어찌 우리가 주일에 한두번 모여서목회 자의설교로 예수를 깊게알 수 있겠느냐말입니다.그렇다고 매 주 일마다 목회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설교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것도 불가능한일입니다. 어느 부인이 세상을 일찍 떠난 남편의 장례를 치루고 나서 목사님 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목사님,제가 남편과 무려 20년을 넘 게살았지만 아직도 남편의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실지로 맞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의 지금 아내,여러분의 지금남편, 오래 살았지만 남편과 아내의인격을 100% 다 안다고 생각됩니까 그 것도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안다고 하는것은예수의인격을 안다고 하는 일인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예수님 세상에 계실 때 가장 힘쓰신 일이있다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그것은 곧 자신을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 가를 잘 알수 있도록 하는 일에 가장 큰 역점을 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깊게 알아야 하겠습니다.안다고 하는 정도가 그에 게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말하고 있는 바울과 같은 정도로 예수를 아는 일에 힘쓰고 알고 있는 인격적 지식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그야말로 예수께사로잡힌 바 되어 예수를 따라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믿는 일이 너무나 기 쁘고 즐겁게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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