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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치유하며 사는 가정 (골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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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차대전이 끝난 후부터 소위 가정치유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이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가정들이 모두 질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가정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기 위해 요청된 새로운 학문입니다. 또한 신학적으로도 교회 안에서의 가정의 치유에 대해 큰 관신을 가지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처음으로 가정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고 이름을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양육을 받고 최초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언어도 가정에서 배우고 인간이 알아야 할 기초적 교육과 훈련도 가정에서 받습니다. 어느 동물보다도 오랫동안 가정에서 생활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떠나서는 인간이 결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가정생활과의 관계를 그의 편지마다 자상하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로, 부부 간의 관계를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아울러 교인들의 관계를 한 가정의 형제사이처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가족관계를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 우리는 병든 인간이 많고, 병든 가정이 많은 풍토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질병을 앓게 되어 있습니다. 병든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자아상에 상처를 입게 되고, 자신에 대한 자긍심고 갖추지 못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지 못하고 좌절과 실의 가운데서 실패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오늘날 최대의 불행은 가정이 인간에게 깊은 만족을 주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현대 문화를 가리켜서 고통의 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고통, 이 스테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가정에 와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알콜중독자가 되고, 마약중독자가 되고, 밤에는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약물 문화 속에서 병든 인간이 가정에서 치유받을 때에는 나음을 받을 수 있지만, 병든 인간의 가정마저 병들어 버린다면 안식처를 찾을 수 없어서 가정 밖으로 방황하다가 인생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마시게 됩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것입니다.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혼자 있던 것이 안스러워 하와를 만드신 후에, 둘이 함께 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병든 현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의 원래 모습으로 둘아가야만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병든 가정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여섯 가지 치유의 방법을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풍요로운 의사소통으로 치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정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관계성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성에 상처가 올 때는 질병이 찾아오게 됩니다. 관계성의 상처는 원만한 의사소통으로 치유됩니다. 가정에 질병이 생기게 되면 의지적이고 지적인 측면이 아닌,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를 치유하려면 풍부한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솔직한 언어, 진실한 표현, 분명한 의사표시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자기 가치를 드러내야 하고 자기 존중심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격려하며 단합하고 용납하게 될 때에, 각자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개발되어 서로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안에서 인간관계가 깨진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대인관계가 매우 빈곤한 사람이 되고,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부정적인 말과 비난의 말과 왜곡된 표현과 분노의 말보다는 보다 적그적이고 긍정적인 말들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안정감을 느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안정감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불안정한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가정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자신이 가정에 속해있다는 분명한 소속감이 없으면 가정 밖으로 돌면서 엉뚱한 집단과 좋지 못한 그룹에 소속하려고 시도합니다. 또 가족은 서로서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의사소통이 없으면 질식할 것만 같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자녀들 상호간에 풍요로운 말을 주고 받을 때에 꿈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높은 자아를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질병은 풍요로운 대화를 통해서 치료받아야 합니다.
2. 들어주는 사랑을 나누십시오. 유명한 신학자인 폴 틸리히가 처음으로 사용한, “리스티닝 러브(listening love)는 곧 ”들어주는 사랑, 청취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남이 말을 할 때에는 그것을 차분히 들어주는 것이 바른 대접입니다. 말은 그저 공중에 외치는 소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실리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말에는 말하는 이의 정신과 영이 실려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예수님의 영과 인격이 표함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신사입니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무관심하고 듣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말 속에 상대방의 인격과 영혼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관심있게 들어주고 집중적으로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할 때에 그 말하는 사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상담학에서는 상담의 가장 큰 기술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가장의 자녀들이 하루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생활하다가 늦게 들어 왔을 때 그들에게 말을 시키고 부모님이 진지하게 들어 줄 때에 그 자녀는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남편의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아내여야 합니다. 청취의 사랑, 들어주는 사랑을 지닌 가정의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3. 서로 접촉함으로 치유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에, 대부분의 경우 직접 그 환부에 손을 얹고 안수하셨습니다. 문둥병자가 고름을 흘리며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다가가서 만지실 때에 그 병이 나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찾아올 때에 금하지 않으시고 품에 안으시면서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몸과 몸이 서로 접촉하는 것이 말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훌륭한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라도 서로 접촉하며 어루만지게 될 때에, 수백만 마디의 말을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이를 비언어적 소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산가족이 오랜 세월 동안 떨어져 있다 만날 때에는 말이 막힙니다. 그저 서로 부등켜 안고 울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습니다. 뺨을 비비면서 울부짖습니다. 비록 짧은 이 삼분 사이의 접촉이지만 그 사이에 수천 마디 말들이 표현됩니다. 가정에서 정답게 손을 잡아주고, 자녀들의 등을 두드려 주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부모와의 정다운 접촉을 통해 자녀들의 긴장이 풀어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합니다. 최근에 자녀의 손을 잡아 본 적이 있으십니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적이 있으십니까 뉴욕대학의 돌리스 크라이스라는 의학박사가 말하기를 의사가 환자에게 그저 손을 얹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환자의 혈액 내에 있는 적혈구의 수치가 높아지면서 세포에 산소가 잘 공급되어 치유의 효과가 더 빨라진다고 합니다. 환자에게 손을 얹어주는 것은 그저 말로만 묻고 지나가는 왕진보다도 두 배, 세 배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기들은 어머니와의 접촉을 통해 수많은 대화를 합니다. 최근에는 부모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모유를 먹이지 않고, 우유로 아기들을 키웁니다. 플라스틱 젖꼭지에 안아 주지도 않고 젖을 먹이게 되면 아이는 불안하게 됩니다. 정서적인 치유를 받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아이에게 정신적인 안정과 치유를 가져오게 됩니다. 가족끼리 서로 손을 잡아주고, 서로 안아주고 하는 접촉들이 가정에서 큰 치유의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4. 유머와 웃음이 있는 가정을 만드십시오. 가정에 웃음이 사라지고 유머가 사라졌다면 이미 병들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가정에서 서로 웃고 즐거워하고 기쁨을 나누는 가정은 치유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가정은 교향악처럼 노래와 웃음과 기쁨이 조화롭게 넘쳐흘러야 합니다. 이기심과 욕심과 탐심에 젖어서 서로 눈치만 보는 그런 가정이 아니라 서로 웃고 웃음을 나누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유머가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유머와 웃음이 있는 가정은 여유있는 자녀들을 양육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고등학생들이 그저 조용히 책만 보면서 공부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들어가며 공부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음악이라도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따뜻한 웃음과 위로가 없기 때문에 기계에 의지해서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기쁨과 유머가 있을 때에 가정이 치유를 받게 될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께서 가셨을 때에, 그곳에는 기쁨이 있고, 유머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맹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가정이 너저분한 TV연속극이나 볼 것이 아니라, TV를 끄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서로 대화하며 기쁨을 나눌 때 가정에 깊이 순어있는 상처가 치유될 것입니다.
5. 용서와 인내로 하나가 되십시오. “(골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본문은 서로 용서할 것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정은 용서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용서받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의 가정도 용서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을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서로 십자가를 질때에 용서할 수 있고 그곳에서부터 가정의 평화가 오고 거낭한 가정이 됩니다.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원인 중에는 때때로 오년 전, 십년 전에 가족이 지은 죄를 자꾸 뒤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정에 평화가 깃들 수가 없습니다. 모두 잊어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들먹이며 피차에 서로 상처를 주는 가정이 가장 불행한, 치유받지 못하는 가정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을 때에, 그 아버지는 이유도 사정도 묻지 않고 무조건 용서했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형은 잔치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비난만하고 있습니다. 끝내 용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가장 큰 덕은 인내의 덕입니다. 피차에 참아야 합니다. 참지 않고는 문제가 해결되자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다하고, 내 분만 다 터뜨릴 수는 결코 없습니다. 혹 여러분 사이에 참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살며시 자리를 비켜서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를 한바퀴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참을성있는 용서와 오래참음이 있을 때에, 이로 말미암아 그 가정이 치유되어 하나가 될 것입니다.
6. 성령님의 기름으로 치유하십시오. 우리 가정의 상처는 결국 신앙으로만 치유됩니다. 우리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와서 의뢰할 때 가정에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에 힘껏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힘껏 찬송을 부를 때에 우리 마음 속의 모든 것이 발산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의 기름이 부어져 치유를 받게 됩니다. 예배를 정성껏 드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바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에 여러분의 마음과 거정에 성령님의 기름이 부어져 상처가 치유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의 깊이 패인 상처를 아물게 하고 치유하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깊은 상처에 성령님의 기름을 바르기 위해 함께 주님앞에 나와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참으로, 교회학교에 가는 자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가정의 모습이 상처를 치유함을 받는 참 가정의 모습입니다. 함께 믿는 그리스도, 함께 믿는 그리스도의 말씀, 함께 드리는 예배가 바로 치료의 장입니다. 시와 찬미와 아름다운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음성 속에서 치유를 받는 복된 가정이 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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