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영혼 (골3:15-17)
본문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교회에 있다가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였다. 얼 마나 맛있겠는가 먹기 전에 기도를 하다보니 한 사람이 그냥 앉아있었다. 왜 기도 않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뭐 감사할게 있어야 하지."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나는 먹기 전에 앞에 놓인 것들을 본다. 그리고 감사할만큼 차려졌어야 감사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먹는다." 얼마 전에 골목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그를 만났다. 창밖으로 불렀는데 그는 초췌한 모습에 멋적게 웃고는 그냥 가버렸다. 친구들에게 그의 소식을 물었다. 어느 신학교에서 경비를 보고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지도 않은채 늘 불만 투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삼십년 전의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감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평생은 불만으로 연속되고 있었다. 개인뿐이 아니라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적으로 보아서 감사하다는 말 을 많이 쓰는 민족일수록 잘 살고 감사를 안 표현하는 집단일수록 살기가 힘 든 것이다. 태국 교회에 선교비를 줄 때 경험한 것이다. 절대로 돈을 정식으 로 받지 않고 옆에서 찔러주어야 한다. 그러니 감사하다는 말도 물론 없다. 아니 하루 종일 지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 감사한다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성경이 수없이 감사하라는 말 을 되풀이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것이 중요하기는 한 모양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행하신 일들을 말해주면서 "잊지말라"고 반복해 명령하신다. 시편은 감사하라는 말로 채워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은 감사의 절기까 지 잡아 놓고 믿는 이들에게 감사의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이 왜 감사하라는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 감사하면 보기 가 좋기 때문에 그랬을까 보기 좋으라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래서 복받으라고 말했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가르친다. 감사해야 축복을 준다고. 그러나 그것은 오해요 미 신이다. 감사가 확실하게 우리에게 유익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감사는 감정적인 것이고 밖에서 감사할 조건이 일어나야 나오는 자연적인 느낌이 아닌가 단지 어떤 사람은 멋적거나 간지러워서 그냥 말을 안할뿐인데 그걸 꼭 표현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런 순 전히 외형적인 습관이라도 감사를 많이 표현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욱 감사를 많이 하게 되고 잘되는 것은 틀림없다. 바울이 말하는 감사는 외부적인 축복에 대한 반응이기보다는 자기 내면에 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를 훈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감사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입에 발린 소리로 하는 것도 아니다. 진심에서 울어나오는 것이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주위에서 듣는 입에 발린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니다. 참된 감사는 신자에게만 있는 능력이요 은사이다. 감사를 통해서 우리는 쏟아지는 축복을 실제로 누리게 되는 것이다. 감사는 은혜를 담는 그릇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없다. 그들이 고마워하는 것은 껍대기요 그림자다. 잠시 고마워하다가 잊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의 망각과 함께 자기가 받은 은혜의 효력도 잊혀져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다 시 아무 것도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그들은 행복할 수 없다. 하지만 신자는 감사를 은사로 받았다. 그것으로 자기가 받은 은혜를 맛보 고 누린다. 그것은 병고침이나 귀신을 추방하고 기적을 행하는 힘보다 더 고 귀한 은사이다. 사람들이 여러 은사를 말하지만 감사의 은사는 잘 모른다. 이 것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늘 사용했었고 신자들은 누구나 받은 기쁨과 행복 을 맛보게 하는 능력이다. 감사도 믿음으로만 사용되는 삶의 권능이다.
그러므로 감사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이 놀라운 힘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아는 사람만이 경험하는 비밀이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받아도 절대로 누 릴 수 없다. 보라. 서울 법대생이 성적불량을 비관하고 자살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세상 사람들 수준에서 더 고양되지 않으면 감사 없이 늘 괴로워하 고만 있을 것이다. 남들이 모두 다 부러워하는 입장이 되었어도 한 마디의 감사도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신자들이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전혀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더해 주어보아야 행복이 더해지지 않을 것은 분명한 이치이다. 감사하기까지는 어떠한 좋은 것도 절대로 축복이 될 수 없다. 비록 자기 손 안에 쥐고 있다해도 절대로 유익이 될 수 없는 것이 마치 위암 환자가 각 종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먹을 수 없음과 같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할 것인가 절대로 내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인데.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까지 없는 것과 같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이다. 종합시험을 치루었다. 두 주일 동안에 4 일을 골라서 한 과목당 혼자 강의실에서 노트 한 권을 받아서 하루 종일 그것 을 채우는 일이었다. 시험을 본 뒤에 나는 매일 전 과목 낙제하는 꿈만 꾸었다. 그리고 재시험에도 실패해서 탈락하는 꿈을 연속 꾸었다. 두 주일이 지난 어느 아침 대학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전과목 합격!" 그때의 기쁨은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아내에게 말하고 감사기도를 드리고 앉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박 사과정에서 제일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는데도 그 기쁨이 한 시간도 유지가 되 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 관문을 걱정하는 현실로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렇게 속으면서 우리는 아까운 세월을 다 흘려 보내는구나. 한 달에 한 번 직장 예배를 인도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다. "어느새 한 달이 지났군요. 이렇게 엄벙덤벙하면서 세월이 다 지나는가봐요." 그렇다. 다음 것 준비하고 또 다음 것 준비하면서 아무런 맛도 모르면서 흘려보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다가 인생 다보내고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말한다. "도대체 뭐하느라 뛰어다녔는가."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렇게 엄벙덤벙 보내지 말고 매 순간을 즐기시 오." 한 순간도 그냥 보내지 말고 기뻐하면서 행복해 하면서 보내야 하지 않 겠는가! 여러해 전의 대학원 과정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나는 합격 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이 사실을 이 건 하나만으로도 일년 이상을 행복 하는데 우러 먹었던 것이다. 나는 행복의 의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의식은 내 삶에 대한 기쁨을 주었고 매사를 감사와 감격으로 변하 게 하였다. 나는 이제 속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 이 아니라 현재에 있는 것이었다.
지금 내 삶을 기뻐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 을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밥 한 술도 그냥 뜨지 않았다. 길거리도 그냥 지나 지 않았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하늘의 구름도 예사로 흘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돈을 다 잃은 다음에 아까움을 느낀다. 있을 때는 오히려 더 얻 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잃어버린 뒤에나 발버둥치며 영영히 위로 받기를 거절한다. 왜 자기 손 안에 있을 때 감상하고 누리고 감사하지 못하는가 사형수가 마지막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면서 아름다움에 놀라지만 그 하늘과 땅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언제인가는 모두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누리려고 할 것이다. 우리 의 행복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을 즐기라.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 그리고 하나님께 그 고마움을 돌리라. 만약 지금 현재 내게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다면 내일이라고 더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현재부터 기뻐하고 행복 할 수 있다면 내일도 모래도 여전히 기뻐하고 행복할 것이다. 분명히 할 것이 무엇인가 감사할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돈이 오고 명예가 오고 애인이 와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할 힘이 내 안 에 있기에 그것들이 오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면에서부터 나온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행복을 공급하기에 행복을 느 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투사되어 세상 일도 행복으로 다가온다.
즉 재산이 많고 유명하고 친구가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이 전혀 없어도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런 외형적인 것과는 전 혀 상관이 없이 내 안에 흘러나오고 있는 행복과 감사의 샘을 개발해 내야 한다. 조금만 믿음을 가지고 들여다 보라. 참 행복이시고 참 감사이신 그리스도 가 우리 안에 계시지 않은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지 않은가! 이렇듯 믿음을 가지고 감격해 함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된다. 어떤 이는 최상의 대접을 받으며 최고의 음식을 받아도 기쁨이 없다. 그리고 그 것은 그에게 아무런 건강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한 줌의 보리개떡을 받 아도 꿀맛 같고 그것이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은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정력이 넘치고 창조적인 삶을 산다.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그것은 이처럼 내면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우습게 봐 버린다. 정말로 눈 앞에 자기 것으로 나타나 손에 쥐기까지는 만족을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손에 쥐어도 감사 못하는 것은 마음 속에 감사의 힘도 행복을 누릴 힘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에서 감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모든 것을 바꾸어 감사할 것이 더욱 많아지게 한다.
미국의 1930년대의 경제공황은 무서운 것이었다.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상점들은 텅빈 상태였다. 잘 살던 사람들이 스프와 빵을 타려고 긴긴 줄을 서 있었다. 필 목사는 신자를 만났다. 그는 너무 오래 되어 낡고 반들반들한 옷 을 입고 있었다. "목사님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잠시 직업이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난 어딘가 내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꼭 찾겠습니다." 목사는 말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밝고 미소짓는 얼굴이 좋습니다.예.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나요 얼굴 찡그리기 보다는 웃는게 쉬워요. 찡그리는 데는 64개 근육을 움직이지만 웃는데는 14개만 쓰면 된답니다. 왜 얼굴과 마음에 과로한 일을 시키겠어요 일에 대한 갈망이 더 큰 기쁨을 주지 않겠어 요" 그리고 덧붙였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일자리가 아무리 찾기 어려워도 나는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목사님 은 내게 믿는자가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끊임없이 바라고 믿고 찾겠습니다." 그는 성경을 인용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 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 목사는 그가 거리를 따라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얼마 후에 그는 또 다른 창조적인 사람과 함께 일 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분위기를 맞은 그는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믿음으 로 일어섰다. 결국은 큰 회사를 이루어 성공적인 삶으로 살아갔다. 아름다운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그는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중 요한 것은 그가 매순간을 감사하며 즐기고 누리며 살았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위대한 작가 아리스타이드 브라이언은 "그리스도인들은 노래하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종달새가 있다"고 한적도 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 속에는 불 만과 한이 있겠지만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있다. 생명과 능력과 꿈이 있다. 그것이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노래하라. 노래하라. 그렇게 감사하라.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 속의 기쁨이 움직이도록 하신다. 우리는 위대한 오디 오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스위치를 켜라. 그래서 우리 속의 모든 은사들이 일어나 힘을 발휘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내 운명을 만들어 가도록 하라. 우리의 입술에는 노래가 얼굴에는 밝은 빛이 눈에는 빛 이 쏟아져 나오게 하라. 그것은 성스럽고 신비한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생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고 건강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우리는 세상의 꼭대기에 서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감과 좋은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는 길을 이 사실 을 명상하는 것이다. 생각은 거의 필연적인 법칙으로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다. 그것을 촉진시키는 표현은 그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감사이다. 자 이제 그 일을 시작해 보자. 내가 받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누리는 모든 특권을 하나도 남김 없이 생각해 보자. 그들을 누리고 감사하자. 말하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건강, 가족, 내 직업을, 아름다운 교회를 감사합니다. 내 삶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감사할 것들을 더욱 넓혀가자. 모든 것이 감사할 것이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 것도 감사하자.
본문에서 바울이 왜 감사하라는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 감사하면 보기 가 좋기 때문에 그랬을까 보기 좋으라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래서 복받으라고 말했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가르친다. 감사해야 축복을 준다고. 그러나 그것은 오해요 미 신이다. 감사가 확실하게 우리에게 유익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감사는 감정적인 것이고 밖에서 감사할 조건이 일어나야 나오는 자연적인 느낌이 아닌가 단지 어떤 사람은 멋적거나 간지러워서 그냥 말을 안할뿐인데 그걸 꼭 표현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런 순 전히 외형적인 습관이라도 감사를 많이 표현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욱 감사를 많이 하게 되고 잘되는 것은 틀림없다. 바울이 말하는 감사는 외부적인 축복에 대한 반응이기보다는 자기 내면에 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를 훈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감사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입에 발린 소리로 하는 것도 아니다. 진심에서 울어나오는 것이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주위에서 듣는 입에 발린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니다. 참된 감사는 신자에게만 있는 능력이요 은사이다. 감사를 통해서 우리는 쏟아지는 축복을 실제로 누리게 되는 것이다. 감사는 은혜를 담는 그릇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없다. 그들이 고마워하는 것은 껍대기요 그림자다. 잠시 고마워하다가 잊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의 망각과 함께 자기가 받은 은혜의 효력도 잊혀져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다 시 아무 것도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그들은 행복할 수 없다. 하지만 신자는 감사를 은사로 받았다. 그것으로 자기가 받은 은혜를 맛보 고 누린다. 그것은 병고침이나 귀신을 추방하고 기적을 행하는 힘보다 더 고 귀한 은사이다. 사람들이 여러 은사를 말하지만 감사의 은사는 잘 모른다. 이 것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늘 사용했었고 신자들은 누구나 받은 기쁨과 행복 을 맛보게 하는 능력이다. 감사도 믿음으로만 사용되는 삶의 권능이다.
그러므로 감사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이 놀라운 힘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아는 사람만이 경험하는 비밀이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받아도 절대로 누 릴 수 없다. 보라. 서울 법대생이 성적불량을 비관하고 자살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세상 사람들 수준에서 더 고양되지 않으면 감사 없이 늘 괴로워하 고만 있을 것이다. 남들이 모두 다 부러워하는 입장이 되었어도 한 마디의 감사도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신자들이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전혀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더해 주어보아야 행복이 더해지지 않을 것은 분명한 이치이다. 감사하기까지는 어떠한 좋은 것도 절대로 축복이 될 수 없다. 비록 자기 손 안에 쥐고 있다해도 절대로 유익이 될 수 없는 것이 마치 위암 환자가 각 종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먹을 수 없음과 같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할 것인가 절대로 내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인데.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까지 없는 것과 같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이다. 종합시험을 치루었다. 두 주일 동안에 4 일을 골라서 한 과목당 혼자 강의실에서 노트 한 권을 받아서 하루 종일 그것 을 채우는 일이었다. 시험을 본 뒤에 나는 매일 전 과목 낙제하는 꿈만 꾸었다. 그리고 재시험에도 실패해서 탈락하는 꿈을 연속 꾸었다. 두 주일이 지난 어느 아침 대학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전과목 합격!" 그때의 기쁨은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아내에게 말하고 감사기도를 드리고 앉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박 사과정에서 제일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는데도 그 기쁨이 한 시간도 유지가 되 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 관문을 걱정하는 현실로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렇게 속으면서 우리는 아까운 세월을 다 흘려 보내는구나. 한 달에 한 번 직장 예배를 인도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다. "어느새 한 달이 지났군요. 이렇게 엄벙덤벙하면서 세월이 다 지나는가봐요." 그렇다. 다음 것 준비하고 또 다음 것 준비하면서 아무런 맛도 모르면서 흘려보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다가 인생 다보내고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말한다. "도대체 뭐하느라 뛰어다녔는가."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렇게 엄벙덤벙 보내지 말고 매 순간을 즐기시 오." 한 순간도 그냥 보내지 말고 기뻐하면서 행복해 하면서 보내야 하지 않 겠는가! 여러해 전의 대학원 과정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나는 합격 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이 사실을 이 건 하나만으로도 일년 이상을 행복 하는데 우러 먹었던 것이다. 나는 행복의 의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의식은 내 삶에 대한 기쁨을 주었고 매사를 감사와 감격으로 변하 게 하였다. 나는 이제 속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 이 아니라 현재에 있는 것이었다.
지금 내 삶을 기뻐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 을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밥 한 술도 그냥 뜨지 않았다. 길거리도 그냥 지나 지 않았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하늘의 구름도 예사로 흘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돈을 다 잃은 다음에 아까움을 느낀다. 있을 때는 오히려 더 얻 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잃어버린 뒤에나 발버둥치며 영영히 위로 받기를 거절한다. 왜 자기 손 안에 있을 때 감상하고 누리고 감사하지 못하는가 사형수가 마지막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면서 아름다움에 놀라지만 그 하늘과 땅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언제인가는 모두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누리려고 할 것이다. 우리 의 행복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을 즐기라.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 그리고 하나님께 그 고마움을 돌리라. 만약 지금 현재 내게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다면 내일이라고 더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현재부터 기뻐하고 행복 할 수 있다면 내일도 모래도 여전히 기뻐하고 행복할 것이다. 분명히 할 것이 무엇인가 감사할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돈이 오고 명예가 오고 애인이 와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할 힘이 내 안 에 있기에 그것들이 오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면에서부터 나온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행복을 공급하기에 행복을 느 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투사되어 세상 일도 행복으로 다가온다.
즉 재산이 많고 유명하고 친구가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이 전혀 없어도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런 외형적인 것과는 전 혀 상관이 없이 내 안에 흘러나오고 있는 행복과 감사의 샘을 개발해 내야 한다. 조금만 믿음을 가지고 들여다 보라. 참 행복이시고 참 감사이신 그리스도 가 우리 안에 계시지 않은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지 않은가! 이렇듯 믿음을 가지고 감격해 함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된다. 어떤 이는 최상의 대접을 받으며 최고의 음식을 받아도 기쁨이 없다. 그리고 그 것은 그에게 아무런 건강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한 줌의 보리개떡을 받 아도 꿀맛 같고 그것이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은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정력이 넘치고 창조적인 삶을 산다.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그것은 이처럼 내면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우습게 봐 버린다. 정말로 눈 앞에 자기 것으로 나타나 손에 쥐기까지는 만족을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손에 쥐어도 감사 못하는 것은 마음 속에 감사의 힘도 행복을 누릴 힘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에서 감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모든 것을 바꾸어 감사할 것이 더욱 많아지게 한다.
미국의 1930년대의 경제공황은 무서운 것이었다.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상점들은 텅빈 상태였다. 잘 살던 사람들이 스프와 빵을 타려고 긴긴 줄을 서 있었다. 필 목사는 신자를 만났다. 그는 너무 오래 되어 낡고 반들반들한 옷 을 입고 있었다. "목사님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잠시 직업이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난 어딘가 내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꼭 찾겠습니다." 목사는 말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밝고 미소짓는 얼굴이 좋습니다.예.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나요 얼굴 찡그리기 보다는 웃는게 쉬워요. 찡그리는 데는 64개 근육을 움직이지만 웃는데는 14개만 쓰면 된답니다. 왜 얼굴과 마음에 과로한 일을 시키겠어요 일에 대한 갈망이 더 큰 기쁨을 주지 않겠어 요" 그리고 덧붙였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일자리가 아무리 찾기 어려워도 나는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목사님 은 내게 믿는자가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끊임없이 바라고 믿고 찾겠습니다." 그는 성경을 인용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 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 목사는 그가 거리를 따라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얼마 후에 그는 또 다른 창조적인 사람과 함께 일 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분위기를 맞은 그는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믿음으 로 일어섰다. 결국은 큰 회사를 이루어 성공적인 삶으로 살아갔다. 아름다운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그는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중 요한 것은 그가 매순간을 감사하며 즐기고 누리며 살았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위대한 작가 아리스타이드 브라이언은 "그리스도인들은 노래하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종달새가 있다"고 한적도 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 속에는 불 만과 한이 있겠지만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있다. 생명과 능력과 꿈이 있다. 그것이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노래하라. 노래하라. 그렇게 감사하라.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 속의 기쁨이 움직이도록 하신다. 우리는 위대한 오디 오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스위치를 켜라. 그래서 우리 속의 모든 은사들이 일어나 힘을 발휘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내 운명을 만들어 가도록 하라. 우리의 입술에는 노래가 얼굴에는 밝은 빛이 눈에는 빛 이 쏟아져 나오게 하라. 그것은 성스럽고 신비한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생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고 건강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우리는 세상의 꼭대기에 서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감과 좋은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는 길을 이 사실 을 명상하는 것이다. 생각은 거의 필연적인 법칙으로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다. 그것을 촉진시키는 표현은 그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감사이다. 자 이제 그 일을 시작해 보자. 내가 받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누리는 모든 특권을 하나도 남김 없이 생각해 보자. 그들을 누리고 감사하자. 말하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건강, 가족, 내 직업을, 아름다운 교회를 감사합니다. 내 삶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감사할 것들을 더욱 넓혀가자. 모든 것이 감사할 것이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 것도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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