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골3:18-25,엡6:4)
본문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은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기에 사람들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립니다. 이와 같은 복된 신록의 계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 성도님의 가정과 산업체와 자녀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간에 5월을 메모해 봅시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첫 주일 어린이 주일)이고 5월 8일은 어버이날(둘째 주일 어버이 주일)이며 5월 15일은 스승이 날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령님강림 주일까지 5월에 겹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5월을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달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간에 상고하고자 하는 골로새서 3:18-25절까지의 본문은 가정의 달에 아주 적절한 말씀입니다. 먼저 18절을 봅시다. “아내들이여!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라는 말씀으로 가정에서의 아내의 도리와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19절에서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란 말씀으로 남편된 자들의 도리와 의무를 가르치셨습니다. 20절에서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복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라는 말씀으로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향한 의무와 도리를 다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21절의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라는 말씀을 통해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들에 대한 도리와 의무를 가르치셨습니다. 22절에서는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라는 말씀으로 주인에 대한 종들의 도리와 의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되게 하는 5월에 우리는 골로새서 3:18-25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아내는 아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남편은 남편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녀들은 자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부모님들은 부모로서의 의무와 노력을 해야 하며 종은 종으로서 종이 되게 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골 3:21절의 말씀과 엡 6:4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부모로서 자녀들에 대한 도리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두 구절은 어린이 주일에 절대로 필요한 말씀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저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부모 노릇 하는 것과 자녀 노릇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 노릇을 잘하기 위해 기독교의 자녀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기독교의 자녀관과 이방인의 자녀관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자녀관은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한자말에 신체 발부는 수지부모란 말이 있고 자녀는 부정모혈로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마침내 오늘 날에는 생명 경시 사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년에 200만 명의 어린이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물이 아닙니다. 분명 생물 이상의 생명체이며 창세기1:26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인격이며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며 축복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잠 17:6) “네 집 내 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분명히 정리하실 것을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며 인생의 영화란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어린 자녀를 대할 때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심정으로 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어린 아이를 용납하시며 품에 안으시고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 하시며 칭찬하시고 머리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마 18:3;9:13-15;눅 18:16). 예수님 당시에 유대 나라의 어린이에 대한 형편이나 관습은 동양의 유교처럼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한 인간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숫자에도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 가장 큰 기적으로 인정받았던 오병이어의 기적 때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5000명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14:21). 이 떡을 얻어먹은 5000명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이방인도 있었고, 사기꾼, 주정뱅이, 노름꾼, 깡패 할 것 없이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 숫자에 넣어 계산하면서도 순진한 어린 아이들은 숫자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어린 아이를 대접하지 않았던 유대인의 전통적 관습을 깨고 주님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시고 품에 앉으시고 칭찬하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면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육 중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될 수있는 대로 아이들을 칭찬하는 교육입니다. 고집이 세고 개성이 강할수록 더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교육을 4단계로 나누어서 칭찬하고 가르치고 책망하며 초달합니다. 예수님의 아동관을 명심하시고 우리도 어린 아이들을 대할 때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정신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용납하고 이해하며 축복하십시오. 이것이 교육의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어렸을 때에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 받지 못하며 어른들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불안감과 좌절감과 패배의식과 열등감과 분노에 쌓이게 됩니다.
3. 자녀들은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앞서 기독교의 자녀관에 대해서 생각한대로 우리의 자녀들은 내 마음대로 생산한 내 소유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상급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내 방법대로 교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교육해야 합니다. 엡 6:4절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자녀 교육에는 2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주의 교양으로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주의 교양이란 ‘파이데이아(παιδεα)’로 자녀를 교육할 때 성경을 근거로 해서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현대는 지식이 너무 발달되고 있어서 학교 교과서가 매 5년마다 바뀌어지고 있고 역사책도 자주 바뀝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성경은 수천 년이 지나도 한번도 바뀌어 진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성경은 변함이 없어도 성경은 해석하는 방법이 변하기 때문에 성경의 의미도 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임직식때 반드시 서약하는 것이 있으니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인 것을 서약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딤후 3:16)” 주의 교양이란 신구약 성경으로 교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의롭게 하고 선하게 하며 온전케 하는 교과서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교과서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말로 훈계하십니다(히12:5-6). 잠언 13:24에서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초달은 상처도 나지 아니하고 죽지도 않는 법입니다(잠 23:13). 초달이란 회초리로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채찍으로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니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해서 구원하니라.”(잠 23:13)
2)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하는 방법을 써서는 안됩니다(엡 6:4;골 3:21). 자녀를 노엽게 하면 노여운 마음을 일으키고 격노케하면 난폭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노엽게 하지 않고 격노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녀로 하여금 분을 품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억울하게 하지 말며 악한 감정을 품게 하지 말며 쓰라리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처음에는 기분이 언짢아 지고 침울해 지고 열등감이 생깁니다. 겁과 공포심과 좌절감이 원망과 적대심으로 바뀌어서 마침내 존속 살인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박한상이나 대학교 교수인 김성복과 같은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자기 자녀가 아닐지라도 사람을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좋은 말을 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지라도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짧습니다. 서로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옛말에 부모가 자혜로우면 자녀도 효도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존속 살인 사건을 봅시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일은 천인공노할 끔직하고 무서운 패륜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존속 살해사건 같은 것은 부모를 죽인 자식에게 책임이 있지만 반면에 자기 자식 손에 죽임을 당하는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오클라호마 테러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2년전 텍사스 웨이코에 근거지를 두고 이단적 종말론을 가르치던 사교집단 데이비안 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습니다. 제 1용의자로 체포기소된 티모디 멕베이는 미국의 FBI가 데이비안 집단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 나머지 그와 같은 과격한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분노는 분노를 낳고 격분은 격분을 만들므로 우리는 결코 어린 자녀들을 분노케 하거나 격분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오늘 같은 어린이 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평생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어린 아이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칭찬합시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축복합시다. 어린 아이를 멸시하거나 못 낫다고 절망시키거나 바보 같다고 놀리고 미워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어린 아이에 가슴속에 분노가 쌓이면 적개심이 발동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어린이를 용납하고 칭찬하고 축복하여 축복된 가정을 만듭시다.
1. 기독교의 자녀관과 이방인의 자녀관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자녀관은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한자말에 신체 발부는 수지부모란 말이 있고 자녀는 부정모혈로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마침내 오늘 날에는 생명 경시 사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년에 200만 명의 어린이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물이 아닙니다. 분명 생물 이상의 생명체이며 창세기1:26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인격이며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며 축복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잠 17:6) “네 집 내 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분명히 정리하실 것을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며 인생의 영화란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어린 자녀를 대할 때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심정으로 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어린 아이를 용납하시며 품에 안으시고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 하시며 칭찬하시고 머리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마 18:3;9:13-15;눅 18:16). 예수님 당시에 유대 나라의 어린이에 대한 형편이나 관습은 동양의 유교처럼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한 인간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숫자에도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 가장 큰 기적으로 인정받았던 오병이어의 기적 때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5000명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14:21). 이 떡을 얻어먹은 5000명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이방인도 있었고, 사기꾼, 주정뱅이, 노름꾼, 깡패 할 것 없이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 숫자에 넣어 계산하면서도 순진한 어린 아이들은 숫자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어린 아이를 대접하지 않았던 유대인의 전통적 관습을 깨고 주님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시고 품에 앉으시고 칭찬하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면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육 중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될 수있는 대로 아이들을 칭찬하는 교육입니다. 고집이 세고 개성이 강할수록 더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교육을 4단계로 나누어서 칭찬하고 가르치고 책망하며 초달합니다. 예수님의 아동관을 명심하시고 우리도 어린 아이들을 대할 때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정신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용납하고 이해하며 축복하십시오. 이것이 교육의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어렸을 때에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 받지 못하며 어른들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불안감과 좌절감과 패배의식과 열등감과 분노에 쌓이게 됩니다.
3. 자녀들은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앞서 기독교의 자녀관에 대해서 생각한대로 우리의 자녀들은 내 마음대로 생산한 내 소유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상급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내 방법대로 교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교육해야 합니다. 엡 6:4절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자녀 교육에는 2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주의 교양으로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주의 교양이란 ‘파이데이아(παιδεα)’로 자녀를 교육할 때 성경을 근거로 해서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현대는 지식이 너무 발달되고 있어서 학교 교과서가 매 5년마다 바뀌어지고 있고 역사책도 자주 바뀝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성경은 수천 년이 지나도 한번도 바뀌어 진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성경은 변함이 없어도 성경은 해석하는 방법이 변하기 때문에 성경의 의미도 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임직식때 반드시 서약하는 것이 있으니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인 것을 서약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딤후 3:16)” 주의 교양이란 신구약 성경으로 교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의롭게 하고 선하게 하며 온전케 하는 교과서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교과서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말로 훈계하십니다(히12:5-6). 잠언 13:24에서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초달은 상처도 나지 아니하고 죽지도 않는 법입니다(잠 23:13). 초달이란 회초리로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채찍으로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니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해서 구원하니라.”(잠 23:13)
2)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하는 방법을 써서는 안됩니다(엡 6:4;골 3:21). 자녀를 노엽게 하면 노여운 마음을 일으키고 격노케하면 난폭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노엽게 하지 않고 격노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녀로 하여금 분을 품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억울하게 하지 말며 악한 감정을 품게 하지 말며 쓰라리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처음에는 기분이 언짢아 지고 침울해 지고 열등감이 생깁니다. 겁과 공포심과 좌절감이 원망과 적대심으로 바뀌어서 마침내 존속 살인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박한상이나 대학교 교수인 김성복과 같은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자기 자녀가 아닐지라도 사람을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좋은 말을 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지라도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짧습니다. 서로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옛말에 부모가 자혜로우면 자녀도 효도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존속 살인 사건을 봅시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일은 천인공노할 끔직하고 무서운 패륜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존속 살해사건 같은 것은 부모를 죽인 자식에게 책임이 있지만 반면에 자기 자식 손에 죽임을 당하는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오클라호마 테러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2년전 텍사스 웨이코에 근거지를 두고 이단적 종말론을 가르치던 사교집단 데이비안 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습니다. 제 1용의자로 체포기소된 티모디 멕베이는 미국의 FBI가 데이비안 집단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 나머지 그와 같은 과격한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분노는 분노를 낳고 격분은 격분을 만들므로 우리는 결코 어린 자녀들을 분노케 하거나 격분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오늘 같은 어린이 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평생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어린 아이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칭찬합시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축복합시다. 어린 아이를 멸시하거나 못 낫다고 절망시키거나 바보 같다고 놀리고 미워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어린 아이에 가슴속에 분노가 쌓이면 적개심이 발동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어린이를 용납하고 칭찬하고 축복하여 축복된 가정을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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