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과거 현재 미래 (골로새1:21-23)
본문
죄가 하나님의 조화로운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과 하나님과의 불화관계 이후에 피조계는 무질서하게 되었고 피조계는 구원을 고대하면서“신음”하고 있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롬8:19)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인류도 하나님과의 결별로 모든 것을 상실하였습니다. 인간들은 어둠과 허무의 늪으로 깊이 잠겨 버렸습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길을 잃었습니다. 인간과 그의 세계는 불가피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과 인류를 그들의 운명에 방치해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처음으로 제 길로 떠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각 세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뜻을 알려 왔습니다.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하여, 더 정확하게는 십자가에서 만물을 새롭게 자신과 조화시키시는 구속의 대요를 설명해 주신 셈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비록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큼 광범위한 것이지만 매우 세심한 침투력이 있으며 개별적이어서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간과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이 어떻게 복음에 관한 그의 견해의 범위를 우주에서부터 개인으로 좁히는가를 살필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성도의 상태에 대해서 본문을 통하여 과거,현재,미래를 광범위하고도 협소함이 없이 잘 보여 줍니다.
1.성도의 과거 상태
1)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21)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멀리 떠나”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선조 아마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함 때문에 범죄했고, 하나님이 무서워 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담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택하셔서 그의 언약백성으로 삼으시고 계시를 주셨지만 그들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저질렀으며, 하나님의 참 뜻을 모르고 하나님 아들마저 죽이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한다미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2)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습니다. (21) “마음으로 멀리 떠나” 하나님을 떠나 그와 분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결코 죄와는 하나가 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죄없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앞에 설 수도 없으며 그의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받을 존재였습니다. 죄인 된 인간과 하나님은 원수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3)악한 행실만이 있었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본성이 악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모두 악할 뿐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것은 선하게 시작되었고, 또한 그렇게 보이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종착점은 역시 악한 것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롬1:21-22)되었고 했습니다. 사형에 해당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옮다”(1:32)한다고 했습니다. 화목된 현재 ‘이제는…화목케 하사’(1:22) 이제는 화평이 되찾아졌습니다. 우리 자신들에게도 화평이 왔고 다른 사람들과도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반항하는 근본 원인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죄의 원인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치 않을지 몰라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밀착된 유대를 가로막고 인생의 의미를 흐리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죄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터전과 중심과 목표가 아니라면 인생의 향방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완전히 상실된 삶으로 끝나고 맙니다. 인간이 자신과 이웃의 화합을 찾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연합과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죄가 없어져야 합니다. ‘이제는 그가 너희를 화목케 하사’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역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누가 죄를 없이하고 죄인을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죄인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우리가 저지른 죄들이 씻겨지지도 않고 우리의 선행이 죄를 덮지도 못합니다. 한 번 죽임을 당한 자는 우리의 선의나 돈이나 눈물이나 그 어떤 희생으로도 되살릴 수 없으며, 낭비된 인생을 취소시킬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희생된 분을 우리들이 살려낼 수 있는 방도는 전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 자신이 무한한 값을 치루고 우리와 화해하셨습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1:22).
주님은 우리의 육체오 동일한 살과 피가 있는 실제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인간은 일단 하나님과 회해되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과거에 그처럼 경원시되던 이 세상이 새로운 의미로 부각되고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되며 이웃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집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음으로써 타인과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화해의 기쁨을 갖게 되고 드디어 마음의 평강을 누립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들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조화의 삶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과 대적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가슴을 향해 칼을 던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눈물로 얼룩지고 그의 화평은 고난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기뻐해야 한다고 권명하였습니다(빌3;1). 하지만 바울 자신도 다른 형제들의 고난과 자신의 삶 속에 있는 모순들로 인해 번민하며 울었습니다.(롬9:2 ; 7:13-25). 완전한 미래 절대적인 종결적 승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장차 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화해시켰기 때문에 우리들이 완전한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옵니다.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말 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1:22) 화평의 사역을 시작하신 주님은 그이 약속대로 그 일을 완성시킬 것입니다.(빌1:6)
주님은 약속하신 일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시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십자가의 사역이 비록 종결되기는 했어도 그 결과는 아직 미정이며 상대적입니다(고전15:27,28,54 ; 고후4:16-5:7). 그러나 언젠가는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로 인해 자주 얼룩지는 십자가의 평강은 그 때에 모든 성도의 얼굴과 가슴 속에서, 그리고 화해된 이 세상에서 빛나게 될 것입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바오디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님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19-24) 이 소망은 확실한 것입니다.(히6:18,19 ; 벧전1:3-5). 언젠가 우리들은 ‘거룩하고 흠없고 책말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엄격하시고 공정하시며 면밀하신 재판장이시지만 그리스도에 의해 소개되는 우리들로부터는 아무런 허물을 찾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거스리지 않고 그분의 기대에 맞도록 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천국’생활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이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이 가져다 주는 화평을 끝없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상으로 내려와서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들이 지금까지 언급해 온 성도의 완성이 아직도 소망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우리들은 한 때 이방인이며 원수들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과 화해되었으므로 그 분 앞에 완전힌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완성을 향한 제련의 과정이 하나님의 사역이긴 하지만, 우리들 편에서의 협동이 없이 이루어진다고는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의 완성은 마지막 날에 요술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물론 현재의 화목과 미래의 완전 사이에서 우리들이 영광의 날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일은 우리들 안에서,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의 견딤을 사용하여 믿음과 소망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1.성도의 과거 상태
1)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21)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멀리 떠나”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선조 아마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함 때문에 범죄했고, 하나님이 무서워 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담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택하셔서 그의 언약백성으로 삼으시고 계시를 주셨지만 그들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저질렀으며, 하나님의 참 뜻을 모르고 하나님 아들마저 죽이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한다미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2)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습니다. (21) “마음으로 멀리 떠나” 하나님을 떠나 그와 분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결코 죄와는 하나가 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죄없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앞에 설 수도 없으며 그의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받을 존재였습니다. 죄인 된 인간과 하나님은 원수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3)악한 행실만이 있었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본성이 악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모두 악할 뿐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것은 선하게 시작되었고, 또한 그렇게 보이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종착점은 역시 악한 것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롬1:21-22)되었고 했습니다. 사형에 해당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옮다”(1:32)한다고 했습니다. 화목된 현재 ‘이제는…화목케 하사’(1:22) 이제는 화평이 되찾아졌습니다. 우리 자신들에게도 화평이 왔고 다른 사람들과도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반항하는 근본 원인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죄의 원인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치 않을지 몰라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밀착된 유대를 가로막고 인생의 의미를 흐리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죄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터전과 중심과 목표가 아니라면 인생의 향방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완전히 상실된 삶으로 끝나고 맙니다. 인간이 자신과 이웃의 화합을 찾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연합과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죄가 없어져야 합니다. ‘이제는 그가 너희를 화목케 하사’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역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누가 죄를 없이하고 죄인을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죄인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우리가 저지른 죄들이 씻겨지지도 않고 우리의 선행이 죄를 덮지도 못합니다. 한 번 죽임을 당한 자는 우리의 선의나 돈이나 눈물이나 그 어떤 희생으로도 되살릴 수 없으며, 낭비된 인생을 취소시킬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희생된 분을 우리들이 살려낼 수 있는 방도는 전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 자신이 무한한 값을 치루고 우리와 화해하셨습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1:22).
주님은 우리의 육체오 동일한 살과 피가 있는 실제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인간은 일단 하나님과 회해되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과거에 그처럼 경원시되던 이 세상이 새로운 의미로 부각되고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되며 이웃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집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음으로써 타인과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화해의 기쁨을 갖게 되고 드디어 마음의 평강을 누립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들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조화의 삶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과 대적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가슴을 향해 칼을 던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눈물로 얼룩지고 그의 화평은 고난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기뻐해야 한다고 권명하였습니다(빌3;1). 하지만 바울 자신도 다른 형제들의 고난과 자신의 삶 속에 있는 모순들로 인해 번민하며 울었습니다.(롬9:2 ; 7:13-25). 완전한 미래 절대적인 종결적 승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장차 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화해시켰기 때문에 우리들이 완전한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옵니다.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말 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1:22) 화평의 사역을 시작하신 주님은 그이 약속대로 그 일을 완성시킬 것입니다.(빌1:6)
주님은 약속하신 일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시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십자가의 사역이 비록 종결되기는 했어도 그 결과는 아직 미정이며 상대적입니다(고전15:27,28,54 ; 고후4:16-5:7). 그러나 언젠가는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로 인해 자주 얼룩지는 십자가의 평강은 그 때에 모든 성도의 얼굴과 가슴 속에서, 그리고 화해된 이 세상에서 빛나게 될 것입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바오디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님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19-24) 이 소망은 확실한 것입니다.(히6:18,19 ; 벧전1:3-5). 언젠가 우리들은 ‘거룩하고 흠없고 책말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엄격하시고 공정하시며 면밀하신 재판장이시지만 그리스도에 의해 소개되는 우리들로부터는 아무런 허물을 찾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거스리지 않고 그분의 기대에 맞도록 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천국’생활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이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이 가져다 주는 화평을 끝없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상으로 내려와서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들이 지금까지 언급해 온 성도의 완성이 아직도 소망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우리들은 한 때 이방인이며 원수들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과 화해되었으므로 그 분 앞에 완전힌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완성을 향한 제련의 과정이 하나님의 사역이긴 하지만, 우리들 편에서의 협동이 없이 이루어진다고는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의 완성은 마지막 날에 요술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물론 현재의 화목과 미래의 완전 사이에서 우리들이 영광의 날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일은 우리들 안에서,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의 견딤을 사용하여 믿음과 소망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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