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눈을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봅시다 (창14:14-18)

본문

순간의 선택은 영원을 좌우합니다. 당신은 나그네입니까 방랑자입니까 오래 전에 유행했던 가요 중에 인생은 나그네 길 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저가 그 노래의 작사자와 작곡자가 누구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노래가 풍기는 뉘앙스(nuance)나 느낌(feeling)을 통해서 짐작해 볼 때 아마 그들은 인생을 나그네 로 보기보다는 방랑자 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나그네와 방랑자는 다릅니다. 나그네는 돌아갈 본향이 있는 자이나 방랑자는 본향을 잃어버린 유리하고 방황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방랑자로 생각하고 사는 자들은 오늘 여기서 즐기며 살아가는 지극히 현실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현실에 얽매여 살지 않고 내일과 미래의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전서 2:11)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떠한 안목을 가지고 삽니까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삶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보이는 이익에 집착하여 혈육의 정이나 윤리와 도덕이나 언약을 저버리고 사는 롯의 삶이요, 다른 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해여 오늘의 이익을 포기하고 언약대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삶입니다. 당신은 누구와 같이 살기를 원하십니까 만약 당신도 아브람이 받은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시면 아브람 같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 13:9)는 현실적인 모든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고 하면 아브람적 삶은 하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그 상황에서 눈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언약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 사건의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쨰:롯의 안목에서 눈을 들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사실에 대하여 몇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롯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물질적인 이익을 위하여 아브람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입니다. 그는 자기 곁에 있는 종들이나 외양간에 있는 양이나 들판의 초지에만 관심이 있었지 신령한 언약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2 아브람의 입장에서 보면 롯이 떠난 것은 지극히 다행한 일입니다. 속된 롯이 아브람 곁에 있는 동안에는 아브람이 언약에 대하여 자주 흔들렸습니다(창세기 15:2).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으니 아브람은 은근히 롯을 그 마음에 두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사람을 굳게 세우기 위하여 섭리적으로 그를 떼어버리신 것입니다. 3 아브람과 롯의 관계를 보면 아브람에게 있어서 롯은 선택 사항이나 롯에게 있어서 아브람은 필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롯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브람 곁에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복이 그를 통해서 오기 때문입니다(창세기 12:1-3). 엘리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엘이야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2:1-14). 그래서 그는 엘리야가 입은 능력의 두루마기를 입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롯이 아브람 곁을 떠나는 것은 아브람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입니다. 아비도 없는 조카를 이방인 땅에서 그토록 키워준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물질적인 이익을 위하여 삼촌을 버리고 가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배신감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추호도 그러한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졌다면 아브람은 그러한 방법을 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아브람의 귀에 들렸습니다. 이 음성은 어떠한 음성인가 아브람을 향한 위로와 긍휼과 축복의 음성입니다. 아브람의 아름다운 행위를 보신 하나님이 감동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귀중한 비밀한 것은 친한 친구와 단 둘이 있을 때 속삭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롯이 떠난 후에 그에게 크고 비밀한 계시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 말씀의 크고 비밀한 계시가 무엇인가 1 너는 움직이기 이전에 먼저 보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4)고 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나 전하기 이전에 기도하여 성령님을 받고 나가라는 것입니다.2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관찰해 보라는 말입니다. 언약에 비추어서 취해서 해가 될 것은 버리는 것이 유익이요, 버려서 유익한 것은 처음부터 취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3 정상을 정복하도록 힘쓰라는 말입니다. 동서남북을 보려면 정상에 올라야 합니다. 계곡에서는 산의 한면만 보입니다. 능선에 서면 양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이 다 보입니다. 당신이 신령한 영적 고지를 정복하면 축복의 동서남북이 보입니다.
둘째:오늘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읽을말씀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에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데 네 자손도 세리라”(15-16) 보이는 땅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땅은 언약에 기초한 땅이요, 마음에 새겨 둔 소망의 땅입니다. 보이는 땅이 없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주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 11:1-2)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불변하는 보증수표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보증수표를 가지고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당신이 요셉같은 꿈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은 애굽을 당신의 장중에 맡깁니다. 맥아더 장군이 이르기를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늙지 않는다. 사람은 꿈을 포기했을 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게 하지만 인생이 꿈 곧 호기심을 버리면 영혼에 주름살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네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 세계와 공간 세계를 초월해서 역사 하시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1 네게 주리라는 것은 지금 너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영적이고 미래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서 역사 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2 자손에게 주리라는 것은 미래가 보장된 약속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삶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염려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3 영원히 이르리라는 말은 내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상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네 자손으로 땅에 티끌 같게 하리니 1 이 말씀은 축복의 감탄사입니다. 쉬운 말로 번역해 보면 “사람들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으랴 네 자손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으로는 믿기 어려운 불가능한 언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욱 구체적으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그를 이끌어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이라”(창세기 15:5)고 했습니다. 아브람이 언약에 대하여 초조해지자 그는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그의 후예로 삼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서 밖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세계 했습니다. 3 나중에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받았을 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창세기 22:17)고 했습니다.
셋째:일어나서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읽을말씀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7-18) 너는 일어나 종과 힁으로 행하여 보라 1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실의와 좌절과 배신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구하고 찾고 두더리라는 전인적인 사역입니다(마태복음 7:7).
2 종과 힁을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먼저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횡적인 관계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으면 그것을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횡적인 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인간을 지을 때에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복수 공동체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할 때 모든 범사가 형통해집니다. 3 이 우선 순위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영적인 우선 순위가 파괴되면 무질서한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고 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아브람의 신앙은 인민 신앙입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소명을 받는 순간부터 나그네로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시하시면 어디론지 갔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킬 때 은 자기 백성들을 훈련시킬 때 언약궤를 중심으로 하여 광야를 여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늘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언약궤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나그네로 훈련시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안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의 신앙은 제단 신앙입니다. 롯은 분쟁과 아집과 다툼으로 살았으나 아브람은 양보와 화평으로 기도하고 제단쌓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람이 몇 차례 실수한 곳을 찾아보면 하나님 앞에 단 쌓는 일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1 그가 애굽에 있을 동안에 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창세기12:10-20). 그래서 그는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기는 어려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2 그가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얻을 때 하나님께 단 쌓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창세기 16장). 하나님은 십수년 동안 침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창세기 16:16-17:1). 단 쌓는 것을 게을리 하면 반드시 시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 바로 단 쌓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단을 통하여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 결단을 하고 있습니까 속된 것은 양보하고 신령한 세계를 바라봅시다. 당신은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롯의 안목에서 눈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에 얽매이지 말고 장구한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 행동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은 약속한 동서남북을 당신에게 주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