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주여 뉘시오니이까? (행9:1-22)

본문

어느 두 소년이 갈림길에서 다투다가 한 소년은 여름캠프로 가서 그곳에서 정말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한 소년은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가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미국 어느 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후회와 두려움으로 얼굴을 떨구던 죄수가 판사에게 말하기를, "판사님, 이번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사실은 30년전에 저와 헤어진 친구였습니다. 그때 그는 여름캠프에서 예수를 만나 믿고 프린스턴 대학을 거처 결국에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는데 자신은 죄인이 되어 비참한 신세가 되었노라"하며 30년전에 자신이 잘못만난 친구들로 인하여 불행해진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서 말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만남의 소중함에대해서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의 길에 있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정말 인격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휼륭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 자신이 그런 사람처럼 믿음으로 좋은 인격자가 되어져 좋은 영향을 받을것입니다. 그러나 완악하고 진실치못한 사람들을 만남으로 인하여 고생하고, 좋지못한 영향을 받아 자신도 그러한 길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사람을 만난것이 복으로 여겨지고, 후회함이 없이 참 그사람을 만나기를 잘했다고 할 사람을 만나는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나자신이 좋은 만남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나를 만난 사람들이 살맛나고, 행복하게되는 좋은 만남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나를 만난것으로 인하여 불행해지고, 고통스러운 만남이 된다면 그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 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내 인생이 행복해질수 있고, 내 인생이 불행해 질수 있기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생에 있어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가에 대한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혈기왕성하고, 율법에 흠이없을 정도로 열심이 있는 사울이라는 청년이 다메섹도상에서 그가 핍박하던 예수를 만남으로 인하여 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평생 살아갈 분명한 목적을 깨닫게되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 오늘 본문의 사건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도 진정 만나야 할 분을 만나서 인생이 달라지고,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남은 생애동안도 즐겁고,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1-2절,은 예수를 만나기전의사울에 대해서 말합니다.
1.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빌립보서3장5절-6절에 의하면, 그는 정통유대인이었습니다(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였고,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 여호와 하나님에대해서 아주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율법에 철저하리만큼 말씀(성경)을 아고 있는 자엿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철저하리만큼 아는 자도 드물것입니다(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또한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아주 열심있는 자였습니다. 율법에 거슬리는 것에대해서는 뿌리까지 뽑아 버리고저하는 열심이 있어서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는 열심이 있었습니다(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사울만큼 봉사를 열심히 한사람도 없을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어떠합니까 나 자신은 정말 바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인은 정말 그를 믿고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 제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방면에 전문인을 발합니다. 예수쟁이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이라고 칭함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습니까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66권의 말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그 말씀을 순종해 나가기를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까 또한 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기에 얼마나 열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봉사하고 섬기십니까 나를 위하여 희생하신 그분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어 놓아도 아깝지 않는, 내것을 다 드려도 부족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봉사하는 자세로 살아가십니까 오늘 우리들은 신앙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말씀에 대해서 전문가요, 봉사에 대해서 남부럽지 않게 열심으로 봉사한 사울의 모습을 통해서 나자신의 신앙의 자세, 말씀의 자세, 봉사의 자세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은 더 나은 새로운 것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2.그의 성품과 삶은 어떠했습니까(1-2)
1)위협과 살기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위협과 살기가 가득하다'는 말은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잡아 살해하려고 하는 위협적인 자세인가를 보여 줍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울법에 대해서 철저했습니다. 봉사도 열심으로 행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성품에는 독기가 가득찼습니다. 살기가 가득차서 당장이라도 그의 뜻에 거슬리면 죽이고도 남을 위협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중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하지만,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지만, 그러나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아 살기와 혈기로 무장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성품을 죽여서 새 성품으로 날마다 거룩해져가야 하는데 믿기전의 내 성품이나, 오랜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별반 차이가 없는 성품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위협과 살기가 가득한 자가 아니라,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성품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성품으로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결국 그성품으로 인하여
2)주의제자들을 결박하고 잡아옵니다. 그가 추종하는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자들, 즉 복음을 전하는 주의 제자들에 대해서 그는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추종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결박하고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들을 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자신이 추종하는 율법과는 맞지 아니하기때문에 그런 일들을 한것이었습니다. 왜 바울이 이러한 일들을 했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라고있는것만이 옳고, 바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기준입니다. 그가 정말 율법에 철저하여 말씀을 알았다면 그가 그렇게 핍박하는 예수가 바로 '메시야', 구원자임을 알수 있었을것입니다. 그는 율법에 철저했지만 정말 바라보아야 할 예수는 발견하지 못했던것 입니다. 자신의 울타리와, 자신이 알고있는 것이 최고라는 착각속에 있었으니 그의 행한 일이 바른것이 될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왜 잡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것만이 최고로 옳다고 생각하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그런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잡아 죽이게 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선 머슴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알지못하고, 또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종종 성도를 죽이기도하고,식구와 형제 친척을 죽이게 됩니다. 바로 압시다. 그리고 내가 아는것이 가장 최고라는 울타리에서 벗어 나오시기 바랍니다.
3)왜 위협과 살기가 가득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래서 정말 바르게 행하는 제자들을 결박하여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들을 했습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도 처음부터 이렇게 험악한 사람이 된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자체는 정말 귀한존재, 쓸만한 존재입니다. 이세상에 가장 가치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왜내하면 창1:27말씀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 하시고" 라고 할만큼 귀한존재입니다. 그리고 28절에 그 인간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부여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향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기에 얼마나 쓸만한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본문의 사울도 처음부터 그런 악한 존재가 아니였습니다. 그래서행9장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받아야 할"일을 할 사람인것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처음부터 혈기왕성하고, 이기적이고, 야만적이고, 이간질하고, 악한 성품을 품은것이 아닙니다. 아주 쓸만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맡기실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위협과 살기가 가득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에 대해서 잘못한다고, 자기의 뜻과 맞지 아니한다고 죽이고싶고, 이를 가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까 그것은 '사탄'의 의해 사로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죄를 범하여 날때부터 우리 사람들이 죄성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죄성을 주관하는 사탄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자이기 때문에 위협과 살기가 가득한 존재일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사람속에서 위협과 살기로 역사케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 속에서 분쟁케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 속을에 점령하여 원망, 불평케 합니다. 거짓말을 하게하고, 속이게하고, 평안을 깨고, 행복을 앗아 갑니다. 그래서 사울이 사탄의 사로잡혀 사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듯이 우리들도 사탄에 종 노릇을 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탄은 사람들의 영혼을 점령하고 있는것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모든 영역(領域)에 자라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에 점령된 곳의 역사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4)
그런데 왜 사울은 그런 자신을 몰랐을까요 모를수 밖에 없습니다. 18절말씀에 보면 예수를 만났을때에 눈에 비늘이 걷혔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를 만나기전에는 그의 눈에 "비늘"이 덮혀 있었기 때문에 사탄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안경을 쓸때에 안경의 색깔에 따라 보이는것은 다 똑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울의 눈에 쓰인 '비늘'은 사탄의 안경 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자신의 모습이 틀리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날때부터 이 안경을 쓰고 나옵니다. 그러기에 내방법, 내생각이 다 옳은것이며, 사탄이 나를 도구로 사용해서 위협과 살기로 가득한 자로 만들어도 못 보는 것입니다. 눈에 비늘이 걷히지 안히고, 다시말해 이 안경을 벗지 아니하고서는 절대 바른것을 볼 수 없습니다(참고요3:3,5) 우리 심령이 정말 거듭나지 아니 하고서는하나님을 볼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도 볼수 없습니다. 오늘 내 눈을 덮고 있는 이 비늘이 벗겨져 하나님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몇십년 교회를 다녀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잘알고 있다고 해도 비늘이 벗겨지지 않고서는 볼수 없습니다.
II.3-6절,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사울 위협과 살기가 가득하여 사람을 잡아다가 결박하고 죽이는 일을 하는것은 사탄이 그를 종으로 사용함에도 비늘에 가리워져 있기에 보지못하므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사울이 본문을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눈에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보이지 않던 예수가 보였고, 천국이 보이게 된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예수를 만나지 아니하기때문에 불행한 일로 우리들에게 일어 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것을 바라보게 하시고 해방시켜 주어서 자유케 하실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야 내눈에 가리워져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가게 되고, 그래서 천국을 바라보며, 예수를 바라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만나야 인생관(人生觀)이 바뀌고,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예수를 만나야 위협과 살기가 가득하여 죽이려고하는 것이 살리게하는 일들을 합니다. 사울은 그런 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오늘 사울처럼 예수를 만나 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1.주님은 사울을 찾아 오셨습니다(3-4절)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춘지라"우리 주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참으로 그를 핍박하던 사람을 주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13-14절의 아나니아라는 사람의 생각에도 용납못하는 사울을 주님은 그를 핍박하는 사람인 사울을 찾아 오셨습니다. 사실 아나니아의 말대로 사울은 죽일놈이다. 그렇게 핍박하고, 괴롭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지만 주님은 그를 찾아가 주었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용서하지 않으려는데 주님은 용서하시는 모습을 바라볼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울을 용서하셨습니다. 우리하나님께서 용서 하셨는데 왜 우리 사람들은 속이 좁아서 용서를 하지 못합니까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고, 주기도문에서도 '우리(삼위하나님)가 우리(사람인 나)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것같이 우리(다른 사람)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합니다. 완악한 사울을 찾아 오셔서 만나 주신것처럼 주님은 오늘도 이시간에 여러분과 저를 만나 주셔서 눈에 비늘을 걷어주시고,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 시켜 주시고, 천국을 바라보며, 주님을 바라볼수 있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가려면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일개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일도 힘든데 하물며 이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러 가서 우리가 만나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만나 보려고 지식을 가져보고, 돈을 가져보고, 선행의 공로도 가져 봅니다만 절대 만날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먼저 그가 나를 찾아와 주셔서 만나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도 오신 주님은 지금 이시간에도 오셨고, 또 앞으로도 우리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실것입니다.
2.이렇게 찾아 오셔서 만나 주시기를 원하는데 우리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 까(4-5절)
1)전혀 반응이 없는이가 있습니다. 주님이 와계신지 아니계신지도 모릅니다. 못느낍니다. 늘 내옆에, 내 앞에서 만나주시기 원하시는데 다른것에 한눈이 팔려 있기때문에 못봅니다. 돈에 눈이 팔렸고, 세상의것에 눈이 팔려서 보지를 못합니다. 아니 볼려고도 하지않고, 볼 시간도 없습니다. 사울에게 빛의 강한 충격을 주어서 만나기를 원하셨던것처럼, 주님은 나에게도 사람과 환경의 큰 충격을 통해서 주님자신을 만나게 하시려고 함에도 미련해서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련한 자는 되지 마십시요.
2)그러나 만난바가된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은 강한 빛의 충격으로 쓰러졌습니다(3절). 그리고 그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사울아,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리고는 그는 그 질문에 답합니다. "주여, 뉘 시오니이까" 사울은 빛의 강한 충격을 받고 그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질문하고 음성을 다시 들으므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내게 주어지는 큰 충격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건을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여러가지 사건과 사람을 통해서 충격을 주시는 주님의 심정을 아십니까"누구야! 어찌하여 나를 만나지 않느냐, 어찌하여 나를 가까이하지 않느냐 어찌하여 믿지 않고, 어찌하여 마음문을 열지 아니하느냐"물으실때에, "뉘시오니이까"하고 왜 하나님께서 그러시는지 깨닫고 그다음에 말씀하시는 음성인 "네가 핍받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듣고 만나는 놀라운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 이시간에도 만나기 위해서 묻고 있습니다. 충격을 주실때에 음성을 듣고 예수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를 만나야 살기등등한것이 깨어지고 녹아져서 새사람 이됩니다. 이 살기등등한것을 깨어서 새사람이 되게하는 이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의 눈에 덮여있는 비늘로 인하여 불신앙의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을 제거해 주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유명한 안과 의사도 안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합니다(울어도 못하네-찬송가343장).
III.7-22절,예수를 만나 변화된 바울
1.예수를 만나면 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1)영의 눈이 열려 영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면,예수를 만났을때에 그제서야 눈에 덮혀있던 비늘이 벗겨짐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니 이렇게 사울에게 열려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로잡고 있던 사탄의 안경이 벗겨지고, 성령님의 안경이 사울에 눈에 새롭게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벗겨지니 볼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벗겨지면 눈이 열러집니다. 눈이 열려야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만난 사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과 자도 예수를 만나 벗겨져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벗겨져야 우리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아야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눈이 열려지면 그때에
(1)주님이 보입니다. 사울이 주님을 보니 그제서야 "세례를 받고"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그리고 그 죄를 위하여 주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당하신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천국이 열려져있고, 주님이 보이게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눈에서 비늘이벗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시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그리고 그죄를 위하여 주께서 나를 위하여 희생하신것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때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주님을 인정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울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7절에 같이가던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똑같이 길을가고 있었는데 사울은 보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니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상합니까 여기같이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이는 예수를 만나 눈을 떠서 주님을 보고,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이는 백날이 가도 보지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성도들이 같이 눈을 떠서 빛되신 주님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2)말씀이 보입니다. 눈을 떠야 말씀이 보입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눈을 떠지않고 보면 지루합니다. 그말이 그말 같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안됩니다. 이해가 안되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사울이 눈을 뜨기 전에는 성경에서 보이지 않던 예수가 눈을 뜬 이후에는 밝히 보게되고 구약에 예언된 예수를 담대히 전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말씀에 눈이 열려야 보화를 캐 낼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시119:18에서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귀한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눈이 열려서 말씀이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울때에 그말씀이 꿀송이같이 단 말씀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3)천국이 보입니다. 눈이 열려야 천국이 보이고 주님이 보입니다. 사도행전 6정에서 스데반은 핍박가운데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눈이열려 천국이보이고, 천국에서 주님께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기쁨의 순교를 당합니다. 순교를 당하는 그순간에도 그의 얼굴이 빛나 천사와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천국과 주님을 바라볼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보이면 현재의 고난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수도 사랑의 눈으로 보입니다. 용서하게 됩니다. 바울처럼 예수를 만나 눈에 비늘이 떨어지고 천국이 보이는 놀라운 역사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2)육의 역사도 열려집니다. 욥42:1-6절에 보면 욥의영의 눈이 열려지니 육의 역사도 열려짐을 봅니다. 욥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비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비늘을 제거하시기 위해서 그의 자식,재산을 다 날려 버립니다. 처음에는 '주신이도 여호와 시요 취하신이도 여호와 시니이다'(1:21)라고 고백하지만 점점더 시간이 가면서 몸에 악창이 나고 힘들게 치니까, 3장에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후회하며 저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의 이런 비늘을 거두어 내시기 위하여 욥기4장에서 부터 41장까지에서 그의 세친구 엘리바스,빌닷, 소발을 동원해서 비늘을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늘제거의 작업이 다 끝나는 시점에서(42장에서) 욥이 하는 말이 욥기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드디어 눈에서 비늘이 제거된 것입니다. 그의 눈의 비늘이 제거된 이후에 42장10절에서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갑절의 육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의 눈을 열게하시고 육의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2.예수를 만나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19-22). 사울이 예수님을 만났더니 비늘이 떨어졌고, 그 이후에 제자들과 몇일(실제로는 아라비야 광야 3년의 훈련을 말함)있은후 즉시로 회당에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게 됩니다. 이말씀은 사울의 변화된 삶을 잘 보여줍니다. 사울의 삶에 무엇이 변화 되었습니까 여러분과 저가 예수를 만나면 삶에 변화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1)인생관(人生觀)이 바뀌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 가야 할것인가 정해진것 입니다. 그가 왜 일하고, 먹고 마쉬고, 쉬어야 하는가를 알게되었습니다. 그 모든것은 예수를 증거하는 방편들이고, 그것을 위하여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는 고전10장31절에서 "먹든지 마쉬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2)가치관(價値觀)이바뀌었습니다(빌3:5-9). 세상에 그렇게 귀하던 자신의 학벌,가문,명예,지위가 예수를 만나 변화되고난 다음에는 그것들이 똥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버렸습니다. 가장 가치있는 분은 오직 예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예수를 잡으려고 쫒아갔습니다.
3)내세관(來世觀)이 확실해 졌습니다. 그가 예수를 증거한다는 사실은 예수가 영생을 주신다는 확신때문에 증거하고 있는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4)종교관(宗敎觀)이 확실해 졌습니다. 오직 구원은 주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그렇게 핍박하던 예수를 전하고 있는것입니다. 전한다는것은 그가 확신한다는 것이고, 그가 알고있는 예수가 진정한 구세주임을 나타내고 있는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예수를 만나 인생관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고, 내세관이 확립니이되고, 종교관이 바로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고린도후서 13장5절 말씀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계신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자니라" 내가 교회를 다니지만, 직분을 맡았지만, 말씀을 알지만,기도는 하지만 그러나 정작 그분을 만났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나지 아니한 사람은 위협과 살기로 잡아죽이는 인생을, 실패하는 인생을, 가치없는 인생을 살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핍박만 하고 있지 마십시요. 그주님이 오늘 이시간에 오셔서 만나 주시기를 원해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환경과 사건과 사람들을 통하여 큰 충격을 주어서 그분과 가까이하고, 그분을 빋고, 그분을 의지하는 일들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만나야 내 인생이 달라집니다. 새로워 집니다. 강건해 집니다. 이제 큰 충격을 받고 내눈에 덮혀있는 비늘이 떨어져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 눈에 비늘을 제거하시어서 주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열려지고, 변화되는 인생을 살게하옵소서.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9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