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만난 사람 (행9:1-5,19-22)
본문
제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 어떤 여학생을 좋아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를 좋아하게 되리라고 전혀 기대도 하지를 않았고 마음도 전혀 없었는데 뜻밖의 어떤 일을 통하여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차를 타고서 통학을 했었는데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올 때에 비가 몹시도 왔었습니다. 저의 집이 원체 시골이라 버스를 내려서 40여분 정도를 걸어가야 집에를 갈 수가 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선뜻 비를 맞고 가기가 망설여졌습니다. 그래서 정류장에서 조금만 그치면 달려가자 하고 있는데
그런데 같이 통학을 하는 중3짜리 여학생이 자기 언니를 마중나왔다가 저에게 오빠라고 하면서 우산을 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됐다고 해도 하도 강권을 해서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았는데 이 일이 있고난 뒤부터 그 여학생이 평상시 늘 보았던 그 여학생과 다르게 보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에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느라고 꽤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준비 하면서 문득 저의 이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평소 별로 관심도 없고 예수믿는 사람을 보면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는 다니면서도 예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 분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나에게 다가 오셔서 나를 어루만졌을 때, 곧 주님을 만났을 때, 영혼의 눈이 떠져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생기고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마음에 심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좋아서 그렇게도 열심히 예수를 믿는 것이랍니다. 김석균이라고 하는 문일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분도 예수를 만나서 얼마나 감격을 했든지 그 북받치는 마음을 시로 노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 모른채 주님곁을 떠나가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였고 소망이었소 그대가 만일 참된 진리 찾거든 예수님을 만나보세요 그분으로 인하여 참된 평안을 얻으면 나와 같이 고백할꺼요 난 예수가 좋다오 예수님을 만나서 그 사랑을 받고서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다 내어 버리고 참된 보람된 길을 찾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한 사울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사울은 유대의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전체 유대인 중에 6천명에 불과했던 바리새인이었고 다소라는 곳에 있는 대학 출신이었고,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당시 가장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한 누구나가 부러워 할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인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학문과 언어와 식견을 구비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기분나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더구나 이들이 섬기는 대상은 유대교를 비판한 사람이었고, 자칭 스스로가 하나님이라고 한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이 될 수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들을 없애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음의 패기를 살려서 이들을 박해하는데 정열을 다 하였습니다. 스데반이라는 집사가 예수를 전도한다고 해서 돌로 그를 쳐서 죽일 때 그는 죽어 마땅하다고 증인이 되었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라는 대 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나까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I. 사울아 사울아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A.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시기 때문에 그 분에게는 거짓이 없고 진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을 저지르며 살고 있지만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빛으로 오셔서 세상의 죄악을 드러내시고 세상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 나아가는 자마다 그 빛 안에서 자신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며 그 빛 속에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사울이 자신의 죄악을 모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사울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께 나오는 영광의 빛은 사울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어두움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요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B. 우리를 아시는 예수님 하늘에서부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울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주님을 몰랐지만 주님은 사울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울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또한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할 때에도 예수님은 사울을 지켜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사울을 구원하시고자 그를 부르고 계십니다. 아무리 많은 죄악을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은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며 그를 자신의 품안으로 부르십니다.
C. 간절히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사울의 이름을 단 한 번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의 돌아옴을 애타게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 믿는 자를 많이 핍박하였고 이제자신의 동료들을 규합하여 더 많이 예수 믿는 자를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갈지라도 예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간절히 부르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죄 많은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며 속히 돌아오라고 애타게 부르시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여러분이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이곳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부르지 않으면 한 사람도 내게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II. 주여 뉘시오니이까 (행9:5上)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A. 우리의 모습 예수님은 사울을 알고 계셨고 또한 그를 사랑하시사 그에게 구원을 베푸시고자 그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향하여 누구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을 다 기억하시고 그 이름을 알고 계시며 항상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죄인된 우리는 그 은혜 받음을 깨닫지 못하고 또한 예수님을 알지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바로 회개해야 될 죄인인 것입니다. 예수를 알고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죄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을 모르는 자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누구냐고 질문을 던지는 죄인의 모습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성도의 모습을 우리는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B. 믿음의 출발점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울은 예수를 몰랐고 또한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 예수에 대하여 알기를 원하여서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고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갖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예수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믿음이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려면 먼저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C. 죄인의 한계 사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의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빛이 내리고 음성이 들리자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를 핍박하던 그가 그 기세가 꺾여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나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소리를 발하시면 온 천하가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오만세 목사의 얘기 제가 신학교에 가니까 나이가 40대 후반의 중년아저씨가 우리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만세 라고 아현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오영필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오페라를 하고 한참 사회적으로 이름을 떨치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잊어 버릴려고 노력을 했답니다. 본래 자기 아버지가 목사가 되라고 했는데 싫다고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세상 기분을 맛보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비가 오는 날 절친한 친구와 둘이 우산을 쓰고서 인생의 포부와 희망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더니 자기 옆에 있는 친구가 벼락을 맞아서 그 자리서 즉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두렵고 허망한 일을 만나고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고 목사가 되겠노라고 한참 아래인 우리와 같이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예-서천에서 목회를 했던 얘기-핍박자에 대한 하나님의 손봄
III.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9:5下)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A. 죄를 생각나게 하심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자신의 죄를 생각나게 하십니다. 사울은 자신이 지키는 율법의 도를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와 주님의 제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그 죄에서 건지시고자 할 때에 먼저 사울의 죄를 드러내셔서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이 당신을 핍박하였다고 알려 줌으로서 사울에게 죄악을 회개하도록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앞에 나오려는 자들은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여야 하며 죄가 기억 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B. 예수의 이름을 밝히심 예수님은 하늘 위에 오르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계속해서 인간의 이름인 예수를 간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보다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심은 죄인의 친구로서 승천하신 후에도 하나님 보좌 옆에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대로 예수님은 죄인들의 구원자로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C. 예수 이름을 알리려 하심 사울이 알고 있었던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를 욕하였고 그의 추종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예수란 이름은 하나님을 모독한 흉악한 강도의 이름이었습니다. 사울의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 주시려고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사울에게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의 구원자이며 만유를 통일하시는 주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개심하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예수의 이름 아래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담대히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보람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그 분은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돌봐주시는 분이십니다. 김익두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장로교 총회장까지 하신 분이시고 우리나라 전역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 분이신데 본래 그 분은 깡패 대장으로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도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이라 여인들이 시장을 갈려면 서낭당에다 돌을 집어던지면서 오늘 제발 김익두 좀 만나지 않게 해 주소서 하고 지나갈 정도로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부흥회를 한다는 곳에 가서 훼방을 놓기 위해서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그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난 예수님은 너무나도 그를 사랑하셨던 것을 그는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고서 열심히 노력하여 목사가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700여회의 부흥회를 하고 수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위대한 우리나라 기독교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남으로···············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려고, 고개 너머의 교회로 가는데, 너무너무 더워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는 그만 웃옷을 다 벗고 나무 그늘에서 평안히 쉬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술이 거나 하게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김익두 목사께 오더니,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 당신이 여기 먼저 올라 왔느냐' 말 같지 않은 소리로써 자꾸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말대꾸를 안하니까 이 술 취한 사람이 김익두 목사님을 장작 패듯이 그냥 패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김익두 목사님은 한마디 말없이 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맞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주먹이 있는 사람이 말없이 맞는 다는 것이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얼마 동안 때리더니, 이 사람이 그 때리던 것을 멈추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묻기를 "형님 다 때렸소" 그랬더니, 이 사람이 "다 때렸다 왜" 하고, 또 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님이 정색을 하고,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그랬더니 이 사람이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김익두라는 사람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김익두라는 말을 듣더니, 얼굴 안색이 변하여 그냥 초죽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김익두 목사님이 하는 말이, "내가 예수 믿기 전이라면 당신 오늘 장례식 날이라고,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당신이 오늘 산 줄을 알라고." 했더니, 이 사람이 그냥 머리를 땅에다 대고 "형님, 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무얼 어떻게 해, 따라와." 그래서 자기 부흥회 하는데 데리고 가서 자리에 앉혔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예수 믿고 훌륭한 장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통학을 하는 중3짜리 여학생이 자기 언니를 마중나왔다가 저에게 오빠라고 하면서 우산을 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됐다고 해도 하도 강권을 해서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았는데 이 일이 있고난 뒤부터 그 여학생이 평상시 늘 보았던 그 여학생과 다르게 보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에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느라고 꽤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준비 하면서 문득 저의 이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평소 별로 관심도 없고 예수믿는 사람을 보면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는 다니면서도 예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 분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나에게 다가 오셔서 나를 어루만졌을 때, 곧 주님을 만났을 때, 영혼의 눈이 떠져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생기고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마음에 심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좋아서 그렇게도 열심히 예수를 믿는 것이랍니다. 김석균이라고 하는 문일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분도 예수를 만나서 얼마나 감격을 했든지 그 북받치는 마음을 시로 노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 모른채 주님곁을 떠나가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였고 소망이었소 그대가 만일 참된 진리 찾거든 예수님을 만나보세요 그분으로 인하여 참된 평안을 얻으면 나와 같이 고백할꺼요 난 예수가 좋다오 예수님을 만나서 그 사랑을 받고서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다 내어 버리고 참된 보람된 길을 찾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한 사울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사울은 유대의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전체 유대인 중에 6천명에 불과했던 바리새인이었고 다소라는 곳에 있는 대학 출신이었고,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당시 가장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한 누구나가 부러워 할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인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학문과 언어와 식견을 구비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기분나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더구나 이들이 섬기는 대상은 유대교를 비판한 사람이었고, 자칭 스스로가 하나님이라고 한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이 될 수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들을 없애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음의 패기를 살려서 이들을 박해하는데 정열을 다 하였습니다. 스데반이라는 집사가 예수를 전도한다고 해서 돌로 그를 쳐서 죽일 때 그는 죽어 마땅하다고 증인이 되었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라는 대 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나까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I. 사울아 사울아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A.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시기 때문에 그 분에게는 거짓이 없고 진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을 저지르며 살고 있지만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빛으로 오셔서 세상의 죄악을 드러내시고 세상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 나아가는 자마다 그 빛 안에서 자신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며 그 빛 속에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사울이 자신의 죄악을 모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사울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께 나오는 영광의 빛은 사울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어두움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요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B. 우리를 아시는 예수님 하늘에서부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울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주님을 몰랐지만 주님은 사울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울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또한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할 때에도 예수님은 사울을 지켜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사울을 구원하시고자 그를 부르고 계십니다. 아무리 많은 죄악을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은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며 그를 자신의 품안으로 부르십니다.
C. 간절히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사울의 이름을 단 한 번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의 돌아옴을 애타게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 믿는 자를 많이 핍박하였고 이제자신의 동료들을 규합하여 더 많이 예수 믿는 자를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갈지라도 예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간절히 부르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죄 많은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며 속히 돌아오라고 애타게 부르시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여러분이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이곳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부르지 않으면 한 사람도 내게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II. 주여 뉘시오니이까 (행9:5上)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A. 우리의 모습 예수님은 사울을 알고 계셨고 또한 그를 사랑하시사 그에게 구원을 베푸시고자 그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향하여 누구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을 다 기억하시고 그 이름을 알고 계시며 항상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죄인된 우리는 그 은혜 받음을 깨닫지 못하고 또한 예수님을 알지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바로 회개해야 될 죄인인 것입니다. 예수를 알고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죄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을 모르는 자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누구냐고 질문을 던지는 죄인의 모습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성도의 모습을 우리는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B. 믿음의 출발점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울은 예수를 몰랐고 또한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 예수에 대하여 알기를 원하여서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고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갖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예수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믿음이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려면 먼저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C. 죄인의 한계 사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의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빛이 내리고 음성이 들리자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를 핍박하던 그가 그 기세가 꺾여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나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소리를 발하시면 온 천하가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오만세 목사의 얘기 제가 신학교에 가니까 나이가 40대 후반의 중년아저씨가 우리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만세 라고 아현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오영필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오페라를 하고 한참 사회적으로 이름을 떨치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잊어 버릴려고 노력을 했답니다. 본래 자기 아버지가 목사가 되라고 했는데 싫다고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세상 기분을 맛보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비가 오는 날 절친한 친구와 둘이 우산을 쓰고서 인생의 포부와 희망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더니 자기 옆에 있는 친구가 벼락을 맞아서 그 자리서 즉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두렵고 허망한 일을 만나고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고 목사가 되겠노라고 한참 아래인 우리와 같이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예-서천에서 목회를 했던 얘기-핍박자에 대한 하나님의 손봄
III.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9:5下)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A. 죄를 생각나게 하심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자신의 죄를 생각나게 하십니다. 사울은 자신이 지키는 율법의 도를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와 주님의 제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그 죄에서 건지시고자 할 때에 먼저 사울의 죄를 드러내셔서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이 당신을 핍박하였다고 알려 줌으로서 사울에게 죄악을 회개하도록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앞에 나오려는 자들은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여야 하며 죄가 기억 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B. 예수의 이름을 밝히심 예수님은 하늘 위에 오르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계속해서 인간의 이름인 예수를 간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보다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심은 죄인의 친구로서 승천하신 후에도 하나님 보좌 옆에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대로 예수님은 죄인들의 구원자로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C. 예수 이름을 알리려 하심 사울이 알고 있었던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를 욕하였고 그의 추종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예수란 이름은 하나님을 모독한 흉악한 강도의 이름이었습니다. 사울의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 주시려고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사울에게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의 구원자이며 만유를 통일하시는 주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개심하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예수의 이름 아래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담대히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보람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그 분은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돌봐주시는 분이십니다. 김익두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장로교 총회장까지 하신 분이시고 우리나라 전역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 분이신데 본래 그 분은 깡패 대장으로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도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이라 여인들이 시장을 갈려면 서낭당에다 돌을 집어던지면서 오늘 제발 김익두 좀 만나지 않게 해 주소서 하고 지나갈 정도로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부흥회를 한다는 곳에 가서 훼방을 놓기 위해서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그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난 예수님은 너무나도 그를 사랑하셨던 것을 그는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고서 열심히 노력하여 목사가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700여회의 부흥회를 하고 수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위대한 우리나라 기독교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남으로···············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려고, 고개 너머의 교회로 가는데, 너무너무 더워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는 그만 웃옷을 다 벗고 나무 그늘에서 평안히 쉬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술이 거나 하게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김익두 목사께 오더니,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 당신이 여기 먼저 올라 왔느냐' 말 같지 않은 소리로써 자꾸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말대꾸를 안하니까 이 술 취한 사람이 김익두 목사님을 장작 패듯이 그냥 패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김익두 목사님은 한마디 말없이 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맞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주먹이 있는 사람이 말없이 맞는 다는 것이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얼마 동안 때리더니, 이 사람이 그 때리던 것을 멈추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묻기를 "형님 다 때렸소" 그랬더니, 이 사람이 "다 때렸다 왜" 하고, 또 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님이 정색을 하고,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그랬더니 이 사람이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김익두라는 사람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김익두라는 말을 듣더니, 얼굴 안색이 변하여 그냥 초죽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김익두 목사님이 하는 말이, "내가 예수 믿기 전이라면 당신 오늘 장례식 날이라고,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당신이 오늘 산 줄을 알라고." 했더니, 이 사람이 그냥 머리를 땅에다 대고 "형님, 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무얼 어떻게 해, 따라와." 그래서 자기 부흥회 하는데 데리고 가서 자리에 앉혔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예수 믿고 훌륭한 장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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