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원 (골로새1:9-12)
본문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랜만에 여러분을 만나는 느낌입니다. 한 주간동안 한 일들이 많다보니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주일 밤부터 수요일 밤까지 계속된 남서울 일산교회 부흥회와 화요일 오전 합동신학교의 설교세미나 강의, 목요일 밤에는 울산교회 청년2부 임원면담, 토요일 새벽의 임시당회, 토요일 점심시간의 김재용 선교사님 일행과 식사 등, 좀 많은 일들을 한 주간에 가지다보니 많은 날들이 지나간 느낌이 듭니다. 지난 신정 첫 주일 예배에 우리는 "믿음, 사랑, 소망"이란 제목으로 바울의 감사 첫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소원'이란 제목으로 바울의 간구 첫 부분을 살피려고 합니다. 물론 간구 전반에 대해서 성경공부 형식으로 그동안 권찰모임에서 대충 살폈습니다만 오늘부터 몇 주일 동안 자세히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새해에 들면서 살피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 신정 하례예배에서 '새 만남 새 인사'란 제목으로 바울의 인사말을 살폈습니다. 당대 여느 편지와 다름없는 양식에 따라서두를 시작하지만 그 내용은 아주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문화의 변혁자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의 음성을 들어봅시다. 인사에 이어 그는 감사를 드립니다. 아니 그가 골로새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기도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그 믿음과 사랑이 하늘에 쌓아둔 소망에 근거한 것으로 인해 더욱 감사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골로새 성도들이 이 복된 하늘 소식을 듣는 것으로 인해 또한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들은 '복음 진리의 말씀'이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를 상기시키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펴본 골로새서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첫만남부터 상대방을 향해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하면서 다가서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형제자매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사역으로 인해서 감사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시고 소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 그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이름 앞에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이 복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영광스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누리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의 감사가 간구로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두 부분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3절 초두와 9절 초두는 비슷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모두 기도의 사람 바울과 그 동료들을 만나게 합니다. 3절에"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9절에 "우리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뿐만 아니라 두 부분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유사한 용어와 개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듣고 깨달은 날부터"(6절) "듣던 날부터"(9절) 들었다는 말, 열매를 맺고 자란다는 표현, 감사한다는 말, "아버지께"란 표현이 반복됩니다. "성도성령님 안에서"(8절) "신령한"(9절)이란 단어는 서로 비슷한 데가 있고, "빛 가운데 기업"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과 관련을 갖습니다. 이런 유사한 표현들의 반복은 두 부분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귀납법적 성경공부의 기초는 사용된 단어 하나 하나를 살피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같은 서신서에서는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선 바울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살펴봅시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표준 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의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우리도 여러분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도"라고 밝힌 것을 보면 바울 혼자는 아닙니다. 물론 혼자서 바울이 기도하지 않았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혼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의 제단을 쌓았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우리도"라고 밝힘으로써 그 기도에 틀림없이 동역자 디모데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혼자있을 때는 혼자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두 사람이 모였을 때는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이고, 여기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전부터 골로새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라를 통해서 들은 골로새 성도들의 소식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기도하게 했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이 은혜 안에 자라고 있다는 소식은(1:4, 8)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골로새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중단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돌리게 하는 대신 이 소식은 그들을 인한 감사와 그들을 위한 간구의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잘 살펴보면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는 방식과 바울이 여기에서 기도하는 것 하고 차이를 느낄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렵다는 소식을 들으면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급한 불을 끄고나면 열심히 사라집니다. 그들이 은혜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하나님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를 인해서 감사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평소에 지펴온 모닥불에 휘발류를 끼얹듯이 기도의 불길은 더욱 활활 타올랐습니다. 새 소식은 바울과 그 동료들에게 "이전에 결코 기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운 기도의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규적인 기도 뿐 아니라 열심을 쏟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라는 표현은 그들의 간구를 하나님의 들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시간이 되었으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을 쏟아서 하는 기도를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간구를 하나님이 들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 사역이나 말씀 사역에 하나님께서 가끔 새로운 활기를 더하게 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는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해서 합류하게 되었을 때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라 밝히 증거했다"고 기록합니다(행 18:5). 바울사도는 본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 경우에는 두 친구들이 도착하니까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를 붙잡고 사용하고 있었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 한마디 한마디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것도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우리의 기도 전부가 폭포수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게 하는 기도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기도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의 입과 생각을 통제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폭포수처럼 당신이 기뻐하시는 소원들을 쏟아 놓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겸비하게 성경에 나와있는 기도의 사람 바울을 만나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열심히 새롭게 기도하게 된 것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전한 소식이 기도의 활기를 불어 넣은 것처럼 우리의 기도모임도 새로운 소식으로 기도의 열기를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사들의 소식을 매주 주보에 규칙적으로 실리고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온 막쪄낸 찐빵같은 신선한 소식은 우리로 더욱 기도의 열기를 더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주보에 실리는 각종 기도제목을 두고 기도하십시오. 구역에서 주보에 실린 선교사들의 기도제목을 두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 새해에는 편지를 쓰는 해로 삼아봅시다. 바울이 편지를 써서 남겼으니까 우리가 지금 읽고 은혜를 받는 것처럼 우리도 편지를 써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도와 주시는 행정 부목사님이 오셨기 때문에 저가 올해 할려고 마음을 먹은 일 중에 하나는 우리가 돕고있는 선교사들, 후원하고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일을 보면 하루에도 수십통이 올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쪽에서 우리쪽에 소식이 오는 경우입니다. 그쪽에서 소식이 몇 달 뒤에 또 옵니다. 우리 편에서 소식을 보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 주보나 기쁜소식과 땅끝까지를 보내어서 우리의 근황을 알게하지만 선교사님들도 우리가 육필로 쓴 편지들을 좀 받아 보기를 원치 않겠습니까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다 선교사들이 목이 긴 사슴이 되어 버리지 않도록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면서 편지 쓰는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바쁜 틈을 타서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주고 받는 새로운 교제의 장을 열어갑시다. 아직 살 날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살 날이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살았던 것처럼 살지말고 "하나님! 새해에는 새로운 소원을 주십시오."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일마다 예배하면서 지난해나 10년전이나 꼭같이 생활한다고 하면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하나님과 너무 맞지를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그 놀라운 구원사역을 우리로 하여금 기억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출애굽의 그 엄청난 사역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 조차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 가운데서 새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사도 바울은 "기도의 교제"를 굳게 믿었습니다. 그와 함께한 동료들은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그를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의 교제를 믿는 사람은 형제자매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신실하고 자기의 기도의 부탁을 하는 일에 솔직합니다. 기도의 교제가 계속되면 편지로 교제하는 일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편지로 교제하다 보면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 뿐 아니라 기도제목과 부탁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쓴 여러 편지를 보면 바울은 그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밝힐 뿐 아니라 편지 말미에 가면 나를 위해서 혹 우리를 위해서 기도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 골로새서 1장 3절과 9절은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로 인한 감사의 기도와 그들을 위한 간구가 있습니다:"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이로써 우리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동시에 4장 3절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를 위한 기도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어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데살로니가 전후서에도 각각 그런 기도와 요청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을…"(살전 1:2).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5:25).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을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3:1). 바울은 평생 사역자였지만 데살로니가 사역은 잊어 버릴 수 없는 사역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역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그의 눈이 빛났으며 그의 가슴은 뜨거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말씀이 달음질했기 때문입니다.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우리 속에서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 나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기도의 교제를 골로새교회에 보낸 공식서신이나, 빌레몬 장로에게 보낸 개인 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몬1:4).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22). 동일한 사실을 로마와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롬 15:30). "너희를 위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6).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기도의 사람은 위해서 기도를 할 줄 아는 사람인 동시에 자기 기도제목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이미 받은 축복에 근거해서 그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이미 내재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새 힘을 얻어 더욱 큰 은혜의 증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라는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은혜로 감사하기에 더욱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힘을 얻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는 성도의 기도를 중단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받은 은혜를 아는 성도는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합니다. 은혜를 맛보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만끽하는 자리에 나아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큰 은혜를 사모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령한 것에 대한 욕심을 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는 검소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영적인 면에서 빈궁하게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기도의 교제를 믿습니까 여러분은 기도의 교제를 누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끊이지 않고 기도하는 이름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누가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까 먼저 상대방으로 인해서 먼저 감사하십시오. 그들이 받아 누리는 축복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나아가서 그들을 위해서 간구하실 때에 그들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왕자와 같이 풍성하고 영적 복을 누리도록 간구하십시오.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바울은 골로새 성도를 위해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9절부터 20절까지는 계속 이어지는 한 문장입니다. 218자가 싯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9-14절도 108 단어로 구성된 긴 문장입니다. 기도를 하다말고 그의 기도는 찬양으로 바뀌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부터 운문형식으로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바울의 깊은 감동 속에서 쓴 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피려면 문장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주어이고 무엇이 목적어인지 일일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바울의 기도의
첫째 제목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도록"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도록"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숨겨진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밝힌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두 가지로 분리됩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은 뜻도 있고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도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나타내신 그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신 뜻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일상 생활에서 행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궁금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가 나타내신 뜻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율법의 모든 말씀 속에 공개해 놓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이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백성들로 인해서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탄식합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새해에는 알기를 원하시지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그분의 뜻이 기록된 말씀묵상으로 올해는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매일 성경을 읽는 자리로 나갑시다. 시간이 있으면 호주머니 속에 암송카드라도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십시오. 그것은 필요한 때에 여러분을 도와 줄 것입니다. 끈기있고 규칙적인 성경묵상 뿐 아니라 간절한 기도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바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우리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밝혀 주십시오"라고 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에 첫째자리에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아는 것'이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 도덕적, 종교적 지식에 관해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의미는 추상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사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배우자를 도서관에서 백과사전을 가지고 알았던 사람이 있습니까 결혼해서 살다가 보면 배우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게되는 것입니다. 전세 들어 사는 사람도 같이 생활하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런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로부터 시작한 경험적 지식을 뜻합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말리실 때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을 내 욕심대로 가보니 이것이 안되구나!"라고 하나씩 배워 가는 것입니다. 오래 기도하고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만 급히 설치고 결정하는 일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 분과 더 깊은 교제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한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삶을 새롭게 만듭니다. 속아서는 안됩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다고 해서 다 내 백성이라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어떻게 탄식을 했습니까 "이 백성이 내 백성인 것처럼 나와서 앉아 있지만 귀에 들리는 노래소리 처럼 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앉아 있다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사람은 심령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1년전 10년전에 비해서 우리 주님을 더 알아가는 사람은 주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오늘이나 꼭 같이 교회에 나와서 무엇을 시비 붙을 것인가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무서운 자리에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자기의 심령에 변화를 받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알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보다 깊게 풍부하게 알게 되도록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채우게 하시고"라고 간구합니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차곡차곡 채우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넘치도록 채우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석구석에까지 경험적으로, 인격적으로 스며들기를 구합니다. 모든 생활과 감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스며들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과 감정과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계획과 뜻 속에 하나님의 뜻이 스며들기를 간구합니다. 여기에 '채운다'라는 동사나-'충만'이란 명사는 골로새 이단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충만이란 지배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로 충만하면 술기운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성령님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지배받습니까 세상 소리에 지배를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지배를 받아야 신앙인이 됩니다. 골로새 교회를 어지럽히던 이단들은 에바브라의 설교에 발견할 수 없던 축복과 진리를 충만히 제공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넌지시 성도들이 관심할 바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골로새 성도의 일상생활 속에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필요한 수단을 거론합니다.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라고 본문은 밝혀줍니다.
지혜는 인생 최고의 목표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총명은 매일 실제적 삶의 상황 속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활용하는 분별력, 응용력을 의미합니다. 이 지혜와 분별력은 모두 신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성령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질 때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간구한 다음 그 결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간구합니다. 바른 지식은 바른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자체는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은 주께 합당히 행하는 삶-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나아 갈 때에 우리가 아는 모든 성경의 지식이 제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아는 것을 사는 것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모든 지식의 목표는 실천에 있습니다. 진리의 힘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 때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기도는 삶의 현장에서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기도는 우리를 삶의 현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가득하게" 해 달라는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바른 지식은 바른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통신앙은 정통생활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통교단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하면 듣는 것만 정통이어서는 안되고 사는 삶이 정통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인들이 결과적으로 "주님이 원하는 생활을 하도록" 기도드립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주께 합당히 행하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신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성도답게 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축복에 어울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새로운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한다는 말을 생각하기 전에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여러분이 기억하십시오. 지금껏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셨던 것을 기억하며 거기에 부합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주님께서 지금도 행하시고 있는 사역에 어울리는 삶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삶의 목적에 부합한 삶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 전부를 내어 주었습니다. 살아서 섬기고 죽어서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헌신했는데 여러분의 헌신은 어느 수준입니까 새해에는 주께 합당히 살아가겠다고-신자답게 살겠다고 결단해 보십시오! 새해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다고 간구해 보십시오! 사람은 생각의 지배를 받습니다. 생각이 변하면 삶이 변합니다. 내가 새해에는 주께 합당하게 살겠다는 결단을 하십시오. 결심하는 것 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새해에는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 힘을 얻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까 왜 우리는 주께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합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여기 '기쁘게 한다'는 단어는 상대방의 모든 바램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들어주려는 심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해 달라고 해서 합니까 보아서 눈치껏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그 관계입니다. 필요한 사람을 만나서 상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아서 골프를 좋아하면 하기 싫은 골프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까 기쁘게 한다는 단어는 호의를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아부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사용될 때는 그 의미가 고상하게 승화됩니다. 그 분의 뜻을 미리 알아차려서 행하는 것은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을 지고의 상태로 개발하여 최선의 것을 획득하는데 필요한 길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 안에 오직 하나의 동기만 자리잡게 합시다.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삽시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주님 만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는 미지근한 것이 통할 수 없습니다. 적당히 반신반의하면서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날 위해서 온 마음을 쏟으신 주님께 합당한 사람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연약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 분 앞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것은 결코 굴종이 아닙니다. 죄악된 욕망을 따라 사는 대신 거룩한 하나님의 뜻만 따르는 왕같은 섬김의 길입니다. 새해에는 매사에 하나님 한 분만 기쁘시게 하려는 거룩한 동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게 하시고 먹든지 마시든지 자든지 깨든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간구하십시오! (고후 5:8-9) "오 주님 주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십시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영광스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누리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의 감사가 간구로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두 부분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3절 초두와 9절 초두는 비슷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모두 기도의 사람 바울과 그 동료들을 만나게 합니다. 3절에"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9절에 "우리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뿐만 아니라 두 부분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유사한 용어와 개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듣고 깨달은 날부터"(6절) "듣던 날부터"(9절) 들었다는 말, 열매를 맺고 자란다는 표현, 감사한다는 말, "아버지께"란 표현이 반복됩니다. "성도성령님 안에서"(8절) "신령한"(9절)이란 단어는 서로 비슷한 데가 있고, "빛 가운데 기업"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과 관련을 갖습니다. 이런 유사한 표현들의 반복은 두 부분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귀납법적 성경공부의 기초는 사용된 단어 하나 하나를 살피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같은 서신서에서는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선 바울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살펴봅시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표준 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의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우리도 여러분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도"라고 밝힌 것을 보면 바울 혼자는 아닙니다. 물론 혼자서 바울이 기도하지 않았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혼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의 제단을 쌓았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우리도"라고 밝힘으로써 그 기도에 틀림없이 동역자 디모데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혼자있을 때는 혼자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두 사람이 모였을 때는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이고, 여기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전부터 골로새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라를 통해서 들은 골로새 성도들의 소식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기도하게 했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이 은혜 안에 자라고 있다는 소식은(1:4, 8)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골로새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중단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돌리게 하는 대신 이 소식은 그들을 인한 감사와 그들을 위한 간구의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잘 살펴보면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는 방식과 바울이 여기에서 기도하는 것 하고 차이를 느낄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렵다는 소식을 들으면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급한 불을 끄고나면 열심히 사라집니다. 그들이 은혜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하나님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를 인해서 감사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평소에 지펴온 모닥불에 휘발류를 끼얹듯이 기도의 불길은 더욱 활활 타올랐습니다. 새 소식은 바울과 그 동료들에게 "이전에 결코 기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운 기도의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규적인 기도 뿐 아니라 열심을 쏟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라는 표현은 그들의 간구를 하나님의 들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시간이 되었으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을 쏟아서 하는 기도를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간구를 하나님이 들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 사역이나 말씀 사역에 하나님께서 가끔 새로운 활기를 더하게 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는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해서 합류하게 되었을 때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라 밝히 증거했다"고 기록합니다(행 18:5). 바울사도는 본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 경우에는 두 친구들이 도착하니까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를 붙잡고 사용하고 있었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 한마디 한마디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것도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우리의 기도 전부가 폭포수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게 하는 기도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기도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의 입과 생각을 통제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폭포수처럼 당신이 기뻐하시는 소원들을 쏟아 놓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겸비하게 성경에 나와있는 기도의 사람 바울을 만나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열심히 새롭게 기도하게 된 것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전한 소식이 기도의 활기를 불어 넣은 것처럼 우리의 기도모임도 새로운 소식으로 기도의 열기를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사들의 소식을 매주 주보에 규칙적으로 실리고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온 막쪄낸 찐빵같은 신선한 소식은 우리로 더욱 기도의 열기를 더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주보에 실리는 각종 기도제목을 두고 기도하십시오. 구역에서 주보에 실린 선교사들의 기도제목을 두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 새해에는 편지를 쓰는 해로 삼아봅시다. 바울이 편지를 써서 남겼으니까 우리가 지금 읽고 은혜를 받는 것처럼 우리도 편지를 써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도와 주시는 행정 부목사님이 오셨기 때문에 저가 올해 할려고 마음을 먹은 일 중에 하나는 우리가 돕고있는 선교사들, 후원하고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일을 보면 하루에도 수십통이 올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쪽에서 우리쪽에 소식이 오는 경우입니다. 그쪽에서 소식이 몇 달 뒤에 또 옵니다. 우리 편에서 소식을 보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 주보나 기쁜소식과 땅끝까지를 보내어서 우리의 근황을 알게하지만 선교사님들도 우리가 육필로 쓴 편지들을 좀 받아 보기를 원치 않겠습니까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다 선교사들이 목이 긴 사슴이 되어 버리지 않도록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면서 편지 쓰는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바쁜 틈을 타서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주고 받는 새로운 교제의 장을 열어갑시다. 아직 살 날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살 날이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살았던 것처럼 살지말고 "하나님! 새해에는 새로운 소원을 주십시오."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일마다 예배하면서 지난해나 10년전이나 꼭같이 생활한다고 하면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하나님과 너무 맞지를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그 놀라운 구원사역을 우리로 하여금 기억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출애굽의 그 엄청난 사역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 조차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 가운데서 새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사도 바울은 "기도의 교제"를 굳게 믿었습니다. 그와 함께한 동료들은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그를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의 교제를 믿는 사람은 형제자매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신실하고 자기의 기도의 부탁을 하는 일에 솔직합니다. 기도의 교제가 계속되면 편지로 교제하는 일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편지로 교제하다 보면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 뿐 아니라 기도제목과 부탁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쓴 여러 편지를 보면 바울은 그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밝힐 뿐 아니라 편지 말미에 가면 나를 위해서 혹 우리를 위해서 기도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 골로새서 1장 3절과 9절은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로 인한 감사의 기도와 그들을 위한 간구가 있습니다:"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이로써 우리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동시에 4장 3절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를 위한 기도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어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데살로니가 전후서에도 각각 그런 기도와 요청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을…"(살전 1:2).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5:25).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을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3:1). 바울은 평생 사역자였지만 데살로니가 사역은 잊어 버릴 수 없는 사역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역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그의 눈이 빛났으며 그의 가슴은 뜨거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말씀이 달음질했기 때문입니다.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우리 속에서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 나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기도의 교제를 골로새교회에 보낸 공식서신이나, 빌레몬 장로에게 보낸 개인 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몬1:4).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22). 동일한 사실을 로마와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롬 15:30). "너희를 위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6).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기도의 사람은 위해서 기도를 할 줄 아는 사람인 동시에 자기 기도제목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이미 받은 축복에 근거해서 그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이미 내재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새 힘을 얻어 더욱 큰 은혜의 증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라는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은혜로 감사하기에 더욱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힘을 얻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는 성도의 기도를 중단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받은 은혜를 아는 성도는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합니다. 은혜를 맛보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만끽하는 자리에 나아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큰 은혜를 사모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령한 것에 대한 욕심을 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는 검소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영적인 면에서 빈궁하게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기도의 교제를 믿습니까 여러분은 기도의 교제를 누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끊이지 않고 기도하는 이름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누가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까 먼저 상대방으로 인해서 먼저 감사하십시오. 그들이 받아 누리는 축복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나아가서 그들을 위해서 간구하실 때에 그들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왕자와 같이 풍성하고 영적 복을 누리도록 간구하십시오.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바울은 골로새 성도를 위해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9절부터 20절까지는 계속 이어지는 한 문장입니다. 218자가 싯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9-14절도 108 단어로 구성된 긴 문장입니다. 기도를 하다말고 그의 기도는 찬양으로 바뀌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부터 운문형식으로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바울의 깊은 감동 속에서 쓴 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피려면 문장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주어이고 무엇이 목적어인지 일일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바울의 기도의
첫째 제목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도록"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도록"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숨겨진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밝힌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두 가지로 분리됩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은 뜻도 있고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도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나타내신 그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신 뜻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일상 생활에서 행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궁금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가 나타내신 뜻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율법의 모든 말씀 속에 공개해 놓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이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백성들로 인해서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탄식합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새해에는 알기를 원하시지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그분의 뜻이 기록된 말씀묵상으로 올해는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매일 성경을 읽는 자리로 나갑시다. 시간이 있으면 호주머니 속에 암송카드라도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십시오. 그것은 필요한 때에 여러분을 도와 줄 것입니다. 끈기있고 규칙적인 성경묵상 뿐 아니라 간절한 기도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바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우리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밝혀 주십시오"라고 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에 첫째자리에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아는 것'이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 도덕적, 종교적 지식에 관해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의미는 추상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사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배우자를 도서관에서 백과사전을 가지고 알았던 사람이 있습니까 결혼해서 살다가 보면 배우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게되는 것입니다. 전세 들어 사는 사람도 같이 생활하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런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로부터 시작한 경험적 지식을 뜻합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말리실 때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을 내 욕심대로 가보니 이것이 안되구나!"라고 하나씩 배워 가는 것입니다. 오래 기도하고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만 급히 설치고 결정하는 일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 분과 더 깊은 교제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한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삶을 새롭게 만듭니다. 속아서는 안됩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다고 해서 다 내 백성이라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어떻게 탄식을 했습니까 "이 백성이 내 백성인 것처럼 나와서 앉아 있지만 귀에 들리는 노래소리 처럼 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앉아 있다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사람은 심령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1년전 10년전에 비해서 우리 주님을 더 알아가는 사람은 주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오늘이나 꼭 같이 교회에 나와서 무엇을 시비 붙을 것인가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무서운 자리에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자기의 심령에 변화를 받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알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보다 깊게 풍부하게 알게 되도록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채우게 하시고"라고 간구합니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차곡차곡 채우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넘치도록 채우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석구석에까지 경험적으로, 인격적으로 스며들기를 구합니다. 모든 생활과 감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스며들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과 감정과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계획과 뜻 속에 하나님의 뜻이 스며들기를 간구합니다. 여기에 '채운다'라는 동사나-'충만'이란 명사는 골로새 이단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충만이란 지배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로 충만하면 술기운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성령님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지배받습니까 세상 소리에 지배를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지배를 받아야 신앙인이 됩니다. 골로새 교회를 어지럽히던 이단들은 에바브라의 설교에 발견할 수 없던 축복과 진리를 충만히 제공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넌지시 성도들이 관심할 바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골로새 성도의 일상생활 속에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필요한 수단을 거론합니다.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라고 본문은 밝혀줍니다.
지혜는 인생 최고의 목표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총명은 매일 실제적 삶의 상황 속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활용하는 분별력, 응용력을 의미합니다. 이 지혜와 분별력은 모두 신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성령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질 때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간구한 다음 그 결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간구합니다. 바른 지식은 바른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자체는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은 주께 합당히 행하는 삶-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나아 갈 때에 우리가 아는 모든 성경의 지식이 제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아는 것을 사는 것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모든 지식의 목표는 실천에 있습니다. 진리의 힘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 때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기도는 삶의 현장에서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기도는 우리를 삶의 현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가득하게" 해 달라는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바른 지식은 바른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통신앙은 정통생활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통교단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하면 듣는 것만 정통이어서는 안되고 사는 삶이 정통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인들이 결과적으로 "주님이 원하는 생활을 하도록" 기도드립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주께 합당히 행하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신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성도답게 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축복에 어울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새로운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한다는 말을 생각하기 전에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여러분이 기억하십시오. 지금껏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셨던 것을 기억하며 거기에 부합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주님께서 지금도 행하시고 있는 사역에 어울리는 삶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삶의 목적에 부합한 삶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 전부를 내어 주었습니다. 살아서 섬기고 죽어서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헌신했는데 여러분의 헌신은 어느 수준입니까 새해에는 주께 합당히 살아가겠다고-신자답게 살겠다고 결단해 보십시오! 새해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다고 간구해 보십시오! 사람은 생각의 지배를 받습니다. 생각이 변하면 삶이 변합니다. 내가 새해에는 주께 합당하게 살겠다는 결단을 하십시오. 결심하는 것 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새해에는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 힘을 얻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까 왜 우리는 주께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합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여기 '기쁘게 한다'는 단어는 상대방의 모든 바램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들어주려는 심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해 달라고 해서 합니까 보아서 눈치껏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그 관계입니다. 필요한 사람을 만나서 상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아서 골프를 좋아하면 하기 싫은 골프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까 기쁘게 한다는 단어는 호의를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아부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사용될 때는 그 의미가 고상하게 승화됩니다. 그 분의 뜻을 미리 알아차려서 행하는 것은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을 지고의 상태로 개발하여 최선의 것을 획득하는데 필요한 길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 안에 오직 하나의 동기만 자리잡게 합시다.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삽시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주님 만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는 미지근한 것이 통할 수 없습니다. 적당히 반신반의하면서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날 위해서 온 마음을 쏟으신 주님께 합당한 사람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연약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 분 앞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것은 결코 굴종이 아닙니다. 죄악된 욕망을 따라 사는 대신 거룩한 하나님의 뜻만 따르는 왕같은 섬김의 길입니다. 새해에는 매사에 하나님 한 분만 기쁘시게 하려는 거룩한 동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게 하시고 먹든지 마시든지 자든지 깨든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간구하십시오! (고후 5:8-9) "오 주님 주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십시오.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