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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뿌리를 찾아서 (사27:1-6,골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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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저녁에 간식으로 떡을 전달하기 위해서 실직노숙자 합숙소인 "자유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소장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1,300명이 그곳에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월 4 일에 문을 열었는데, 처음에는 질서가 잡히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리가 잡혀가면서 질서가 잡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밥을 다섯 번이나 받아먹은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두 번 받아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한 방에 15명 정도 기거하는 데, 어떤 방은 매일 밤 싸움을 하여 참다 못한 직원들이 그들을 각기 다른 방에 나누려고 하였더니 한사코 다른 방에는 가려고 하지 않았 다고 합니다. 싸우면서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환자방을 만들기 위 하여 두 방을 비우려 하는데, 사람들이 좀처럼 헤어지려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제비뽑기를 하여 사람들을 옮겼다고 합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사람들의 체력이 약하여 운동경기를 시켜도 조금 뛰고는 헐떡였는데, 요즈음에는 체력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 들이 난폭하고 술 마시면서 싸우곤 하였는데, 안정이 되면서 사람들 의 심성도 많이 가다듬어졌다고 합니다. 이번 설에 고향에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비와 선물비를 주려고 신청을 받으면서 너도나도 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신청자가 적다고 합니다. 그것은 돌아갈 고향이나 집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또 있 다고 하여도 면목이 없어 가고 싶지 않은 까닭이라고 합니다. 가정이 있던 사람도 가정이 모두 해체되어 버려서 찾아갈 집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의 뿌리가 뽑혔을 때 우리의 삶은 얼마 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이라는 삶의 뿌 리가 뽑혀버릴 때 인간의 삶은 그대로 시들어 버리고, 뿌리를 내릴 새로운 터를 찾지 못하면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유의 집' 실직 노숙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고 심성이 다듬어지는 것은 가정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몸부쳐 누울 고정 적인 자리와 함께 기거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유의 집'이 있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뿌리를 내릴 임시 거처를 찾았기 때문에 약간의 활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이 집에서조차 쫓겨나는 일입니다. 술을 마시고난동을 피우다가도 퇴소 시키겠다는 소장의 으름장 앞에서는 완전히 기가 죽어 얌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자유의 집'에만 있으면 적어도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잠자리는 확보되기에 최소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 중 90% 이상이 일자리를 얻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일자리만 얻으면 좀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실직 노 숙자들은 경제위기 이전에도 그 삶의 뿌리가 약하였던 사람들입니다. 인력 시장에 나가 기다리면서 하루 일거리를 찾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경제 한파가 몰려오면서 일거리가 없어지자 결국 노숙자로 부랑인(浮 浪人)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들 결국 우리의 삶이란 그 뿌리를 든든히 내릴 땅을 찾는 노력의 연 속이라고 하겠습니다. 삶의 뿌리를 얼마나 깊이 얼마나 든든하게 내 렸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뿌리 깊 은 나무일수록 그 가지가 번성하고 그 잎이 무성하며 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도 어디다 어떻게 뿌리를 내렸느냐 에 따라 번성하기도 하고 시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땅 기름진 토양에 뿌리를 내리려고 애를 쓰며, 우리의 삶의 가 지를 번성케 할 온갖 거름을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뿌리를 일차적으로 내리고 있는 곳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은 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중요한 삶의 자리입니다. 실직 노 숙자들은 바로 이 가정이 없거나 떠난 사람들입니다. 가정이 없다는 것은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어야 하는 까닭은 그래야 우리의 삶이 뿌리를 든든히 내리면서 꽃도 피울 수 있고 열매도 맺을 수 있기 때 문입니다. 고아들이나 양로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의 삶에 빛이 없는 것은 그들의 뿌리가 뽑혔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 려움이 닥칠 때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그 가족들이 힘을 모아 어떻게 해서든지 견뎌내지만, 가정이 없는 사람은 쉽게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꾸리고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의 뿌리 를 든든히 내리는 것이며,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대가족을 이루었던 일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봅니다. 지금 핵가족화 된 가정들은 그 뿌리가 깊지 못하여 쉽게 흔들려 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형제들이 많거나 일가친척이 많은 사람은 그들의 도움을 통해서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지만, 형제나 친척이 없는 사람들은 대 단히 힘들게 그 어려움을 극복하여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이나 추석에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생길이면서도 고향을 찾아 내려가는 것은 거기에 삶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그 뿌리를 잘 가 꾸어 놓으면 어려울 때 큰 힘이 되기에 힘들지만 고향을 찾아가는 것 입니다. 요즈음도 정치적으로 지역간의 갈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지역정서는 없어질 수 없는 근원적인 정서입니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나쁘지 지역 정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거기서 태어나고 나의 삶의 뿌리가 거기에 있는데, 어떻게 그 지역 정서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삶의 뿌리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것을 극복하자고 해도 극복할 수 없는 근원적인 정 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지역 정서를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 방향 으로 건전하게 발전시킬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안정되어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가정이나 가문이나 지역 정서를 보다 든든하게 세우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나라입니다. 우리 가 나라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바로 그 나라가 우리의 삶의 뿌리 를 안정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우리의 가정과 지역을 지켜 주기 때문 입니다.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일제 35년간 의 경험을 통해서 맛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 고대 이집트 에서 400년간 노예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지난 1948년 이스라엘이 독 립을 선언하기까지 2천년이나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 곳곳에서 서 러움과 멸시를 받으면서 지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오랜 세월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야훼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뿌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앙이 없는 민족은 2천년이 아니라 20년만 지내도 결국 민족 자체가 소멸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느냐 없느냐 또 그 나라가 얼마나 크며, 그 정치와 경제가 어 떠하냐에 따라 거기에 속한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증대시키려고 피나는 노 력들을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정치인들은 존경을 받 습니다. 그러나 나라도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는 동안 그 백성들의 삶도 한 때는 번성하였다가 또 어떤 때는 뿌리 뽑 힌 삶이 되어 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지금 북조선은 나라 경제가 약하여져서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어 그 삶의 뿌리가 뽑혀 죽어가고 있고, 남한은 남한대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2백만 명이 넘는 실직자 와 아예 삶의 뿌리가 완전히 뽑혀버린 노숙자들이 수천 명 거리를 헤 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라보다는 민족이 보다 더 근원적인 삶의 뿌리임을 알게 됩니다. 나라가 없어져도 민족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민족 적 긍지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민족을 내 세우는 것도 결국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뿌리를 지탱해 주는 토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일찍이 농경생활을 통하여 정착되었기 때문에 대단히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민족으로 발전해 온 것입니다. 이런 민족적 응집력(凝集力)이 강하여서 수많은 외적의 침략에도 흩어지지 않았고, 지금 비록 이념을 따라 두 나라로 분단되어 있지만, 결국 언 젠가 통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민족이 두 나라로 있는 것보다는 한 민족이 한 나라로 있는 것이 보다 우리의 삶을 든든히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린 삶 그러나 우리 삶의 뿌리를 지탱해 주는 민족이나 나라나 지역이나 가문이나 가정이 모두 불안정하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이 영원하지 못하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늘 불안하게 만드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앙을 갖게 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 든지 신앙을 갖고 살아갑니다.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나름대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어떤 종교적인 형식 을 갖추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우리 속에 불안 과 두려움이 있는 한 신앙심은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원시적인 형태가 샤머니즘 즉 무속신앙(巫俗信仰)입니다. 이 무속신앙은 현대인들에게도 아주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무속신앙 이외에 고등종교들 즉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 등은 보다 체계적으로 삶의 근원을 밝혀주므로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 을 벗게 하여 신앙으로 그 삶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골로새서 2장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의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 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신성이 몸이 되어서 충 만하게 머물러 있고, …그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골 2:9-10)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가운데서 없애 버리셨습니다"(14절).
그러므로 우리를 얽어매었던 죄 악, 우리를 불안케 하였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였던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소멸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만물 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음 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 우리의 삶은 새로워지고, 크게 번성하며, 아름다운 생명의 열 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악을 정복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흔들어 놓을 세력은 어디에 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며 영 원한 삶의 토양이 되신 것입니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누구 도 그 나무를 뽑아버릴 사람이 없으며, 누구도 그 과수원을 해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꾸시는 삶 오늘 읽어 드린 이사야서 27장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포 도원으로 비유하시면서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포도원을 가꾸시겠다는 것입니다. "나 주는 포도나무를 돌보는 포도원지기다. 나는 때를 맞추어 포도 나무에 물을 주며, 아무도 포도나무를 해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돌본다" 3절 이 비유대로 한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돌보 시는 포도원에 심겨진 포도나무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삶을 돌보시면서 때를 따라 물을 주시며, 아무도 그 나무를 해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친 히 돌보시며 지키실 때 우리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그 포도원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번성할 것 이며 탐스러운 포도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될 것입니다. 이 구약성경 의 약속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 손들에게 약속되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바로 그리스도이 며, 우리가 그 땅에 들어가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설 것이며, 풍성한 열매로 그 땅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야곱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이스라엘이 싹을 내고 꽃을 피울 것이니, 그 열매가 땅 위에 가득 찰 것이다." 6절 이렇게 볼 때 북녘 땅의 먹을 것이 없어 가정이 해체된 사람들이 나 남쪽의 경제난으로 실직하여 노숙자로 떠돌게 된 사람들이나 아직 노숙하거나 굶지는 않아도 말할 수 없이 불안한 삶을 사는 사람들, 모두가 그 원인이 꼭 경제난 때문만도 아니요, 정치적 불안 때문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근원적으로 우리가 죄악으로 하나님께 로부터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뿌리가 뽑힌 것이며, 일시 적으로 가정이나 민족 속에 뿌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그 가정과 그 나라, 그 민족이 흔들리면서 또다시 뿌리가 뽑힌 삶으로 시들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현재는 잘 살고 잘 먹고 편안하게 지내는 사람들 까지도 언제 그 삶의 뿌리가 흔들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흔들려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땅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우리의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만이 우리가 확실하 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됩니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정을 이루고, 그 위에 나라를 세우 며, 민족이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될 때 가정도 나라도 민족도 든든하게 서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 가정, 그 나라, 그 민족 을 돌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민족이 분열되고 나라들이 흔들 리며 가정들이 해체되는 것은 그 삶의 뿌리를 물질문명에 두었기 때 문입니다.
기술문명이 우리의 삶을 든든하게 붙잡아 주리라 기대하였 지만, 그것은 더욱 세차게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거기 정착하며 거기에서 삶의 뿌리를 내려 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의 뿌리가 어디에 내려져 있습니까 재물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권력 그 모두가 한 때는 여러분 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좋은 토양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런 것들은 그지없이 불안한 것들이어서 우리의 삶을 뒤흔들리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도 흔들리고 나라도 흔들리며 민족도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나갔을 때 그의 삶 은 잘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돈도 떨어지고 예상치 않았던 흉년이 들면서 그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완전 노숙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삶의 뿌리를 내렸던 재물이 사라지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뿌리가 뽑혀 몰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그는 그의 삶 의 뿌리가 바로 아버지에게 있음을 기억하였고, 마침내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안기므로 잃었던 삶을 다시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20세기 물질문명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릴 진정한 토양이 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신 을 차리고 탕자처럼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리고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 을 공급받으므로 그 생명력으로 오늘의 고난을 헤치며, 오늘의 역경 을 뚫고 나가야 할 때입니다. 헛된 욕망을 따라 쓸데없이 바쁘게 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삶의 뿌리를 그리스도 안에 깊이 내리기 위하여 기도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할 때 입니다. 오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절제된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 바르게 세워야 할 텐데, 여전히 욕망을 따라 헤픈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그리스도 안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면 서 보다 아름답게 가지를 뻗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노력해 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변함없는 신앙의 정진을 통해 굳건하게 서며 하나님의 나라 를 바로 세워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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