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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 (호1:2-10,눅11:1-13,골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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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최고인 '5천만 원 현상금'이 붙은 사나이, 탈옥 수 신창원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 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신창원의 도주 행각은, 수많은 이들 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난 고위직 경찰이 여럿 되며, 그리고 많은 경찰들이 수색 작전에 동원되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창원을 잡지 못 한 까닭에, 경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신창원도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번에 발견된 일기 내용을 보니, 탈옥하기 위하여 5년을 준비 했고, 감옥의 쇠창살 두 개를 절단하는 데 2개월이 걸렸으며, 창살을 빠져 나올 때에는 팬티 하나만 걸치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후, 탈주를 계속하면서 총에 맞아 죽을 뻔했고, 왼팔이 부러졌으며 오른발은 금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생활 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는, 그 고통스러운 탈주 생활을 계속하고 있을까요 그는 말하기를, "나는 절대 자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비 록 죽을지언정,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의 그 생활이, 감옥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에 어머니를 잃고, 중학교를 중퇴한 뒤, 15살 때 소년원에 들어가기 시작, 7년 동안 네 번 감옥에 들 어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일기를 볼 때, 그는 세상을 향하여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돈이 있으면 특사 받고, 없으면 몰매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창원'하면 생각나는 것이, 조세형 씨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할 말이 있다면, 신창원이보다는 조세형 씨가 더 많을 것입니다. 조세형 씨는, 교도관들에 의하여 몰매 맞아 죽은 '박영두 사건'에 대해서, 입다물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 다는 이유로, 독방 생활을 15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조세형 씨는, 그 동안 자신이 겪은 형벌을, 하나님 께서 주신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그런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지은 죄보다 더 많이 형벌 받게 된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신창 원과 같은 입장이십니까 아니면, 조세형 씨처럼 생각하십니 까 물론,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분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겪은 고난뿐만 아니라 현재의 모든 형편을, 조세형 씨처럼,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이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세상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 의식은 망각한 채, 세상이 자기를 잘못 대우하고 있다면서, 세상에 대한 불평과 원망만으로 가 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예수를 믿는 우리가 그런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 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악한 자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 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켜 사는 이가 거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세상의 헛된 사상 에 속아서, 신앙의 기쁨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골2:8) 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믿는 이가 가져야 세상에 대한 '책임 의식'이나,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누리고 살아야 할 '삶의 기쁨'도 없이,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골2:7에서 주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일에 감사하며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 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1.예수 믿는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정태기 교수의 이론을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관상(觀相)이 바뀌고, 관상이 바뀌면 사주 팔자(四柱八字)가 달라지고, 사주팔자가 달라지면 운명이 바 뀌게 마련이다.' 맞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관상이 바뀌 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게 될 경우, 그 근본이 바뀌 기 때문입니다. 악한 욕망에 사로잡혔던 마음이, 예수로 말미 암아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육신은 비록,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그대로이지만, 마음만은 새롭게 태어나서, 새 세상 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얼굴 모습이 달라 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다시 세상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새롭게 된 마음을, 다시금 세상에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관상과 사주팔자가 옛날로 다시 돌아가 고 말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1주의 자녀 된 명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생활이 세상에 치우쳐 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서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에서는 이를 가리켜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호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주의 자녀라는 명분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아니다(호1:9)라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의 대화가 없습니다. 즉, 기도 생활 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서로 다투면 말을 하지 않고 지내 듯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2사단의 노예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신창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그 충격이 컸을 것입니다. 아버지라도 아들을 잘 돌봤더라면, 그가 악의 소굴에 쉽사리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창원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가 나쁜 길로 갔더라도 바른 길로 인도할 사람이 있었 더라면, 오늘날 '5천만 원의 현상금이 붙은 사나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 경우, 겉잡을 수 없이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 교회에 나와서 주님께 기도하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던가요
그런데,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나를 이해 해주고 사랑해 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사탄이 찾아와서 친구가 되자고 유혹하면 영락없이 죄악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사단의 지배를 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조세형 씨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교도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교도관이 자기 앞에 와서 무릎 꿇고 기도할 때에, 엄청나게 그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날마다 변함없이 찾아와서 기도를 하자, 그만 단단히 굳 어 있던 그 마음이 녹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신창원에게는, 그런 신실한 기독교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기쁨을 잃어버린 채, 형 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누군가가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그를 붙들어줄 경우, 다시 옛 믿음을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죄와 죽음의 길로 빠져 드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이 너무 깊숙이 죄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자포자기를 하게 되는 것 입니다.
3그러다가, 결국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기쁨도 없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죽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키엘 케골이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는 말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늘의 기쁨이 뭔지 모르고 살아 가는 것은, 그 마음을 세상에 빼앗긴 까닭이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벙어리의 부모는, 자식이 말은 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하지만 벙어리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부모를 의지할 때, 그 소원을 이뤄줄 수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 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구해야 할 가장 좋은 것이 무 엇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악한 사람이라도 그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 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고 하시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열심히 기도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예수 믿는 기쁨 도 누릴 수 있거니와, 하늘에 대한 소망도 굳건히 할 수 있으 며, 믿음 안에서 건전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대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란 기도하는 것임 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2.생기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생기(生氣)란, 글자 그대로 '살아있는 기운'입니다. 국어사 전은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라 풀이하고 있습니다. 유학에서는, 기(氣)가 이(理)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성경 말씀과 딱 들어맞습니다. 생기(生氣)는 '진리를 알고 실천'함으로써 생기 (生起)는 것입니다. 곧, 말씀을 잘 깨닫고 생활로 옮기면, 삶 의 용기와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생기가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 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 생활에서도, 예수를 의지하고 예수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골2:6)고 했습니다. 마음으로만 예수를 믿고 실천이 없는 삶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 고서도, 생각으로만 그 음식을 배불리 먹으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기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1실제로, 주님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가 없이는 주 님을 만날 수도 없거니와, 삶의 용기, 곧 생기를 얻을 수 없 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 기(生氣)는 말씀(眞理)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중심 내용은, 하나님 영광과 하늘나라 실현,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입니다.
그런데, 먹고사는 것보 다,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요, 이웃과 의 좋은 관계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2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욕심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그 결과, 사탄의 지배를 받아 살다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를 알면 죄와 욕 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진정한 기쁨과 자유가 뭔지 알고, 또한 누릴 수 있습니다. '기쁨과 자유'는 믿는 우리가 누려야 할 특권이기도 합니다. 이 진리의 깊이를 알게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성경 말씀이 진실임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는 말씀이나 말씀이 없는 기도는, 모두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경 읽는 생활과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 고,
3그럴 때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건전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답게 성숙한 믿음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삶의 파이프라인이 항상 주님께 연결되어 있어야, 우리는 주님의 능력과 생기를 공급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삶의 원동력, 곧 생기(生氣)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명심하셔서, 말씀과 기도의 생활로 주님을 더욱 가 까이하시고, 그래서,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간절 히 축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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