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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두려워 하지 말라 (행5:27-32,계1:4-8,요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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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봄, 저희 집에 밤손님이 다녀가신 후, 목사관의 각 문짝에는 기존의 자물쇠 말고도 또 하나의 고리가 각각 달려 있습니다. 무서워서 잠을 자지 못하겠노라고, 아내가 성화를 해서 다시 장치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마다 자물쇠가 두 개씩 있는 꼴입니다. 유별나게 두려움과 겁이 많은 아내입니다. 누가 큰소리만 쳐도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그러니 그런 아내를 둔 나로서는 참 걱정이 많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말입니다. 야 단쳐서 될 일도 아닙니다. 천성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내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무섭다고 합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의지가 되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 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주장과 틀리 다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우연찮게 손해를 끼쳤다고 해서, 또는 자신의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법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무서운 것이 지요. 우리 집 사람만이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거 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두렵거나 무서운 사람이 있습니다. 만 나서 반갑거나 기쁘고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무서움을 느끼는 대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 든든하고 평안한 것이 아니라, 어쩐지 겁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것, 생각 할수록 슬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는 일이 즐겁고 기쁜 일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괴로운 일이 된다면, 이 처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통과 슬픔을 더 많이 안겨 주고 있습 니까 혹시나 무서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 지요
요한복음 20장 19절부터 31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무서움과 기쁨의 대상이 뚜렷이 구별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무서움의 대상은 유대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언젠가는 자기들을 붙잡아다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리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유대인 지도자들이 무서워서 자기들이 모여 있는 집의 문을 닫아 걸고 있었다 고, 20장 1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기뻐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타나 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평안을 세 번씩이나 빌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타나기만 하면, 남의 흉이나 보고 정부 비판, 교회 비 판, 세상 비판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자기 꼴은 더욱 형편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일을 가지고 정신없이 욕을 해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평안을 주기는커녕, 늘 근심과 불안을 안겨 주고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식이나 평안을 빌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제자들인 우리가 할 일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 을 깎아 내리고 넘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이제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도 서로 상반된 사람들의 태도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목숨을 내놓고 주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증거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각기 사명을 띠고 하는 일입니다.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들도 투철한 사명감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요, 그 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사명감에서 하는 짓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아니 면 그 일에 이모저모로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이 어리석은 질문이 되기를, 저는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혹시나 저 하늘 나라에 가 서 복음 증거의 방해 자로 심판 받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오실 때에, 모 든 눈이 그를 볼 것이로되, 그분을 찌른 자도 볼 것 이라고, 1장 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서 살 지 않고, 마귀를 섬기는 불쌍한 인생을 살고 있어서, 지금도 예수님의 허리와 가슴에 창을 찌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지, 냉정하게 자신의 신 앙 형편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끼치고, 가는 곳 마다 환영을 받는 덕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부활하 신 주님을 온전히 증거하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자는 20 장 31절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하는 목적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고, 예수를 믿음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살 소망과 기쁨 을 안겨 주어야 합니다. 인생을 살 가치를 느끼게 하고, 어떻게 사는 것 이 진정 아름다운 삶인지를 가르쳐 주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얻게 해 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반가운 존재, 곧 무서움과 두려움 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하고 싶으며, 만나고 싶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지 못하는, 그래서 고통과 무서 움의 대상이 되고, 사라져 주었으면 좋은 존재가 된다면, 그처럼 서글프 고 불쌍한 인생은 없으리라 봅니다. 자기 딴엔 무척 의롭게 산다고 주 장할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존재가 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도 반기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더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슬픔과 괴 로움을 더 안겨 주고 있습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많 은 사람들에게 반갑고도 유익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1.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아니라, 마귀의 종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누구든지 마귀의 종이 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을 보고 "당신은 지금 마귀의 종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다면, 칼을 들고서 죽이겠다고 덤빌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마귀하고는 상대조차 하기 싫어하고, 마귀가 하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종종 마귀의 일을 돕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 지요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치 못할 것입니다. 만일 이를 부인하려 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고 자기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귀의 일이란,
ㄱ.주의 일을 하는 자를 대적하고 비난합니다. 스 가랴 3장 1절에 사단은 천사의 오른쪽에 서서 여호수아에 대하여 온 갖 비난을 하고 있었다 고 했습니다.
ㄴ.하나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마16:23) 예수 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 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고 했습니다.
ㄷ.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습니다. (막4:15)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마음속에 뿌려지는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날쌔게 달려드는 사탄 에게 그것을 빼앗겨 버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ㄹ.속이고 위장합니다. 사도행전 5장 3절과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ㅁ.주의 일을 방해합니다. (살전2:18)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기를 원했고 특히 나 바울은 두 번이나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 탄이 우리의 길을 막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마귀의 일을 하지 않았 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 까 원치 않는 마귀의 일이지만,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의 일 을 행하거나 돕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그토록 싫어하는 마귀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요 그것은
1하나님보다 세상을 너무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관심보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할는지 대해서 더 관심이 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 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는 그 판단에 너무 이 끌려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다 보면 영원한 죽음에 빠져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당장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그 결과,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고 마귀가 원하는 일을 행하 게 되어, 주님의 가슴을 계속 찌르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3장 5절 말씀에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된 삶을 포기하는 경 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도 죄에 빠지기 쉬운 우리 인생입니다. 하물며 세상 사람을 두려워한 나머지 세상 중심으로 살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 기회를 잃어버린 채, 영원히 어둠의 세력 에게 종속하게 됩니다. 말할 것 없이 영원한 멸망의 길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는 우리 인생의 스승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보여주신 영원하신 선생님이십니다. 예수는 세상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의 인생 최대 유일의 과제는 하나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은 모든 욕설과 수치를 다 당하셨습니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때까지 떨어지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위협이나 창피, 인격적인 모 독과 손해를 당할지라도, 하나님께만 순종하고 마귀에게는 결단코 불복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까지 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2.사람들이 죽인 그 예수를 크신 권능으로 살리시고 높이 끌어올리셨 습니다. 그래서 만 왕의 왕을 삼으셨습니다. 어떤 왕이십니까 그 어떤 권세나 재물, 또는 명예나 지위를 가지고 서 빼앗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의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방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꼭꼭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평안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이 주시는 평안은총칼로써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옥 중에 있으면서도 기쁘게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미쳤기 때문이 아니고 바로 이 기쁨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이러한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생명을 주시 사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꽃은 그 향기와 아름다움이 생명입니다. 인간은 그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가지고 주의 뜻을 이루는 일이 그 생명입니다. 물론 주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그 목적대로 사는 일 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순서가 먼저 하나님이고 그 다음이 인간입니다. 하기사,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인간을 정말 참되게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고, 사도행전 5장 29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뜻을 따르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너와 나를 동시에 죄에 빠 뜨리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귀의 종이 되는 절차를 밟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될 때에는 당장은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너와 나를 함께 복된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2예수를 잘 알고 열심히 따르게 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참된 행복이 보장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34편 9절에,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아,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섬겨라. 두려 운 마음으로 그를 섬기면 아쉬울 것 없으리라. 시편35편 27절에서도 여호와는 높으시다, 그를 섬기는 자에게 평화가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아쉬울 것 없고 평화가 넘치는 삶, 이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삶을 살려면, 물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살아야 하며
3.부활하신 주를 믿음으로써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유대 지 도자들이 무서워서 떨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기뻐서 어 찌할 줄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모시게 되면,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탄을 섬기게 되면, 의심과 두려움 속에서 거짓되고 허망한 삶을 살게 됩니다. 시편 73편 27절에 당신을 떠난 자 망하리니, 당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 멸하시리이다 라고 했고, 시편 97편 7절에서도 잡신들을 섬기는 자들아, 허수아비를 자랑하는 자들아 창피를 당하리 라 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으나 사나 주님만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 야, 누구나 원하는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을 섬길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부활한 예수를 증거할 수가 있을까요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 어떻게 살았나를 살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미 그 답이 언급되었습니다만, 정리 하는 의미로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그들은 우선, 갖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두 번 다시 가르치지 말라"고 했건만,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서, 복음 증거 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복음 증거 하기를 멈추고 있을까요 사도들 의 모습을 볼 때에는 어떤 이유로도 그 핑계를 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사도들은 그 이전에, 부활하신 예수를 확실히 믿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0절에서 사도들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이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고, 분명히 예수의 부활 사 실을 믿고 증언했습니다. 사실 부활만 믿는다면, 사람을 두려워할 리도 없거니와, 하나님께 대 한 예배와 믿음생활이 성실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 사실을 잘 모르거나 믿지 않는 까닭에, 믿음 생활을 소홀히 하고, 예배를 경건 하게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 목양실 보일러실에서, 개 한 마리가 환기통에 머 리를 박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힘으로 빠져나오겠지 하고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 보니, 그 개는 그대로 머리를 환기통에 틀어박고 있었 습니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만 할딱거리고 있었습니다. "개 살려요!" 소리도 치지 못하고 말입니다. 처음에 저는 그냥 내버려둘까 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찜찜해서 다 시 목양실에서 내려와, 그 개의 몸통을 잡고 빼내어 주었습니다. 개는 정신이 없는지, 몇 번 머리를 흔들어 대더니, 부끄러운 듯 슬슬 내빼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개처럼 머리를 세상에 처박고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 깊이 들어가자니 직분 가진 교인이라는 명함이 가로막고, 거기서 빠져 나오자니 빠져나올 힘이 없습니다. 이제는 영락 없이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그 불쌍한 모습이 바로 우리들 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 영광스러 운 직분과 지위를 다시 온전히 회복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놀라운 은총과 행복을 다시 누려야 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자는 데, 그 무슨 이유가 있고 변 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무쪼록, 이미 내 속에 들어와 평안을 선포하고 계신 주님을 진정 으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성령님 안에서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 부활의 증인이 되어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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