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행5:33-42)
본문
사도행전 5장은 다음의 몇가지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1-11절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저주받아 죽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고 2)12-I6절은 사도들이 표적을 행한 기사이며 3)17-32절은 사도 들이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4)33-42절은 당시 율법교사였던 가말리엘이 사도들의 행적을 변호한 기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40-42절은 가말리엘의 설명을 듣고난 유대인들이 사 도들을 채찍질하여 석방했다는 기사입니다. l-11절에 소개되는 아 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성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자신들의 약속을 번복하고 부동산 을 처분한 돈의 일부를 감춘 탓으로 부부가 저주를 받아 죽은 사건 은 정직과 순결 그리고 약속이행이 교회와 신앙의 증요조건임을 밝 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이 통용되거나 허위가 관행화될 수 없다는 교훈 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12-16절은 교회는 신령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임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 교회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교회는 잡음, 추태, 속된 사건이 일어나선 안됩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 오고 병자가 고침받고 영혼이 성장하는 신령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 이라야 합니다.
17-42절은 복음과 세상과의 층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은 계속 유대인들과 층돌을 빚고 있습니다. 악령과 접촉하는 경우 초기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 를수록 마귀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시끄러워지고 불행해지고 비참해 집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만나고 성령님을 층만히 받으면 처음엔 시끄럽고 귀 찮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들어가면 문화적 층 돌이 일어나고 영적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평안과 안정과 기쁨이 찾아오게 됩니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면 그 나라의 전통문화와 충돌이 일어납니다만,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갔기 때문에 블행해진 나라도 없었고 타락하거나 퇴폐화한 문화는 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경우를 보면 초대교회는 유대주의자들과의 층돌과 박해 속에서 그 신앙이 성장했고 교회가 발전했습니다. 사람은 환경 과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열대지방 에 사는 사람들은 게으르고 느럽니다. 한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민첩하고 빠릅니다.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계 절변화가 뚜렷한 지방 사람들은 간사하고 변덕스럽습니다. 계절을 따라 적응하며 생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우도 순에 돛 달고 성공하고 평탄하면 긴장상태가 풀리기 때문에 영적 나사못 이 풀리게 텁니다.
그러나 외부의 물리적 박해가 가해지거나 시련이 닥치면 긴장하 고 대비하기 때문에 대응하고 이겨낼 힘을 갖추게 됩니다. 지난 주간 홍콩에서 선교회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사회주의 그 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도차이나. 월남,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의 선교정책문제, 1997년 증국에 반환될 홍콩의 선교문제와 향후전략. 12억을 넘는 증국대륙의 선교문제와 그 전략, 1999년 중 국에 반환되는 마카오의 선교전략과 그 대책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 되고 연구되었습니다. 마카오를 직접 방문하여 현지 선교사들과 교회 그리고 신학교를 방문해 만났고 홍콩 기독교 협의회 총무로부터 1997년 이후의 흥콩 정세와 선교현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차이나 선교 책임자인 매튜(Matthew) 박사를 만나 선교전략과 협력관계를 의논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현지에 인쇄소를 만들어 성경을 인쇄 반포하고 사 회복지시설을 만들어 선교기지로 황용하는 애덕기금회를 방문해 책 임자로부터 그들의 전략과 협력방안을 듣고 협의했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월남에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를 흥콩으로 초청해 월남선교 전반에 관한 현황을 보고받고 그 전략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월남의 경우만 해도 아직 공공연한 선교행위 가 블가능합니다. 최근 유학생비자로 들어간 선교사가 성경공부모 임을 만들어 성경을 공부하는 현장을 비밀경찰 10여명이 급습하여 추방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아직도 선교의 비상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선교사는 "제가 자유천지 홍콩에 있는지 월남에 있는지 분간이 잘 가지않아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얘기해도 되는가 하고 깜짝 놀라다가 '아, 여긴 흥콩이지'라고 생각 하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곤 합니다. 저는 월남에 있는 동안 하루도 마음을 놓은 날이 없었습니다. 혹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공안당국에서 선교사의 신분을 밝척내고 찾아오지는 않을까라는 긴 장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같은 선교 사들이지만 국가적 여건 때문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선교하는 선교 사들이 횔씬 더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경우를 살펴 보겠습니다.
1. 초대교회가 받은 은혜 초대교회는 다양한 은혜와 복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된 성령님층만을 체험한 교회였고 계속해서 신령한 사건 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가 급진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시작된 교회가 오백 명-수천 명-수만 명으로 불어나는가 하면 자원하는 사람들의 헌금으로 교회재정이 족했습니다. 그 돈으로 가난한 과부와 형제들을 구제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날마다 모여 예배를 드렸고, 성경을 공부했고, 성도 의 교제를 나으로 끈끈한 정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지금 도 교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 이며 바람직한 교회를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로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초대교회를 닮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 면 아예 교회 이름을 초대교회라고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성령님이 층만한 교회, 신령한 사건과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 경제 적으로 넉넉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교회, 성도의 사랑과 교제가 넘치는 교회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 초대교회의 잘뭇 초대교회는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확산시키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에 모여 예루살렘 교회만을 가꾸고, 지키고. 키우는데 골몰했습니다. 그리고 땅끝까지 가라는 명령을 접어둔 채 예 루살렘에 모여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 주신 이유와 교회 재정을 넉넉 하게 해 주신 이유와 신령한 사건이 일어나게 해 주신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 주신 이유는 능력받고 전도하라고 주셨습니다. 신령한 사건 과 기적은 교회가 성장하라고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한 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이 그 사건 때문에 전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재정이 부했다는 것은 그 돈으로 선교 구제 봉사에 쓰라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초대교회가 세계선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골 고루 구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축복과 은혜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3. 하나님의 섭리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사울의 박해 가 시작되는가 하면 야고보의 순교(12:1-9) 와 베드로의 투옥 등 구체적이고 집요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사도들이 매를 맞았다(5:40) 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그 성격을 구분합니다. 모이는 이유는 힘얻고 훈련받아 이어지기 위해서입니다. 흩어지는 이유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예배의식이 각각 다릅니다만 어떤 교회는 마지막 축도를 파송과 강복의 예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파송의 말씀을 준 후에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여러분을 각각 세상으로 보냄니다. 보냄받은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증인과 제자로서 살아가십시요. 복음의 증인이 되십시요. 여러분의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라는 등의 파송사와 함께 축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찬송과 기도와 헌금과 말씀으로 엮은 예배를 드컵니다. 그리고 새 힘을 얻어 결단하고 가정과 사회로 나갑니다 예배를 마쳤으면 가야 합니다. 가서 전도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베드로에겐 일평생 가장 황흘했던 체험이 있었습니다. 장 소는 변화산이었습니다. 광채 찬갇한 모습으로 변화되신 주님과 그 좌우에는 엘리야와 모세가 서 있었습니다. 꿈에도 상상 못한 장관 이었습니다. 그는 '주님 이 곳에 장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고 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응답은 '너회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의 정신이며 선교공식입니다. 우리는 가야합니다. 흩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흩어질 생각을 뒤로 미룬 채 예루살렘에 모 여 쓸데없는 일과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정력을 소모하자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흩으시기 시 작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시간을 안쓰면 싱도록 흩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돈을 바로 쓰지 않으면 쓸 수 밖에 없도록 흩으 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주와 능력과 건강과 생명을 쓰지 않 으면 쓰도록 흩으실 것입니다 교회도 일하지 않고 쓰지 않으면 마치 고인 물처럼 썩거나 냄새 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습니다
4. 교회의 응답 40절을 보면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 하는 것을 금했다 고 했고 41절을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 나니라'고 했고, 42절을 보면 '서회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 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있는 것은 모이는 것이고 집에 있는 것은 흩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예수님 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쉬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오면 신자, 나가면 불신자, 교회에선 칭찬받는 신자, 밖에 나 가면 지탄받는 신자일 수는 없습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 가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신앙과 생활은 교회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회 사에 있든지, 길거리에 있든지, 썩행 중에 있든지, 혼자 있든지, 여 럿이 있든지 한결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린 받은 바 은혜가 큽니다. 그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성전에 있 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집이 있는 사회로 나갑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갑시다. 가서 전합시다. 가서 보여 줍시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1)1-11절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저주받아 죽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고 2)12-I6절은 사도들이 표적을 행한 기사이며 3)17-32절은 사도 들이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4)33-42절은 당시 율법교사였던 가말리엘이 사도들의 행적을 변호한 기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40-42절은 가말리엘의 설명을 듣고난 유대인들이 사 도들을 채찍질하여 석방했다는 기사입니다. l-11절에 소개되는 아 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성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자신들의 약속을 번복하고 부동산 을 처분한 돈의 일부를 감춘 탓으로 부부가 저주를 받아 죽은 사건 은 정직과 순결 그리고 약속이행이 교회와 신앙의 증요조건임을 밝 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이 통용되거나 허위가 관행화될 수 없다는 교훈 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12-16절은 교회는 신령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임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 교회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교회는 잡음, 추태, 속된 사건이 일어나선 안됩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 오고 병자가 고침받고 영혼이 성장하는 신령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 이라야 합니다.
17-42절은 복음과 세상과의 층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은 계속 유대인들과 층돌을 빚고 있습니다. 악령과 접촉하는 경우 초기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 를수록 마귀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시끄러워지고 불행해지고 비참해 집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만나고 성령님을 층만히 받으면 처음엔 시끄럽고 귀 찮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들어가면 문화적 층 돌이 일어나고 영적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평안과 안정과 기쁨이 찾아오게 됩니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면 그 나라의 전통문화와 충돌이 일어납니다만,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갔기 때문에 블행해진 나라도 없었고 타락하거나 퇴폐화한 문화는 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경우를 보면 초대교회는 유대주의자들과의 층돌과 박해 속에서 그 신앙이 성장했고 교회가 발전했습니다. 사람은 환경 과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열대지방 에 사는 사람들은 게으르고 느럽니다. 한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민첩하고 빠릅니다.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계 절변화가 뚜렷한 지방 사람들은 간사하고 변덕스럽습니다. 계절을 따라 적응하며 생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우도 순에 돛 달고 성공하고 평탄하면 긴장상태가 풀리기 때문에 영적 나사못 이 풀리게 텁니다.
그러나 외부의 물리적 박해가 가해지거나 시련이 닥치면 긴장하 고 대비하기 때문에 대응하고 이겨낼 힘을 갖추게 됩니다. 지난 주간 홍콩에서 선교회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사회주의 그 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도차이나. 월남,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의 선교정책문제, 1997년 증국에 반환될 홍콩의 선교문제와 향후전략. 12억을 넘는 증국대륙의 선교문제와 그 전략, 1999년 중 국에 반환되는 마카오의 선교전략과 그 대책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 되고 연구되었습니다. 마카오를 직접 방문하여 현지 선교사들과 교회 그리고 신학교를 방문해 만났고 홍콩 기독교 협의회 총무로부터 1997년 이후의 흥콩 정세와 선교현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차이나 선교 책임자인 매튜(Matthew) 박사를 만나 선교전략과 협력관계를 의논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현지에 인쇄소를 만들어 성경을 인쇄 반포하고 사 회복지시설을 만들어 선교기지로 황용하는 애덕기금회를 방문해 책 임자로부터 그들의 전략과 협력방안을 듣고 협의했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월남에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를 흥콩으로 초청해 월남선교 전반에 관한 현황을 보고받고 그 전략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월남의 경우만 해도 아직 공공연한 선교행위 가 블가능합니다. 최근 유학생비자로 들어간 선교사가 성경공부모 임을 만들어 성경을 공부하는 현장을 비밀경찰 10여명이 급습하여 추방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아직도 선교의 비상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선교사는 "제가 자유천지 홍콩에 있는지 월남에 있는지 분간이 잘 가지않아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얘기해도 되는가 하고 깜짝 놀라다가 '아, 여긴 흥콩이지'라고 생각 하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곤 합니다. 저는 월남에 있는 동안 하루도 마음을 놓은 날이 없었습니다. 혹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공안당국에서 선교사의 신분을 밝척내고 찾아오지는 않을까라는 긴 장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같은 선교 사들이지만 국가적 여건 때문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선교하는 선교 사들이 횔씬 더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경우를 살펴 보겠습니다.
1. 초대교회가 받은 은혜 초대교회는 다양한 은혜와 복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된 성령님층만을 체험한 교회였고 계속해서 신령한 사건 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가 급진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시작된 교회가 오백 명-수천 명-수만 명으로 불어나는가 하면 자원하는 사람들의 헌금으로 교회재정이 족했습니다. 그 돈으로 가난한 과부와 형제들을 구제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날마다 모여 예배를 드렸고, 성경을 공부했고, 성도 의 교제를 나으로 끈끈한 정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지금 도 교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 이며 바람직한 교회를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로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초대교회를 닮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 면 아예 교회 이름을 초대교회라고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성령님이 층만한 교회, 신령한 사건과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 경제 적으로 넉넉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교회, 성도의 사랑과 교제가 넘치는 교회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 초대교회의 잘뭇 초대교회는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확산시키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에 모여 예루살렘 교회만을 가꾸고, 지키고. 키우는데 골몰했습니다. 그리고 땅끝까지 가라는 명령을 접어둔 채 예 루살렘에 모여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 주신 이유와 교회 재정을 넉넉 하게 해 주신 이유와 신령한 사건이 일어나게 해 주신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 주신 이유는 능력받고 전도하라고 주셨습니다. 신령한 사건 과 기적은 교회가 성장하라고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한 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이 그 사건 때문에 전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재정이 부했다는 것은 그 돈으로 선교 구제 봉사에 쓰라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초대교회가 세계선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골 고루 구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축복과 은혜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3. 하나님의 섭리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사울의 박해 가 시작되는가 하면 야고보의 순교(12:1-9) 와 베드로의 투옥 등 구체적이고 집요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사도들이 매를 맞았다(5:40) 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그 성격을 구분합니다. 모이는 이유는 힘얻고 훈련받아 이어지기 위해서입니다. 흩어지는 이유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예배의식이 각각 다릅니다만 어떤 교회는 마지막 축도를 파송과 강복의 예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파송의 말씀을 준 후에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여러분을 각각 세상으로 보냄니다. 보냄받은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증인과 제자로서 살아가십시요. 복음의 증인이 되십시요. 여러분의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라는 등의 파송사와 함께 축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찬송과 기도와 헌금과 말씀으로 엮은 예배를 드컵니다. 그리고 새 힘을 얻어 결단하고 가정과 사회로 나갑니다 예배를 마쳤으면 가야 합니다. 가서 전도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베드로에겐 일평생 가장 황흘했던 체험이 있었습니다. 장 소는 변화산이었습니다. 광채 찬갇한 모습으로 변화되신 주님과 그 좌우에는 엘리야와 모세가 서 있었습니다. 꿈에도 상상 못한 장관 이었습니다. 그는 '주님 이 곳에 장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고 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응답은 '너회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의 정신이며 선교공식입니다. 우리는 가야합니다. 흩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흩어질 생각을 뒤로 미룬 채 예루살렘에 모 여 쓸데없는 일과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정력을 소모하자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흩으시기 시 작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시간을 안쓰면 싱도록 흩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돈을 바로 쓰지 않으면 쓸 수 밖에 없도록 흩으 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주와 능력과 건강과 생명을 쓰지 않 으면 쓰도록 흩으실 것입니다 교회도 일하지 않고 쓰지 않으면 마치 고인 물처럼 썩거나 냄새 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습니다
4. 교회의 응답 40절을 보면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 하는 것을 금했다 고 했고 41절을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 나니라'고 했고, 42절을 보면 '서회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 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있는 것은 모이는 것이고 집에 있는 것은 흩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예수님 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쉬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오면 신자, 나가면 불신자, 교회에선 칭찬받는 신자, 밖에 나 가면 지탄받는 신자일 수는 없습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 가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신앙과 생활은 교회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회 사에 있든지, 길거리에 있든지, 썩행 중에 있든지, 혼자 있든지, 여 럿이 있든지 한결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린 받은 바 은혜가 큽니다. 그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성전에 있 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집이 있는 사회로 나갑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갑시다. 가서 전합시다. 가서 보여 줍시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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