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활기가 넘치는 신앙생활(2) (행6:1-7)

본문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활기가 넘치는 신앙생활(2)’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심령들에게 큰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잘아는 말씀 고후5: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기록된 말씀처럼 새로워 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언제나,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변화되고 새로워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령한 은혜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우리 믿음의 조상들도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은혜 받으면 새롭게 변화되고 새로워 졌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의 사람들로 새롭게 변화되고 새로와 졌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새로와 지고 변화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하고, 복음을 널리 전했습니다. 본문 행6:1절에 보면, 제자들의 수가 많아졌다고 했는데 많은 제자들의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 변화된 것은 품성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들은 불우이웃 돕기를 전적으로 했고, 기회만 있으면 모여서 찬양을 드리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복음전하는 것이 목적이지 불우이웃을 돕는 것이 제일인가” 하고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사도들이 좋은 방안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일곱명의 집사를 세워서 이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자고 했습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고 일곱명의 집사를 새워 안수함으로 이때부터 교회는 더욱 활기가 넘치고 복음은 널리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초대교회처럼 더욱 활기가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제자들이 많아 질 때 입니다. 행6:5절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령님 충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것을 뜻합니다. 즉, 이것은 창조 당시 하나님의 영을 닮은 신령한 영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이 있다면, 사람에게는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창2:7). 이 거룩한 하나님의 생기의 영을 가리켜 신약에 와서는 성령님이라 했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노아의 대홍수 때 모든 인류가 물로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창6:3절에 보면, “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육체는 ‘고깃덩어리’를 의미하고 있는데, 홍수이전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없이 타락한 육체의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는 살아있는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요, 하나님의 영이 떠나 버리면 다 고깃덩어리만 남아 있는 육체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생명이 죽어 있는 사람을 보시면서 동물적 감각만 남아 있을 뿐 사실은 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약2:26). 동물도 사물을 분별을 하고, 주인을 알고 따릅니다. 자기 새끼를 알고 사랑합니다. 혈통이 좋은 개는 아무하고 교미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동물들도 분별할줄 알고 느끼는 감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 없는 사람을 보실 때 짐승처럼 이미 죽은 것과 똑같이 보셨습니다. 동물적 감각이 있을 뿐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생명을 가장 중요하고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본문의 일곱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일곱집사를 세울 때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충만한 살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교회의 직분을 맡았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맡은 분량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수고가 많으므로 존경하고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또한 교역자들은 오직 주의 일에만 전념하므로 말씀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협력하며 이를 귀히 여기고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직분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도록 혼란을 가져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영의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죽여야 될 것은 빨리 죽이고, 살려야 할 것은 빨리 살리는 선택의 결단이 빨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는 피동적으로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지 않으려고 하다가 죽는 죽음입니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죽어 버리는 죽음이 있는데 이는 더 귀한 생명을 위하여 덜 귀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육체의 생명보다 더 귀한 영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육체의 생명을 과감히 버렸던 것입니다. 무리들이 돌로 스데반을 칠 때에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면서 무릎을 꿇고 다시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외쳤습니다(행7:59-60). 죽음에 이르면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담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덜귀한 육체의 생명은 죽을지라도 영의 생명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 거할 것을 믿고 바랐기 때문입니다. 금번에 안수를 받을 집사님들은 덜 중요한 것은 빨리 버리고 귀한 것을 살려야 합니다. 신령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거룩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속된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믿음의 권속들은 더욱 활기가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둘째는,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많을 때 입니다. 행6: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라고 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을 뽑았던 것입니다. 여기서의 지혜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습니다(잠9:10). 지혜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지혜와 세상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약3:14-18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신령한 지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신뢰하고, 말씀을 읽고, 그것을 믿으며, 지키고, 따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지혜를 말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분별력을 주시고 필요한 다른 은사까지도 주십니다. 제가 농촌에서 목회를 할 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당시 온 교회가 성령님이 충만했습니다. 낮예배를 마치고 점심 후에 학생들이 찾아 왔습니다. 학생들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저희들은 방언은 싫어요 지혜와 지식의 은사만 받을래요”하고 말했습니다. 뛰고 야단 법석하는 것은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하나님께 맡기고 계속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집회에 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하다가 지난 날의 잘못되고 덜 중요한 것을 버리고 회계하는 순간, 여러명이 기도의 불이 붙고 저녁 식사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야단이 난 것입니다. 가 보니 그들에게 방언이 임하였습니다. 안 받겠다고 하던 학생도 방언을 받고, 더불어 지혜와 지식의 은사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중에 한 지혜로운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치고 어느 교회의 전도사로 충성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출19장에 보면, 모세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내산으로 올라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신령한 응답을 받게 되었는데, 지혜의 충만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내면서 필요한 모든 생활 규범을 가르켜주시고 생활의 규범, 정치, 상벌의 규범, 성막을 짓는 것 까지 다 가르쳐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이끌 수가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일곱집사는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우리 성광의 권속들도 주께서 주시는 하늘의 지혜가 충만하여 주신 사명 잘 감당하고 활기가 넘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는, 칭찬듣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입니다. 행6:3절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라고 했습니다. 칭찬듣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활기가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에게는 별명이 몇가지 있었는데, 1크리스챤2성도3새술에 취한 사람이라는 말로 불리웠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크리스챤’이라는 말은 전쟁시에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즉, 크리스챤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를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사회에는 상류와 하류계층의 모든 사람들이 성도덕이 문란하고 방탕했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은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들을 가리켜 ‘거룩한 무리’ 즉, ‘성도’라고 불렀던 것 입니다. 뿐만아니라, ‘새 술에 취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을 보면 뭔가 이끌려 가는 것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정신이 나갔거나 잘못된 사람이 아니고, 명철하고 분별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엔가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술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제자’라는 말은 랍비의 생활이나 성품, 그리고 인격 등 모든 것을 배우고 살아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인격과 신앙, 그의 모든 것을 배우고 따르며 절대 신뢰하는 사람을 가리켜 제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라고 하면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에 어딜가나 흠없이 칭찬을 받았고 모든 사람이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 기록된 스데반은 하나님은 두려워 할지언정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도 두렵지 아니하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면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이인슈타인은 히틀러가 나찌당을 이끌고 독일을 독재할 당시에 유대교인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굴복할지라도 지식인들은 나찌 정권에 굴복하지 않을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저술가 예술가 언론인들이 다 매수되어서 결국은 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 것을 보게 되어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독재에 항거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교회의 무리들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교회를 더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크고 놀라와서 후하게 주시고, 최고의 것을 주시며, 최상의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 보다 그 이상으로 주십니다(눅6:38).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히4: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사모하고 간구하여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케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듣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더 좋은 것을 위해서 덜 귀한 것, 세상적인 것은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 성광의 권속들은 더욱 활기가 넘치는 신앙생활이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9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