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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이 있더라 (행8:4-8)

본문

휘발유가 자동차의 동력이 되는 것처럼 인간이 이세상에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바로 마음의 기쁨입니다. 마음의 기쁨을 잃고 슬픔과 우 울증으로 가득찬 사람은 활동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과 만 나기를 꺼려하고 집안에만 칩거하며 자살하기도 합니다. 이러므로 기쁨은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됩니다. 기쁨이 크면 클수록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도 더 많이 생겨 더욱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기쁨은 우리를 치료하고 양약입니다. 성경 잠성서 17장22절에도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 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나아가서 기쁨은 우리 크리스천의 상표입니다. 아무리 전도를 해 도 전도하는 사람의 생활속에 기쁨이 없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전도자의 얼굴과 생활에 기쁨이 넘칠때 그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바울 선생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 노니 기뻐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서 우리가 위대한 삶의 동력이 되는 기쁨의 원 천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에 보면 사마리아 성에 있는 사람 들에게 기쁨이 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작은 기쁨이 아니라 큰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기쁨을 얻게 된 비결을 알아 봄으로 우리도 그와 같은 기쁨을 얻고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1.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에 기쁨이 왔다. 성경은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매 이를 듣고 일심으로 빌립이 말하는 것을 좇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큰 기쁨 이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을 들을 때 마음에 기쁨이 왔을 까 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 이상이요, 철학이상입니다. 예수님 께서는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타락함으 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마귀의 종이 되어 속박의 세계에 빠 져야 했던 인류를 자유케 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일정 36년의 속박에서 해당되던 날 우리는 얼마나 기뻤습니까! 하물 며 아담의 타락으로 마귀에게 속박당하고 짓밟히고 잃어버렸던 참 생 명을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주셨으니 어떻게 큰 기쁨이 되지 않겠습니 까 그 때문에 빌립이 사마리에 가서 그리스도를 전하매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다가온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그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큰 기쁨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큰 기쁨이 다가오게 될까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 영혼이 죽음에서 건져냄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슴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그 영이 죽었습니다. (창 2:17).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 가 끊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 죽은 영이 살 아나고 영생을 얻게 되며 성령님이 거하시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 복됩니다 (롬5:17-19). 아담 한 사람이 죄를지어 모든 사람들이 다 죄 인되었으나 예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예수님 안에서 찾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 한 우리들, 죄값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어 있 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었이 종살이에서 해방을 얻고 죄 사 함을 의롭다함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또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 우리의 생활 가운데 가 시와 엉겅퀴처럼 솟아난 저주와 수고에서 해방을 얻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땅을 저주한 이 이야 기(창 3:17-19) 보다 더 비극적인 이야기는 이 세상에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마치 폭풍우처럼 휘몰아쳐 왔고 인간의 모든 희망은 다 사라지고 인간의 삶은 절망의 벽에 부딪쳐야 했습니다. 이때로부터 시작해서 인류는 도적질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며 전쟁과 전쟁소문 속의 요한한 세상 가운데 피로 젖은 역사의 페이지를 이루고 만 것입니다. 이와같은 저주와 절망 가운데서 누가 우리를 건져낼 수 있습니까 사람은 죄책과 정죄의 절망,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 죽음과 절대 무의 절망에서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절망에서 누가 우리를 건져줄 수 있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소식만이 이간을 저주에서 속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이 세상에 저주를 가져왔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저주 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 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 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3)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며, 고통당하 고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삶에서 새로운 믿음이 생긱고 용기, 희망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믿음 으로 나날이 더 좋아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짊어지게 된 무거운 짐을 다 젖혀버리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아가서 아담 안에서 인간에게 가장 처절한 절망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어떠한 영웅이나 열사라도 이와같은 인간의 운명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 영생을 얻어 흙으로 돌아가는 절망에서 벗어나게 되니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 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 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 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2-4
5). 흙으로 돌아가 영원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셔들이면 영생을 얻고 우리 속에 예수님의 부활의 씨앗이 심어짐으 로써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 한 것이 강한 것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소망을 가졌으니 어찌 우리가 기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 아담 안에서 쫓겨난다는 것처럼 슬프고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쫓겨난 방랑의 삶에서 다시 집에 돌아와 영접을 받으면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창세기 3장 23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 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번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답고 영광 스러운 곳에서 내어쫓김을 받고난 후 이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저주받은 땅에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살아가게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운명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 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 14:23). 여러분, 쫓겨난 우리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에게 직접 오셔서 우리에게 거처를 함께 해주시겠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쫓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한 한가족이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지금 이 시간 에도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여러분과 내 안에 계신 것입니다.
2. 복음을 통해 귀신이 쫓겨가니 큰 기쁨이 오다 오늘날 귀신 이야기를 하면 현대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무슨 허무맹 랑한 소리를 하느냐" 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있는 귀신을 부인하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소위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 은 '귀신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귀신은 분명히 존재하면서 우리를 도 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실상을 가르쳐 주실 때 그것을 받아들어서 인정해야만 합니다. 성경에는 여러가지 귀 신이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경을 통해서 더러운 귀신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귀신은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도덕적,윤리적,생활적,기타 여러 면에서 더러운 것을 가져다줍니다. 음란하고 방탕하고 추악한 것을 가지고 와서 이 세상을 부패케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더러운 귀신이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악한 귀신이 있습니다. 이 귀신은 악을 가져오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시기, 분노, 질투,분쟁을 일으켜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으며, 가정을 파괴하고 형제간에 미움을 일으키게 하며, 부모 자녀 사이을 이간시켜 놓고, 이웃과 싸우게하며, 나라와 나라,민족과 민족이 대결하여 일어나게 하는 것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거짓말하는 귀신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거짓이 횡행합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귀신을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가지고 이 세상에 횡행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점치는 귀신이 있습니다. 이 귀신은 인간의 불안, 초초,공포를 일시적으로 무마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병들게 하는 귀신이 있습니다. 이 귀신은 수많은 사람을 병으로 고통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가지 귀신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누 가 이 귀신의 세력에서 위를 해방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귀신은 영적 은 존재이기 때문에 지식이나 과학, 정치제도로서써 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은 영으로 대결해야지 물질과 육으로는 대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차원 세계의 힘을 가지 고는 4차원 세계인 영의 세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나사렛 예수의 복음이 전파될 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넘쳐나오는 성령님의 능력은 악령을 능히 이김으 로 악령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4:4). 이러므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은 악령보다 크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원수 귀신을 단호하게 대 결하고 내어 쫓을 때 귀신은 성령님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쫓겨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진실,믿음,소망,사랑,화평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8절에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 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 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은 여러분을 통해서 마귀의 일을 멸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바로 예수님의 손이요, 발이요,귀요, 입이 되어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쫓겨가고 영적, 혼적, 육체적, 생활환경적인 오염에 서 이 세상을 정결케 하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놓여남을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 속에 기쁨이 넘쳐납니다. 우리를 비로소 마음 속에 기쁨이 넘쳐납니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킴으로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간 마귀로부터 우리가 해방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내어쫓을 때만이 우리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과 사업 전체에 진실한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3.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고침받음으로 큰 기쁨이 오다 본문에서 귀신들의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간 다음 많은 절름발이와 앉은뱅이가 나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불구자된 인생이 고 침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불구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불구가 되었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구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면 마음의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나사렛 에 수의 이름으로 불구에서 놓여남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육체의 불구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마음의 불구입니다. 마음의 희망을 잃어버린채 늘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고 침울해 하며 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육체의 병은 사람들 눈에 보이니까 동정을 받을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눈에 보 이지 않아 동정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당사자는 한없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늘날 산업화 시대, 도시화 시대에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마음에 병 이 걸려 고통다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안 보이니까 가족들의 동정도 받지 못하는 이러한 사람을 누가 고쳐줄 수 있겠습니까 나사렛 예수님만이 이러한 사람을 놓아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불구 가 되어 방황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오셔서 마음속에 불안 과 공포 대신에 확신을, 미움 대신에 사랑을, 좌절감 대신에 삶의 용 기를, 죄책감 대신에 용서와 의로움을 채워주심으로 마음의 불구를 고 쳐주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은총이 예수님께 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복음을 듣고 안 기뻐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생활의 불구가 있습니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애를 써 도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게으르고 성실치 못해 못사는 거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지만 있는 힘이 다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해도 먹고 살지 못하고 생활의 불구가 된 채 고통당하고 있다면 예수님께 나아가 그 모든 고통스러운 짐을 내어놓으십시오. 그 러면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손길로 생활의 불구를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모든 속박에서 자유케 하시고 성령님을 우리 속에 보내주심으로 우리의 삶에 위대한 승리를 갖 다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얻은 이 기쁨만이 영원하고도 참된 기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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