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충만과 방언 (행2:1-4)
본문
유대인의 3대 명절중에 하나인 유월절이 지난후 50일째가 되면은 첫 추수 열매를 하나님께 예물로 받치는 오순절이 다가옵니다.예수님 께서 바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장사된지 삼일만에 부 활하셨으며 40일동안 제자들에게 친히 사심을 나타내 보이시고 제자 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후 1백20여 명의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한 열흘동 안 마음을 다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고 있을때 오순절날이 이르렀습니다.그들이 모인 자리에 갑자기 성령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임하셨고 그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온방에 가득한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오실때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그들에게 임한 것은 인간 역사와 생명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계기가 시작 되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캄캄한 세상에 삶의 참된 빛을 비추어 줄 것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그후 그들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 성령님충만과 방언의 관계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게 되면은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속에 와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성령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실때 성령님충만을 받은 사람을 마치 세상사람이 볼때는 술취한 사람같이 보였었습니다.사도행전 2장 12절 로13절에 보면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 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을 조금 마신 사람은 술이 몸속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완전히 술 이 몸을 주장하지는 못합니다.그러나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하게 되면 은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해서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이처럼 성령님충 만을 술취함에 비유한 것은 성령님충만을 받으면 마치 술이 완전히 사람을 지배하는 것처럼 성령님이 우리를 완전히 채우시고 우리를 붙드시 고 우리를 다스리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중생의 영으로 와서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 다는 확실한 증거를 마음속에 갖다 주는 것입니다.성령님이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경을 깨닫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성령님의 빛이 비치지 아 니하면 우리 사랑의 힘으로써는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 고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 때 일반적으로 방언이 나오게 되는 것 입니다.성령님충만했다는 표적으로 우리 입에 방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충만을 받고난 다음계속해서 방언으로 말하게 되면 이것은 은 사의 방언으로서 방언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속에 하나님께서 많은 은총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동안에 삼각산에 가서 산꼭대기 에 올라가서 밤새도록 소나무를 부여 안고 몸부림쳐 기도하다가 성령님 세례를 받았습니다.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입술이 덜리고 혀가 꼬부라지면서 나는 한국말로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내입에서는 끊임없 이 방언이 넘쳐 나왔습니다. 그 방언은 내 스스로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성령님이 내 혀를 사로 잡아서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저는 그때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 방언의 은사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기도원에 가서 굴속에 기도할 때도 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2. 방언의 유익 방언하는 유익이 무엇인가 를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방언은 알 아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그것을 자꾸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중 하나도 필요치 않은 것이 없습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방언이 필요하고 유익이 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4장 2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 을 말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방언은 사람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방언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께 하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비 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성령님께서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께 비 밀로 우리의 모든 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비밀은 친한 관 계 가운데 이루어지는 대화입니다.원수하고는 비밀을 말하지 않습니다.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가까운 사람끼리 동지가 될 사람끼리 비 밀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비밀로 기도하게 되면은 하나님과 대단히 가깝게 되고 하나님 속에 내가,내가 하나님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이처럼 친밀한 관계가 있어야 비밀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때문에 방언 기도를 하면 우리가 곧장 하나님의 임재하 심 속에 들어가게 되며 지극히 친밀하고 비밀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4장 4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 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방언을 말하면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했는데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은 자신의 신앙의 집을 벽돌 한장,한장,한장 자꾸 높이 쌓아 올라가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방언을 말하면 자기의 신앙에 집 이 점점 크게 지어져 가고 자라는 것입니다.이렇게 때문에 방언기도 를 많이 하면 신앙의 뜨거운 열정이 마음속에 생깁니다.방언기도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임재하심을 마음속에 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신앙의 집을 점점 자라게 하는 것이요,예언을 해서 모든 사람이 알아 듣게 하는 것은 교회가 점 점 그 예언을 듣고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이렇기 때문에 방언 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신앙을 세웁니다.바울도 모든 사람보다 방언 을 많이 말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고린도전서 14장 5절은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 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 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방언 을 통역될때 귀한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 방언을 말할때 그 내역을 알아서 통역하기도 하고 그 방언 퉁역이 또 예언처럼 되어서 많은 유익을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앞에 통역하기를 구하라고 성경 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찬미하는 능력이 됩니다.고린도전서14장 15절은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 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방언으로 찬미하고 방언으 로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방언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면 오랜 시간 주님과 하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방언은 내 마음으로 기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습니다.그냥 입술과 혀를 주님 께 맡겨 놓으면 성령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쫓아 방언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장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방언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기도해 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성경은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경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 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러나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자매님의 간증을 들었는데 그가 어느 부흥회 시간에 설 교를 듣고 있는데 강사의 설교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속에서 불 안하고 고통이 다가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그것은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몰라 엎드려 눈믈을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간절히 방언으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나중에는 평안함이 느껴지더랍니다.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있지 않다가 남편은 버스 운전사인데 그 남편이 얼굴이 백자장 같이 되어서 돌아와서는 "오늘 버스를 운전하다가 경사로에서 엔진이 꺼졌어,그래서 손님들 다 내리게 하고 돌을 받쳐 놓고 엔진 뚜껑을 열어 보고는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돌이 튕겨저 나가 내리막길로 차 가 곤두박질 쳤어
그런데 차가 벼랑앞에서 바퀴가 걸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어.오늘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다"라고 숨이 차서 말 했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 것 같아"라고 그렇 게 말하더랍니다. 그 자매님은 부흥회 나가서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방언으로 그냥 한 없이 기도를 했는 데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시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눈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미리 우리를 통해서 탄식하면서 기도를 해 주십니니다. 이처럼 방언하는 유익은 대단히 많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때가 있든지 없든지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방언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은 안식과 상쾌함을 주십니다. 이사야 28장 11절로 12 절은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 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마음이 곤비하 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삽니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분개하면 견 디지 못합니다. 쉽게 살인하고 상처를 줍니다. 왜 오늘날 사람들이 이렇게 조급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으며 곤비합니까 그것은 마음속이 병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에 상쾌함이 없고 마음에 여유가 없 고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걸려서 이 마음속 에 병이 꽉 들어섰습니다. 이 마음의 병을 누가 고칩니까 성경은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마음 에 안식과 상쾌함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방언은 마치 청소기와 같아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 속 깊은 잠재의식속에 들어가서 그 곳에 있는 여러가지 상처입은 마음들을 쓸어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다락이 있습니다. 그 다락 에는 우리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다락을 심리 학에서는 잠재의식이라고 합니다. 현재의식, 즉 깨닫고 생각하고 말 하는 것이 10의 1이라면 잠재의식은 10분의 9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 하는 슬픔과 고통, 괴로움, 염려, 근심, 슬픔 이런 것을 우리는 다 다락에 밀어 넣습니다. 이런것이 심리적인 병이 되어서 나옵니다. 그래서 조급하고 슬프고 괴롭고 행복하지 않고 화내고 하는 일들이 생 겨납니다. 이 다락을 어떻게 청소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다락속에 들어가서 이것을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음의 치료함을 받습니다. 마음속이 정결하게 되 고 마음이 상쾌해지고 마음에 안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 로 예수를 믿고 성령님 충만하여 다른 방언으로 늘 기도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에 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항상 치료함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3. 어떻게 하면 성령님충만을 받을 수 있나 성령님께서 이미 내 속에 내주하고 계신 것을 알아야 성령님충만을 받 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2장 16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성령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마음 속의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성령님과 교통을 통해 어떤 죄라도 다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 행전 2장 38절에는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성령님이 우리 속 에 계시는데 이 성령님의 역사를 막는 여러가지 마음속의 죄악을 모두 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기억나는 모든 죄는 모두 다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받을때 성령님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인본주의적인 자아를 깨뜨려서 하나님앞에 우리 자신을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내 주장으로 할려고 할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깨뜨리고 나를 죽이고 나를 하나님앞에 항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성령님을 사모함으로 간구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령님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갈급히 찾는 것처럼 성령님을 간절히 사 모하고 부르짖어서 갈급하게 찾는 사람에게 성령님이 충만히 임합니다. 무디 목사같은 사람은 너무너무 성령님이 충만하고 싶어서 일어서나 앉 으나 성령님충만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복잡한 뉴욕거리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길거리에서 성령님이 임해 기도가 터져 나오자 자기 친구집을 찾아가 그 친구집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앞에 기도를 하는데 성령님강권 하심이 너무 강해 "하나님이여! 손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내가 못살겠 습니다"라고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님은 언제나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급한 심정만 가지면 언제나 성령님께서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구하면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 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게 주시는 것 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성령님으로 거듭나서 성령님이 내주하시지 만은 그러나 간절히 구하여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사건은 성령님의 손에 들려야만 예 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거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교회를 세우시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 지 마침내 오늘 한국에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오늘 여 의도에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세우게 되신 것입니다. 이제 다시 강림 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도록 성령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충만히 채우시고 우리를 깨우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위로하게 해주시고 우리를 꾸짖어 주시고 우리를 성결케 해주시고 우리를 자라 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보좌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은 오순절날 이후로 오늘 교회에 와서 계시고 우리안에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순절날에 우리는 또 다시 제자들이 받은 성령님충만과 같 이 이미 우리 속에 와 계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충만히, 충만히 채우셔 서 우리가 다 성령님의 사람들이 되어서 성령님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성령의 능력으로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1. 성령님충만과 방언의 관계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게 되면은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속에 와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성령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실때 성령님충만을 받은 사람을 마치 세상사람이 볼때는 술취한 사람같이 보였었습니다.사도행전 2장 12절 로13절에 보면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 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을 조금 마신 사람은 술이 몸속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완전히 술 이 몸을 주장하지는 못합니다.그러나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하게 되면 은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해서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이처럼 성령님충 만을 술취함에 비유한 것은 성령님충만을 받으면 마치 술이 완전히 사람을 지배하는 것처럼 성령님이 우리를 완전히 채우시고 우리를 붙드시 고 우리를 다스리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중생의 영으로 와서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 다는 확실한 증거를 마음속에 갖다 주는 것입니다.성령님이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경을 깨닫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성령님의 빛이 비치지 아 니하면 우리 사랑의 힘으로써는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 고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 때 일반적으로 방언이 나오게 되는 것 입니다.성령님충만했다는 표적으로 우리 입에 방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충만을 받고난 다음계속해서 방언으로 말하게 되면 이것은 은 사의 방언으로서 방언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속에 하나님께서 많은 은총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동안에 삼각산에 가서 산꼭대기 에 올라가서 밤새도록 소나무를 부여 안고 몸부림쳐 기도하다가 성령님 세례를 받았습니다.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입술이 덜리고 혀가 꼬부라지면서 나는 한국말로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내입에서는 끊임없 이 방언이 넘쳐 나왔습니다. 그 방언은 내 스스로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성령님이 내 혀를 사로 잡아서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저는 그때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 방언의 은사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기도원에 가서 굴속에 기도할 때도 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2. 방언의 유익 방언하는 유익이 무엇인가 를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방언은 알 아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그것을 자꾸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중 하나도 필요치 않은 것이 없습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방언이 필요하고 유익이 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4장 2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 을 말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방언은 사람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방언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께 하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비 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성령님께서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께 비 밀로 우리의 모든 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비밀은 친한 관 계 가운데 이루어지는 대화입니다.원수하고는 비밀을 말하지 않습니다.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가까운 사람끼리 동지가 될 사람끼리 비 밀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비밀로 기도하게 되면은 하나님과 대단히 가깝게 되고 하나님 속에 내가,내가 하나님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이처럼 친밀한 관계가 있어야 비밀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때문에 방언 기도를 하면 우리가 곧장 하나님의 임재하 심 속에 들어가게 되며 지극히 친밀하고 비밀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4장 4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 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방언을 말하면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했는데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은 자신의 신앙의 집을 벽돌 한장,한장,한장 자꾸 높이 쌓아 올라가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방언을 말하면 자기의 신앙에 집 이 점점 크게 지어져 가고 자라는 것입니다.이렇게 때문에 방언기도 를 많이 하면 신앙의 뜨거운 열정이 마음속에 생깁니다.방언기도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임재하심을 마음속에 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신앙의 집을 점점 자라게 하는 것이요,예언을 해서 모든 사람이 알아 듣게 하는 것은 교회가 점 점 그 예언을 듣고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이렇기 때문에 방언 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신앙을 세웁니다.바울도 모든 사람보다 방언 을 많이 말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고린도전서 14장 5절은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 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 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방언 을 통역될때 귀한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 방언을 말할때 그 내역을 알아서 통역하기도 하고 그 방언 퉁역이 또 예언처럼 되어서 많은 유익을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앞에 통역하기를 구하라고 성경 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찬미하는 능력이 됩니다.고린도전서14장 15절은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 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방언으로 찬미하고 방언으 로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방언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면 오랜 시간 주님과 하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방언은 내 마음으로 기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습니다.그냥 입술과 혀를 주님 께 맡겨 놓으면 성령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쫓아 방언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장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방언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기도해 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성경은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경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 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러나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자매님의 간증을 들었는데 그가 어느 부흥회 시간에 설 교를 듣고 있는데 강사의 설교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속에서 불 안하고 고통이 다가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그것은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몰라 엎드려 눈믈을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간절히 방언으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나중에는 평안함이 느껴지더랍니다.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있지 않다가 남편은 버스 운전사인데 그 남편이 얼굴이 백자장 같이 되어서 돌아와서는 "오늘 버스를 운전하다가 경사로에서 엔진이 꺼졌어,그래서 손님들 다 내리게 하고 돌을 받쳐 놓고 엔진 뚜껑을 열어 보고는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돌이 튕겨저 나가 내리막길로 차 가 곤두박질 쳤어
그런데 차가 벼랑앞에서 바퀴가 걸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어.오늘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다"라고 숨이 차서 말 했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 것 같아"라고 그렇 게 말하더랍니다. 그 자매님은 부흥회 나가서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방언으로 그냥 한 없이 기도를 했는 데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시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눈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미리 우리를 통해서 탄식하면서 기도를 해 주십니니다. 이처럼 방언하는 유익은 대단히 많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때가 있든지 없든지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방언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은 안식과 상쾌함을 주십니다. 이사야 28장 11절로 12 절은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 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마음이 곤비하 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삽니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분개하면 견 디지 못합니다. 쉽게 살인하고 상처를 줍니다. 왜 오늘날 사람들이 이렇게 조급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으며 곤비합니까 그것은 마음속이 병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에 상쾌함이 없고 마음에 여유가 없 고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걸려서 이 마음속 에 병이 꽉 들어섰습니다. 이 마음의 병을 누가 고칩니까 성경은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마음 에 안식과 상쾌함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방언은 마치 청소기와 같아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 속 깊은 잠재의식속에 들어가서 그 곳에 있는 여러가지 상처입은 마음들을 쓸어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다락이 있습니다. 그 다락 에는 우리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다락을 심리 학에서는 잠재의식이라고 합니다. 현재의식, 즉 깨닫고 생각하고 말 하는 것이 10의 1이라면 잠재의식은 10분의 9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 하는 슬픔과 고통, 괴로움, 염려, 근심, 슬픔 이런 것을 우리는 다 다락에 밀어 넣습니다. 이런것이 심리적인 병이 되어서 나옵니다. 그래서 조급하고 슬프고 괴롭고 행복하지 않고 화내고 하는 일들이 생 겨납니다. 이 다락을 어떻게 청소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다락속에 들어가서 이것을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음의 치료함을 받습니다. 마음속이 정결하게 되 고 마음이 상쾌해지고 마음에 안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 로 예수를 믿고 성령님 충만하여 다른 방언으로 늘 기도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에 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항상 치료함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3. 어떻게 하면 성령님충만을 받을 수 있나 성령님께서 이미 내 속에 내주하고 계신 것을 알아야 성령님충만을 받 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2장 16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성령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마음 속의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성령님과 교통을 통해 어떤 죄라도 다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 행전 2장 38절에는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성령님이 우리 속 에 계시는데 이 성령님의 역사를 막는 여러가지 마음속의 죄악을 모두 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기억나는 모든 죄는 모두 다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받을때 성령님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인본주의적인 자아를 깨뜨려서 하나님앞에 우리 자신을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내 주장으로 할려고 할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깨뜨리고 나를 죽이고 나를 하나님앞에 항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성령님을 사모함으로 간구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령님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갈급히 찾는 것처럼 성령님을 간절히 사 모하고 부르짖어서 갈급하게 찾는 사람에게 성령님이 충만히 임합니다. 무디 목사같은 사람은 너무너무 성령님이 충만하고 싶어서 일어서나 앉 으나 성령님충만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복잡한 뉴욕거리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길거리에서 성령님이 임해 기도가 터져 나오자 자기 친구집을 찾아가 그 친구집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앞에 기도를 하는데 성령님강권 하심이 너무 강해 "하나님이여! 손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내가 못살겠 습니다"라고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님은 언제나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급한 심정만 가지면 언제나 성령님께서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구하면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 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게 주시는 것 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성령님으로 거듭나서 성령님이 내주하시지 만은 그러나 간절히 구하여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사건은 성령님의 손에 들려야만 예 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거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교회를 세우시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 지 마침내 오늘 한국에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오늘 여 의도에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세우게 되신 것입니다. 이제 다시 강림 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도록 성령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충만히 채우시고 우리를 깨우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위로하게 해주시고 우리를 꾸짖어 주시고 우리를 성결케 해주시고 우리를 자라 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보좌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은 오순절날 이후로 오늘 교회에 와서 계시고 우리안에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순절날에 우리는 또 다시 제자들이 받은 성령님충만과 같 이 이미 우리 속에 와 계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충만히, 충만히 채우셔 서 우리가 다 성령님의 사람들이 되어서 성령님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성령의 능력으로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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