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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강림과 한국 교회(2) (행2:1-21)

본문

모든 사람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졌고. 오순절 성령님강림 사건의 특징은 하나님의 신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감동하던 구약과 달리 오순절에는 보편적으로 그곳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성령님이 오셨다는 점이다. 성령님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는 대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다. 2-3절의 결과가 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모든 제자들은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였을 때 새로운 언어를 말하게 되었다. 큰 바람과 불같은 권능으로 임한 성령님의 최초 사역이 제자들에게 새로운 언어로 말하게 한 사실은 무엇보다 성령님강림의 주된 목적이 복음선교에 있음을 보여주는데 제자들은 성령님의 임재와 함께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면서 거리로 뛰쳐나갔을 가능성이 짙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을 띠고 오시기 때문에(14:16) 성령님으로 충만해진 사도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선포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성령님의 충만함이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든 오순절에 주어진 것은 교회로 그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다.
' 5절 ' 세계 각 나라들로부터 온 경건한 유대인들'예루살렘 카토이쿤테스 유다이오이 안드레스 유라베이스'. 이들은 절기를 지키러 온 외국에 사는 유대인들과 개종한 사람들인지 아니면 과거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으나 이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인지 어느 한 부류로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당시 유대인의 상황이나 관습으로 보아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누가는 보통 임시 머무는 것을 나타낼 때 `손님으로 접대하다'를 뜻하는 '제니조'라는 동사를 수동형과 (행10:6, 21:16 손님이 주어일 때), 능동형을 (10:23; 28:7 주인이 주어일 때) 사용하였다. 반면에 본문에 사용된 '카토이퀸네스'는 `거주하다' `살다'를 뜻하는 '카토이큐'의 분사로서 예루살렘 주민들을 지시한다고 할 수 있다. 표준새번역은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와서 살았다"고 번역하므로 이들이 성전이 있는 곳에서 여생을 보내는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들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가 사용한 언어의 분명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절기에 경건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예배에 참석하고 절기를 지키는 관습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에 성령님강림 소동에 모여든 무리가 순전히 예루살렘 거주자 (카토이쿤테스)만 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말 개역성경은 이것을 반영하여 "그때에"라는 말을 삽입하고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라고 번역하여 그들이 절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특히 11절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 6절 ' 소리. 이 소리는 성령님이 임할 때 들린 2절의 바람소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큰 바람소리를 들은 것은 아무래도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리'는 성령님이 임한 결과로 제자들이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소리이다. `그들은 제각기 자신의 언어로' 모여든 군중들은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말하는 것을 듣고 이 놀라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 하였다. 교회의 처음 메시지가 예루살렘 유다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인 지평에서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복음의 우주성과 하나님의 역사가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보인다.
' 7절 ' 사람들이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닌가. 각 곳에서 산 경험이 있거나 또는 외국에 살고 있는 군중들이 초월적인 성령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갈릴리 출신이며 무식한 제자들이 아람어 외에 그들이 전혀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성적인 차원에서 결코 납득하지 못하여 놀라는 군중의 태도가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 8절 ' 각각 우리가 태어난 지방의 언어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본 절은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하거나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9절 이하에 열거된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아람어나 그리스어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였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면 제자들이 한가지 언어로만 말했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지방언어로 들을 수 있었다면 그 실제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만일 한 제자가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한가지 언어로 말하였는데 듣는 사람이 각기 자기 언어로 들었다고 하다면 문제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본문은 제자들이 각각 다른 말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제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 청중은 각각 자기 언어로 들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큰 혼동과 소란이 야기되었겠으며 그 와중에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행하신 큰 일을 혼란없이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겠는가 이 사건은 이적으로 이해하는 외에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누가는 처음교회가 성령님의 역사로 언어의 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선포하였고 모인 군중들도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본문에 나타난 방언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과는 차이가 있다. 고린도서에서 말하는 방언이 통역을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제자들의 방언은 모든 청중이 이해할 수 있었다.
' 9-11 ' 바데 사람, 메대 사람,… 크레테와 아라비아 사람들인 우리. 유대인이 전세계 여러 곳에서 모여왔음을 강조하는 지방목록은 대체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되고 북쪽에서 남쪽순서로-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소아시아로, 거기서부터 북 아프리카순으로-나열되었다. 열거된 모든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다 그 현장에 있었다고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오순절 절기가 되면 그곳이 어디이든 세계각처에서 유대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다양한 언어의 장벽을 일시에 극복하는 성령님의 엄청난 초월적 능력을 강조하려는 표현이다. 각 곳에서 살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처음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언어장애 없이 각각 자기들의 고유한 언어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인간의 바벨탑사건으로 분리된 언어의 통일성은 다만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 12-13 '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이러한 설명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의아해하는 군중의 태도가 계속되다가 궁여지책으로 제자들이 축제절기에 너무 많은 술을 마셔서 취하여 떠드는 것쯤으로 일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그 사건의 흥분된 분위기를 설명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청중이 경험한 불가사의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하여 겸손하고 진지하기보다는 쉽게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린 것이다.
' 14-16 ' 열 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사도들이 군중의 오해와 비난을 감지하자 베드로를 선두로 모두 함께 일어나 격식을 차려 연설하기 시작하였고 얼떨떨해하는 군중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오전 9시이니' 성령님의 은사를 따라 말하는 제자들을 술 취했다고 보는 사람들의 판단을 일상적인 생활관습을 통하여 강력하게 부정한다. 오전 9시에 해당하는 3시는 유대인들의 아침식사 이전인데 아침도 먹기 전에 벌써 술 취해서 떠드는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자기들에게 나타나고 청중이 경험한 초월적 사건은 '예언자 요엘을 통하여 말해진' 구약의 약속이 그들에게서 성취된 것으로 선언한다. 베드로는 성령님강림 사건을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공포하므로 자신들에게 일어난 사건의 신앙의 역사적 정통성과 합법성을 주장한 것이다.
' 17-21 '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을 것이다. 요엘 선지자가 사용한 `마지막 날'은 묵시적인 용어로서 하나님이 이 시대를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의인들을 위한 전적으로 새로운 메시야 세계가 도래하는 날이다. 이 마지막 날은 심판의 날인 동시에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므로 오순절 성령님강림 사건이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모든 육체에 그의 영을 부어준다는 약속의 성취인 동시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예고임을 말해주고 있다. 요엘이 사용한 `모든 육체'(파산 사르카)는 유대인을 의미하는데 반하여 베드로는 유대 그리스도교회 공동체로 해석하였으나 누가는 복음 전파의 대상이 될 모든 이방인을 전제하였을 것이다. 주의 크고 영예로운 날. 구약에서 말하는 `야웨의 날' 또는 "주의 날"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로 이해한다. 이스라엘이 자기민족을 구원하고 원수들을 멸망시키는 `주의 날'을 고대하였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바란다. `그 날이 오기 전에' 교회는 모든 민족이 주 예수를 믿어 구원받도록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누가는 인용 구절의 마지막 내용을 통하여 교회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해야 할 목적을 보여주고 있다.
Ⅵ. 오늘을 위한 메시지 성령님의 오심과 그 능력을 덧입는 일이 처음 그리스도교회의 성립과 그 선교사명 수행에 필요조건이었다면 그것은 오늘 모든 교회를 위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우선적으로 오순절에 사도 공동체에 성령님이 오실 수 있었던 상황과 성령님이 오신 목적과 그 결과가 무엇인가를 살피고 그것을 현 교회현실에 조명해 보면-우리가 주님이말씀을 듣고 순종할 의지만 있다면-본문이 오늘교회에 주는 말씀의 내용은 확실하다.
첫째, 약속된 성령님께서는 사도공동체가 함께 모인 곳에 강한 위험과 권능으로 임하셨다. 주님을 사랑하여 갈릴리로부터 온 여인들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신실한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전심으로 기도에 힘쓰고 있었다 (1:13-14). 당시 이 공동체가 얼마나 깊고 강한 응집력을 가졌는가를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성령님을 기다리고, 성령님의 권능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이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전심으로 기도하는 상태로 열흘간이나 몰입하였다. 2:1절에 `그들이 한곳에 있었다'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장소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같은 위치에 유기적으로 존재하였으며 하나같이 하나님과 주님만을 생각하고 바라보았다. 제자 서열상 누가 더 먼저인가를 다투던 사도들이 이제는 모든 신자들과 함께 일체가 되어 주의 약속이 성취되기만을 기도하였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폭풍과 불같은 위엄과 권능으로 임하실 수 있는 준비된 상태이다. 이에 비추어볼 때 전체적인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각 교단적으로 또는 노회적으로 교회들은 어떤가 우리는 모두 한 곳에 있는가 개교회 형편은 어떤가 개교회적으로는 전 교인이 한곳에 있는가 만일 한 곳에 있다면 어떤 곳에 있는가 초대교회의 모체가 되었던 그 공동체가 있었던 그 곳에 있는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은 우리 각 사람과 우리들이 속한 교회에 오시기를 원하신다. 성령님께서 능력과 권세로서 우리들의 교회에 임하실 수 있도록 모두가 한뜻으로 한곳에 모이기를 노력하자. 다음으로 성령님께서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므로 성령님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들의 의도를 조명해 보자. 본문 2:11을 보면 성령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사도들은 '하나님의 큰 일'선포하게 되었다. 누가는 우리가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할 우선적인 당위를 주님의 증인이 되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데서 발견한다 (행 1:8). 이러한 성령님활동의 주요목적은 요한복음 15:26절에도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다"라고 명시되었다. 이처럼 성령님의 주된 사역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란 사실은 사도행전의 모든 내용에서 확인된다. 물론 성령님은 신자 각 사람에게 오셔서 그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도록 역사하시고 보증하시지만 성령님의 능력과 권세로 임하는 성령님의 충만함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증거를 위한 목적에서 주어지는 것이 확실하다. 오늘 교회지도자나 신자들이 성령님의 충만을 기도할 때 그 목적이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바른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함인가 많은 지도자들이 목회의 성공을 위하여 성령님의 능력과 은사를 간구하고 또는 수없는 신자들이 신앙을 통한 축복과 성공을 소원하면서 성령님의 능력과 은사를 구하는 것은 그 자신의 지도력이나 성공의 비결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한 소원에서인가
세번째로 오순절 성령님이 오신 결과는 무엇인가 큰 바람소리를 듣고 불길이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본 사도들의 주관적 경험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사도들의 엑스타시(ecstasy) 경험은 분명히 성령님이 오신 결과이다. 그러나 그 현상은 다른 목적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성령님이 사도들에게 임하신 진정한 결과는 사도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을 말하게 한 것이며, 그들이 말한 내용을 세계 각 곳에서 모인 청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분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한 사실이다. 우리가 외국인을 만났을 때 자신의 묻는 말이 통하지 않고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장벽보다 안타깝고 답답한 것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의 처음사역은 인간의 한계인 언어의 장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행하신 역사를 일시에 함께 알도록 하신 것이다. 즉 언어의 통일을 이루어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한 공동체가 되게 하신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혼연일체가 되어 한 곳에 모인 공동체 위에 임하실 뿐만 아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통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될 수 없을 정도로 깨어진 관계들을 하나로 만드신다. 에베소 4:3에도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성령님의 역사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이러한 성령님의 활동이나 그 오심의 결과에 비추어 이해한다면 오늘 우리의 교회현실은 성령님께서 하나되게 하시는 분으로서 활동하는 현장인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 모두를 성령님께서 평화의 띠로 하나가 되도록 묶어주시기를 간구하고 그러한 성령님의 역사가 지속되도록 힘써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바는 성령님께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임하셨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이 과거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곳으로 시은소(施恩所)였을지라도 초대교회가 성립되던 당시 예루살렘은 형식은 남았으나 내용은 몹시 왜곡되고 율법의 본질에서 멀리 벗어난 유대교의 중심지이다.
바로 얼마 전에 종교 지도자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을 박해하고 체포하고 부당하게 재판하여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어 하나님을 노엽게 한 장소이다. 이 예루살렘에 성령님께서 오셨다. 그 오순절은 어떤가 절기의 모든 행사는 예수께서 극단적인 책망을 받은 타락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아예 성직을 자신의 세속적 부와 지위를 지탱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제사장들의 인도에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오순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온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와서 제사 드리고 축제에 참여한 것으로 만족하고 위안을 삼지는 않는가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도둑의 굴혈로 만드는 행동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들은 아닌가 이처럼 형식화된 유대교의 절기를 기점으로 하여 성령님께서 교회를 탄생케 하신 사실은 무엇을 느끼게 하는가 비유적인 적용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아이러니컬한 사실에서 희망을 발견해야할 만큼 우리들이 이룬 교회는 변질되었다. 한국교회가 아무리 수없이 다투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의하여 그 정체성을 상실할 위기를 맞아 교회답지 못한 현실일지라도 오늘 성령님께서 오셔야 할 곳은 이 타락한 교회 외에 어디이겠는가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이 당시 유대인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뜻을 힘써 복종치 않으면서 자기들의 영광과 만족만을 구하는 이 현실에서 한국교회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 오순절에 그 예루살렘에 강한 폭풍과 불길로 오신 성령님께만 있다. 한국교회에 임하셔서 우리의 더럽고 부패한 죄악을 깨끗이 태우시고 새롭게 권능을 덧입혀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또 각각 흩어진 지도자들을 말씀 안에서 하나되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로 살리시는 성령님의 강한 임재와 역사 외에 이렇게 멀리 빗나간 한국교회의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그 성령님께서 임하시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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