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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행14:8-18)

본문

오늘 말씀은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아 루스드라로 전파해서 복음을 전한 것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자 한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8절을 읽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을 전하는 그들이 곧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거기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걷게 합니다. 거기의 앉은뱅이는 구걸을 하러 성전에 왔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앉은뱅이는 사도바울의 설교를 들으러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바울을 만나게 되고 그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설교를 듣다가 바울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고 그리고 사도바울은 설교를 하다가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그 자리에서 걷게 되는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9절 바울이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그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전기가 서로 부딪히는 시간입니다. 베드로도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킬 때에 ‘주목하여’ 보고했습니다. 우리를 주목하여 보라.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목하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목하여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눈이 마주칠 때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뭐든지 주목해서 집중해서 보게 될 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봤다, 안 봤다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나올 때 왔다 안 왔다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볼 때도 봤다 안 봤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목하십시오. 집중하십시오. 하나님을 끊임없는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기적이 없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일이 안 일어난다 할지라도 믿고 주목하고 따라가 보십시오. 기적이 거기에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주목하여 보았는데 그 사람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그사람에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바울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자신의 앉은뱅이가 고쳐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와서 어떤 분이 와서 설교를 하기 때문에 와서 듣고 있는데 듣는 중에 설교 말씀이 자신에게 와서 부딪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말씀이 자신에게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해도 전혀 부딪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뒤에 보면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졸려서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똑같은 설교인데 어떤 사람은 좁니다. 어떤 사람은 그 설교가 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설교가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설교가 자기를 살리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 그 사람은 다른 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람은 그 말씀에 빨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설교를 들었지만 이 앉은뱅이 된 사람은 바울의 설교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그사람속에 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러분 어떻게 믿음이 생깁니까 애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운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믿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씨앗이 뿌려질 때에 내안에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믿습니다. 외치고 해도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입니까 믿음의 씨가 뿌려져야 합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한 여자라도 혼자서는 얘기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남자로부터 생명의 씨앗이 내몸에 들오올 때 임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임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혼자의 생각으로 방법으로는 절대로 믿음이 생길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말씀이 그 속에 씨로 뿌려질 때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명 속에 뿌려질 때 접촉이 될 때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안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흘려 버리면 아무리 많은 설교를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의 뿌리가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때 그 믿음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뿌려진 믿음은 어떻게 됩니까 자라게 됩니다. 능력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이요 역사입니다. 오늘 이 앉은뱅이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는 믿음이 생기고 그리고 그 믿음이 살아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12:4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맗씀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능력 있게 역사 합니다.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살아 있는 생명의 역사가 내게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육체까지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말씀을 들은 앉은뱅이의 육체는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사도바울의 설교를 들음으로 생겼습니다. 그말씀을 듣고 있음으로, 그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었겠죠.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은 메시야다. 이런 설교를 계속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설교를 들은 그 사람은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다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음으로 앉은뱅이에게 역사 했던 그 믿음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주목하여 보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발견하는 순간에 큰 소리로 “네발로 일어서라”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는 지성의 사람입니다. 학자 중의 학자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보는 순간 그는 그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소리를 지르는 순간은 이성에서 떠나 있는 시간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런 싸움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육체의 편에 설 것인가, 성령님의 편에 설 것인가, 인간의 세계에 있을 것인가, 믿음의 세계에 들어갔다 가도 스스로 부인해 버립니다. “에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어떻게 처녀가 얘기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물위를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합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의 싸움인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믿음의 싸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다.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다. 내게 어려움이 있겠는가! 내게 불가능이 있겠는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성에 타협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상식과 경험에 동의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사도바울은 여기서 외칩니다.
“네발로 일어서라” 베드로는 잡아서 일으켜 세워 주었는데 사도바울은 ‘일어나라’ 라고 외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만민중앙교회 성도님들 안에 “네 발로 일어서라”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일어나는 앉은뱅이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육체를 이기고 여러분의 삶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놀라운 믿음이 여러분 안에 불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을 봅시다. 예수님이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을 받은 후에 일으켰습니다. 바울이 성령님을 받기 전에는 지성인이었고, 학자였지만 성령님을 받은 후에는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바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아무리 믿기 어려워도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도해서 당장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계속 그렇게 믿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목하고 주님에게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쏟고 있으면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봉사가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뿐만 아니라 육체의 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일에도 까지 이런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대각성이 우리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11절-12절 바나바를 쓰스라고 말합니다. 쓰스는 제우스 신을 말합니다. 바울은 허메라고 했습니다. 허메는 제우스 신의 대변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제우스 신에게 제사할 때 쓰는 소와 화관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제가를 드리려고 합니다. 13절 바나바와 바울이 왜이러냐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당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떻게 했습니까 14절 두사도가 그 말을 듣자마자 옷을 찢었습니다. 신성모독에 대한 강렬한 혐오감을 느낄 때 옷을 찢습니다. 지금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에게 제사하려는 순간에 옷을 찢고 소리를 지릅니다. 군중 속에서 뛰어들어가서 말합니다. 15절,
첫째는 우리는 신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싶으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신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신이 아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거기에 참된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는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다. 사람을 숭배하지 말아라. 두 번째는 “우리가 이렇게 기적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희는 모든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들이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십계명 중에 제일 계명이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지어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지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상이 아니라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사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예배를 드리면 안됩니다. 사람은 예배를 받을 존재가 아니라 예배를 드려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조상을 존경을 합니다. 부모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제사를 드려서는 안됩니다. 왜 그분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최대의 관심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이미 하늘과 바다와 천지를 통해서 자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열매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완전한 계시였습니다. 그래서는 자신이 직접 오셨습니다. 이것이 특별 계시입니다.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자연 계시요,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구원을 직접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셔서 그가 직접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18절 나를 보지 말고 예수님을 보아라. 자기에게 예배를 드리고 자기에게 제사를 드리려던 사람들을 막아 버렸습니다. 여러분 궁극적인 싸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자기에게 제사를 지내고 자기를 신격화하고 우상화하려는 세력들을 어떻게 거부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나는 신이 아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자기를 신격화하려는 유혹은 옷을 찢어 가면서 막아야 합니다. 너나 나나 다같은 인간이다. 신의 위치에 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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