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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능력을 받읍시다 (행1:8)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활동은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성령님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님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30세 되는 해에 성령님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마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또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게 성령님이 강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님의 선물을 받아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며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땅끝까지 증거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성령님을 선물로 받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직 성령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성령님이 내게 임하여 내 안에서 그의 영이 나를 지배하여 행위로 나타남으로 되어지는 변화된 삶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영성은 따르고 본받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주체가 되어 행하시는 삶의 영역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받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받으면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얻어 살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으나 그의 뜻대로 살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우리도 성령님충만 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1. 성령님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합니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알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동안 예수님과 같이 지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신적인 권능으로 표적을 행하실 때 그것을 보았습니다. 신비한 하늘나라 진리를 말씀하실 때 감탄도 했습니다.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에서 한없는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신비한 말씀은 들었으나 들을 때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인격을 닮지 못했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3년동안의 제자 훈련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서도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제자들은 3년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예수님의 실상을 잘 몰랐습니다. 성령님을 받고서야 참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떠나간 후에 그 실상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제자들 가운데 임하므로 지혜와 계시를 주시고 눈을 밝히셨으므로 예수님의 실상을 모든 면에서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을 받고서야 비로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 받고서 놀라운 지성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가 무식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자신있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시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 이 말씀은 다윗이 쓴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세상적인 지식으로는 무식할지 모르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매우 뛰어났던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으면 신령한 계시의 영이 임하므로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를 알게 됩니다. 예수를 아는 것은 신학적, 철학적인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조명하시므로 마음 문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지식입니다. 사도행전 “(행2: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행2: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행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다윗이 쓴 시편 16편 10절을 인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자기 자신은 썩어 무덤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러 사람들이 존경하는 다윗이 증거한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좌 우편으로 높이시매 약속하신 성령님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고 외쳤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옛날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예수를 증거하는 신비한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2. 성령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격적 속성을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 인경에는 세가지 요소가 있으니 지성과 감정과 의지입니다. 한 인격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이해하고 깨달아 아는 지성과 희노애락의 감정과 사물을 판단하고 그것에 관한 자기의 태도를 결정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인격의 요건을 모두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를 알게 하는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감정을 갖고 계십니다. 로마서 “(롬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였습니다. 또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성경 말씀은 성령님께서도 풍부한 감정을 소유하신 것을 말씀해 줍니다 곧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심령 속에 부어 주시며 우리 때문에 근심하시며 탄식하시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심령 속에서 울게도 하시고 웃게도 하십니다. 성령님은 두 가지 면에서 크게 일하심을 볼 수 잇습니다. 하나는 권능을 주어서 표적과 능력과 권세로 일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또한편으로는 그 인격을 변화시켜 예수님의 인경르 닮게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것은 어느 정도는 훈련이나 수양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의 온전한 변화는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며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준 참 사람이었습니다. 위대한 종은 하나님의 마음과 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목회자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자기 마음을 비워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과 내 생각대로 잘 안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내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거룩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자비로운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무 거짓이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겸비한 마음이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요, 죽기까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이요, 고난을 참으시고 희생을 자초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속에 아무런 육신의 정욕이 없는 정결한 마음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성품이 있고 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성, 심성, 영성입니다. 육성은 동물적인 성질잉, 심성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인간에게만 있습니다. 영성은 예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성품이라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각 정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육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외모를 보고 느낍니다. 돈 가진 사람들, 사회적으로 잘 사는 사람들, 외모가 세련된 사람들을 보면 정이 갑니다. 육정은 겉에서오는 정입니다. 마음을 가까니 주고 받을 때 생기는 정입니다.
그런데 인정도 신뢰할 것이 못됩니다. 그릇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신비한 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성으로 맺어지는 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마음으로 살려고 하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깊은 정이 듭니다. 이제 우리도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셔서 인간의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겠습니다.
3. 성령님의 능력은 순교자가 되게 합니다. 기독교의 최고 영성은 순교의 영성입니다.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이 되는 것은 말, 행동, 죽음으로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증인(마르투스)이란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너희에게 성령님이 임하면 나의 순교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너희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순교자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가야 할 최후의 길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해야 순교자가 된다는 사실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교인들이 은혜를 받기를 원하면서도 사실은 조금만 받기를 바라는때가 있습니다. “성령님 충만을 받으십시오”할 때 “아멘”하면 걱정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하면 순교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주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고 많이 바치면 헌신하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은헤를 많이 받으면 있는 것을 다 주께 빼앗깁니다. 그받은 은혜 때문에 빚진 자가 되어 바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되고 갚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같아 은혜받은 대로 빚진자 되어 다 빼앗기게 됩니다. 이뿐 입니까 성령님을 충만히 받으면 생명을 빼앗기는 순교자가 됩니다. 초대교회의 베드로는 성령님이 충만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성령님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교의 길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순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최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교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할 행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인의 최대의 영광은 순교자가 되는 데 있습니다. 결국 기독교의 최고의 영성은 순교자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최고의 하나님의 일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본 것처럼 제자들은 자기의 죽음(순교)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최고로 고백할 수 있는 신앙 행위가 순교입니다. 자기 몸을 깨뜨려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자란 반드시 맞아 죽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살아가는 사람은 순교자의 생애를 살아 갑니다. 자기에 대하여 죽고 세상에 대하여 죽은 산 순교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서 순교자가 되는 것은 죽어서 순교자가 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위대한 선진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 순교자의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길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으로 변화될수록 순교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러한 영성의 사람이 되기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은 능력있는 성도가 되려면 먼저 할 있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는 일입니다. 성령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회개함으로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또 회개한 후에는 성령님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간구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님의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려야 합니다. 성도는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며 능력이 임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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