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갈아 입는 시간 (행9,8-18)
본문
봄은 옷 갈아 입는 시간입니다. 들 밖으로 나가보면 벌써 움이 트고, 논 밭은 파란 빛 깔이 파스 텔톤으로 깔려 있습니다. 지난주 김제 만경평야 뜰에 나가 봤더 니 벌써 보리는 움이 많이 터 있더군요. 제법 푸른 빛깔을 메마른 대지에 깔고 있었습니다. 이제 완연한 봄이 오면 들판은 연초록으 로, 산에는 진달래, 개나리, 벚꽂, 살구꽂, 복사꽂으로 대지와 산 들은 새옷으로 갈아 입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하루 일상도 새 옷을 갈아 입고, 우리의 존재도 새 옷을 갈아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고난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고난절은 기본적으로 봄을 준비 하는 기간이지요. 봄은 좋은 것입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것도 좋 은 것입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산뜻하고 아름다운 기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절은 좋은 것입니다. 고난절 하면 왠지 엄숙해야 되고 왠지 고통스러워야 하고, 자학 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못살게 굴어야 하고, 좀 침울한 분위기 를 갖고 뭐 이런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초점 을 주님에게로 맞추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이동시 키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나의 삶에 선포하고 울려 퍼지 게 하는 기간입니다. 고난절은 금욕과 절제의 기간이라고들 흔히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알맹이입니다. 무엇을 향한 금욕입니까 무엇을 향한 절제입니까 무엇을 향한 고행입니까 이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성지 순례를 갔을 때는 마침 1월 회교도들의 라마단 기간이 었습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 회교도들은 한 달 동안 일체의 음식 을 먹지 않습니다. 요르단을 여행할 때입니다. 여행 기간이라 아 침 일찍부터 버스를 타고 여행을 출발 하는 데, 우리 버스를 운전 하시는 분이 회교도 할아버지였습니다. 점심 때가 되서 버스 안에 서 도시락을 먹을 때인데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어요. 해질 므렵 오후 6시 쯤 되니 라디오에서는 기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 습니다. 하루 라마단 기간이 끝날 즈음에 드리는 기도를 생중계하는 겁니다. 전 국민이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이 방송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뒷 얘기를 들으니 해가 지면 하루 금식 기 간이 끝나기 때문에 음식을 바리 바리 싸들고 집집이서 파티를 한 다는 겁니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 한달 동안은 오히려 식료품의 소비가 늘어난다나요 물론 경건한 회교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종교의 본질을 잃어 버린 신앙인은 어디에서나 있는 법인가 봅니다. 마호멧트가 가난한자 구제와 절제를 위해 선포한 라마단 기간 이 오히려 식료품 소비를 더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본질은 잊어 버리고 단지 굶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해 뜰 때 동안 먹 지 않는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는 것 같았습니다. 절제도, 참회도, 나눔도 다 잊어 버리고 말이지요. 기쁨을 상실한 금욕이, 목적을 잊어버린 고행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하는 걸 느꼈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고난절은 주일만 빼고 딱 40일 동안 진행 됩니다. 철저한 고난도 좋고 느슨한 고난도 좋지만 요는 왜 고난 절을 보내느냐 하는 목적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난절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보다 적극적으로 고난절을 보내기 위 해서는 고난절의 본 뜻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기쁨의 고난절을 지내기 위해서는 고난절의 의미를 캐 봐야 할 것입니다. 고난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첫째, 전환의 기간입니다. U턴의 기간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기간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혈기 방장하던 열정은 하나님의 해방사역을 위한 열정으 로 바뀝니다. 전환입니다. 회개는 "메타노이나"입니다. 어둠으로 부터 U턴해서 밝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 욕, 이생의 자랑에서 U턴해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배설물 처럼 여기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U턴은 참으로 극적인 것입니다. 다메섹에서의 U턴은 기독교의 역사를 바꿔 놓은 것입니다. 마치 고려조를 종식 시키고 이 조를 창업했던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 처럼 말이지요. 바울의 U턴은 참으로 선명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극적이었던지 사람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눈을 뜨고 다시 음식을 먹고 강건하여져서 다메섹에 있는 회당에서 예수님을 전파 하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잡아 죽일려고 전술을 쓰는 줄 알았습니다.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21절)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로 바울의 악명은 이미 이방 지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사울에게 안수를 하라 고 하는 것은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충격적인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의 U턴은 충격적인 것이라야 합니다. 보기에도 선명하고, 극적이고 확고한 것이라야 합니다. 이 바울의 U턴은 너무 체험적이고 너무나 확고한 것이라 서, 이후로 일평생 바울은 한 번도 그 걸음을 머뭇거리거나 회피 하거나 철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헌신될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지금 사흘 동안 식음을 전 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강한 빛으로 만난 이후 살기 등등하던 사울은 이제 소경이 되어 부축받는 신세가 되어 식 음을 전폐하고 참회하는 기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 참회의 기간, 이 준비의 기간은 위대한 하나님의 헌신될 사람을 탄생하는 준비 의 기간이 될 것입니다. 요나도 사흘 동안 고기 뱃 속에 있으면서 다시스로 가던 길을 U 턴하게 되었습니다. 니느웨로 향하게 되었지요.
둘째,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회개와 성결의 기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는 사역에 나서기전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의 성결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이 샤야는 부정한 입술을 정하게 하는 숯불로 입술을 지졌습니다. 그 리고 소명의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오늘 바울은 전도인의 도구가 되기전 다메섹에서 회개와 성결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는 회개와 성결의 기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바울은 사상적인 홍역을 치렀을 것입니다. 소경이 된 것이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가 한 순간에 허물어 지는 걸 느낀 아픔입니다. 사흘 동안 식음을 전 폐한 이 사흘은 사울의 내면적인 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 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이 지금 기도하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저가 지금 기도하는 중이라"(11절) 심각한 조정 기간이었습니다. 지금 까지 배웠고 자랑스럽게 고수해 왔던 사상 체계에 대한 고뇌의 기 간이었습니다. 이 구조조정 기간이 바로 고난절입니다. 우리는 주 기적으로 뼈아픈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왜요 '바르게 함'입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 원칙이 우리를 구조조정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 해 지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사흘 동안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갈1장16절에 서 바울이 직접 간증한 이야기를 들으면, 바울은 삼년 동안 아라 비아 사막으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쨋든 바울은 긴 구조조정의 기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개와 성결의 기간입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 그렇습니다. 나의 그릇 즉 예수님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의 그릇은 예수님의 의도 대로 쓰일 것입니다. 주님에 의해 쓰일 것입니다. 세상의 그릇이 아닙니다. 어떤 풍조나 사상의 그릇도 아닙니다. 아내나 남편의 그릇도 아닙니다. 주님의 그릇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깨끗게 된자, 주님의 이름으로 선택된 자는 주님 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의 그릇이라'. 모두 주님의 그릇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선한 도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 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 라 "(딤후2:20-21) 자기를 깨끗게 한 자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릇은 도구입니다. 방치된 그릇을 자주 사용하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자기를 께끗게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결한 자를 도구로 삼으십니다. 성결한 자 만이 헌신될 수 있고, 헌신된 자 만이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난절은 회개와 성결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 깨끗게 되는 기간입니다.
셋째, 고난절은 헌신을 위한 준비 기간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 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투 옥하려던 자입니다. 그러나 오늘 다메석의 사건을 전기로 그는 주님께 참으로 헌신된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목숨을 뺏으 러 다니던 자가 그리스도에게 목숨을 건 자가 된 것이지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0) 사실 바울 처럼 그리스도에게 헌신되는 자가 복음 역사에 있었습 니까 예루살렘, 사마리아, 시리아 안디옥, 킬리기아, 키푸로스, 갈라디아, 소아시아, 밤빌리아, 앗달리아, 마케도니아, 그리스의 아가야, 고린도, 로마 까지 이렇게 광범한 지역을 세차례의 전도 여행으로 그는 땅 끝 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한 자였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 게 보이리라"(16절) 예수님이 직접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헌 신된 자가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아나니 아에게 예언하신 말씀은 참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이야 기입니다. 왜요 우리는 사도행전 전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당 할 엄청난 고난과 해(害)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엄청난 해를 받을 것입니다. 바울의 해 받음을 생생하게 증언한 내용이 고린도 후서 11장 23 절에 나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던 자가 예수를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헌신입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태장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것이 한 번, 파선 세 번. 강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강도 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위험, 광야 위험, 거 짓 형제 위험.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음. 오히려 눌리는 일-교회를 염려하는 일" 이것이 헌신된 바울의 실체입니다.
넷째, 복음전도와 사랑의 봉사를 위한 것이다. 자기와의 싸움에 일평생을 보내는 것은 소모적입니다. 복음전도 와 사랑의 봉사에 나서는 것, 이것이 생산적인 실천이지요. 고난 도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참회하고 육체의 정욕을 버리기 위해 금 욕하고 이런 소극적 차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고난은 지향점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향한 고난, 뭐 이런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고난이 고난을 위한 것이라 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난 중에 최고의 고난은 복음사역과 사랑의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복음 사역을 위해 고난 받으셨고 바울도 복음 사역을 위한 고난의 일생을 보냈습니다. 베 드로도 그랬고, 나머지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진수는 복음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증인의 사역입니다. 사랑 실천 의 사역입니다. 학생은 공부를 하기 위해 수고하고, 회사 사장은 경영을 하기 위 해 수고하고, 과학자는 탐구하기 위해 수고하고, 예술가는 창작하 기 위해 고생합니다. 학생이 돈 벌기 위해 수고한다면 본질에 벗 어난 수고입니다. 회사 사장은 자기 회사 빌딩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에 수고할 수 있지만 더 본질적인 수고는 경영을 잘 하는 일에 수고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가정에 충실한 나머지 밥짓고 빨래 하고 집안 청소하는 일에 너무 열심히 수고한다면 좋은 일이긴 하 지만, 자기가 감당할 진짜 고난은 아닙니다. 국가를 경영해 경제 를 살리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이 대통령이 감당할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특권 최고의 고난은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 천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을 하는 와중에 당하는 고난이 진짜 고난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위한 고난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사람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 대와 사마리아 땅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또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이 변화되어 앞으로 어떻게 사역 할 것인가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시리아에서 로마까지, 동양 에서 서양까지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은 전적으로 바울 의 덕분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임금들은 권력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권력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 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복음을 전했 습니다. 물론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런 명확한 목적으로 주님은 바울을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시 고 전환시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긴 사순절, 고난절을 이렇게 U턴(전환)하시고, 자신을 깨끗 게 성결하시고, 도구되어 헌신하시고,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하 시는 일을 위해 전진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뒷 얘기를 들으니 해가 지면 하루 금식 기 간이 끝나기 때문에 음식을 바리 바리 싸들고 집집이서 파티를 한 다는 겁니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 한달 동안은 오히려 식료품의 소비가 늘어난다나요 물론 경건한 회교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종교의 본질을 잃어 버린 신앙인은 어디에서나 있는 법인가 봅니다. 마호멧트가 가난한자 구제와 절제를 위해 선포한 라마단 기간 이 오히려 식료품 소비를 더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본질은 잊어 버리고 단지 굶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해 뜰 때 동안 먹 지 않는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는 것 같았습니다. 절제도, 참회도, 나눔도 다 잊어 버리고 말이지요. 기쁨을 상실한 금욕이, 목적을 잊어버린 고행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하는 걸 느꼈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고난절은 주일만 빼고 딱 40일 동안 진행 됩니다. 철저한 고난도 좋고 느슨한 고난도 좋지만 요는 왜 고난 절을 보내느냐 하는 목적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난절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보다 적극적으로 고난절을 보내기 위 해서는 고난절의 본 뜻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기쁨의 고난절을 지내기 위해서는 고난절의 의미를 캐 봐야 할 것입니다. 고난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첫째, 전환의 기간입니다. U턴의 기간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기간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혈기 방장하던 열정은 하나님의 해방사역을 위한 열정으 로 바뀝니다. 전환입니다. 회개는 "메타노이나"입니다. 어둠으로 부터 U턴해서 밝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 욕, 이생의 자랑에서 U턴해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배설물 처럼 여기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U턴은 참으로 극적인 것입니다. 다메섹에서의 U턴은 기독교의 역사를 바꿔 놓은 것입니다. 마치 고려조를 종식 시키고 이 조를 창업했던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 처럼 말이지요. 바울의 U턴은 참으로 선명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극적이었던지 사람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눈을 뜨고 다시 음식을 먹고 강건하여져서 다메섹에 있는 회당에서 예수님을 전파 하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잡아 죽일려고 전술을 쓰는 줄 알았습니다.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21절)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로 바울의 악명은 이미 이방 지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사울에게 안수를 하라 고 하는 것은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충격적인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의 U턴은 충격적인 것이라야 합니다. 보기에도 선명하고, 극적이고 확고한 것이라야 합니다. 이 바울의 U턴은 너무 체험적이고 너무나 확고한 것이라 서, 이후로 일평생 바울은 한 번도 그 걸음을 머뭇거리거나 회피 하거나 철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헌신될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지금 사흘 동안 식음을 전 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강한 빛으로 만난 이후 살기 등등하던 사울은 이제 소경이 되어 부축받는 신세가 되어 식 음을 전폐하고 참회하는 기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 참회의 기간, 이 준비의 기간은 위대한 하나님의 헌신될 사람을 탄생하는 준비 의 기간이 될 것입니다. 요나도 사흘 동안 고기 뱃 속에 있으면서 다시스로 가던 길을 U 턴하게 되었습니다. 니느웨로 향하게 되었지요.
둘째,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회개와 성결의 기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는 사역에 나서기전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의 성결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이 샤야는 부정한 입술을 정하게 하는 숯불로 입술을 지졌습니다. 그 리고 소명의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오늘 바울은 전도인의 도구가 되기전 다메섹에서 회개와 성결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는 회개와 성결의 기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바울은 사상적인 홍역을 치렀을 것입니다. 소경이 된 것이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가 한 순간에 허물어 지는 걸 느낀 아픔입니다. 사흘 동안 식음을 전 폐한 이 사흘은 사울의 내면적인 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 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이 지금 기도하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저가 지금 기도하는 중이라"(11절) 심각한 조정 기간이었습니다. 지금 까지 배웠고 자랑스럽게 고수해 왔던 사상 체계에 대한 고뇌의 기 간이었습니다. 이 구조조정 기간이 바로 고난절입니다. 우리는 주 기적으로 뼈아픈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왜요 '바르게 함'입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 원칙이 우리를 구조조정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 해 지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사흘 동안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갈1장16절에 서 바울이 직접 간증한 이야기를 들으면, 바울은 삼년 동안 아라 비아 사막으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쨋든 바울은 긴 구조조정의 기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개와 성결의 기간입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 그렇습니다. 나의 그릇 즉 예수님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의 그릇은 예수님의 의도 대로 쓰일 것입니다. 주님에 의해 쓰일 것입니다. 세상의 그릇이 아닙니다. 어떤 풍조나 사상의 그릇도 아닙니다. 아내나 남편의 그릇도 아닙니다. 주님의 그릇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깨끗게 된자, 주님의 이름으로 선택된 자는 주님 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의 그릇이라'. 모두 주님의 그릇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선한 도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 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 라 "(딤후2:20-21) 자기를 깨끗게 한 자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릇은 도구입니다. 방치된 그릇을 자주 사용하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자기를 께끗게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결한 자를 도구로 삼으십니다. 성결한 자 만이 헌신될 수 있고, 헌신된 자 만이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난절은 회개와 성결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 깨끗게 되는 기간입니다.
셋째, 고난절은 헌신을 위한 준비 기간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 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투 옥하려던 자입니다. 그러나 오늘 다메석의 사건을 전기로 그는 주님께 참으로 헌신된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목숨을 뺏으 러 다니던 자가 그리스도에게 목숨을 건 자가 된 것이지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0) 사실 바울 처럼 그리스도에게 헌신되는 자가 복음 역사에 있었습 니까 예루살렘, 사마리아, 시리아 안디옥, 킬리기아, 키푸로스, 갈라디아, 소아시아, 밤빌리아, 앗달리아, 마케도니아, 그리스의 아가야, 고린도, 로마 까지 이렇게 광범한 지역을 세차례의 전도 여행으로 그는 땅 끝 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한 자였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 게 보이리라"(16절) 예수님이 직접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헌 신된 자가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아나니 아에게 예언하신 말씀은 참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이야 기입니다. 왜요 우리는 사도행전 전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당 할 엄청난 고난과 해(害)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엄청난 해를 받을 것입니다. 바울의 해 받음을 생생하게 증언한 내용이 고린도 후서 11장 23 절에 나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던 자가 예수를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헌신입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태장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것이 한 번, 파선 세 번. 강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강도 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위험, 광야 위험, 거 짓 형제 위험.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음. 오히려 눌리는 일-교회를 염려하는 일" 이것이 헌신된 바울의 실체입니다.
넷째, 복음전도와 사랑의 봉사를 위한 것이다. 자기와의 싸움에 일평생을 보내는 것은 소모적입니다. 복음전도 와 사랑의 봉사에 나서는 것, 이것이 생산적인 실천이지요. 고난 도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참회하고 육체의 정욕을 버리기 위해 금 욕하고 이런 소극적 차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고난은 지향점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향한 고난, 뭐 이런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고난이 고난을 위한 것이라 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난 중에 최고의 고난은 복음사역과 사랑의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복음 사역을 위해 고난 받으셨고 바울도 복음 사역을 위한 고난의 일생을 보냈습니다. 베 드로도 그랬고, 나머지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진수는 복음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증인의 사역입니다. 사랑 실천 의 사역입니다. 학생은 공부를 하기 위해 수고하고, 회사 사장은 경영을 하기 위 해 수고하고, 과학자는 탐구하기 위해 수고하고, 예술가는 창작하 기 위해 고생합니다. 학생이 돈 벌기 위해 수고한다면 본질에 벗 어난 수고입니다. 회사 사장은 자기 회사 빌딩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에 수고할 수 있지만 더 본질적인 수고는 경영을 잘 하는 일에 수고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가정에 충실한 나머지 밥짓고 빨래 하고 집안 청소하는 일에 너무 열심히 수고한다면 좋은 일이긴 하 지만, 자기가 감당할 진짜 고난은 아닙니다. 국가를 경영해 경제 를 살리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이 대통령이 감당할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특권 최고의 고난은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 천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을 하는 와중에 당하는 고난이 진짜 고난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위한 고난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사람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 대와 사마리아 땅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또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이 변화되어 앞으로 어떻게 사역 할 것인가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시리아에서 로마까지, 동양 에서 서양까지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은 전적으로 바울 의 덕분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임금들은 권력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권력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 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복음을 전했 습니다. 물론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런 명확한 목적으로 주님은 바울을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시 고 전환시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긴 사순절, 고난절을 이렇게 U턴(전환)하시고, 자신을 깨끗 게 성결하시고, 도구되어 헌신하시고,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하 시는 일을 위해 전진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